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_ 구해우·송홍근 지음, 시대정신, 207쪽, 1만 원
식민지 시대, 분단의 시대를 지나온 적지 않은 사람이 남과 북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의 이야기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추(89)의 삶에는 파란이 가득하다. 식민지 조선의 소년으로 살다 사회주의자가 됐다. 혁명국가 건설에 일조하겠다면서 38선을 넘었다.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하다 고난의 삶을 끌어안았다. 그가 작곡한 음악은 그를 닮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고통과 시련, 통일조국 건설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1930년대에 베를린음대를 졸업한 외삼촌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광주의 집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치던 정추는 1945년 광복이 되자 함께 독립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했으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인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낸 형 정준채를 따라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6·25전쟁의 와중에 사회주의권 음악대학 중 최고 명문인 러시아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스쿨에 들어가 차이코프스키 4대 제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57년 반(反)김일성 시위에 참여하면서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버림받은 채 반세기 가까이 카자흐스탄 톈산산맥 아래 알마티에서 모진 시련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이 같은 인생역정에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북한 애국가 등의 작곡가인 음악 친구 김원균을 비롯해 무용가 최승희, 소설가 이태준, 김일성과 박헌영, 박갑동, 그리고 박정희까지 수많은 인물의 삶이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정추와 함께 음악을 공부했음에도 그와 완전히 대조적인 삶을 산, 북한 최고의 음악인으로 꼽히고 현재 북한 국립 김원균평양음악대학의 주인공인 김원균의 인생사는 우리에게 인생과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이 책에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도 부족했던 북한에서의 남로당계 숙청과정이 생생히 소개돼 있다. 1970년대에 박정희가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비밀리에 추진했던 사실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다.
정추는 뛰어난 음악인일 뿐 아니라 평생 조국의 독립과 북한의 개혁개방, 통일을 위해 산 인물이다. 남로당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박갑동을 1990년대에 다시 만나 북한의 민주화를 목표로 구국전선을 결성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백발의 노 망명객은 통일조국의 애국가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내 조국’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조국은 그에게 고통과 질곡의 삶을 안겼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을 한평생 불태워왔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정추처럼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극적인 인생, 그것도 매순간 역사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조국을 사랑하고자 했던 삶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구해우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_ 윌리엄 F 화이트·캐서링 K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몬드라곤은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위치한 도시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1940년대부터 노동자가 회사를 소유하고 경영자를 선임하며 경영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몬드라곤’은 제조업·금융·유통·연구·교육을 포괄한 협동조합 그 자체를 일컫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제도의 대안으로 출발한 대부분의 생산자 연합체가 실패하거나 끝내 생산자 민주주의를 포기한 것과 달리 나날이 성장했고, 2010년 현재 77개의 해외 생산공장을 갖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고용과 작업장 체계 연구 프로그램’ 총책임을 맡았던 저자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히기 위해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경영체계, 경기침체기의 대응 등을 분석한다. 부제는 ‘해고 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이다. 역사비평사, 439쪽, 1만7000원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_ 마이클 톰슨·캐서린 오닐 그레이스·로렌스 J 코헨 지음, 김경숙 옮김
‘당신 아이를 움직이는 또래 집단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아동심리학자이자 상담치료 전문가인 마이클 톰슨은 지난 10여 년간 ‘아이들의 사회적 잔인성’이라는 주제의 워크숍과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그가 각각 전직 교사와 놀이치료 전문가인 두 명의 공저자와 펴낸 이 책에는 아이들이 친구 관계에서 겪는 고통의 실제 사례와 해결책이 담겨 있다. 세 명의 저자는 “이 책은 어떤 집단이 무리를 지어 당신의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막아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의 아이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아이를 도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아이의 삶에 스민 집단의 힘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당신은 … 그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고, 그러한 태도는 아이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양철북, 468쪽, 1만5000원
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 _ 김학균·남정석·배성민 지음
“기아 농구팀은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맞은 상황에서 경기에 임했다 … 멀쩡하던 기업이 하룻밤새 문을 닫던 살벌한 시절이었다. … 손에 붕대를 감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눈 주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뛰었던 허재의 모습은 1998년 IMF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던 한국인의 절박한 자화상이었다.” 스포츠는 때로 한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반영한다. 특히 우리나라 스포츠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난한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야 했던 한국인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각각 애널리스트, 스포츠지 기자, 일간지 기자인 세 명의 저자가 한국 현대사를 1940~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 이후로 나누어 그 시대 우리의 생활상을 반영한 스포츠의 순간순간을 찾아 기록했다. 이콘, 339쪽, 1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그들이 본 임진왜란 _ 김시덕 지음, 학고재, 240쪽, 1만5000원
동상이몽(同床異夢). 함께 행동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통신사 파견을 대하는 조선과 일본의 태도를 동상이몽의 대표적인 사례로 생각한다. 조선은 군사력만 강한 야만적인 섬나라 오랑캐를 주자학으로 감화시키려 했다.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켰다는 기본 전제 하에 통신사는 조선이 일본의 무위(武威)에 복속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조선 관리들과 직접 교섭을 하던 학자이자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처럼, 통신사에 대한 조선의 생각을 잘 아는 이도 있었다. 호슈는 세계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국가 간 분쟁을 억제하고 일본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711년 통신사 방일 당시 호슈와 대립한 막부 관료 아라이 하쿠세키는 조선을 침략한 히데요시를 ‘제거해주고’ 조선과 국교를 ‘맺어줌으로써’ 조선에 평화를 ‘가져다준’ 도쿠가와 막부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조선은 신뢰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이후 일본 역사에서 위인으로 칭송받은 것은 하쿠세키였으며, 호슈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혔다.
