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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단독 | ‘J노믹스 지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에 이념논쟁, 정쟁(政爭) 들어가면 안 돼”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단독 | ‘J노믹스 지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에 이념논쟁, 정쟁(政爭) 들어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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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는 지휘자다. 대한민국 경제팀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다. 현악기 관악기 등 다양한 악기가 조합되는 오케스트라처럼 경제팀도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부처로 구성된다.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는 것은 지휘자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팀도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철학을 잘 구현하려면 특정 부처의 개인기보다는 화음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화음이 나와야 관객인 시장과 국민이 좋아한다. 금리, 세금, 규제, 지원 등을 두고 부처 간 불협화음과 엇박자가 생긴다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지고 국민은 불편해진다. 그래서 지휘자인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혁신성장 재부각돼 다행”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한 경제팀 첫 지휘자는 김동연(60) 전 아주대 총장이다. 김 부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산 전문가요, 경제 브레인이다. 박근혜·이명박 보수 정부에서도 전문 관료로 인정받은 그는 경제철학이 사뭇 다른 진보 정부에서도 경제팀을 지휘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여러 어려움을 안고 있다. 주가 상승과 대외신인도 유지 등 긍정적 요인도 있지만 안으로는 청년실업 문제, 저성장·양극화 문제, 성장동력 발굴과 혁신의 문제, 밖으로는 북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국내 기업 피해 등 하나하나가 녹록지 않은 사안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8년 한국경제 7대 이슈 보고서’에서 2%대 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한국 경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추석 연휴의 한가운데이던 10월 2일 김 부총리를 만나 답을 들었다. 서울 정부종합청사 부총리 접견실에서 1차 인터뷰를 했고, 추가 질의(한중 통화 스와프 등)를 통해 내용을 정리했다.

김 부총리는 앞으로 특히 ‘일자리와 혁신성장’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취임 초부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같이 강조해온 그는 “혁신성장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며 “대통령께서 언급하면서 혁신성장이 재부각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혁신성장을 이루는 데 대기업도 중요한 축이라며 “대기업 투자·고용 확대를 위해 패키지로 규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성장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때는 언제냐는 물음에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은 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일자리만큼은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제 분야는 진영논리, 이념논쟁이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김동연 패싱 논란’ 등과 관련해 “남이 뭐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경제팀에서 경제부총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미FTA 재협상 성공을 위해 “양국간 이익 균형의 방향에서 국익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밝히는 등 대외 리스크 관리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출 구조조정 11조5000억

취임 4개월이 지났다. 가장 보람 있는 일과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
“가장 보람 있는 일은 경제·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새 정부의 5년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거의 전 부처를 대상으로 11조5000억 원에 이르는 지출 구조조정을 한 것도 꼽고 싶다. 당초 계획인 9조 원을 많이 넘겼다. 구조개혁은 어느 정부든 첫해에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첫 해 11조5000억 원의 지출 구조조정이 베이스로 깔리면 임기 5년 동안 58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재원 배분체계 전환 등 재정에서 질적 구조조정을 착수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쉬운 점은 공정경제 기반 위에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루는 새 정부의 패러다임에서 혁신성장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소득주도성장에 중점을 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정 투입 등 눈에 띄는 정책이 많은 소득주도성장에 비해 제도 개선과 정책, 기업가 정신 등이 중심인 혁신성장이 눈에 띄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께서 혁신성장을 언급하면서 다시 부각돼 잘됐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26일 혁신성장에 대해 경제부처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념을 정립하고 속도감 있는 집행 전략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혁신성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혁신성장은 경제·사회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높여 경제 전체 파이를 키우고 이를 통해 일자리·성장·소득을 확대하는 것이다. 혁신성장의 전체 그림과 추진계획을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도록 정책을 만들고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혁신성장 4대 방향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계속 나와서 우리 경제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혁신성장의 4대 방향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 4대 방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혁신 생태계 조성과 인프라 구축으로, 기존의 개별 기업 지원에서 생태계 자체에 대한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는 규제 개혁이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이 중요하고 구체적으로 규제 샌드박스(sandbox·신산업 분야 등에 대해 일정기간 규제 유예)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셋째, 혁신거점의 확대다. 지자체-대학-산업을 연계해 뉴욕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있는 코넬테크(공과대학원) 같은 방식이다. 넷째는 혁신자본과 혁신안전망 확충이다. 의욕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본과 손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하더라도 연대보증제 폐지 등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느냐에 있다. 그러지 않아도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정권이 혁신성장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상당한 상황이다. 김 부총리는 논쟁보다 실행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네 가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일자리’와 ‘창업’이다. 창업과 창직(創職) 유형을 다양화해서 고용률과 생존율이 높은 숙련 창업, 재창업, 팀창업뿐 아니라 사회적기업 창업, 대기업 분사(分社) 창업, 전문 서비스 창업 등까지 장려하려 한다. 지금 창조경제가 뭐고, 혁신성장이 뭐니 하는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경제가 역동적으로 바뀌고, 전반적인 분야에서 업그레이드를 통해 혁신 분위기가 퍼지게 하는 일관된 정책을 내는 게 중요하다.

