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과 뒤와 옆은 산으로 삥 둘러싸여 있고 그 좁은 계곡 사이로 예쁜 강물이 흘러와서 흘러간다. 강물 속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이 놓여 있고, 어른 키를 넘는 깊은 물과 아이들의 장딴지도 안 넘는 깊이의 물이 있다. 그 강물 속에는 작고 큰 갖가지 물고기가 산다. 새우, 피라미, 임실강시붕어, 쉬리, 은어, 붕어, 쏘가리, 메기, 뱀장어, 물종개, 돌고기, 꺽지, 동사리, 피리, 자라, 잉어, 누치, 참마자, 모래무지, 조개, 다슬기, 그리고 작은 벌레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속에서 살아간다. 강물로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달빛이 덜어져 흘러간다. 별들이 초롱거리고 헤지면 물고기들은 물을 차고 뛰어오른다.
그 강물 어딘가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강을 건너는 다리다. 다리는 마을의 가운데쯤에 놓여 있었다. 마을이 길어서 ‘긴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그 마을 윗곁과 아랫곁의 중간쯤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어 보여서 마을 인심의 균형 감각을 깊이 읽을 수 있는 모양새다.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산이고 산은 7부 능선까지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70도가 넘는 경사진 밭이 대부분이다.
이 징검다리로 사람들은 아침저녁 밤낮으로 일을 하러 건너다녔다. 징검다리는 마을에서 유일한 축조물이었다. 마을의 복판에 놓인 징검다리는 마을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준, 가장 아름다운 서정이 빛나는 곳이었다. 달 뜨면 징검다리에서 부서진 강물이 가장 반짝였다. 봄이 되어 소들이 강을 건너고 여름이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사람들이 몸을 적시며 강물을 건넜다. 가을이면 강 건너 밭에서 거둔 곡식을 가져다 날랐다. 묽은 감을 인 어머니들, 고추를 망태 가득 담아 짊어진 아이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은 징검다리 위로 섶 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가 잠긴 채 물이 얼기 때문이었고, 겨울에는 비가 오지 않아 섶 다리가 온전하게 봄을 맞이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나무를 해 짊어지고 섶 다리를 건너다녔다. 봄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면 섶 다리는 강물에 떠내려 가버렸다. 사람들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또 동네사람들이 모여 섶 다리를 놓으면 되니까.
한겨울 강바람 몰아치고 강물이 얼면 어머니들은 얼음을 깨고 흘러가는 강물에 빨래를 했다. 강바람에 실려오는 빨래 방망이 소리는 춥고, 또 춥고, 또 추웠다. 하얗게 언 강, 지금도 징검돌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빨래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내게 그림처럼 박혀 있다. 산을 때리던 그 빨래 방망이 소리와 함께 말이다. 다시 봄이 오면 아이들이 징검다리에서 고기를 낚았다. 낚싯대를 빙빙 돌리면 봄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낚싯줄 끝의 고기들, 그 아름다운 빛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가슴 어딘가를 찔러주던 그 빛나는 빛. 나는 언제쯤 그 징검다리에 나갔을까. 아마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앉은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와 처음 어머니 등에 엎혀 징검다리에 나갔을 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침이었을까. 해 저물 때였을까. 내가 가을에 태어났으니, 아마 늦가을 어느 때였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빨래를 했는지, 배추를 씻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어머니 등 너머로 흘러오는 강물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듬해 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업고 징검돌에 앉아 빨래를 할 때 내 발이 강물에 닿았을 것이다. 아! 그때 나는 어땠을까. 한두 달이 가고 내가 자라자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 뉘여놓고 눈을 떼지 않으며 빨래를 했을 것이다. 내가 더 자라 앉을 줄 알게 될 때쯤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 얕은 강물에 앉혀놓고 자기 할 일을 했을 것이다. 벌거벗은 어여쁜 내 몸을 강물이 휘돌아갔겠지. 내 몸 주위로 작은 고기들이 다가와 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고기들이 도망을 갔다가 또 달려들어 내 고추를 콕콕 쪼았겠지. 내가 손을 휘저어 물을 치면 물방울들이 눈부시게 튀어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랐다. 어머니는 이제 나를 집에 떼어놓고 강 건너 밭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고 싶었겠지. 어린 나는 강가에 나가 울어대며 어머니를 부르다가 징검다리 첫 징검돌에 한 번 서보았을 것이다. 강을 건너보려고. 그러나 나는 아직 어려 첫 징검돌에서 다음 징검돌로 뛰어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건너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넘어져 물에 빠져 울었겠지. 그러고저러고 세월이 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개 두 개 징검돌을 스스로 건너기도 하고 어른들이 보듬어 징검돌 한 개를 건네주기도 했을 것이다.
