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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종훈 한국전력 이사회 의장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민간이 먼저 나서 ‘사전작업’했어야”

  • 윤영호│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yyoungho@donga.com│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이종훈 한국전력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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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된 그의 집무실에는 한국 원자력사(史)의 큰 사건들을 담은 사진들이 놓여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1995년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진입니다. 그 무렵 저희가 중국에 수출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1998년 8월 한중수교 5주년 사절단으로 장 주석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이 다음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꼭 한국을 참여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한국의 원자력 기술에 상당히 매료돼 있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대공산권수출통제(COCOM)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원자력을 수출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었거든요.

약속이 좌절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정권이 교체되면서 제가 한전 사장을 그만뒀고, IMF 외환위기 때문에 우리 사정이 워낙 안 좋아졌어요. 제가 1998년 4월28일에 이임식을 했는데 마침 그날 후진타오 당시 부주석이 한국에 와서 한전 사장을 찾더라고요. 저는 이미 이임식을 했으니 나갈 수가 없잖아요. 부사장을 보냈더니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그냥 돌려보냈다더군요. 그 해 11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원자력 협력사업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후임 한전 사장들에게 잘 연결이 안 되는 바람에 결국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긴 했지만, 그 사이 중국도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원자력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뤘습니다. 원전을 구매하는 눈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죠. 지난번에 중국이 국제입찰을 해서 우리도 시도했지만 결국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아직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1990년대 후반에 저희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고 시도한 것도 중국 수출시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됐는데, 하나가 한국이 중국에 원자력을 수출하는 것을 양해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재처리가 가능하도록 협정을 개정하자는 것이었죠. 전자는 쉽게 풀렸는데 후자는 간단치 않았죠. 한 1~2년만 그 추세가 유지됐으면 중국에 대한 원자력 수출길이 열렸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때의 아쉬움을 이번에 UAE 수출 건에서 푼 거지요.”



두 번의 전기

▼ 한국 원자력발전의 시작이라는 1970년대 고리1호기 건설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자력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과 당시의 분위기를 기억하십니까.

“당시는 한국이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해도 차관조차 얻기 어려웠죠. 그래서 미국과 영국 회사가 자신들의 책임 아래 차관을 빌려다가 고리 1호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설계에서 구매, 시공, 성능보장까지 모두 이들 회사가 책임지는 턴키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1973년 터진 석유파동이었습니다.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침체되니까 고리 원전 건설사업도 흔들린 겁니다. 건설공기는 자꾸 늘어지고 공사비도 계속 올라가고요. 원전을 계속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김영준 당시 한전 사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추가비용을 지급하기로 결정해서 가까스로 사업이 살아남았죠.

그 과정에서 한전이 원자로 공급업체였던 웨스팅하우스와 새로 협정을 맺었어요. 통합관리반(IMT)이라는 걸 구성해서 모든 공정계획에 한전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거죠.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사업관리를 함께 하면서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였던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 관리 노하우를 고스란히 배울 수 있었던 거죠. 이때 배운 기술 덕분에 고리 3~4호기부터는 우리가 직접 사업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만약 IMT가 없었다면 기술자립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석유파동이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또 한번의 결정적인 계기는 영광 3~4호기를 건설하던 1980년대 중반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때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가 없어서 우리가 발주하는 사업에 원자력 선진기업들이 모두 뛰어들었거든요. 우리와 오래 사업을 해온 웨스팅하우스는 이번에도 쉽게 되겠지 생각했지만, 지명도나 규모에서 밀리는 또 다른 미국회사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필사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회사를 상대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 회사가 갖고 있던 원천기술을 모두 넘겨받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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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yyoungho@donga.com│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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