벤처·창업기업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에서 고용과 성장에 기여한 기존 중소기업을 혁신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업도 공정경제의 토대 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 방안 등을 숨 가쁘게 내놓을 계획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실제로 저소득층에게 얼마의 소득을 어떻게 올려줄 수 있는가.
“소득주도성장은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서 취약 계층, 중산층이 경제활동을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가처분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일자리를 만들고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을 늘리고 주거비, 의료비, 통신비, 교육비 등 생활비를 줄여 달성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내수를 늘리고 총수요를 끌어올려 성장, 일자리,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이런 정책을 통해 인적자원을 고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사람 자체에 대한 투자로 연결되어 결국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정책으로 저소득층에게 얼마의 소득을 올려줄 수 있을지 수치로 말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문제는 소득증대→내수진작→경제성장→투자와 일자리 증가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혁신성장, 길게 봐야’

앞으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분야는 무엇인가.
“일자리와 혁신성장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하다. 경제 선순환 고리의 중심에 일자리가 있다. 통계보다 체감 노동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대학총장으로 있으면서 노동시장 현장에 뛰어드는 젊은 취업준비생들의 어려움을 많이 봐왔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노동시장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정책을 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생산성을 올리고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이런 것들은 공정경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성장이 성장동력인가. 그것으로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가. 혁신성장을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때는 언제쯤일까.
“성장에 대한 혁신의 기여율이 50% 이상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 결과도 있다. 공정경제의 기반 위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두 축이 원활히 추진되면 한국 경제는 새로운 활력을 찾을 것이다. 혁신성장은 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혁신성장 추진 과정에서 창업과 창직 등을 활성화해 일자리만큼은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다.”

경제성장의 핵심인 기업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고용 증대, 임금인상, 투자 확대 등에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정부는 대기업이 공정경제의 기반 위에서 마음껏 사업할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대기업들도 만나 투자·고용 확대 기회가 있지만 규제 등 현실적 제약이 있는 경우 패키지로 해결해주려 한다. 물론 경제와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 경우여야 한다.”


김 부총리는 10월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중요한 축이다. 대기업이 마음껏 국제경쟁력을 갖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 3% 성장 전망

한국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걱정이 많다.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도 3개월 연속 하락세였는데,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3% 성장은 실현 가능한가.
“우리 경제가 아무 문제가 없었던 적이 있나. 늘 도전 과제가 주어졌다. 우리 경제의 역사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과 스토리의 연속이다.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우리 국민에게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DNA가 있다. 그렇게 한 단계씩 발전해온 것이 오늘의 우리 경제다. 수출·투자 등 실물경제 회복세가 견조하고, 금융시장도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등 우리 경제의 기본은 여전히 건실하다.

