2010년 3월호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빵은 내 운명, 건강한 빵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김희연│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입력2010-03-02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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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객이 한번 맛을 보면 다른 제과점 빵은 영 못 먹겠다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김영모과자점’의 김영모 명장이 그 사람이다. 최근 ‘김영모의 건강빵’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다양한 빵의 세계를 펼쳐 보인 사람이다. 밥보다 좋은 빵을 고민하느라 평생을 바친 명장은 이제 ‘천년 기업’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지금도 빵을 빚는 김영모 명장.<br> ● 1953년 출생<br>● 1982년 김영모과자점 개점<br>● 1998년 대한민국 제과기능장<br>● 2003~08년 (사)대한제과협회 회장<br>● 2004년 미국 월드페이스트리 세계대회 심사위원 <br>● 2005년 프랑스월드페이스트리컵 세계대회 명예대회장<br>● 2007년 프랑스 농업공로훈장 Merite Agricole 수훈 <br>● 2007년 대한민국 제과명장<br> ● 프랑스 르노트르 제과학교 연수, 독일 하노버대학 제과제빵학교 연수, 미국 AIB Distance Learning 코스 졸업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빵굼터 등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전국 골목 어귀를 점령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군웅할거 속에서 서울 서초동 등 강남 요지에 자리 잡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강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빵집이 있다. ‘김영모과자점’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영어나 불어도 아닌 한글, 그것도 이름 석 자를 떡하니 내세운 이 제과점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거뜬히 이겨내고 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빵의 비밀을 알기 위해 김영모과자점의 대표인 김영모 제과명장을 찾았다.

    김영모 명장을 만난 것은 평일 오후, 김영모과자점 도곡타워팰리스점에서였다. 점포 안을 채운 사람들은 성별도 연령도 천차만별. 주말 저녁 대형 마트에라도 온 양 빵을 고르는 사람들로 점포 안은 몹시 붐볐다. 김영모과자점에는 식빵 하나만도 검정쌀, 호두흑임자, 호밀, 무지방, 제주통밀 등 종류가 여러 가지다. 점포 안을 밀려다니며 빵을 고르는 사람들의 물결이 인상적이었다.

    연 매출 100억

    ▼ 빵은 대개 집 근처에서 사먹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김영모과자점 고객 중에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영모 마니아’라는 계층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사람들이 김영모 빵을 고집한다고 생각하나요.

    “한국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에 친숙하지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식으로 빵을 먹는 외국인과는 다르지요. 김영모과자점의 빵은 천연 발효를 시켜 유산균이 풍부한 제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집 앞 다른 제과점에서 산 빵을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해서 영 못 먹겠다며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국 첫째는 제품력이고 둘째는 거기에 어울리는 서비스가 김영모 마니아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현재 김영모과자점의 규모는 어떤가요. 지점과 직원 수, 매출액이 얼마나 되는지 소개해주세요.

    “서초본점부터 도곡타워팰리스점, 역삼럭키아파트점, 그리고 반포점까지 네 개 지점이 있습니다. 도곡점에서는 샌드위치 카페인 ‘페르 에 피스(Pere et Fils)’를 함께 운영 중입니다. 성남에는 쿠키, 초콜릿, 파운드케이크처럼 보존 기간이 긴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구워야 하는 빵류는 각 지점 작업장에서 만듭니다. 전체를 통틀어 직원이 180명 가까이 되고 연매출은 100억원 정도입니다.”

    도곡타워팰리스점 2층에는 매장과 비슷한 크기의 작업장이 있다. 판매관리 사원보다 많은 수의 제과제빵사가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다. 다른 지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했다. 빵 만드는 시설과 인력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김영모 명장이 자신 있게 말하는 ‘제품력’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찾는 사람이 많고, 여력도 충분한데 점포를 더 많이 내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도곡 타워팰리스점 모습.

    “강남 지역에만 점포를 두고 있어서 강북 손님은 염두에 두지 않느냐는 오해도 삽니다. 직영점을 근거리에만 개설하는 이유는 품질 관리 때문입니다. 현재 네 개 점포가 모두 자동차로 10분 정도면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제품을 수시로 그리고 일일이 검토할 수 있어야 품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시설과 인력 등 인프라가 구축이 되면 다른 곳으로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빵 소비가 갈수록 늘고, 한 끼를 빵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빵이라는 음식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빵이 가진 매력이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빵의 위치

    “빵은 시대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즘은 빵도 웰빙이라는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습니다. 주식부터 간식까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빵의 매력입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빵에 대한 편견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빵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나 선택의 폭이 넓은 빵은 건강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습니다.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집니다.”

