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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세상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매혹당한 사람들’과 ‘우리의 20세기’

  • 노광우|영화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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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는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의 한 하숙집을 무대로 ‘아버지가 부재하는 가정’에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직간접으로 받고 자란 소년 제이미의 성장담을 다뤘다.[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

그에 비해 ‘우리의 20세기’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남성은 더욱 여성을 이해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점이 다르다.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소도시 샌타바버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쇼핑몰 주차장에 세워둔 낡은 포드 자동차 엔진이 폭발하면서 불타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자동차는 15세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를 데리고 사는 55세 이혼녀 도로시아(아네트 베닝)의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다. 도로시아는 차의 불을 끈 소방수들을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한다. 도로시아 모자는 한때 히피들이 공동 생활하던 집을 인수해서 하숙을 치고 있다.

제이미 아버지가 남겨준 ‘포드’ 자동차가 불타버린 것은 ‘아버지의 부재’와 그 아버지가 살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포드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상징한다. 공장과 기업에서 일하는 가부장 중심의 한 경제·사회 체제가 종말을 맞이하고 여성이 주도하는 가족 형태가 지배적인 포스트포드주의 체제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도로시아네 집이 한때 히피들의 공간이었다는 설정 역시 전통적 가족 형태를 벗어난 유사가족의 등장을 암시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제이미의 성장담이다. 대체로 이런 성장담에는 아버지나 형과 같은 역할 모델이 되는 성인 남성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역할을 여자들이 나눠 맡는다. 제이미 집 하숙인으로 신문사 사진기자인 애비(그레타 거위그)와 제이미의 이성친구인 줄리(엘르 패닝)다. 그래서 제이미는 여성에게서 여성의 특성을 알게 되고 여성이 바라보는 남성상을 습득하게 된다.

제이미를 둘러싼 도로시아와 애비, 그리고 줄리는 각기 다른 시대의 미국 여성상을 보여준다. 1920년생인 도로시아는 ‘여자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전통적 여성관을 간직한 인물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전장에 나간 남성들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20대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세대다. 이전에는 남성들에게만 허용되던 것이 그녀 세대부터 부분적으로 허용되는데 그런 부분적 허용은 그녀의 흡연으로 나타난다.

애비는 1955년생이고 뉴욕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1970년대 페미니즘 세례를 받은 1세대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남성과 다른 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특성을 설명해주며 어떻게 해야 여성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지 제이미에게 차분히 알려준다. 자궁경부암으로 인해 자식을 가질 수 없던 그는 그 보상심리로 남편이 아닌 섹스 파트너만을 원한다.



줄리는 제이미와 비슷한 또래의 10대 여성이다. 남자친구와 성 경험이 있는 조숙한 아이지만 그로 인해 임신했을까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줄리는 제이미에게 담배 피우는 법과 여자들이 관찰한 남자의 행동양식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줄리는 애비의 전투적 페미니즘이 부담스럽다. 이는 그녀 세대가 1980년대 이후 훨씬 더 자유주의적인 포스트페미니즘 세대가 될 것이란 복선이다.

물론 제이미 주변 인물로 남자도 등장한다. 제이미 집에서 하숙하는 정비공 윌리엄(빌리 크루덥)이다. 한때 히피 생활을 한 그는 제이미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윌리엄은 애비의 섹스 파트너가 되어 주거나 도로시아의 말상대가 되어주면서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해주는 매개 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어 도로시아와 제이미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도로시아는 제이미를 이해하기 위해 제이미가 좋아하는 펑크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펑크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세대 공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우리의 20세기’는 이렇게 지난 세기 페미니즘의 긍정적 영향을 잔잔하게 되돌아보면서 페미니즘이 우리 가치관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다. 이는 영화 말미 에필로그에서도 확인된다. 도로시아는 1999년 밀레니엄 버그로 인해 세계 종말이 올 것을 걱정하면서 냉전시대의 습성대로 집안 창고에 비상식량을 챙겨놓고 지내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폐암으로 사망한다. 유일한 혈육을 잃은 제이미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전투적 페미니스트이던 애비는 이성애적 가정을 꾸린다. 줄리는 유럽에서 만난 남자와 동거하며 문화를 향유하면서 아기는 가지지 않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족의 삶을 꾸려간다. 윌리엄은 자동차를 고치는 손재주로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예술가가 되지만 계속 혼자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의 삶이 실패였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신동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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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영화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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