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고전파음악의 거장 바흐 (아래) 대중적인 클래식음악의 길을 연 비발디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음악을 이렇게 나누면서 여러 가지 경험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순수음악과 상업음악, 오케스트라음악과 전자밴드의 음악, 귀족 음악과 평민의 음악, 졸린 음악과 흥분되는 음악, 어려운 음악과 쉬운 음악, ‘그들의 음악’과 ‘우리의 음악’처럼 말이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표현은 없지만,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음악이 양분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또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을 나누는 진짜 잣대는 무엇일까? 중세시대 이전에는 ‘작곡가’라는 직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때에도 음악은 존재했고,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게 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이 여흥을 즐기거나 의식(儀式)을 하면서 흥얼거리던 가락과 리듬이 있었다. 어찌 보면 음악이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들은 점점 발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악보라는 것으로 기록할 생각을 했다.
음악의 악보화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간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과정보다도 더 오래 걸렸으니까. 음악을 기록할 줄 아는 사람은 그 곡의 창작자가 되었다. 이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직업’의 개념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당연히 전문적인 작곡가와 아마추어 작곡가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자신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니는 음유시인들은 특별히 악보를 만들 이유가 없었기에 입으로 전달했지만,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은 예식용 음악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반드시 악보화해야 했다.
7세기부터 불려지던 ‘그레고리안 성가’는 상당히 발전된 기보법으로 만든 악보들로 남아있지만, 처음에는 역시 구전으로 내려오던 노래였다. 원래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은 수도사들이었고, 그것이 9~10세기에 악보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름을 땄을 뿐, 그도 역시 작곡가는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도 원래 직업은 신부님이었다.
궁정, 교회의 음악과 세속음악
그렇다. 음악을 꾸준히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기록해서 보존해야 하는 곳이 존재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궁정과 교회다. 언제나 제사나 의식이 행해졌고 거기에는 음악이 필요했다. 전문적인 작곡가라는 직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음유시인들, 즉 세속음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고 또 높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천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순수음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수음악은 순수한 예술을 위한 음악이지 ‘천하지 않은 음악’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벌써 구분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작곡으로만 먹고사는 프로페셔널 작곡가들이 등장하면서 음악은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니 음악을 정식으로 오랫동안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음악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대위법’이라는 고난도 기교는 쉽게 만들어내기 힘든 것이었다. 건반악기를 두드려서 여러 가지 화음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그것들이 진행할 때 지켜야 할 세부적인 규칙들, 즉 ‘화성학’역시 어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