조선의 통신사 파견과 같은 외교적인 노력이 무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호슈 같은 사람과는 우호적으로 교섭하고 하쿠세키 같은 사람과는 냉철하게 외교전을 벌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했음을 지적하고 싶다. 필자는 통신사들이 남긴 문헌을 읽으며 ‘호슈 유’는 소인배로 얕보고 ‘하쿠세키 유’에 대해서는 ‘나쁜 놈’이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당대 관원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선 역사 속에서는 일본에 대한 냉철한 대응과 조선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보여준 사례도 여럿 발견된다. 조선 전기 관료였던 신숙주는 왜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진력하면서, 일본의 인문지리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일본 교섭의 근거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한 ‘해동제국기’를 남겼다. 그의 유언은 “원컨대 일본과의 화의를 잃지 마소서”였다. 임진왜란 당시 국정을 담당한 류성룡은 신숙주의 이 같은 유언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일본과의 외교에 실패했다는 자기반성을 ‘징비록’ 첫머리에 적고 있다. 그리고 침략에 이르는 당대 일본의 역사를 개괄하고 조선의 방위상 실패점을 차분하게 기록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일본을 ‘왜’가 아닌 정식 국호 ‘일본’으로 호칭한다. 임진왜란을 왜구가 일으킨 한때의 난리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가 일으킨 장기간의 국제전쟁으로 인식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무지와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에서 오는 전략의 결여가 초래하는 비극은 근현대 세계사에서 무수하게 발견된다.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전근대 일본인들의 생각을 아는 것은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실용적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들을 용기가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김시덕│일본문헌학자│
멀티 유니버스 _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인기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서술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창한 천동설부터 현대 천문학자 허블이 밝힌 빅뱅이론까지, 수천 년에 걸쳐 이뤄진 우주론의 역사를 개괄한 뒤 현대 우주론의 역사를 끌어가고 있는 9가지 다중우주 가설(누벼 이은 다중우주,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브레인 다중우주, 주기적 다중우주, 랜드 스케이프 다중우주, 양자 다중우주, 홀로그램 다중우주,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궁극의 다중우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이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등도 과학 문외한의 눈높이에서 풀어준다. 김영사, 575쪽, 2만5000원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_ 다치바나 다카시·NHK 스페셜 취재팀 지음, 이규원 옮김
일본 저명 언론인인 저자는 2007년 방광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 및 치료 등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한 취재를 바탕으로 ‘암과 생명에 관한 지적 탐구’를 시작했다. 그가 2008년부터 일본 ‘문예춘추’에 게재한 수기와 2009년 11월 NHK에서 방송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내용을 함께 엮은 책.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1)방광암 선고 (2)주치의와의 대화 (3)암 수술 (4)방광암의 정체 등으로 나눠, 처음 혈뇨를 발견했을 때부터 PET검사, 생체 검사, 수술과 수술 전후의 치료 과정 등까지 생생한 내레이션 형식으로 서술했다. 또 암유전자 RAS를 최초로 발견한 로버트 와인버거 교수, 암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 1인자 마이클 클라크 교수 등 암 분야 권위자들의 견해와 최첨단 자료를 수집, 암의 발생기전과 현재 의학의 한계까지 다뤘다. 청어람미디어, 328쪽, 1만8000원
프로이트와 이별하다 _ 스티븐슨 본드 지음, 최규은 옮김
