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1위 SK텔레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아이폰 출시 이후 시작된 통합 KT의 파상공세와 잇따른 해외 사업 실패, 통신시장의 환경 변화가 종합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신성장동력으로 야심 차게 발표한 IPE 사업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폰을 독점 출시한 KT는 12월 한때 번호이동 가입자 점유율 57%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통신시장점유율이 SK텔레콤 50.6%, KT 31.3%, LGT가 18.1%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SK텔레콤 역시 2월 중순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모토로이를 출시하며 반격을 시작했지만, 시장 반응은 아직 미미하다. 출시 전 예약 판매기간 열흘 사이에 가입을 신청한 사람은 2만명 선. 지난 연말 KT는 아이폰 예약 판매 이틀 만에 2만7000명을 모았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이 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SK텔레콤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첨단 무선통신 사업에서 KT에 이은 2위 사업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올 연말 가입자 수 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빠르게 성장 중인 현실에서 SK텔레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클 수밖에 없다.
와이파이, 어찌 하오리까
일단 총력 대응 체제를 갖춘 SK텔레콤은 모토로이를 시작으로 올해에만 15종의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놓는다. 전성철 SK텔레콤 홍보2팀장은 “KT에 주도권을 잠시 빼앗겼을 뿐 되찾아올 여력은 충분하다. 충성도 높은 가입자들이 SK텔레콤의 스마트폰을 기다려온 만큼 머지않아 본래의 위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케팅 역량도 집중하고 있다. 정상가 89만원의 모토로이를 일선 판매점에서는 1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막대한 보조금 덕분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둘러싼 통신 환경이 SK텔레콤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의 요체는 사용자들이 인터넷 접속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것. 김민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래융합전략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트래픽 증가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007년 세계 최초로 아이폰을 출시한 미국 통신사 A·T의 경우 이후 무선트래픽이 50배나 증가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초고속 인터넷망에서 파생되는 와이파이(wi-fi ·wireless fidelity)를 활용하는 것이다. 유선망 말단에 무선접속장치(AP)를 설치하면 일정 반경 안에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근거리통신망(LAN)이 생긴다. 와이파이다. 기존의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네이트(SK텔레콤) 쇼(KT) 오즈(LGT) 등의 서비스에 접속해야만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와이파이에 접속해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OS를 갖췄다. 정리하면 와이파이 인프라, 곧 유선통신망 인프라가 튼튼한 통신 사업자가 스마트폰이 가져올 데이터 트래픽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에서 이 분야에 가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는 KT다. 전국의 산간벽지 격오지(隔奧地)까지, KT의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게다가 KT는 1990년대부터 이 망을 활용해 스타벅스 등 전국 1만3000개의 다중이용시설에 AP를 설치하고 ‘쿡앤쇼 존’이라는 공중 와이파이 구역을 만들어왔다. KT에 가입한 스마트폰 이용자는 이 공간에서 무료로 데이터 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그동안 무선데이터 통신 기술 개발에 집중해온 SK텔레콤은 유선 인프라를 활용한 와이파이 시설을 현재 단 한 개도 갖고 있지 않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텔레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건 와이파이가 무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입자들이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면 이동통신사의 무선 인터넷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쪽을 무시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판이 바뀌었다”
인천공항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해 웹 서핑을 즐기는 네티즌들. KT는 전국 공항을 비롯한 1만3000개의 다중이용시설에 와이파이 구역 ‘쿡앤쇼 존’을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스마트폰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고 무료 데이터 통신 서비스의 국내 진입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다가 지금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당초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2%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던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연내 10% 돌파 전망까지 나오자 SK텔레콤이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KT처럼 공중 와이파이 구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기행 GMS 사장은 1월 말 열린 지난해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우선으로 와이파이 핫스팟을 설치할 것”이라며 “(가입자들의 무선 인터넷 사용이)경쟁사에 비해 불편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SK텔레콤이 망은 (다른 이동통신 사용자에게도) 조건 없이 개방하겠다”고 덧붙였다. “와이파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방과 공유라는 와이파이 정신을 구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예산 얼마를 들여 어느 곳에 핫스팟 몇 개를 설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성철 팀장은 “올해 책정된 전체 설비 투자비 1조7500억원 안에서 집행한다는 것 외에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동양종합금융 최남곤 연구원은 “사실 이제 와 SK텔레콤이 와이파이 망에 투자한다 해도 실익이 없다. 돈을 쏟아 부어도 생색나지 않고 오히려 무선 인터넷 매출만 깎아먹는 이런 사업에 돈 쓰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방과 공유’의 와이파이 정신을 얘기한 건 여론전을 통해 KT의 무선통신망을 공유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KT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KT 관계자는 “우리는 쿡앤쇼 존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제 와서 무임승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장(사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우선 KT 고객에게 고품질 서비스를 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며 ‘와이파이 공유’ 주장에 선을 그었다.