    ▼ 빵이나 케이크는 버터나 설탕을 엄청나게 넣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것 같은데요. ‘건강한 빵’이라는 수식이 낯선 감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에서는 딱딱한 빵보다 부드러운 질감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버터와 같은 재료가 듬뿍 들어간 빵이 많이 팔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리법을 다양하게 하면 맛의 보완이 가능합니다. 버터 대신 집에 있는 식용유를 넣을 수도 있고, 우유를 빼고 두유를 사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예 기름과 유제품을 뺄 수도 있고요.”

    다양한 식재료 개발은 김영모 명장이 주력하는 부분이다. 빤한 재료나 조리법으로 프랑스와 같은 종주국을 답습해서는 맛있는 빵을 구워낼 수 없다. 그가 최근 펴낸 ‘김영모의 건강빵’이라는 책에는 빵을 만드는 색다른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버터와 오일 또는 달걀과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빵, 쌀가루와 천연 효모를 이용한 빵 등이다.

    책에는 우리 밀에 대한 언급도 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지만 수입 밀가루로 만든 빵이 따라올 수 없는 고소한 끝맛을 가지고 있고, 빵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도 편하게 소화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재료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빵맛이 서양의 것보다 좋을 수 있을까.

    “우리 밀은 일반적인 제과제빵의 특성에 맞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면 됩니다. 외국에서 맛있던 빵도 한국에서 만들면 그 맛이 안 납니다. 심지어 현지에서 밀가루를 공수해서 만들어봐도 맛이 다릅니다.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기후와 토양이 맞지 않아 쉽게 변질되기도 합니다. 우리 밀로 외국 빵을 만들 것이 아니라 한국에 맞는 새로운 한국 빵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입니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중요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빵을 만들고 있는 김영모 명장.

    ▼ ‘김영모의 건강빵’ 이전에도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라는 책이 나와 제과 분야의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빵의 세계나 케이크 컬렉션을 다룬 책도 있고요. 계속해서 책을 내는 계기가 있습니까.

    “물론 제과제빵사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서적을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굽는 홈베이킹이 활성화되어야 시장이 활성화되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제과제빵도 우리 것을 찾아갈 때인데, 일반인이 한국 제과제빵 기술의 수준을 너무 몰라 안타깝기도 합니다. 집에서도 우리 농산물로 건강에 유익한 빵을 만들어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제과점에 있는 대형설비나 조리기구 없이도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도록 재료의 양을 계산해서 책에 실었습니다. 순서만 정확히 지켜서 따라 한다면 집에서도 맛있는 빵을 만들어 즐길 수 있습니다.”

    ▼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한 사람의 손이 계속 등장합니다. 모든 촬영에 직접 임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김영모 명장의 조리법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시킬 수도 있을 텐데요.

    “아직도 빵을 만드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직원도 많고, 나이도 먹었고, 돈도 어느 정도 벌었으니 이제는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뜻이겠지요. 실제로 많은 기능인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현업에서 손을 뗍니다. 그러나 제게 주어진 소명은 빵 만들기입니다. ‘김영모과자점’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제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김영모 제품이 아닌 것이지요. 몇 십 년 경력이라고 해도 빵 만들기를 중단한 순간 기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나와 똑같이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제대로 교육을 하는 동시에 저도 빵 만들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제과제빵 기술의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하셨는데요.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있습니까.

    “프랑스와 미국의 월드페이스트리가 가장 유명한 국제대회입니다. 20개국 정도가 출전하는 가운데 한국이 항상 5위권 안에 들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우리의 차이는 일반인의 관심도에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NHK 방송사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대회 취재를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 명의 특파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대회 참가 요령을 가르치는 한편, 일반의 관심을 독려하는 것이 제가 할 역할입니다. 그래서 홈베이킹 책도 내는 것이고요.”

