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남궁원이 데뷔했을 때 영화계는 그를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고 불렀다. 당대 최고의 감독 신상옥도 ‘국제적으로 통할 배우’라 했다. 이 잘생기고 키 큰, 호쾌한 사나이의 승승장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가 될 줄이야. 그에게는 잘생기고 모범적인, 밋밋한 배역 외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신 감독은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안됐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며 혀를 차고 만다. 눈부신 외모가 오히려 한계가 됐던 배우, 남궁원을 추억한다.
1960~70년대 멜로·첩보·가족영화 등에 두루 출연한 배우 남궁원.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남궁원이 액션 영화배우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렇다면 액션 영화배우라 칭할 수 있는 배우는 어떤 사람인가? 내 기준에서 볼 때 액션 영화배우란 적어도 다섯 편 이상의 영화에서 몸을 사용하는 인상적인 연기를 한 배우여야 하고, 액션연기 때문에 그 배우의 존재감이 만들어진 경우다. 김진규는 액션 영화배우인가? 아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인상적인 장면을 기억해내기 어렵다. 윤일봉은? 아니다. 한석규는? 그가 ‘초록물고기’의 주차장 신에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액션을 소화해내기는 했지만 액션 연기를 보여준 영화는 한두 편에 불과하고,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접속’ 같은 멜로 영화에서 더 인상적인 연기를 해냈다. 신성일은 수많은 멜로 영화에 출연했지만, 뒷골목 깡패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한 영화가 적어도 열 편이 넘고, 이만희 감독의 ‘원점’ 같은 범죄 영화에서는 설악산 중턱의 가파른 등산로에서 혁대로 자신의 한 손을 난간에 묶고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는 매우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펼쳤다. 신성일은 액션 영화배우라 부를 수 있다. 최무룡과 그의 아들 최민수는? 둘 다 액션 영화배우다. 최민수는 ‘테러리스트’의 라스트 혈투 장면에서 1대 100이라는,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장면에서 관객을 감탄케 한다. 최민수는 쇠파이프를 오른손에 붕대로 감아 쥐고, 수없이 밀려드는 조폭 패거리에 맞서 싸운다. 그는 육체의 모든 힘이 소진돼 고통스럽게 헐떡거리면서도 굴하지 않는 집념의 사나이를 기적처럼 멋지게 연기했다. 그의 아버지 최무룡 역시 자신이 감독을 한 ‘제삼지대’에서 일본도를 들고 일본 야쿠자와 1대 100의 대결을 펼치는 혈투를 만들어냈다. 감독이자 배우로 출연했던 최무룡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 액션과 홍콩 무협 영화 액션 신들을 연구한 것이 분명한,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액션 신을 만들어냈다. 최무룡과 최민수, 두 사람 다 액션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갖고 대사 없이 육체를 움직여 집념 또는 죄의식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한 배우였다.
몸으로 말하는 배우
액션 영화배우는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연기가 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는 본능을 가진 자다. 박노식이 말했듯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탱탱한 육체를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치고 찢겨지고 싶어 안달이 난 자다. 영화에서 주먹이 오가는 격투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 상황과 똑같은 체력 소모와 고통이 있고, 영화에서 칼부림이 일어난다면 실제 상황과 똑같은 위험이 따른다. 서로 약속을 하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준비한다는 것 외에는 실제 상황과 똑같은 위험과 육체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액션 배우는 이런 위험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고통을 통해서 나오는 연기를 사랑하는 자다.