KT는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와이파이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김철기 KT 홍보팀 차장은 “쿡앤쇼 존을 올해 안에 2만7000개, AP 기준으로는 7만8000개까지 늘릴 것”이라며 “향후 2년 안에 무선 데이터 통신의 50%를 와이파이 망으로 주고받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 팀장의 설명이다.
“3G 통신망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트래픽에 취약합니다. 이용료도 비싸지요. 스마트폰 시대에는 데이터 송수신이 통화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 분야에서 KT는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이동통신시장의 판이 바뀌었다고 봅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미래에셋증권의 권영준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자는 무선 이동통신 분야에서 매출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KT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통신시장 전망, 흐림
SK텔레콤과 미국 어스링크사의 합작법인인 `힐리오`의 단말기들.
익명을 요구한 SK텔레콤 관계자의 말은 SK텔레콤의 스마트폰 대응 전략 일단을 보여준다. 통신시장의 메인 이슈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드로이드폰 출시와 와이파이 존 설치 등으로 KT에 맞대응하고 있을 뿐, 이 시장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뜻은 없는 셈이다.
문제는 SK텔레콤의 ‘집토끼’인 통화 품질 경쟁력과 충성스러운 장기 가입자군도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2월 초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시장의 공정경쟁 등을 위해 800㎒와 900㎒대(40㎒) 저대역 주파수를 KT와 LG텔레콤 등에 할당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1년 7월1일부터 10년간이다. 적은 투자로도 커버리지가 넓고 전달력이 좋아 ‘황금주파수’로 불려온 이 대역은 그동안 SK텔레콤이 독점적으로 사용해왔다. 이번 결정으로 KT, LG텔레콤 등은 일부 지하주차장이나 산간 오지에서 통화가 잘 안 되던 통화품질 문제, 글로벌 로밍 지역 제한 문제 등의 한계에서 벗어나 SK텔레콤과 같은 위치에서 경쟁하게 됐다.
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010 번호 강제 통합’ 정책도 SK텔레콤에는 악재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가운데 010번호 사용자는 80% 수준. 하지만 SK텔레콤은 ‘스피드 011’ 시절부터 이 번호를 고수해온 우수 고객 수백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방통위가 ‘강제 통합’을 결정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가 이탈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최근 베트남에 진출했던 이동통신사업(에스폰)에서 철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끄는 건 이 때문이다. SK텔레콤은 2000년대 초반 “정체돼가는 한국시장을 벗어나 해외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하고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그러나 ‘CDMA 기술 해외 첫 진출’이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베트남 사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성철 팀장은 “SK텔레콤이 베트남 측 파트너(사이공포스텔)와 사업 철수 및 보유 지분 매매를 합의한 것은 사실”이라며 “조만간 사업이 정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 4월 베트남 진출 10년 만이다.
멀고도 험한 글로벌 드림
통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K텔레콤은 계약 만료 이전에 조기 철수하는 대가로 베트남 사업체의 지분 20%를 넘겨받기로 했으며, 이 지분을 매각할 경우 전체 투자금 1억8000만달러 가운데 20% 정도를 건지게 된다.
