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회사원의 몸값 vs 공무원의 몸값

  • 입력2012-02-22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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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원의 몸값 vs 공무원의 몸값
    만약 회사원 김모 씨가 자가용을 몰고 출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김 씨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또 김 씨의 차는 공무원인 이모 씨의 자가용과 충돌했는데 이 사고로 이 씨 역시 사망했다면 이 씨는 공무수행 중 사망으로 처리될까? 두 사람의 과실 정도는 50대 50이라고 치자.

    두 사람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고로 사망했지만 이후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공무원인 이 씨는 공무수행 중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유족보상금 등을 받게 된다. 반면 회사원인 김 씨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급되는 유족보상금 등 각종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출·퇴근하다 교통사고 당한다면…

    바로 법 규정의 차이 때문이다. 일반 사기업 직장인의 업무상 재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는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의 적용을 받는다. 공무원연금법은 공무원 이외 사립학교 교원과 군인에게도 준용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가 사업자와의 근로계약에 의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근로업무를 수행하거나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이 법은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데 꽤 인색하다. 출·퇴근 중 일어난 사고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하다 발생한 사고”여야 한다. (제37조) 따라서 근로자가 본인 소유 승용차로 출·퇴근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의 보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반면 공무원연금법은 사고 피해를 당한 공무원을 적극 배려한다. 이 법 시행규칙 제14조는 “공무원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하여 출·퇴근하거나 임지부임 또는 귀임 중 발생한 교통사고·추락사고·기타 사고로 인하여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에는 이를 공무상 부상 또는 사망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공무원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도 원칙적으로 공무상 재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우리 법체계가 직장인과 공무원을 이렇게 차별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2007년 12월 14일 개정법에서 비로소 업무상 재해로 보는 출퇴근 사고를 규정했다. 그 법이 개정되기 3개월 전인 9월 28일 출퇴근 사고에서 일반 직장인과 공무원을 차별하는 규정이 정당한지를 놓고 대법관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5두12572호)이 있었다.

    대법관 중 다수 의견은 차별이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킬 법적 근거가 없고 출·퇴근 방법과 경로는 근로자가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또한 국가 재정에는 한계가 있는데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입법자의 재량으로서 법원의 판단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5명의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논거로 이러한 차별이 위법하다는 의견을 냈다.

    먼저, 업무상 재해는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서 사고가 난 경우인데 근무 장소와 출·퇴근 시간이 사업주에 의해 정해졌다면 출·퇴근 방법 또한 사업주에 의해 정해진 것과 다름없으므로 출·퇴근 과정 역시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출장의 경우에는 출장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사고가 나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고 출근이 없으면 근무도 없고 근무가 없으면 퇴근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출·퇴근을 출장의 경우와 달리 볼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셋째, 회사가 비용을 들여 통근버스를 제공한 경우에는 통근버스 사고 시 산업재해로 처리돼 결국 사업주의 부담이 가중되는 반면 회사가 통근버스 비용을 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을 질 일조차 없다는 것은 직원 복지를 위해 애쓴 회사에 더 불리하게 되어 형평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넷째, 공무원의 공무상 재해와 일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보험제도는 적용대상자와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다를 뿐 기본원리도 같고 국가가 보험자로 되는 사업이라는 점도 같으므로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위법 의견 나오자 아예 제외

    대법관 5명이 공무원과 회사원을 차별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지적한 것은 되레 회사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부와 국회는 서둘러 법을 개정해 아예 회사원의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판례로 출·퇴근 중 교통사고의 일부에 대해선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향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새벽 출근이나 심야 퇴근 : 회사의 지시에 의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새벽이나 심야에 출·퇴근하는 경우 자가용 승용차 이외에는 대체이동수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출·퇴근 방법과 경로를 사실상 사업주가 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법원은 판단한다. 따라서 이 시간대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조건이 따른다. 교통사고가 집에서 회사까지의 최단경로상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 용무로 다른 곳을 경유하다 사고가 난 경우는 제외된다.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근무지 : 서울 영등포에 사는 근로자가 경기도 가평에 있는 근무지로 아침 7시까지 출근하려 할 때 이 근로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자가용으로 이동하다가 사고가 나면 새벽 출근사고와 같은 논리에 의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도 한다.

    ●회사 차량 제공 : 회사 버스가 사측의 묵인 아래 근로자 출·퇴근 용도로 이용되다 사고가 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판례가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비록 회사가 업무용 버스를 출·퇴근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알고도 묵인해왔기 때문에 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다가 난 사고는 회사의 지배범위 내에서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출근 확인 뒤 작업장으로 이동 : 환경미화원 박모 씨는 출근 확인을 받고 작업을 위해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청소구역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1·2심 법원은 자전거 사용권한이 박 씨에게 있고 출·퇴근 방법이나 경로도 박 씨의 선택에 맡겨져 있었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 씨가 출근확인을 받아 출근이 완료되었으므로 이후 작업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 있다고 보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허술한 사회안전망

    공무원은 일반 근로자가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사람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세금을 내는 납세자를 차별하고 공무원만 우대하는 현재의 법 체제는 납세자의 관점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악법일 수 있다.

    회사원의 몸값 vs 공무원의 몸값
    요즘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근로자에게 제공돼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복지제도는 재해보험일 것이다. 근로자가 재해로 일을 하지 못해 고정수입이 없어지는 것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재해보험은 사회안전망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이나 공무원연금보험이나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제도인 것은 마찬가지다. 대법원 소수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반 근로자와 공무원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한 것일 수 있다. 회사원의 출·퇴근 중 교통사고도 업무상 재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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