3% 성장은 우리 경제의 전망이자 목표다. 최근 우리 경제성장률을 보면 김대중 정부 5%, 노무현 정부 4%, 이명박 정부 3%, 박근혜 정부 2%대다. 반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3%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 우리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큰 줄기로 봐선 3% 성장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 경제 성장 전망치를 당초 2.7%에서 3.0%로 상향 조정한 것도 좋은 신호다. 동시에 북핵 문제, 한미FTA, 부동산, 가계부채 등 대내외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3% 성장이라는 양적 지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질이다. 첫째, 성장 과실이 국민에게 고루 나눠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성장이 어떤 요소에 의해 이뤄지는지도 중요하다. 여러 경제 구성요소가 균형을 이뤄 질 높은 성장을 조화롭게 이뤄서 양극화도 해소하고, 취약계층이나 중산층의 경제활동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

8월 실업률은 3.6%로 2009년 이후 최저였고,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4%로 1999년(10.7%) 이후 가장 높다. 일자리 창출 정책이 속히 결실을 거둬야 할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혁신적인 복안이 있는가.
“일자리와 혁신성장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전에 재정을 많이 써서 공공 일자리를 늘려 숫자 채우기 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단기 정책으로 몇 달 만에 일자리가 대폭 늘어나 보인다. 일자리는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일자리는 시장과 기업에서 자생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성장의 질이 좋아 기업들이 사람을 많이 쓰고, 창업이나 창직, 벤처가 활성화하는 혁신성장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단기간이 아닌 긴 시계(視界)에서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추경과 내년도 예산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민간 일자리를 늘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최근 추이는 기존 대기업이나 대형 제조업종에서보다는 서비스업, 중소기업, 벤처기업, 창업 등을 통해 일자리가 많이 나오는 것이다.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수요와 공급 부조화 상태)를 풀어주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규제완화, R&D투자 등을 통해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창업 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혁신성장 정책을 꾸준히 실행해 일자리만큼은 빠른 시일 내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고 싶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자영업 구조조정을 통한 자생력 제고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영세중소기업의 부담 증가 및 고용 축소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재정에서 최저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지원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이 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내년에 시행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 정부 지원의 효과, 최저임금 인상폭 등의 상황을 봐가며 조정할 것은 조정하겠다. 근본적으로는 준비된 창업 유도, 경쟁력 제고 등을 통해 자영업자의 자생력을 강화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 대책으로 대기업의 하도급 관계 정상화도 포함할 수 있는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정책 방향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책에도 그 내용이 들어있다. 카드수수료 문제, 프랜차이즈 업체와 본사의 관계 정상화 등도 추진하고 있는 내용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정책은 공정경제를 만들겠다는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고, 최저임금 대책도 그 연장선이다.”

‘김동연 패싱’이란 출처 불명의 말이 등장해 떠돌았다. 그러다 대통령의 혁신 성장 강조 이후엔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로 재부상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김동연 패싱이란 말은 왜 나왔고, 앞으로 그런 현상은 더 이상 없다고 봐도 될까.



‘패싱 논쟁 의미 없다’

“남이 뭐라고 하는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제대로 일하는 게 중요하다. 전에도 내가 ‘패싱’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새삼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나다. 옛날에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장면을 두고 두 스님이 ‘바람이 움직이게 한 것이다’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지 어떻게 바람이 움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하고 다투자 고승 혜능이 ‘둘 다 틀렸다.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내 역할을 한 것이지 패싱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경제팀장으로서 경제팀과 원활한 소통과 치열한 토론을 내부적으로 하면서 밖으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주무 장관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처음부터 밝혔기 때문에 경제팀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잘 조율되고 있다. 청와대와의 관계도 상호보완적이다. 예컨대 청와대에 있는 분들은 대통령의 뜻을 가까이서 더 잘 알 수 있고, 또 많은 분이 여러 정치 과정을 통해서 가꾼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의 경험과 생각이 경제팀의 경제 운영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므누신 장관과 격의 없는 면담

언론은 부총리가 핵심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싶은 듯하다. 이런 ‘사인(sign)’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이 바람직한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핵심이고 누가 실세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실세나 핵심이라는 말보다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경제 관료 입장에서 보면 실세라는 게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 ‘실세’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함의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제대로 일하고,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서, 해당 장관이나 수석들과 같이 의논해서 제대로 정책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거다.”