그렇다면 남궁원은 액션 배우인가? 그렇다. 남궁원이 1958년 데뷔했을 때, 충무로 영화계에서는 그를 일러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했다. 게다가 그가 연기를 시작한 곳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었다. 당대 최고의 감독이 낙점한 사나이. 당대 최고의 영화사 신필름의 전속 계약 배우. 남궁원은 김진규, 최무룡의 계보를 잇는 미남배우로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보증수표였다. 이 잘생기고 키 큰, 호쾌한 사나이의 승승장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1959년 데뷔한 지 한 해만에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에 활달한 성격의 청년 화가로 출연해 가능성을 인정받고, 이듬해,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서 김승호의 큰아들 어진이로 출연한다. 그는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해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믿음직한 소시민 가정의 큰아들이었다. 아직 조연이지만 모든 가능성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그가 조연으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1962년,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약진에 자극받은 신상옥 감독은 한국 검술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것이 한국 검객영화다!’ 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던 제작자 신상옥 감독은 검술 영화 주인공으로 남궁원을 선택한다. 큰 키에 호남형의 미남. 액션 영화에 딱 들어맞는 신체 조건을 가진 배우는 남궁원뿐이었다.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와 견주어도 당당한 얼굴과 체격이었다. 이미 ‘원한의 일월도’와 ‘폭군 연산’으로 대규모 액션 신을 소화해낸 신필름의 본격 검술 영화였다. 영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1964년,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의 점프를 결정짓게 된 영화 ‘빨간 마후라’가 만들어진다.
남궁원이 주연은 아니었다. 새로 전입해온 전투기 조종사 최무룡은 중대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받는다. 최은희다. 최은희를 본 순간 최무룡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최은희에게는 과거 남편이 있었다. 그는 최무룡과 같은 전투기 조종사로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것이다. 최무룡의 귀에 들려오는 최은희의 전남편은 너무나 멋있는 사나이였다. 조국애, 동료애, 희생정신과 책임감,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남궁원이다. 죽은 남궁원의 그림자가 최무룡과 최은희 사이를 떠돈다. 최은희의 전남편이 너무나 멋진 사나이였기에 최무룡은 갈등한다. 그런 사나이의 자리에 자신이 들어설 수 있을까? 최무룡과 최은희의 고민은 남궁원이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 사이, 몇 해 전, 신필름에서 만든 ‘로맨스 빠빠’에 같이 출연해 막냇동생 역을 한 후배 신성일이 ‘맨발의 청춘’에 출연한다. 신필름에서 시키는 조연만 하다가는 배우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신성일이 과감히 신필름과의 계약을 끝내고 독립해 ‘맨발의 청춘’에서 주연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터졌다. 먼저 치고 올라간 자는 신성일이었다. 시대가 원하는 얼굴과 분위기가 신성일이었나보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으로 1960년대 젊은이의 표상이 됐다. 신성일에게는 도시 뒷골목 젊은 청년의 불만과 우울, 열등감을 담은 얼굴이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대, 호쾌한 분위기의 배우보다는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두 눈을 찌푸리고 어딘가 노려보는 듯한 우울하고 연민 가는 사나이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머슴을 하고 싶었지만…
남궁원은 2011년 데뷔 52년 만에 TV 드라마에 처음 출연해 SBS 주말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대기업 회장 역을 맡았다.
1960년대 중반. 남궁원은 김진규, 최무룡, 신성일이 출연하지 않는 종류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남궁원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는 이상하게도 공포영화였다. 그러다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007시리즈가 대한민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신상옥 감독이 말했듯 국제적으로 통하는 배우, 서양인과 나란히 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배우 남궁원은 007시리즈를 흉낸 낸 영화들에 출연한다. ‘간첩작전’(문여송 감독, 1966) ‘국제금괴사건’(장일호 감독, 1966) ‘남남서로 직행하라’(장일호 감독, 1967) 같은 영화들이다. 북한 공작원이 연루된 사건이 홍콩 또는 일본에서 발생하고, 한국 정보부의 첩보원 남궁원이 급파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007시리즈를 본 관객에게 한국 첩보 스릴러 영화는 양에 차지 않는 조잡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남궁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 인터뷰에서 당시 심정을 토로한다.
“임금보다는 머슴, 007보다는 빨갱이 역을 맡고 싶었다.”
남궁원이 ‘빨갱이 역’을 하고 싶어하자 제작자가 허락했고, 이제 촬영만 하면 되는데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다. 잘생긴 사람이 간첩을 하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벙어리 삼룡이 역을 남궁원이 할 수 있겠는가? 일개 사병 역에 그가 어울리는가? 임금이 아닌 내시가 그에게 어울리는 역이란 말인가?
