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의 말
1961년 5·16군사정변과 1979년 12·12쿠데타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당시 군부 내에 얽히고설킨 파벌과 사조직 문제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속한다. 공식 지휘체계 대신 출신지역이나 기수 같은 사적인 유대감으로 뭉친 세력의 존재가 군사쿠데타의 핵심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와 일본, 광복군 출신이 한데 얽힌 초기 한국군의 복잡한 인적 구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형성된 군 내부의 학연·지연 중심의 조직문화가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건의 작성자인 필립 하비브 전 주한 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 1971년 주한 미대사로 부임할 무렵의 사진이다. ‘신동아’는 40여 년간 미공개 상태로 잠들어있던 문제의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찾아낸 보고서에서는 한국군의 초기 파벌을 크게 네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일권의 함경도파, 백선엽의 평안도파, 이형근 그룹, 그리고 일본파다(이 가운데 만주군사학교 출신이 주축을 이루는 함경도파와 평안도파를 묶어 만주파로 통칭하기도 한다). 여기에 이범석이 이끄는 민족청년단 계열 등을 부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 주요 파벌의 발생과 당시의 규모, 그 장성급 구성원들의 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히 분석하면서, 보고서는 한국 군부의 지도급 인사들이 구성원의 만연한 부패나 비리를 덮어주고 승진 등 인사문제에서 특혜를 주는 식으로 자기 파벌을 관리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지만, 이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부분은 5·16군사정변의 원인을 파벌관계에서 찾는 대목이다. ‘젊은 대령들’로 불리는 중간그룹 장성들이 파벌에 얽매인 선배들의 부패와 지연에 따른 인사로 불이익을 받게 되자 선배들을 제거하고 적체된 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변을 일으켰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군사정변 이후 기존의 파벌세력이 정리되면서 새로 기수별 파벌구도가 펼쳐지고 있다고 전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4년제 정규교육 코스를 밟은 젊은 장교들이 선배들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과 불만을 새로운 갈등요인으로 지목한 분석은, 먼 훗날 신군부가 12·12쿠데타를 일으키게 되는 이유와 배경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김종필이 창설한 중앙정보부가 5·16 주도세력 내부의 갈등을 촉발하는 고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다시피 1961년 이래 1990년대 초반까지 30여 년 동안 군부는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막강한 권력을 유지했다. 군사정변 이후 군부의 세력과 파벌구도가 정치계와 재계에까지 뻗어나가고 있음을 우려하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는 보고서 속의 문장 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고스란히 현실이었다. 참고로 보고서를 작성한 필립 하비브 당시 참사관은 1971년 주한 미대사로 다시 한번 서울에서 근무한 뒤 1976년 국무부 차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중동특사로 활약하며 미국 외교의 핵심인물로 성장한다. 주한대사 시절 그가 지었던 정동의 ‘하비브 하우스’는 현재도 미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다. 25쪽의 본문과 파벌 구성원 명단을 정리한 7개의 첨부문서로 돼 있는 보고서 전문을 번역, 게재한다. 문장은 사료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되도록 직역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직책, 기관이나 부대명은 영어 표기를 그대로 옮긴 뒤 자료를 확인해 최대한 바로잡았지만, 일부 원문의 오기(誤記)가 남아있을 수 있다. 혜량을 당부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