10월 중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했다. 어떤 성과를 거뒀나.
“출장 기간에 총회 참석은 물론 미국 등 주요국 재무장관과의 양자회담을 비롯해 S&P,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모두와 협의를 진행했다. 특히 신용평가사와의 면담에서는 쌍방향 토론(open discussion)을 통해 우리 경제의 현안과 정책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북한 리스크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대응과 국제사회와의 공조, 경제의 견실한 펀더멘탈 등을 설명해 경제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는 데 노력했다. 미국 므누신 재무장관과의 면담에서는 조만간 발표 예정인 미국의 환율보고서와 관련해 우리 환율이 시장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금년 들어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이 밖에 대북 정책공조, 한미 FTA 협상 등에 대해서도 양국이 상호 이익(win-win)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미국측에서 차관과 차관보를 모두 배석시키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고 이례적으로 당초 면담시간보다 30분 가까이 초과해서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출장기간 중 피치가 신용등급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는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제한적임을 시사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새 정부의 개혁정책이 국가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했다.” 



가계부채 맞춤형 대응

8·2 부동산대책의 효과와 불안 요인은 무엇인가.
“8월 2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이후 주택가격은 비교적 안정된 상황이다. 다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불안 요인이 일부 있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투기수요 유입 등 시장불안 요인이 발생하는 경우 ‘투기수요 근절, 맞춤형 대책, 실수요자 보호’라는 3대 원칙에 따라 적극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보유세는 초(超)과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세형평성, 주요국들에 비해 낮은 부담 수준, 거래세와 보유세 비중 등을 고려해 검토할 사안이다.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보유세 인상은 현재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경우 초과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는 대안 중 하나로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계부채가 1400조 원대에 이르렀다. 10월 말 발표할 가계부채 종합 대책의 효과는 어느 정도 기대하나.
“가계부채는 단시간에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시간을 두고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가계부채 연착륙과 취약차주(借主) 지원에 중점을 두고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 자리 숫자 이내로 유도해 우리 경제금융 시스템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취약차주의 상환부담을 완화하고,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금융상담을 활성화하는 등 맞춤형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 또한 일방적인 대출 축소보다는 제2금융권, 집단대출 등 취약 부문을 타깃으로 하면서 상환능력에 맞는 대출 관행 정착에 역점을 두겠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을 통해 가계의 근본적인 상환 능력을 제고하는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다.”

북한의 핵실험 등 연이은 도발과 북·미 극한 대치로 북한 리스크가 경제지표에 투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핵 문제가 우리 경제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북한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근본적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정부는 어느 때보다 높은 경계심을 갖고 대내외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관계기관 합동으로 외국인 투자 동향 및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시장 불안 등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상황별 비상대응계획에 따라 신속하고 단호하게 안정조치를 시행하겠다.”


한중 통화 스와프 극적 연장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정부는 양국 간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에서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겠다. 범(汎)부처 차원에서 긴밀히 협력하겠다. 한미 FTA 관련 미국 내 동향 등을 주시하면서 향후 대응 방향을 점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의회와 업계 등 핵심 인사를 중심으로 미국 내에서 한미 FTA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하겠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국내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국내 기업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9월 28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1차 중국 관련 업계 애로 완화 방안을 마련했다. 어려운 관광 업계를 위해 외국인 관광객 숙박요금에 대한 부가세 환급을 신설하고 사후 면세점 즉시환급 한도도 인상했다. 자동차와 부품 업계에 대해서는 기존 대출 만기 연장, 신규 대출 확대 등을 통해 자금조달 부담을 완화했다. 업계 애로 완화 방안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근본적으로 한중 경제협력 관계가 질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대중 수출과 투자의 다양화·차별화가 필요하다. 또 중국 이외 해외시장을 다변화하고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되도록 정부도 지원하겠다.”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극적으로 연장됐다. 중국 측 사드 보복에 대한 완화 또는 한중관계 개선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가.
“10월 12일 IMF 연차총회 기간에 한은 총재와 함께 한중 통화 스와프에 대한 연장계약이 이뤄졌음을 수행 기자단 인터뷰 과정에서 밝혔다. 기존 계약과 규모(64조 원/3600억 위안), 만기(3년) 등에서 동일한 내용이다. 한중 통화 스와프는 국제 금융시장의 안전판, 또는 경제협력의 좋은 상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 보수 양측에서 공격

통화 스와프를 연장하는 데 기재부와 한은, 두 기관의 공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양 기관이 신뢰를 갖고 긴밀히 소통했다. 이주열 총재와 한은 실무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양 기관의 공조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김 부총리는 4년 만에 기재부에 돌아왔다. 철두철미한 상사의 등장에 직원들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는 그동안 견고하게 형성된 기재부의 기존 조직 논리에 변화를 주고 있다. 실례로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통해 경제구조개혁국, 재정혁신국을 신설했다. 그러면서도 기재부 정원은 늘리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관리운영 평가체계를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양적 성과와 효율성 중심의 평가를 반성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 기여도를 포함한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고 있다. 공공 조달에서 사회적 가치 부분을 지표로 넣는 등의 방법이 포함될 예정이다.