SK텔레콤의 해외 사업 정리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보유 중이던 중국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 지분 3.68%를 전량 매각하며 중국 사업에서도 철수했다. 차이나유니콤은 중국 제2의 이동통신사업자로 SK텔레콤은 이 회사에 CDMA 관련 기술을 전수하고 대중국 투자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차이나유니콤이 유럽식 GSM 사업에 주력키로 하면서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2006년 차이나유니콤의 전환사채를 사들여 2007년 8월 주식으로 전환한 이후 3년 만이다. SK텔레콤은 2007년 주식전환 당시 1주당 가격이 8.63홍콩달러였고 매각 당시 한 주당 가격은 11.105홍콩달러였으므로 이해타산 면에서 볼 때 손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SK텔레콤의 차이나유니콤 지분 매각으로 손에 쥔 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시장에 이동통신 사업자로 진출하려던 SK텔레콤의 꿈이 잠정 중단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SK텔레콤은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미국시장에서도 사실상 손을 뗐다. 미국 진출은 2004년 미국의 어쓰링크와 합작해 ‘힐리오(Helio)’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2008년 6월 이 회사가 가입자 확보 부진에 실적 악화까지 겹쳐 미국의 버진 모바일에 인수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힐리오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고 25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버진 모바일 지분 17%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 간접참여를 기대했지만, 버진 모바일이 다시 미국의 초대형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에 인수돼 의미를 잃게 됐다. 현재 SK텔레콤과 스프린트의 관계는, SK텔레콤가 스프린트의 실적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 정도가 전부다.
차세대 성장 동력 IPE
SK텔레콤 측은 “이들 사례를 ‘실패’로 보는 건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은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해외에 진출할 때 도움이 될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해외에서 성장 동력을 찾겠다”고 야심차게 포부를 밝혔던 SK텔레콤으로서는 단 한 군데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상황이 뼈아플 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SK텔레콤이 새롭게 제시한 해외 공략 모델은 IPE(산업 생산성 증대· Industry Productivity Enhancement) 다.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신시장 성장정체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은 ‘IPE’”라며 “2020년 IPE 매출 목표 20조원을 달성하고 해외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글로벌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리더’가 되겠다”고 밝혔다. 조기행 GMS 사장도 1월 말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는 IPE를 화두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과 스마트폰 리더십 확대에 나서겠다”며 매출 13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SK텔레콤의 올해 매출 목표는 2009년 매출 12조1012억원보다 7% 가량 많은 액수로, 2009년 매출이 전년대비 3.7% 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성장 목표를 두 배가량 높게 잡은 것이다. IPE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일 수 있다.
그러나 관련업계에서는 IPE의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고 평한다. 김동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의 통신 인프라를 활용해 기업의 업무체계를 효율적으로 바꿔주는 SI(System Intergration) 관련 사업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이 삼성SDS, LG가 LGCNS를 각각 자회사로 두고 있어 SK텔레콤이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크지 않다. 해외의 경우 낮은 지명도와 관련 인프라가 없다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아직은 성공 여부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단 SK텔레콤은 포스코가 추진 중인 ‘유무선 통합 프로젝트’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IPE 사업의 시동을 걸었다. 포스코의 ‘유무선 통합 프로젝트’는 회사 내의 모든 유선 전화를 무선 전화로 대체하고,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WCDMA 망을 이용한 광대역 유·무선 통합망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전성철 팀장은 “SK텔레콤이 보유한 다양한 네트워크 기술과 SK브로드밴드의 유선 인프라를 결합해 제조업 ICT 인프라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脫)통신 행보?
이런 SK텔레콤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SK증권의 이동섭 연구원은 “포스코와의 사업 진행은 SK텔레콤의 SI 역량을 국내외에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 성과를 지렛대 삼아 중국 인도 등 이머징 마켓에 해외거점을 마련하고, 그 명성을 바탕으로 선진국에 진출하면 장기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IPE 사업의 경우 일단 업무 수주를 받은 뒤 일을 시작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에스폰, 차이나유니콤, 힐리오 사업에 뛰어들 때처럼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무리한 해외 투자를 접은 것은 기업 경영 측면에서 볼 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국내 최대 규모의 현금 유동성을 갖고 있는 SK텔레콤이 막대한 현금 자산으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동섭 연구원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연간 4조원가량의 현금창출능력이 있다. 여기서 연간 설비투자(1조6000억~1조8000억원), 배당(약 5000억원), 이자비용 등을 빼도 1조6000억원가량의 잉여금이 남는다. 게다가 차이나유니콤 및 에스폰 지분 매각, 지난해 10월 상장된 SK C·C 지분 매각 대금 등으로 확보한 현금이 2조원 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이 이 ‘실탄’을 들고 M·A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내외 통신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M·A를 통해 새로운 시장 개척을 노리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 돌풍을 일으킨 KT의 아이폰(왼쪽)과 SKT가 2월 출시한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 모토로이.