1967년, 남궁원은 당시 액션 영화를 주로 찍던 임권택 감독과 만나 검객 영화를 찍는다. ‘풍운의 검객’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와 비슷한 줄거리의 이 영화에서 남궁원은 떠돌이 검객으로 출연한다. 사대부들이 주고객인 기루에 남루한 차림에 방갓을 깊이 눌러쓴 사나이가 들어선다. 초라한 행색의 사나이를 보고 기루 주모가 달려 나와 당신 같은 거렁뱅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니 당장 나가라 박대를 하고, 술 먹던 양반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눈알을 번뜩이며 사나이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사나이는 대꾸를 안 하고 옷을 털기 시작한다. 얼마나 많은 먼지가 옷에 달라붙어 있었는지 기루 안에 먼지가 퍼지고 양반들이 기침을 한다. 방갓을 벗는 사나이. 덥수룩한 수염에 번뜩이는 눈동자. 남궁원이다. 그가 예사롭지 않은 사내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기루의 최고 인기 기생 남정임이 달려 나와 돈 한 푼 없지만 술을 마셔야겠다는 무뢰한 남궁원을 모신다. 이때 포악하기로 소문난 왕세자의 무사들이 술집에 난입해 남궁원에게 시비를 건다. 순간 남궁원의 돌려차기에 무사들이 칼자루에서 칼을 뽑아보지도 못하고 나뒹굴고, 남정임은 역시 자신의 눈이 틀림없었음에 만족해 미소 짓는다. 남궁원의 키가 너무 커서 상대역 남정임이 서로 마주 보는 신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벽돌 위에 올라서야 했다는 일화를 남긴 이 영화는 남궁원이 액션 연기가 가능한 배우라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다.
1968년, 이때부터 배우 남궁원은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에서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임금으로 나와 남성의 육욕을 잘 표현하는 배우로 인정받았고, ‘암굴왕’(최인현 감독, 1968)에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지하 감옥에 가두어버린 악당 박노식과 허장강, 박암에게 차례로 복수하는 에드몽 단테스 역을 맡았다. 남궁원은 복수자의 냉혹한 일면과 악당을 심판하는 의로운 정의한. 두 측면 모두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영화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어서 악당들이 얼마나 야비하고 잔혹하게 남궁원을 파멸시켰는지를 생략해 자칫하면 냉혹한 복수자의 측면만 강조돼 몰락하는 허장강과 박노식, 박암에게 관객의 동정이 갈 수 있는 영화였는데 남궁원이 가진 호쾌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균형을 이뤄 끝까지 주인공의 복수에 이입된 감정을 깨뜨리지 않게 해줬다.