김 부총리는 국회와의 관계와 관련해 “공식·비공식 당정협의를 통해 사안별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 26일 야당 의원들 중심 모임인 ‘미래성장 경제정책 포럼’(대표의원·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에 가서 한 ‘국제시장과 채식주의자’ 강연은 그 내용 때문에 특히 화제가 됐다.

“우리 경제가 영화 ‘국제시장’ 속 주인공처럼 개발 연대를 거치며 비약적인 성장과 성공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갖게 된 저성장, 양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성공 경험을 떨쳐버려야 한다. 압축성장에서 지속가능경제로 가야 한다. 양적 투자에서 사람 중심 투자로, 추격형·모방형 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에게 주변 사람들이 육식을 강요하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는 자기가 주장하는 패러다임과 방식만을 강요하고 있다.”

취임 이후 보수, 진보 양측에서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경제 분야만큼은 도식화된 진영논리가 불필요하고, 이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익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 한미 FTA는 소위 진보 정권이라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졌다. 슈뢰더 독일 총리가 이념을 뛰어넘어 추진한 어젠다 2010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강대국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그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외부 환경 변화에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하는 것)인데, 슈뢰더 총리는 진보성향의 사민당 출신이었다. 경제에 지나친 이념논쟁, 정쟁(政爭)이 들어가면 안 된다.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서는 치열한 토론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노동시장 변화를 위해서 고용 안정을 확대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높이는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국회와 정부, 노사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어느 캠프에도 몸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부총리로 발탁된 것은 인사를 두루 기용한다는 문 대통령의 탕평인사로 알려져 있다. 혹시 문재인 캠프와 사전 교감이 있었나.
“대선 기간 중 문재인 캠프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문 캠프뿐 아니라 다른 캠프에서도 여러 차례 도움과 참여 요청이 있었지만 당시 아주대 총장으로 있었기에 모든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선거 후 신문에서 여러 하마평이 나왔고, 실제 제의가 왔을 때 대학총장 신분이라 학교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사양하다가 결국 받아들였다.”


‘문 캠프와 사전 교감 없었다’

보수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등 요직을 맡았지만 철학은 진보적인가.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 내가 쓴 책 제목인 ‘있는 자리 흩트리기’처럼 공직에 있든 대학총장으로 있든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유쾌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나를 지탱한 내 마음의 중심은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였다. 이를 위해 공직 생활을 하는 내내 새로운 생각과 접근,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고착화된 불공정한 사회 환경을 바꾸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상당 기간 계속됐다. 김 부총리는 보수 정부에서도 서민층 지원,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희망사다리 같은 정책을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 예산안에는 저소득층 예비대학생들에게 해외유학 및 연수 기회를 확대하는 ‘파란사다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아주대 총장으로 있을 때는 형편이 어렵지만 열정 있는 학생을 뽑아 한 달간 외국 명문대로 연수를 보내는 ‘애프터유(After You)’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영어 성적이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정도와 해보겠다는 의지만을 선정 기준으로 뽑았고, 경비는 뜻을 같이하는 외부 분들로부터 모았다. 아주대 학생뿐 아니라 타 학교 학생도 20% 뽑아서 우리 사회에 그 취지가 퍼지도록 했다.

“우리 사회는 사회보상체계와 사회적 이동성 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개인이 일하고 노력한 것만큼 보상을 받는 체계가 아니다. 자기 능력이나 헌신보다 출신이나 배경 등이 많이 작용하고 공정하지 않은 보상을 많이 받는 메커니즘 속에 있다. 초과이윤, 또는 사회적 렌트(rent)를 누리는 사람들이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한다.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고 건전한 보상체계를 갖춰야 한다.

