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에 자본 쏟아 부어야
무역 1조 달러 클럽 가입.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은 위태로울 만큼 형편없다. 한국의 국가이익과 밀접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언제 왜 생겼는지, 무디스와 S·P 등 신용평가회사는 왜 미국계인지, 인터넷 주소는 누가 관리하는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떤 관계인지 등에 대한 지식은 부끄러울 정도다.
요즘 시리아와 이란에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 신문 방송 뉴스의 논조에 따르면 간단한 사건이다. 중동의 패권국이 되고 싶어하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중동평화를 위해 이란 제재는 불가피한 일이 된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시리아 독재정권은 마땅히 국제사회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국제사회의 지배적 여론이 한국의 지배적 여론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국제사회의 주류 여론을 만드는가. 미국 언론일 것이다. 요컨대 한국은 미국의 시각으로만 세계를 보는 경향이다. 그러나 지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온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이란은 모두 이스라엘과 관련이 깊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국토안보와 관련해 지정학적 위협이 되는 나라이고 이란은 이스라엘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한다. 또한 리비아, 이라크, 이란은 주요 산유국이다. 이들은 미국 달러 대신 다른 수단으로 석유 대금을 결제하기로 했었다.
공교롭게 이런 나라의 지도자가 미국 등 서방 언론의 공격대상이 되어왔다. 미국의 CNN, 영국의 BBC, 프랑스의 France24 등은 이들 나라의 대량학살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도한다. 국제사회의 공분을 유도한다.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이란에 대해 같은 아랍권인 카타르, 바레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사회의 무력개입을 요구하는데 후자는 공통적으로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다.
국제사회의 개입이 좋은 결과만을 낳은 것도 아니다. 적으로 분류된 다수의 시민이 희생됐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미국 등 서방을 불편하게 하는 이런 이야기는 한국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러시아투데이(RT)나 중국의 신화사네트워크(Xinhwanet)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언론과 중국 언론은 어쩌면 미국 언론보다 더 자국 이익의 틀에 갇혀 있을 수 있다. 다만 한국 언론에서 대안적 관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간 한국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보호막 아래에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정부는 미국만 바라봤다. 그러나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이란도 한때는 미국의 우방국이었다.
변화는 국제뉴스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에서 시작돼야 한다. 한국의 신문사와 방송사는 해외취재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주체적 시각으로 세계의 문제를 볼 수 있게 된다.
정부의 한심한 태도
미국, 유럽, 중국, 일본이 돈이 남아돌아서 국제뉴스에 막대한 물량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제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 비용이 됐다. 한국 언론엔 현지를 수십 년 취재한 중동뉴스 전문가, 중국뉴스 전문가, 러시아뉴스 전문가, 일본뉴스 전문가가 거의 없다. 상당수 국제부 기자는 특파원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영어권 기사를 편집해 내보내는 게 관행이 됐다.
정부의 태도도 심각하다. 독일, 프랑스, 베네수엘라, 이란도 하는데 우리 정부는 전 세계에 전파를 송출하는 24시간 영어뉴스 채널과 같은 것을 만들 의지도 비전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러면 한반도에 어떠한 큰일이 닥쳤을 때 세계인은 한국의 주장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고 강대국 언론이 유도하는 대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영향력 있는 글로벌 미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