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제1 가상적국으로 이란이 꼽혔다. 이어 중국, 북한, 이라크 순이었다. 이란의 핵개발 및 미국의 대(對)이란 봉쇄조치로 한국도 원유 수입 등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왜 철천지 원수지간이 됐을까?
- 미국·이란의 관계가 우리의 일도 되는 만큼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봤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훈련 중인 이란 해군 잠수함.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해나간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양측은 감축 범위와 시기를 2월 말부터 논의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것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감축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수출품을 대이란 제재로부터 예외로 인정받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우리 정부가 고민하는 사이 미국 쪽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하나 날아들었다. 국방수권법 개정을 주도한 공화당의 마크 커크,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즈 두 상원의원이 대이란 제재에서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규모를 연간 구매액 기준 18%로 해야 한다는 서한을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가 예외 인정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가 선수를 친 셈이다.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로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지난 1월 23일 유럽연합이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이란이 수출하는 원유 중 20%를 수입해왔는데 오는 7월 1일부터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반색했고 이란은 발끈했다.
한국으로선 이란산 원유 수입을 못하는 것이나 이란으로 수출을 못하는 것이나 경제에 큰 타격이 된다.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란은 오히려 선제적으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에 대한 원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다고 본 때문일까. 최근에는 발언 수위를 낮추고 있다. 스탐 카세미 이란 석유장관은 “이란의 원유 공급 감축은 일부 유럽 국가에만 해당된다”며 수출 규제 대상이 미국에 협조적인 영국, 독일, 프랑스 정도일 것임을 시사했다. 이란이 이처럼 뒤로 물러선 데에는 원유 수출 감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클 수 있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수권법은 이란 제재의 법적 근거에 해당한다. 2011년 12월 15일 미국 하원에 이어 상원을 통과한 이 법은 이란의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도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은 국내 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로 이란과 원유 거래를 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수권법은 대다수 국가의 이란산 원유 수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정 국가에 120일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는데 이 항의 적용을 받으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유예기간은 계속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방수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을 때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는 강력 반대했었다.
감히 미국의 최첨단 병기를…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가 대이란 추가 제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이란이 미국의 무인정찰기 드론(RQ-170)을 나포한 사건일 것이다. 드론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쉬쉬할 정도인 미국의 최첨단 병기다. 미국은 그것이 부서지지 않은 상태로 나포된 것에 놀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환을 촉구했다.
이란 정부는 영공 침범에 대한 사과가 먼저라면서 드론 모형을 백악관에 반환하겠다고 조롱했다. 미국 내 여론은 악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이란 제재에 반대할 수 없게 됐다.
2006년 2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31%는 이란을 미국의 최대 적국이라고 응답했다. 15%는 북한을 꼽았다. 이라크는 3위였다. 부시 전 대통령이 언급한 악의 축(axis of evil) 세 나라 중에서도 이란이 1위인 것이다. 미국 국민이 이란을 얼마나 싫어하고 위협으로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미국 국민은 당연히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는 것을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11월 미국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연구소 조사에서 응답자의 50%는 대이란 제재가 실패할 경우 군사공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드론 사건은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사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역사는 꽤 길다. 마찬가지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역사 또한 길다. 이번에도 이란이 핵개발 의혹을 받아 국방수권법이 나온 것이다.
이란은 결연한 모습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했다.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이란 부통령은 2011년 12월 27일 “이란 석유 수출이 금지되면 한 방울의 원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40%가량이 지나는 곳이다.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겠다는 위협에 다름 아니다.
이란군은 2011년 12월 24일부터 이곳에서 해군 훈련을 실시했다. 가상 적국의 군함과 잠수함의 침투를 막는 전술 기동훈련이었다. 해협 봉쇄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려 한 셈이다.