둘째, 사회적 이동성이 원활하지 않은 사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기면서 계층구조가 고착화된다. 사회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회적 이동이 활발해져 우리 사회가 역동적이 될 수 있는 제도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잘 알려져 있듯 김 부총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청계천 판자촌 소년 가장으로 살았다. 상고 졸업 직후 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주경야독한 끝에 고시에 합격한 ‘고졸신화’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이런 ‘흙수저’ 성장 배경이 ‘양극화 해소와 사회 변화 기여’라는 철학을 잉태한 걸까.

“그것도 잠재의식 중에 있었겠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이동성 문제 해결, 보상체계 개편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계층이 고착화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다면 신분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전엔 우리 사회의 교육이 사회적 이동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부와 사회적 신분을 대물림하는 수단이 되고 있지 않은가.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과 부모의 소득수준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김 부총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사회보상체계와 이를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재정립하는 게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사회보상체계는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느냐의 인센티브 구조에 관한 문제이고, 거버넌스는 사회보상체계를 누가 어떤 절차와 규칙에 따라 결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사회보상체계와 양극화 해소 문제에 관해선 그의 책 ‘있는 자리 흩뜨리기’(쌤앤파커스)에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은 김 부총리가 4년 전 병상에 있던 큰아들 덕환 씨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함께 쓰자”고 제의하면서 기획이 시작됐다. 당시 그의 아들은 병이 악화돼 제대로 말하기도 힘든 때였지만 김 부총리가 “직접 글 쓰는 게 어려우면 구술이라도 해서 같이 완성하자”고 했고, 덕환 씨는 희미한 웃음으로 화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뒤 아들은 세상을 떠났고, 김 부총리가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틈틈이 글을 정리한 게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책 앞장에 있는 헌사에는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전히 ‘내 마음의 영웅, 내 희망’이다.

덕환 씨는 미국 워싱턴대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대학원 석사를 받고 미주개발은행에 근무하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가 다니던 워싱턴대 교정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만든 기념 벤치(memorial bench)가 세 개 만들어져 있다. 벤치에는 ‘덕환 “Duke” 김, 가장 사랑하는 아들, 형제,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친구, 최고의 농구선수’ 라는 글귀가 영어로 새겨져 있다. 덕환 씨의 성격처럼 멀리 떠나가서도 남들이 편하게 앉아 쉬는 벤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력 쌓고 극복할 것”

덕환 씨의 사진은 김 부총리의 집무실 책상에도 놓여 있다. 그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아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명예나 명성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즐겁게 일할 때, 소신껏 일할 때, 힘든 일에 좌절하지 않고 헤쳐나갈 때, 떳떳하고 부끄럼 없이 당당할 때, 주위와 사회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큰아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문득 김 부총리가 이번에 기용되기 3년 전 갑자기 공직을 그만둔 것이 생각나 그 연유를 다시 물어봤다. 당시 그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1년 4개월 정도 하다가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뒀다. 별다른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중요한 의미가 담긴 답변이 돌아와 여기에 인용한다.

“당시 지인들에게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제는 그만둘 때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는데, 오랫동안 투병했던 큰아들을 간병하면서 아내와 나의 건강이 모두 좋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국무조정실장은 장관급의 중요한 직책인데,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 소신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이 첫째 이유다. 내가 소신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남이 시키는 일을 그저 하는 것이라면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기재부 조직에서 32년간 일하고 그 틀 속에서 사회화(socialized)되면서 내가 과연 그 틀을 깰 정도의 실력이 되느냐는 회의가 있었다. 한마디로 ‘실력 부족’을 절감한 것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실력이 채워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게는 끊임없이 채워야 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금도 같은 소신을 갖고 있나.
“그렇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듯한 철학과 소신, 그리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 국민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김 부총리는 특히 이 대목에서 가장 힘주어 말했다). 그런 용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동연●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    덕수상고, 국제대 법학과,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    1982년 행정고시·입법고시
●    세계은행(IBRD) 선임정책관(2002),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2008)
●    기획재정부 예산실장(2010)  ·2차관(2012)
●    국무조정실장(2013), 아주대 총장(2015)
●    現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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