이만희와의 만남
1969년, 반듯한 이미지만 있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 이후 그를 찾은 감독은 이만희였다. 모든 배우의 도약 뒤에는 감독과의 만남이 있다. 이만희 감독이 남궁원에게 출연을 제의했다. 주연은 장동휘, 남궁원은 조연. 그의 역할은 간교하고 사악한 빨갱이 하수인이다. 밝은 달빛 아래서 남궁원은 암살자 장동휘와 만난다.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장군을 암살하러 가는 장동휘는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그런 얼굴을 가진 장군을 이전에 암살하려다 실패한 경력을 가진 자다. 암살을 사주한 남로당의 하수인 남궁원은 암살자 장동휘를 안내하고 그를 감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나룻배를 타고 가면서 장동휘는 어릴 때 자신은 대단한 겁쟁이였다고 말한다. 암살자 장동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 것이다. 장동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생이 컴퍼스의 날카로운 바늘을 자신에게 들이대자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렸다고 한다. 그 순간 남궁원의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간다. 남궁원 역시 비슷한 과거를 가진 겁쟁이였던 것. 남궁원은 방금 떠오른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듯 히스테릭하게 웃는다. 일본인 소년이 다시 덤벼들자 자신은 칼을 집어 들었다는 장동휘의 말을 듣고 더욱 히스테릭하게 웃는 남궁원. 남궁원은 폭력에 굴복해 비굴하게 살아온 잔챙이였던 것. 대단한 포스를 풍기는 장동휘와 달빛 아래 나란히 걸으면서 남궁원은 그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할 때마다 히스테릭한 웃음을 짓는다. 남궁원에게는 또 하나의 임무가 있다. 그것은 암살에 성공한 장동휘를 살해하는 것이다. 너무나 강한 남자 장동휘 옆에서 깐죽거리며 이 남자를 살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려는 남궁원. 영화의 라스트. 암살에 성공해 돌아온 장동휘에게 총을 겨누는 남궁원. 두려움 때문인지 두서없는 말을 지껄인다. 총구 앞에서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장동휘가 “암살은 말없이 조용히 하는 것이다”라고 충고하자 남궁원은 이를 갈며 “이것은 암살이 아니다. 살인이다”라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고, 장동휘는 거목이 쓰러지듯 풀썩 쓰러진다. 어떤 비굴한 변명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어간 것이다. 엄청난 사나이를 쓰러뜨린 잔챙이 남궁원은 또다시 히스테릭하게 웃고 “별것도 아닌 것이”하며 자신의 살인 성공에 기뻐 날뛴다. 이런 연기는 이전의 남궁원에게는 없던 것이다.
늑대 같은 사내
이만희 감독과 만난 다음 영화 ‘여섯 개의 그림자’(1969)에서 남궁원은 신성일, 허장강과 만나 악당 연기 대결을 펼친다. 영화가 시작되면 반라의 무희가 무대에서 춤추는 댄스 홀. 세 명의 사나이가 고개를 맞대고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 남궁원, 허장강, 신성일이다. 장면이 바뀌면 윤정희가 밤길을 걸어간다. 그 앞을 막아서는 허장강. 허장강이 윤정희를 희롱하자, 신성일이 나타나 윤정희를 구해준다. 윤정희는 멋진 사내 신성일에게 반해 그와 연애를 시작한다. 장충단공원에서 카메라를 자동으로 놓고 신성일과 윤정희가 다정하게 포즈를 잡는데, 두 사람 위로 검은 그림가가 드리워진다. 연인들의 사진 속에 들어온 무뢰한. 그가 누구겠는가? 남궁원이다. 신성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윤정희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녀가 죽이려고 칼까지 잡았던 남자. 그녀의 전남편이며 그녀에게 기생해 돈을 뜯어내고, 그 돈으로 다른 여자들을 품에 안으며 윤정희를 비웃던 악당 중의 악당이 바로 남궁원인 것이다.
남궁원은 옛 아내 윤정희가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교도소에서 만난 신성일, 허장강과 함께 수작을 부린 주범이다. 남궁원의 악당 행각은 계속된다. 신성일과 다방에서 만난 윤정희. 신성일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나타나 신성일이 앉았던 자리에 앉는 남궁원. 윤정희를 협박하며 물이 든 유리잔을 들어서 마신다. 유리잔 속의 물은 반이나 줄었다. 윤정희는 신성일이 나타날까 안절부절못하고, 협박을 마친 남궁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윤정희 앞에 놓인 유리잔을 신성일 자리에 놓고 자신이 먹은 잔을 윤정희 앞에 놓고 비웃으며 사라진다. 신성일이 나타나고, 윤정희는 남궁원이 먹던 유리잔을 급하게 들어 마시는 척하다 사레에 들린다. 하하하. 여자를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거듭되는 남궁원의 협박에 견디다 못한 윤정희는 남궁원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열차로 유인해 달리는 열차 밖으로 밀어낸다. 남궁원이 죽은 후 신성일은 윤정희의 돈을 모두 가로채고 그녀에게 모든 것이 남궁원과 자신이 꾸민 일이며 남궁원은 친구였다 말하고는 잔인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몇 년 후. 세 남자에게 농락당한 윤정희는 절망의 삶을 사는데 악몽과도 같이 남궁원이 살아 돌아온다. 그의 얼굴에는 지옥에서 돌아온 자의 낙인처럼 흉터가 가득하다.