‘무의식의 깊은 잠을 깨우는 융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카를 융은 스승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다. 또 ‘개인 무의식’을 밝혀낸 프로이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류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 이른바 ‘200만 살 된 남자’를 밝히려 했다. 융에 따르면 인류는 원형 무의식을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는 이것을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의 보고이자 영감의 원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미지의 힘이라고 여겼다. 융에 따르면 신화는 집단 무의식이 발현된 결과이며, 해몽 역시 인류가 유사한 꿈의 패턴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삶과 신화적 상상력의 균형을 이뤄낼 것인지 고찰한다. 예문, 412쪽, 1만75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_ 정여울 지음, 이순, 253쪽, 1만3800원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이 권장량을 훨씬 웃돌아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외식이 잦아지면서 ‘더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양념은 점점 강해지고, 현대인이 나트륨의 짠맛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둔화된 결과라 한다. 감동을 느끼는 인체의 감각도 그렇게 둔화된 것이 아닐까. 요새 사람들은 웬만하면 감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는 그 ‘감동의 장벽’ 앞에 매번 부딪히곤 했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며 열변을 토해도, 아이들의 표정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갈수록 더 강렬하고 다채로운 자극을 받아 점점 더 웃기기도 울리기도 어려운 신체가 되어가는 현대인.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은 ‘문학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무표정을 향해 보내는, 내 짝사랑의 편지다.
아주 평범한 책을 봐도 엄청난 감동을 느끼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이 즐거워지는 사람도 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수성의 문제다. 어릴 때는 ‘문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문학은 ‘느끼는’ 건데, 어떻게 진지하고 재미없게 공부를 한다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은 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많다. 고전을 그냥 많이 읽고 ‘써먹는’ 사람보다도, 아주 사소한 구절 속에서도 감동을, 영감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이렇게 좀 더 예민하게 감동의 촉수를 건드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주 살짝 문학과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키워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야구나 축구경기의 규칙을 알면 경기가 엄청나게 재미있어지고, 여행용 외국어를 조금만 습득해도 여행이 수십 배 재미있어지듯, 문학 또한 그렇다. 이를 위해 내가 선택한 키워드가 바로 트릭스터, 악역, 시점, 알레고리, 상징, 은유 등 18가지의 ‘문학 경기의 기본 법칙’이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머스트 해브 아이템’만큼이나 절실한, ‘머스트 리드 북스’ 목록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의 개수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점점 늘어나므로, 아무리 읽어도 화수분처럼 늘어나는 그 마음속의 리스트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은 ‘머스트 리드 북스’ 목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문학의 감동은 ‘남들이 좋다’고 추천한 도서목록이 아니라, 삶을 통해 쌓아온 자잘한 감동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춘기 시절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내 안의 감동이야말로 내 삶의 원동력이 아닐까. 나는 문학을 통해 흡수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문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은 태어날 수 있었다.