미국이 이것을 관망만 할 리가 없다. 한쪽에서 유럽연합이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하는 사이 미국은 항공모함 4척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배치했다. 2012년 1월 22일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함은 호르무즈 해협을 유유히 통과해 이란의 앞마당 걸프 만에 자리 잡았다. 이란 정부는 실력 저지에 나서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2012년 2월 4일부터 혁명수비대 주관으로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해상 기동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시나리오
이런 가운데 2012년 1월 1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니 간츠 이스라엘군 합참의장이 “경제적 제재만으로 이란의 핵개발을 막아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이스라엘군은 충분한 준비를 갖춰 공습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3일 “이스라엘이 4월, 5월 또는 6월쯤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리언 파네타 국방장관이 보고 있다”는 칼럼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리기도 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외교적으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정부도 표면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공습 카드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이란에 핵무기가 존재한다면 이스라엘은 직접적 사정권에 들어간다. 두 나라의 적대관계는 옛 페르시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자국이 1차 타깃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들기 전에 어떤 수단을 쓰든 없애버려야 한다고 본다. 이스라엘로선 아랍 주변국 공격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이란의 핵 보유보다 자국에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설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파괴한다면 이란이 반격할 것인가? 이란이 보복으로 예루살렘에 미사일을 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버릴 것인가? 미군이 개입해 확전될 것인가? 아랍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유가는 급등하고 세계경제는 패닉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 미국도 쉽게 예측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좀, 기다려보라”고 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만류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정부가 국방수권법 찬성으로 돌아선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오직 이란의 핵무기 개발 때문일까? 사실 이란의 핵개발은 이스라엘에는 사활적 문제이지만 미국에는 그 정도로 절박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란으로서는 당장 핵무기가 없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 바로 정치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이슬람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 시절 시작됐다. 팔레비는 핵무기 보유를 원했다. 그러나 이슬람 혁명으로 1979년 권좌에 오른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핵개발을 중단시켰다. 이후 이란은 이라크로부터 독가스 공격을 받았다. 그러고는 생각을 바꿨다. 강력한 전쟁 억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이후 진전과 소강을 반복했다. 한 가지 특징은 정권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어김없이 핵무기 개발 카드를 꺼내 든다는 점이다. 2005년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 2009년부터 진전되고 있다. 2009년 대통령선거 부정 시비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자 다시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는 양상인 것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해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권좌에서 쫓겨나 비참하게 죽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란의 내부갈등도 심각한 편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지금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일 것이다. 총선거가 2012년 3월 2일로 다가와 있다. 극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여기에다 국가 경제를 잘못 운영한 혐의로 의회로부터 소환까지 받은 상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의회가 대통령을 소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외부와의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의 위기에서 빠져나오려는 고전적 방식을 택하고 있고 그 수단으로 핵을 이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그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은 정치적 쇼맨십에 불과할지 모른다.
오바마의 유대인 달래기
이란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미국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면 미국도 이런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아마디네자드의 모험주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선거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의 목표는 오직 재선일 것이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소신을 버릴 각오도 되어 있을 것이다.
이란에서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11년 2월 16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국민이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용기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란 당국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무력을 행사한 것은 이집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비판했다. 세계 각국의 민주화를 지지해온 것은 미국 민주당의 오랜 전통이다. 더욱이 미국 국민이 아마디네자드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다. 오바마가 중동 이란과의 갈등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이란이 나포해 공개한 미국정찰기 ‘RQ-170’.
그러나 미국 내 유대인 사회의 오바마 사랑이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11년 5월 오바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이전 경계선을 근거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들에게 너무나 민감한 주제인 이스라엘의 영토 문제와 관련해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준 것으로 비쳤다. 유대인 사회의 여론은 싸늘해졌다.
이런 표심 변화의 결과 2011년 9월 유대인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 뉴욕 주 제9구역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다. 대이변이었다. 이 구역은 1923년 이후 민주당이 져본 적이 없는 곳이다.
유대인 사회의 반(反)오바마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 선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유대인 달래기에 열심이다. 오바마 후원에 앞장섰던 마이클 아들러는 오바마 재선 캠프 매니저를 맡고 있는 짐 메시나에게 “유대인은 오바마가 이스라엘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에 대처하기 위해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내 유대인 사회는 미국의 금융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대선주자들에게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내는 큰손이다. 미국 대선의 경우 선거자금 모금 규모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바마가 대 이란 제재에 나선 것은 유대인 표심을 돌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 사회의 오바마 버리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오바마가 재선 때문에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막상 재선 대통령이 되면 더 이상 유대인 눈치를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반이스라엘 정책을 펼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빈틈을 최근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파고들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6명은 2012년 12월 7일 ‘공화당 유대인 연합’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오바마의 이스라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대계 오일 메이저의 셈법
