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땅에 세워진 첫 원자력발전소는 1978년 완공된 고리 1호기다. 이종훈 한전 이사회 의장은 바로 이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처음 원자력과 인연을 맺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시작된 인연은 그가 한전 사장으로 퇴임한 1998년까지 이어졌다. 한국 원자력 기술발전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 명실상부한 산 증인인 셈이다. 지난해 연말 전해진 아랍에미리트(UAE) 140만kW 발전소 4기 수주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 의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이미 원전 해외수출을 타진했고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UAE 원전 수출 소식이 전해진 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는, 원자력이 국제정치와 맞닿아 파생한 또 하나의 첨예한 쟁점이다.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 시도 이래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 기술 개발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버리지 않았고,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핵개발 시도가 확인된 후 그러한 태도는 더욱 굳건해졌다.
2014년 원자력협정의 기간 만료를 앞두고 2012년까지 개정 협상을 완료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1월말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워싱턴을 방문해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지난해 7월에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수십 년 세월을 지켜봐온 원자력 기술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시점, 더불어 본인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원자력협정 개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이 의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1월28일 오전 한전 서울 남대문로 사무소에서 그를 만나 한국 원자력 기술의 지나온 역사와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회를 들었다.
후진타오의 연락
▼ UAE 원전 수주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잠이 안 올 정도로 기뻤죠. 수출이야말로 원자력계의 숙원이었으니까요. 1990년대부터 수출을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10년이 넘게 지나서야 비로소 성사가 됐죠. 다행히도 아주 큰 건이 됐어요. 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소는 공동설비를 나눠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에 2기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고, 또 개발도상국에서는 보통 100만kW 발전소를 짓습니다. 도합 200만kW로 60억달러 내외의 사업이 많죠. 그런데 이번 UAE 건은 140만kW 4기를 한꺼번에 짓는 계약인데다 kW당 단가도 3600달러로 산정되어 이례적일 만큼 큰 사업입니다.
이번 수주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컸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원자력에서는 지상전 못지않게 제공권 장악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때도 꼭 수출국 수장이 와서 마지막을 장식하곤 했거든요.”
▼ 가장 궁금한 것은 이러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특히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이나 기술적으로 한참 앞서 있던 프랑스에 비해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시다시피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에서 핵연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져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이 일 이후로 미국에서는 30년 동안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있지만 원자력발전소를 통합적으로 지을 수 있는 조직된 회사는 아예 사라지고 없어요.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KOPEC)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회사에 사람을 보내 사업진행을 도울 정도니까요. 물론 지금은 선진국들의 원자력 정책이 바뀌고 있습니다만, 새로 사업체를 조직한다는 것이 쉽지 않죠. 덕분에 그 동안 꾸준히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왔던 우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