    화장실에 숨어 먹던 크림빵의 맛

    지금은 한국 제과업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김영모 명장이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해 작은아버지에게 얹혀살다가 아버지, 어머니, 이모집을 오가며 눈칫밥을 먹고 자랐다. 그 어디서도 배가 고프고 맘이 시리던 날들이었다. 김영모 명장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은 빵 만들기고, 그 다음으로 잘하는 일은 눈치 보기라는 농담을 던졌다.

    “학교 앞 제과점 진열장에서 빵을 바라보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제과점에 취직하면 빵을 먹을 수 있겠다 싶었죠. 숙식제공도 되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막상 취직을 하고보니 빵 하나도 제대로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빵을 먹다가 한 번 걸리면 두들겨 맞고, 두 번 걸리면 쫓겨나던 시절이었죠. 어느 날 크림빵 하나를 훔쳐서 재래식 화장실에 숨어들어가 몰래 먹었습니다. 밀가루로 쑨 풀에 당분을 풀어 넣은 그 빵이 요즘 오만 가지 고급 재료를 넣은 빵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제가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빵은 곰보빵과 크림빵입니다.”

    김영모 명장은 지방의 작은 제과점을 전전했고 젊은 나이에 건강마저 잃었다.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대형 제과점에 취직했지만, 오래지 않아 입영영장을 받았다. 3년이면 기술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앞이 아득했다.

    그러나 군대는 그에게 3년을 뺏은 대신 다른 것을 주었다.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되찾고, 내무반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도 다잡았다. 군 제대 후에는 악착같이 살았다. 겨우 자기 가게를 차리고 나서는 주변의 시샘에 마음을 다치곤 했다. 김영모 명장은 “남들은 나보고 고생했다고들 하는데, 그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웃었다.

    ▼ 혹독한 고생 끝에 지금의 기술을 배우셨습니다. 제과를 배울 공간이 많고 유학도 떠날 수 있는 지금의 후배들이 부럽지는 않으신지요. 한편으로 빵 만들기를 너무 쉽게 배우려 한다는 질책을 하지는 않나요.

    “살아가는 조건은 시대를 떠나 어디나 같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이들은 요즘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 나름의 고민으로 힘들 테고요. 다만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후배를 교육하면서 용기와 인내가 부족한 모습을 볼 때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기능은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빚어지는 것이니까요. 거듭 도전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단번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됩니다.”

    ▼ 젊은 후배들에게는 주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요리사, 제과제빵사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직업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남아 있을 직업이기도 합니다. 고령화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은퇴 없이 계속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힘들어도 훗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주고 싶습니다. 제과제빵사로 남고자 결심한 사람은 첫째로 기능을 갖춰야 합니다. 기본을 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지식입니다.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삶의 현장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곡물, 부재료, 조리법 등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는 인격입니다. 훌륭한 기능과 지식도 인격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직업의 품위는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빵집 창업의 필요충분조건

    ▼ 파티셰나 제빵사가 되려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빵집을 경영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빵집을 차리려는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나요.

    “빵집 창업은 준비가 철저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시작해서는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직접 구울 정도는 아니어도 재료와 조리 과정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합니다. 저는 색깔과 모양만 봐도 실패한 빵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팔리기 전에 잘못된 제품을 골라낼 수 있는 것이지요. 업종 불문하고 재방문 고객 창출이 영업 성공의 열쇠입니다. 한 번의 실수에도 발길을 돌리는 것이 고객입니다. 경영자가 전문 기능인만큼은 아니더라도 빵을 보는 안목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제과제빵사 후배들이 창업을 할 때는 어떤 조언을 하나요. 제품 외에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요.

    “창업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후배들이 던지는 질문은 십중팔구 한 가지입니다. 어느 위치에 가게를 잡았는데, 장사가 잘 될지 봐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는 붙잡아 앉혀놓고 왜 창업을 하려는지부터 물어봅니다. 대답 역시 한 가지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한답니다. 기능인은 좋은 제품이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부터 망합니다. 돈을 좇아 장사를 하다 보니 재료 단가를 낮추게 되고, 결국 제품의 질이 떨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제게 성공은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돈의 가치에 물들어 일의 가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지금도 제품이 먼저입니다. 돈은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요.”