아! 나는 몇 살쯤에 스스로 징검돌을 건넜을까. 그날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가면서 나도 어른들처럼 소를 데리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보리 짐을 지게에 짊어지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뭇짐을 지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스스로 징검돌을 건너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이 그 징검돌의 생김새와 그 징검돌의 특징과 어디를 디뎌야 미끄러지지 않고 어떤 징검돌은 어느 모서리가 날카롭고 또 어떤 징검돌 틈 속에는 무슨 고기가 살고 있는지를 생각했을까. 봄날의 징검돌과 여름날의 징검돌과 가을날의 징검돌과 겨울날의 징검돌들을 몸과 마음에 익혔을까. 아니 익혀졌을까.
큰비가 와서 앞 강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버렸다. 강물이 마을 앞길을 넘어 정자나무 밑까지 출렁거리다 빠지면 징검돌 몇 개가 삐뚤어져 있거나 떠내려갔다.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징검돌이 떠내려가면 5월 단옷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징검돌들을 손보았다. 징검돌들이 움직이지 않았어도 5월 단옷날은 마을 사람들이 징검돌을 손보는 날이었다. 1년 동안 마음 놓고 징검다리를 건너다닐 수 있도록 손을 보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다 징검다리에 모여들어 돌을 옮길 때 손과 발을 맞추기 위해 어여차! 어여차! 어여! 어여! 어엿차! 어여! 하던 노랫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나는 그렇게 징검다리를 내 몸과 마음에 익혔다. 누가 어떻게 징검돌을 디디고 강을 건너야 하는지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았다. 징검다리에 대해, 징검돌에 대해, 강물의 깊이에 대해 그곳에 사는 고기들에 대해 누구 하나 일일이 공책에 써가며 배우지 않았다. 가다오다 마을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저절로 몸과 마음에 징검돌을 건너는 법을 익히고 숙달되어갔다. 돌의 넓이와 크기를, 그 생김새를 외울 필요가 없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법을 공책에 쓸 필요가 없었다.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으며 물에 빠지고 자빠지고 일어나며 요령과 법을 터득하고 깨달아가고 능숙해졌을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법은 징검다리 그 자체만을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다.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을 때까지 마을의 모든 것이 몸과 마음에 익혀져야 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스스로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는 나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일곱 살은 넘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징검돌을 닮은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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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디에서 보아도 마을의 산천경치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울리는, 자연 그 자체였던 마을의 징검다리, 동네 앞 강물 속에서 물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두서너 개 정도만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던 징검돌들, 강물의 양과 크기와 속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놓은, 과학이었던 징검다리, 마을 어디에서 보아도 마을의 산과 밭과 논과 나무들과 돌멩이들과 하늘의 달과 별들, 그리고 마을 속을 걸어 다니는 노동자들의 몸짓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었다. 긴장과 자유, 균형과 긴장, 그것은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상생의 조화다. 아침 햇살과 저녁 햇살, 징검돌들을 뛰어넘던 물고기들의 빛나는 몸짓들, 달빛을 받은 징검돌, 세상의 모든 고뇌를 담고 징검돌을 감고 돌던 물소리, 눈 온 겨울날 아침 눈을 가득 쓰고 고요하던 징검돌, 어느 가을날 큰집 막둥이가 바제기에 붉은 고추를 지고 오다가 미끄러져 강물에 고추를 부려버리던 징검돌, 붉은 고추가 떠내려가던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던 막둥이의 그 모습은 그림이요 시였다. 징검다리는 우리에게 과학과 예술과 시와 마을의 철학과 소통과 공동체를 가르쳐준 작은 학교였다. 나는 태어나면서 마을의 자연이었고 자연으로 자랐다. 나는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자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