2011년 2월 14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그런데 여러분은 아는가? 로열 더치 셸과 브리티시 페트럴리엄을 유대계 자본 로스차일드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유대인이던 록펠러는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세웠다. 지금 록펠러 가문은 세계 7대 오일 메이저 중 5개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오일 메이저가 미국 정치에서 큰손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주로 공화당을 지원한다. 경제정책 분석가인 로버트 보웬에 따르면 오일 메이저는 2010년 3000만 달러를 선거에 투입했는데 이 가운데 77%를 공화당 후보 지원에 썼다. 민주당 후보에게도 정치자금을 주지만 액수는 훨씬 적다. 공화당 상원의원이 받는 금액은 평균 6만 달러로 민주당 상원의원의 2배 정도라고 한다.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발의해 대이란 제재를 이끌고 있는 마크 커크 공화당 상원의원은 올해 대선에서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의원직을 그만둔 일리노이 주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오바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오일 메이저들이 공화당을 움직여 대이란 제재를 가하게 함으로써 유가 인상에 따른 이득도 취하려 한다는 가설은 상당히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오일 메이저의 눈 밖에도 났다고 한다. 국제 유가가 한창 오르던 2011년 4월 오바마는 이른바 ‘오일전쟁’을 시작했다. 투기세력 특별조사팀을 구성한 데 이어 연간 40억 달러에 달하는 정유업계 세금감면 혜택을 없애려 했다. 2011년 5월 12일 ‘고유가와 석유업계 세금 감면’을 주제로 청문회가 열린 날 민주당은 오일 메이저들을 질타했고 공화당은 두둔했다. 유가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고려한 행보였다. 오일 메이저와 손잡은 공화당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재선을 염두에 둔 카드였지만 이로써 오일 메이저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랬던 오바마가 최근 이란 제재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므로 노선을 정비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올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이란 제재는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까? 대이란 제재를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제재의 수위를 낮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대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제재의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이란 정국도 변수다. 3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핵무기 개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여당이 승리하면 현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고 이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는 경우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오일 메이저는 대이란 제재로 인한 유가 인상을 바라면서도 너무 급속하게 올라 후폭풍이 이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군사 행동에 나서는 상황을 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일 메이저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오일 메이저의 이익과 미국의 국익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오일 메이저가 세계 오일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합치한다. 미국 정부와 오일 메이저는 공동으로 세계 오일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들은 이라크 유전 관리권을 회복하면서 힘을 더 키웠다.
미국 정부와 오일 메이저가 이렇게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가 바로 현 이란 정권이다. 미국 정부와 오일 메이저는 이란의 팔레비 정권 때엔 이란 유전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이를 모두 상실했다.
삼성 갤럭시탭 광고에 하필…
미국은 왜 대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하기를 원할까? 이는 국제석유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이란의 원유 수출국 비중은 중국이 24.05%로 1위, 유럽연합이 19.93%로 2위, 일본이 15.10%로 3위, 한국이 10.81%로 4위다. 중국은 대이란 제재에 동참을 거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미 금수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만 가세한다면 이란 제재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란이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는 정부 전체 수입의 70%에 달한다. 이 가운데에서 절반을 잃는다면 이란 정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이란산 원유 18% 수입 축소를 조건으로 이란 수출을 허용(제재 동참을 유예)할 수도 있다. 효과는 다소 약해지겠지만 이 정도라도 이란에 상당한 재정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단계별 수입 감축을 조건으로 제재 동참 유예를 추진하는 데엔 이란 시장을 놓치기 싫은 점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이란 제재가 실시된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이란 수출은 폭증세다. 반면 제재 이전 전체 교역의 90%를 차지하던 유럽연합과의 교역은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사이 우리나라와 이란의 교역 규모도 61%나 증가했다. 또한 이란은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대표적인 중동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본격 협상을 앞둔 사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기업은 이란에 수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이란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2200여 개에 달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케이블 방송사 HOT가 삼성 갤럭시탭을 광고하면서 이란 정부를 발끈하게 했다. 이란의 핵시설 인근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 요원이 여장을 한 이스라엘 남성 4명과 갤럭시탭으로 TV를 보던 중에 누군가 실수로 터치를 하자 핵시설이 폭파되고 마는 내용이다. 이 광고 후 이란 의회는 삼성 제품의 수입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일로 삼성 측은 철수까지 고심 중이다. 이란 정부의 불만에 반(反)삼성 정서까지 확산돼 우리가 이란에서 빠진다면 그 자리는 필경 중국이나 일본에 돌아갈 것이다.
우리가 대이란 제재 동참 수위를 결정하는 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북한 변수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오르자 축전을 보내며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북한도 “이란의 평화적인 핵 활동을 걸고 들면서 이 나라를 국제무대에서 완전 고립시키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며 이란을 편들고 있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이란과 북한이 긴밀한 협력을 해온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2012년 1월 31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 등 일부 국가에 탄도미사일 관련 물품을 수출하는 것은 북한의 확산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김정은 체제에서도 대이란 수출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11년 9월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란 정보 당국 고위 관계자 3명이 밀수를 협의하기 위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2011년 5월 보고서에서 북한이 제3국을 경유해 탄도 미사일 관련 물자를 수송해온 혐의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국 업자를 시켜 북한과 이란이 비밀거래를 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숟가락 하나 더 얹겠다?
|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멀찌감치 미룬 채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의 협상을 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얻어낸 것을 보고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명분일 것이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겠다는 태도다. 힘들고 싫은 일은 일단 미루고 보는 관료 사회의 무사안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일본이 바보라서 미국과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에 반문한다. 왜 일본 정부에 앞서 협상을 추진하면 안 되는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이처럼 굼떠서야 어떻게 다가오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또 다른 파고를 넘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