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뚝심의 기업 풀무원

‘200원에 한 봉지’였던 콩나물·두부에 디자인을 입히다

  • 신정원| 월간 기자 gardennew@design.co.kr

    입력2012-02-22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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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의 기업 풀무원

    1980년대 말 풀무원은 국내 최초로 ‘포장두부’ ‘포장콩나물’ 시장을 개척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슈보다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사건 사고에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식품 산업은 브랜드 긴장도가 높고, 신뢰와 정직은 소비자가 기업과 브랜드를 판단하는 절대적 요소다.

    1984년 창립한 풀무원은 ‘이웃사랑 생명존중’ 철학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 디자인에서 물류·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정직을 최우선에 두고 경영한다. 한 제품군 안에서만 수십 가지의 브랜드와 제품들이 경쟁하는 식품 시장에서 매출을 좌우하는 것은 가격 경쟁력이다. 하지만 풀무원은 제조 과정에서 원가 절감을 위한 타협을 하지 않는다. “조금 더 비싸도 풀무원이니까”라는 말에는 기업의 정직함에 대한 신뢰가 담겨있다. 100원 저렴한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더 정직한 원료로 만든 제품은 그 브랜드를 경험해본 소비자만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풀무원의 원료에 대한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소비자에게서도 인정받고 있다. 미국 법인인 풀무원USA는 지난해 프리미엄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유통 채널인 내추럴 마켓(Natural Market) 분야의 두부류에서 19.5%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연말에는 25.6%를 기록했다. 1991년 미국 진출 이후 20년 만에 거둔 성과다. 풀무원은 미국 내 프리미엄 두부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일반 두부 시장에서도 풀무원의 이름을 알리고, 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가공식품이란 결국 식품 첨가물 조합의 미학이 아니냐”는 업계 종사자 간의 농담이 풀무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천연 재료만으로 만들어낸다

    김태한 풀무원 마케팅 팀장의 말이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음식을 할 때 이것저것 넣어봐도 맛이 나지 않을 때, 라면 수프 하나만 넣으면 금세 맛이 완성됩니다. 외부에서 풀무원으로 온 제품 개발 담당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그 맛’을 내는 겁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첨가물을 넣어서 금방 맛을 내는데, 여기서는 쓰는 재료가 너무 없으니까. 그런데 첨가물에 익숙해진 입맛과 천연 재료를 사용한 제품에 길든 입맛은 전혀 다릅니다. 본인의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풀무원다운 제품을 만들 수가 없어요.”

    풀무원의 정직함은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디자인 전문회사 씨디스어소시에이션(이하 씨디스)의 이영희 대표와 풀무원이 파트너로 함께 일한 지는 올해로 21년. 풀무원 제품의 패키지는 대부분 씨디스를 거쳐 탄생했다.

    “식품 회사의 정직함은 곧 생명력입니다. 탈모가 꽤 진행된 남승우 풀무원 총괄사장이 굳이 가발을 쓰지 않는 것도, 사소한 것이라도 꾸미고 감추는 게 풀무원과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죠. 그래서 씨디스도 표현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솔직하고 정직한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풀무원이 조미료를 안 쓰니까, 디자인도 불필요한 요소를 뺀 함축적이고 정제된 느낌으로 하죠. 기업 철학이 확실하고 견고하게 받쳐줄수록 디자인은 쉽게 풀립니다. 디자인도 정직이 먼저고, 심미적인 부분은 그 다음이라는 것을 풀무원의 디자인을 하면서 배웠습니다.”

    풀무원은 1959년 원경선 원장이 경기도 부천에서 소외된 이웃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생활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꾸린 신앙공동체 사업이 그 시발점이다. 원 원장은 한국 최초로 유기 농사를 시작했다. 올해 백수(白壽)를 맞는 원 원장의 건강 비결은 현미식. 그는 풀무원 신입사원 교육 때 현미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식품회사 풀무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그의 아들인 원혜영 현 민주통합당 의원이 1981년 압구정동에 ‘풀무원 농장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을 연 뒤 1984년 법인이 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원 의원이 정치인으로 인생 행로를 바꾸면서, 동업자였던 남승우 총괄사장이 취임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풀무원식품, 풀무원건강생활, ECMD, 푸드머스, 풀무원샘물, 풀무원USA, 엑소후레쉬물류, NHO(Natural House Organic), 올가홀푸드 9개의 계열사의 직원은 4500여 명, 매출은 1조 5000억 원이다. ‘인간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는 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기업’을 표방하는 풀무원은 경영 전방위에 걸쳐 기업 철학인 ‘이웃사랑 생명존중’을 실천하고 있다. 올가홀푸드의 브랜드 ‘올가(Orga)’가 대표적이다. 전국 10개의 직영점과 41개의 숍인숍(Shop in shop)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농 전문 식품 및 친환경 제품 브랜드로 채소, 과일, 양곡 등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올가의 동물 재료에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사용을 제한하고 순 식물성 사료만 먹인다.

    9개의 계열사를 이끄는 풀무원만의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 있지 않을까 싶어 재차 묻자 김태한 팀장은 “풀무원은 사업의 성공을 위한 특별 전략보다는 일관된 기업 철학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일관성에 대한 고집과 헌신이 우리의 가장 큰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뚝심의 기업 풀무원

    풀무원USA 본사 전경, 풀무원USA는 지난해 미국 프리미엄 건강 식품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했다.