    ▼ 한국 베이커리 시장은 몇 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동네 제과점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지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기능인들이 안주한 것이지요. 가만히 있어도 동네 사람들이 사다 먹으니까요. 견문을 넓히지 않고 자기계발을 게을리 한 사이 시장 조사를 마친 대형 프랜차이즈가 전략적으로 밀고 들어온 결과입니다. 둘째로 적절한 시기에 재투자를 해야 합니다. 매장 외양을 예쁘게 꾸미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설과 인력에 투자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들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빵을 만드는 김영모 명장.

    김영모과자점 로고에는 조그맣게 ‘· Fils’라는 말이 붙어 있다. 창업 20주년을 맞아 상점명을 ‘김영모 앤드 피스’로 변경했다. ‘Fils’는 프랑스어로 아들이라는 뜻이다. 김영모과자점에는 김영모 명장의 큰아들 재훈씨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작은아들 영훈씨는 프랑스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한 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아내 최윤정 이사도 부부 사이를 떠나 매장에서 늘 볼 수 있는 핵심 직원이다. 직업과 가정 양쪽에서 균형 잡힌 성공을 거둔 것이다.

    ▼ 두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의지가 강했는지, 스스로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둘째가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하기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게임에서 제 형을 이기는 것을 보면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말이죠. 책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어요. 매를 들고 억지로 공부 시켜서는 나중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지나 않을지 걱정되더라고요. 뭘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빵을 만들고 싶다고 하대요. 방학 때 두 아들을 작업장에 보내 일을 시켰어요. 첫째는 조금 창피한 기색이었는데, 둘째는 제 몸에 맞지도 않은 헐렁한 조리복을 입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더라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제과명장 김영모

    큰아들 재훈(오른쪽), 둘째아들 영훈과 함께한 김영모 명장(가운데). 들고있는 책이 이번에 새로 나온 ‘김영모의 건강빵’이다.

    ▼ 중학교 시절부터 유학을 떠나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둘째아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직업학교에 다니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해외연수를 다녀도 언어를 모르니까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양에 분명히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두 아이가 영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영국에서도 계속 전화를 하더라고요. 얼른 프랑스에 가서 제과제빵을 배우고 싶다고요. 일본에 가서 제과제빵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만, 프랑스에서 수입돼 일본화된 빵을 배우느니 본토인 프랑스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큰아들은 영국에 남아 호텔경영 쪽을 전공했습니다.”

    ▼ 빵집 이름이 ‘김영모과자점’입니다. 큰아들은 경영자로서 규모를 키우고 싶은 꿈이 있을 테고, 작은아들은 자신이 만든 빵으로 ‘김영훈과자점’을 내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큰아들 재훈이 하고 양재천을 따라 걸으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브랜드를 확장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김영모과자점’이라는 브랜드는 별도로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지요. 제게 ‘김영모’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변하는 이름입니다. 동네 꼬마들도 부모에게 ‘김영모 가자’라고 말합니다. 김영모과자점이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이제는 큰아들도 제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서른인 둘째 영훈씨는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자녀에게도 제과제빵사를 권유할 생각이라고 한다. “기술, 지식, 인격을 갖춰야 하는 제과를 해봐야 참다운 인생을 알게 된다”면서 “한 사람을 완벽하게 만드는 제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 적어도 3대는 걱정 없을 것 같다는 김영모 명장의 말이 허세는 아닌 모양이다.

    ▼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자녀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특별한 원칙이 있나요.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지와 애정을 자녀가 느끼면 자연히 그 일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일이 지겹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부모를 보면 자녀도 직업에 거리감을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 3대까지는 김영모과자점의 의미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남은 꿈이 있나요.

    “유럽과 일본의 역사 깊은 과자점에 들어서면 호흡부터 달라집니다. 선망과 위압감이 섞여 묘한 기분이 들어요. 지난해에는 일본 가고시마부터 삿포로까지 300여 개 제과점을 다니며 3대 혹은 4대 셰프들과 나눈 대화를 묶어 ‘스위트 로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요. 제 꿈은 유럽과 일본의 오래된 점포에 못지않은 ‘천년 기업’으로 남는 것입니다. 직영 원칙을 지키며 좋은 제품으로 세월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오로지 빵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명장의 성공 비결이다. 빵은 누군가에게 인생이자 세월 그 자체였다. 김영모 명장은 더 맛있는 빵 하나를 위해 기술을 나누고 사람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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