10년 후에 태어났더라면
남궁원은 신성일과 허장강이 자신을 배신해 죽게 만들고 윤정희의 돈까지 가로챘다고 생각하고 돌아온 복수귀다. 허장강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고 신성일을 죽이러 가는 남궁원. 그의 커다란 키와 늑대 같은 턱, 그 모든 것은 복수자의 얼굴이다.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거울 앞에서 신성일을 찌르는 남궁원. 두 사람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하나는 칼에 찔려 죽어가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복수의 화신이다. 신성일은 윤정희를 속여 돈을 빼앗았지만 그 후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용서를 빌고 윤정희에게 사랑을 고백한 신성일. 사실 그에게는 돈도 그 무엇도 필요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윤정희의 사랑뿐. 역시 신성일은 죄의식 때문에 생긴 절망적인 표정이 어울리는 배우다. 그의 바로 뒤에 신성일의 가슴 깊이 칼을 박고 늑대처럼 눈을 번뜩이는 사내 남궁원.
남궁원은 여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굴에 표정을 만들지도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뛰어난 배우다.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해 광기를 일으키는 자다. 이런 것을 보고 한 배우는 섬세하고 여린 감정의 끈을 표현하는 배우라 하고, 다른 한 배우는 선이 굵어 감정이 활화산처럼 터지는 배우라 한다. 두 배우의 차이점을 이용한 명장면이다. 남궁원은 감정 표현의 군더더기가 없다. 그저 돌아서 있는 뒷모습만 보여줘도 분노와 회한이 표현되는 배우다. 그런데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존재감이 터져나오는 이 멋진 배우는 이후에 출연한 액션영화에서 그냥 서 있기만 한다. 좋은 감독과 좋은 시나리오를 못 만난 것이다. 그는 다시 겉돌기 시작한다. 이후 그가 출연한 액션 영화는 모두 조악하게 007을 흉내 낸 영화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만희 감독과 다시 만난 남궁원은 또다시 활개를 친다. 이만희 감독의 만주 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다. 이 영화에서 남궁원은 호쾌한 남자지만 미스터리한 사나이. 술과 돈, 여자에 환장하고 비상한 머리로 장동휘와 허장강을 속이는 매력적인 주인공 역을 맡는다. 아마도 남궁원과 이만희는 서로 배포가 맞는 한 쌍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만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대한 울분과 통한 속에 병을 얻어 몇 해 뒤 세상을 떠나고 남궁원은 다시 멜로 영화 속 불륜에 빠진 유부남이거나, 아버지 역을 맡는다. 1970년대 후반 이두용 감독과 만나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이두용 감독과 만난 남궁원의 배역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잔혹한 내시들의 우두머리 내시감이다. 영화 ‘내시’(1986)를 만든 이두용 감독은 조선 시대 내시들이 남성의 성기를 제거하니 남성 호르몬이 몸으로 갔고, 그 결과 모두 체격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체격이 우람하고 검술에 능한 내시가 탄생한다. 그뿐인가? 이두용 감독은 ‘피막’(1981)에서 남궁원에게 마을에서 가장 천한 피막(避幕·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기 위해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지은 오두막) 지역을 준다. 어쩌면 남궁원은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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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생겨서 한정된 배역만 맡았던 사나이 남궁원은 액션영화 배우로 더 멋진 역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충무로에는 그의 연기를 뽑아낼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랜치 커넥션’의 진 해크먼처럼 범인 잡는 일에만 몰두하다 광기를 일으키는 외골수 형사 역을 했어도 멋있었을 것이고, 숀 코너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중년이 돼 남성성을 더욱 힘 있게 구사하는 배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궁원의 데뷔 초기 신상옥 감독이 그에게 한 말이 있다.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안 됐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