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머·리·글

  • 입력2012-02-24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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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investigative report라고 하는 탐사보도는 기자만이 도전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대형사건이 일어나면 기자는 습관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일지로 작성하며 지켜본다. 사건이 일단락됐을 때 파고들어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추적해, 나름의 기준으로 분석해보는 것은 ‘비밀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것 같아 늘 흥미진진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육본 인사참모부장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내려온 특정인 진급 지시를 묵살했다가 한직으로 밀려나 쓸쓸히 전역한 윤일영 예비역 소장은 “한국을 경영하려면, 중국과 일본의 지리와 역사를 한국 지리 역사만큼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두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국이 생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취재 영역을 국경선 안으로 한정하는 것은 답답하다. 국제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건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데…. 유럽과 일본의 기자들은 오래전부터 목숨을 걸고 국경 밖의 문제를 취재해오지 않는가. 심층 취재를 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사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원자력을 두려워하면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 폭발 사건을 취재할 수는 없다. 비유해서 말하면 원자력은 힘이 센 코끼리다. 유능한 조련사는 바나나와 채찍만으로 코끼리를 다룬다. 원자력을 다루는 바나나와 채찍이 물이다. 물만 있으면 원자력은 통제할 수 있다. 물이 떨어지면, 물을 끌어오는 전기가 끊어지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처럼 조련사가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물과 물을 끌어오는 전기가 없어 일본이 경천동지할 사건을 겪은 것을 목도한 만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대비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건에는 매뉴얼 사회의 한계가 숨어 있다. 고성불패(高聲不敗)의 전통이 쌩쌩히 살아 있는 한국에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일본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매뉴얼에 없는 일이 일어나면 그 사회는 속수무책이 된다.



    안보와 방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하라’는 격언인 “Think the Unthinkable”을 종종 거론한다. 테러리스트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스템 속의 허점을 파고든다. 자연재해도 문제없다고 본 곳에서 일어나니, 재에서도 다시 불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심으로 Think the Unthinkable을 하는 것이다.

    사고는 항상 전조(前兆)를 보낸다. “아차!” 하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잘 넘어가기에 그런가보다 한 곳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다. 그러한 곳을 다시 살펴 “아차!”후회할 일이 없게 하는 것이 Think the Unthinkable의 자세다. 이러한 습관을 들인다면 후쿠시마 같은 사고는 얼마든지 피해나갈 수 있다. 원자력을 조련사가 코끼리 다루듯, 자신 있게 부릴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간접 연결되는 것이 오는 3월 말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살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탈취해 원전으로 돌진하면 돌이킬 수 없는, 전쟁보다 더한 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핵 테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핵안보정상회의를 마련했다. 그 두 번째 회의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년 즈음 서울에서 열린다.

    사실상의 ‘원자력의 달’인 3월을 맞아 신동아는 이 부록을 마련했다. 인류가 핵과 공존을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2만 기 넘는 핵폭탄, 400기가 넘는 원전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살상을 위해 핵폭탄도 터뜨려보았고, 심각한 원전 사고도 세 번이나 치렀다. 그렇다면 원자력을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말은 현자(賢者)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반면 원자력을 활용하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남이 다 하는 말, 다 뛰어드는 세계로 나가는 것은 레드 오션을 찾는 길이다. 말로는 블루 오션을 찾아야 한다면서 왜 원자력은 절대 가서는 안 되는 두려운 세계로 보는가.

    원자력은 인류가 만난 제3의 불이다. 블루 오션에 빗댄다면 ‘블루 파이어’다. 산업혁명에서 뒤처졌던 한국이 정보혁명에서는 앞서 세계의 IT산업을 주도한다. 그렇다면 블루 파이어 세계로도 먼저 진출해 선점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 원자력은 앞서간 나라를 따라가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러한 태도에 경종을 울렸다. 안전에서 실패하면 진흥도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한때 실력 제일주의 시절이 있었다. 실력 좋은 사람들이 부정을 반복하자 요즘은 정직한 사람과 인품 좋은 사람이 각광받고 있다.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정직과 인품이듯, 원자력 진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북한은 안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폭을 제조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선제적 대비는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북한 핵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때 한국이 일본에 지원해준 품목은,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 핵의 위험을 제거하는 품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유사시 북한 핵을 신속히 그리고 안전하게 제거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분석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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