    뚝심의 기업 풀무원

    유기농 전문 식품 및 친환경 제품 브랜드 올가.

    풀무원이 일반 가공식품과는 달리 별도의 유통구조가 없었던 두부와 콩나물 같은 생식류를 디자인된 패키지에 담아 슈퍼마켓과 백화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은 1980년대 말. 그때만 해도 콩나물은 시장에서 ‘200원에 검은 봉지 한가득’ 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부유층 주부들이 꾸준히 ‘브랜드 생식품’을 찾아 사가는 것을 보고 시장성을 발견했다. 이때 처음 ‘포장두부’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 2005년 전후로 두부시장에 CJ제일제당, 대상 등이 진입하기 전까지는 ‘포장두부는 풀무원’이라는 인식이 계속 유지됐다.

    이렇게 풀무원식품이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여가는 동안 풀무원의 매출을 책임져온 효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현재 풀무원건강생활의 모체인 ‘풀무원 효소 식품’이다. 이 회사는 지금은 ‘헬스 어드바이저(Health Adviser)’라고 불리는 방문판매 사원들을 관리하는 회사다. 풀무원은 바른 먹을거리에 대해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고 관심을 갖게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풀무원 효소 식품은 흑자 행진을 계속했고, 이를 통해 풀무원식품에 재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경영 규모를 키워나갔다.

    건강식품 대신 생활 속 신선제품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식생활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건강 보조 식품을 따로 챙겨먹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에서 건강 증진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 이에 따라 오래 묵혀서 사용하는 식품보다는 빨리, 신선한 상태로 먹는 제품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풀무원에 기회였다. 경제위기로 여러 회사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문을 닫는 와중에 풀무원의 매출은 해마다 평균 20~30%씩 성장했다. 냉장 카테고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풀무원은 2003년까지 그 성장세를 이어갔다.

    냉장식품 시장이 커지면서 CJ제일제당, 대상 등의 대기업이 2005년을 기점으로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장 관점에서는 두부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고 풀무원 내부적으로는 체질 개선을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간 기업 이미지 위주로 진행해왔던 광고도 경쟁자를 의식한 공격적 제품 광고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원가 절감을 위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다.

    전성기 때는 80~90%에 가까웠던 냉장 카테고리 시장점유율은 현재 50% 정도로 떨어졌다. 하지만 풀무원은 뚜벅뚜벅 제 길을 가고 있다. 대중매체를 활용한 마케팅은 단시간 매출 상승에 즉효지만 풀무원과는 먼 이야기다. 어쩌면 미련하기까지 한 풀무원의 뚝심이 힘을 발휘한 것은 학교 급식 시장의 문이 열렸을 때다. 급식 업체를 선정할 때,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다보니 경쟁업체에 비해 단가가 높았지만, 풀무원의 정직함을 신뢰하던 학부모들이 많은 표를 던진 것.

    “내가 진짜” 풀무원의 자신감

    뚝심의 기업 풀무원

    프리미엄 생과일주스 ‘아임리얼’은 첨가물은 물론이고 물 한 방울 안 섞은 음료다.



    냉장 제품을 통해 30~50대의 주부들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은 풀무원은 2007년 ‘마시는 과일’ 콘셉트의 프리미엄 생과일주스 ‘아임리얼(I′m real)’을 론칭하면서 20~30대 여성들에게까지 높은 기업 인지도를 형성하게 됐다. 김 팀장은 “최근 냉장 주스 시장은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가정 내 과일 소비량은 급증하고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쉽게 생과일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아임리얼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임리얼은 첨가물은 물론이고 물 한 방울도 섞지 않았다. 또한 열처리를 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2주로 짧지만 그만큼 신선한 과일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풀무원 정신’을 그대로 담은 아임리얼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연평균 1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성공적인 시장 진입에는 과일을 의인화한 독특한 네이밍도 한몫했다. 아임리얼의 네이밍을 진행한 조미재 네임넷 이사의 말이다.

    “정말 순수하게 과일만을 넣어 만든 제품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네이밍을 시도했죠. 과일 스스로 자신 있게 ‘난 진짜야’라고 말하듯이. 풀무원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네이밍입니다.”

    이영희 씨디스 대표는 아임리얼의 패키지에 대해 “과일을 깎을 때 껍질이 벗겨지는 형태를 모티프로 해 레이블을 디자인했다. 지금 막 깎아서 담아낸 듯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풀무원의 강점은 디자인이다. 2012년부터 풀무원의 CDO(Chief Design Officer)를 겸임하게 된 이 대표는 “디자인 회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 권한을 위임해주는 회사”라고 평했다. 남승우 총괄사장 역시 대학 시절부터 화실에 드나들 정도로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풀무원 디자인을 다듬고 전사적인 디자인 퀄리티를 높이는 게 내 역할”이라며 “회사 시설물이나 조직원의 행동, 업무 프로세스 등 디자인에도 변혁을 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최근 풀무원은 기업 광고로 ‘Nutrition Balance’편을 제작했다. 이제는 바른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영양까지 생각하겠다는 풀무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정직한 원료로 칼로리와 나트륨은 줄이고 칼슘과 오메가 같은 영양소 비율을 높여 균형 잡힌 식사를 유도하겠다는 것. 뚝심과 신뢰로 뚜벅뚜벅 제 길만을 고수해온 풀무원다운 목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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