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MB정부의 ‘오대영’ 언론정책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입력2010-03-02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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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감독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A매치에서 5대 0으로 패배한 뒤 이를 희화화하는 ‘오대영’이라는 별칭이 유행했다. “상대가 아무리 강팀이라도 어떻게 5대 0으로 질 수가 있느냐”는 것이 당시 정서였다. 최근 이명박 정부를 향해 오대영 논란이 다시 나오고 있다.
    MB정부의 ‘오대영’ 언론정책

    구속되는 ‘미네르바’ 박대성씨.

    미디어 분야에서 이명박 정부가 벌여 놓은 일들이 모조리 사법부에 의해 되돌려지는 황당한 일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무죄 판결,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무죄 판결, 정연주 전 사장 해임에 대한 해임 취소 판결, 신태섭 전 KBS 이사 해임과 교수직 해고에 대한 해고무효 확정 판결, YTN 노조원 6명 해임에 대한 해임무효 판결,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에 대한 무죄 판결 등이 그것이다. 법원 판결의 법리적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MBC PD수첩 사건은 논외로 치더라도 연전연패가 이쯤 되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이명박 정부의 일련의 실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정연주 전 사장 건과 신태섭 전 이사 건은 절차에 대한 경시다. 미네르바 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경시다. YTN 노조원 건과 최상재 위원장 건은 언론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경시다.

    입이 딱 벌어질 연전연패

    정연주-신태섭 파동을 되짚어보자. 2008년 5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부실경영과 편파방송을 이유로 감사청구를 한 지 6일 만에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들어가 석 달 만에 해임을 권고했다. 그해 8월엔 KBS가 국세청과의 법인세 부과 취소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 결정을 수용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정 전 사장의 배임혐의에 대해 수사했다. 신태섭 부산 동의대 교수 역시 정연주 사장 강제해임에 반대하다가 KBS 이사직과 동의대 교수직을 동시에 박탈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12일 서울중앙지법은 정연주 전 사장 해임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정 전 사장의 배임혐의에 대해서도 같은 해 8월18일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신태섭 교수는 지난해 11월17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17개월 만에 교수직에 복직했다.

    신 교수는 “불법적이고 몰상식적인 과정이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당사자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법원의 판결 결과로 볼 때 그의 발언이 단순히 악감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게 됐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정부가 기본적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원은 “정부가 해임을 미리 알리거나 당사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해임의 법적 근거나 구체적 사유도 알려주지 않는 등 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절차상 문제라 대수롭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법원은) 사소한 절차상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정부의 반응이다. 사실 법원은 절차적 정의를 문제 삼아 정부의 결정을 뒤집어 정권 차원의 모욕을 준 것이었다. ‘법치(法治)’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법치를 어김으로써 비판 세력에게는 역공의 빌미를 준 셈이었다. 무죄 판결이 나오자 정연주 전 사장은 다시 언론에 등장하여 MB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그를 지지하던 진보 언론과 진보 시민단체도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현 정부 지지자 중 상당수도 아마 내심으로는 ‘잘 좀 하지’라며 실망감을 가졌을 것이다.

    필자는 정연주 전 사장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번 상황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란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정부에 있다. 좋은 의도가 불법적인 절차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게 확고한 민주주의 원리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공리주의적 목적지향성은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결국 법원은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를 결여하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 것이다.

    MB정부의 ‘오대영’ 언론정책

    정연주 전 KBS 사장, 신태섭 전 KBS 이사,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최상재 전국 언론노조위원장(왼쪽부터).

    너무 지나쳤다

    미네르바 박대성의 구속과 무죄판결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직접적인 억압 사례로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2008년 7월30일과 12월29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 ‘정부,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 등 공익을 해치는 허위사실의 글을 올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고의성이 없었다”는 간단한 판결로 무죄를 선언했다.

    검찰 수사 당시 상당수 전문가는 인터넷 공간에 개진한 개인의 강제력 없는 주장을 가지고 보란 듯이 붙잡아가는 검찰의 조치는 지나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워낙 특이한 사례라 해외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강조해온, 한국의 국격(國格)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란 인간의 기본권이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1조는 ‘표현의 자유는 자유롭게 말하고 저작하고 출판할 권리로서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 중 하나’라고 했다. 한국 헌법도 제21조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허위사실의 유포나 악플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손쉽게 법적 규제를 행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 개개인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설사 문제가 있는 표현일지라도 ‘사상의 자유로운 공개시장(free marketplace of ideas)’에서 자율적으로 걸러져야 한다. 권력기관이 직접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수준이 낮고 무책임하고 거친 주장이 사이버 공간에서 횡행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규제일변도로 나오는 검찰의 태도는 지나친 것이다. 한 명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에서 결국은 모든 사람의 자유가 억압되는 법이다.

    사법부를 격려한다

    YTN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언론의 독립과 자유와 관련하여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13일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등 조합원 6명에 대한 회사의 해고조치에 대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들은 2008년 7월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특보를 맡았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선임되자 그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다 해고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언론은 공정보도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방송사 노사문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자기 사람을 YTN 사장으로 임명했고 YTN 노조 측이 정권의 이러한 결정에 대항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적 성격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YTN 노조 측이 지키려한 ‘공정보도의 원칙’이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방송의 독립’과 ‘언론의 자유’였다.

    사법부의 이러한 무죄 판결들에 대해 정부는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이 나라가 뒤집힐 듯한 소란 속에서도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삼권분립’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행정부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법원이 존재하고 있음은 국가의 분열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가 든든하다는 의미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법원이 국가공동체의 결속과 안정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행정부에도 좋은 일이다.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호해주고 있는 사법부를 격려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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