이 경우 가장 유력한 쪽으로 추정되는 것은 금융업이다. SK텔레콤은 이미 지난해 약 4000억원을 들여 하나카드 지분 49%를 인수했다. 업계 관계자 중에는 SK텔레콤이 이 지분을 바탕으로 은행업 진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최태원 SK회장은 늘 은행업에 관심을 뒀지만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없게 한 공정거래법 규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이 같은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계류돼 있고 통과가 거의 확실시되는 만큼 조만간 SK텔레콤을 통해 관련 M·A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수 대상으로는 우리은행이 거론된다. 하나금융지주의 우리금융지주 인수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SK텔레콤이 하나카드를 통해 우리은행 지분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되면서 산업 자본은 은행 지분을 최대 9%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
공시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인 금융지주회사들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이보다 적은 수준. KB금융의 최대주주는 지분 5.02%를 보유한 ING Bank N.V이고, 신한금융의 경우 프랑스 금융자본 BNP파리바그룹이 지분율 5.71%로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은행의 최대 주주가 되면 경영권을 확보하는 건 아니지만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행장 선임 등의 주요 인사 결정과 전략 수립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주가 1만3800원(2월11일 종가)을 기준으로 환산할 때 우리금융 지분 9%를 사들이는 데 드는 비용은 1조원 안팎이다. SK텔레콤의 현금 유동성에 비추어 무리 없는 수준이다.
SK텔레콤이 가는 길
SK텔레콤은 “카드업 진출은 카드업 진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 모든 M·A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당장 은행업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영록 한신정평가 책임연구원도 “SK텔레콤은 이미 금융연계서비스인 ‘모네타’와 ‘OK캐시백’ 등을 통해 금융업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카드사와의 제휴가 기존 사업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남곤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통신 사업으로 돈을 번 SK텔레콤이 이익을 관련 분야에 재투자하지 않고 은행업에 진출하면 여론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 관련법도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 진출 얘기는 성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SK텔레콤을 둘러싸고 갖가지 얘기가 나오는 것은 SK텔레콤이 경쟁자 없는 1위 자리를 지켜온 지난 10여년 사이에 달라진 통신 환경 때문이다. 국내 이동통신시장이 포화 단계에 이른 현실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신사업 전략을 내놓지 못한 것도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SK텔레콤은 5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압도적인 1위 사업자다. SK텔레콤 측은 시장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실력으로 건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입장이다. 전성철 SK텔레콤 팀장은 “KT가 스마트폰 효과를 선점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장점유율에 거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해외 사업 정리 건도 위기 관리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며 “앞으로 스마트폰이 계속 출시되고 IPE 사업을 통해 글로벌 B2B 시장에 안착하면 SK텔레콤 위기론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2월 중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통신 전시 MWC(Mobile World Congress)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IPE 기반 기술을 선보이고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건다. 또 2009년 중국 상하이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MIV 기반의 모바일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올 하반기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등, 신기술 개발을 통한 성장동력 발굴 노력을 계속할 방침이다.
무선 데이터 통신 관련 인프라는 최소 KT 수준으로 확충하는 한편,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한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KT와 차별화할 계획이다. 안드로이드 마켓의 애플리케이션은 현재 2만8000여 개로, 애플 앱스토어의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운영하는 T스토어와 콘텐츠를 공유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동섭 SK증권 연구원은 “KT의 유선망 커버리지를 100으로 보면 SK브로드밴드는 92~95 수준이다. SK텔레콤이 이 망을 이용해 KT 수준의 와이파이망을 갖추기로 결심하면 순식간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며 “아이폰이 출시된 지 아직 2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좀 더 시간을 두고 SK텔레콤의 반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