정여울│문학평론가│
웃음의 심리학 _ 마리안 라프랑스 지음, 윤영삼 옮김
우리는 왜 웃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할까. 남자는 왜 여자보다 적게 웃는가. 여자는 왜 성희롱을 당할 때 웃는가. 아기는 엄마 자궁에서 어떻게 웃음을 배우는가. 미국 예일대 심리학·여성학 교수인 저자는 웃음은 단순히 ‘즐거운 표정’이 아니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입꼬리를 올리는 작은 근육의 움직임이 어떻게 큰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면서, 의식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으로 웃을 수밖에 없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은 생후 5~6주만 지나도 사교적인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기의 웃음을 행복 혹은 만족의 표시로 착각하지만, 실은 그때부터 이미 웃음이 초래할 결과와 보상을 알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중앙북스, 386쪽, 1만5000원
조선의 탐식가들 _ 김정호 지음
조선 사대부와 권세가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 ‘조선의 왕세자는 어린 시절 어떻게 살았을까?’ 등의 역사 교양서를 펴낸 저자의 호기심이 이번엔 조선시대 반가의 밥상으로 옮겨갔다. 조선은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한 시대였다. 왕은 12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ㆍ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이 질서의 틈에서 새롭고 특별한 맛을 탐한 이들도 분명 있었다. 중종의 사돈으로 권세를 누린 김안로는 개고기 탐식가로,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올랐다. 정조의 정적이던 정후겸은 ‘갓 부화한 병아리’ 요리를 즐겼다. 우심적, 두부, 순채 등에 대해 수많은 시를 써서 남긴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과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 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따비, 330쪽, 1만5000원
무취미의 권유 _ 무라카미 류 지음, 유병선 옮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등의 소설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저자가 일본 비즈니스맨 대상 월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책. 저자는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토록 의미 있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기획, 인맥관리, 협상, 접대, 전직(轉職), 스케줄 관리 등에 대한 간결하고 명료한 조언을 들려준다. 부키, 176쪽, 1만2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중국 신화의 세계 _ 정재서 지음, 돌베개, 207쪽, 1만2000원
모두들 용의 해가 왔다고 환호하지만 우리에게 용은 언제까지 신성한 동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요즘 필자가 품고 있는 의문이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아이들에게 용은 더 이상 영물이 아니다. 그것은 용감한 영웅이 퇴치해야 할 괴물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 땅에 서양 신화와 전설에 바탕을 둔 스토리텔링이 성행하는 현실 탓이다. 자연생태계뿐 아니라 바야흐로 상상계에도 교란과 전도(顚倒)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상상력과 이미지, 스토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데 더없이 중요한 능력으로 떠올랐고 이 세 가지 아이템의 원천이 신화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 익히 알고 있는 신화는 거의 그리스 신화 등 서양 신화이며 동양 신화는 망각된 지 오래다. 우리의 상상력과 이미지, 스토리가 서양 신화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동양 신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신화에 대한 이해는 긴요하다. 근대 이후 중국 신화는 잊혔지만 과거 우리에게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자산 같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 신화는 특정 민족이나 지역의 신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라는 민족과 지역을 넘어 유럽문화의 모태가 되었듯이 중국 신화는 동양문화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문화에 남아 있는 중국 신화의 흔적을 살펴보면 금방 확인된다.
멀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삼족오(三足烏)라든지, 인면조(人面鳥) 등의 신수(神獸), 신농씨(神農氏)와 같은 신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제사상에 복숭아를 놓지 않는 습속 등에 이르기까지, 또는 한국의 문헌 신화와 무속 신화에서 중국 신화와 공유하고 있는 많은 요소로부터 중국 신화가 결코 우리 문화와 떨어져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양문화의 원천인 중국 신화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세계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 문화의 뿌리를 확인하는 길이며 그리스 신화 등 서양의 상상력이 표준이 된 현실에 대해 다양성을 부여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독자가 오늘날 중요한 인문학적 아이템인 상상력, 이미지, 스토리 그리고 한국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중국 신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내용을 크게 중국 신화의 상상세계, 중국 신화와 이미지, 중국 신화의 소설적 수용, 중국 신화와 한국문화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서술했다. 모쪼록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서양 신화와는 다른 우리 동양 신화의 색다른 풍미와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이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소유하게 되길 기대한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이케아 사람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_ 대니얼 C 에스티·앤드루 S 윈스턴 지음, 김선영 옮김
저자 중 대니얼 C. 에스티는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의 에너지 및 환경고문을 지낸 환경전문가다. 앤드루 S 윈스턴은 세계 여러 기업에 ‘환경적 사고로 이윤을 얻는 법’에 대해 조언하는 기업환경전략 전문가다. 이 책은 두 저자가 ‘환경과 이윤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구글, GE, 이케아, 3M 등 세계 100여 개 기업의 CEO를 인터뷰한 저자들은 녹색경영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가구업체 이케아의 산림감시정책 등 여러 모범사례를 제시한다. 이케아는 보호가치가 높은 지역에서는 절대로 나무를 사들이지 않고, 불법 벌목한 목재도 구입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런 정책이 이케아가 소비자에게 친환경기업으로 인식되며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살림Biz, 488쪽, 1만8000원
조선왕릉실록 _ 이규원 지음
한반도 남쪽에 있는 조선 왕릉은 모두 40기다. 2009년 6월 유네스코는 이 모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풍수전문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이곳을 일일이 답사한 뒤 풍수이론에 비추어 풀이했다. 옛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세종대왕의 묘 영릉에 대해 “천하제일의 명당이다. 원래 이곳은 세조 때 대제학을 지낸 광주 이씨 이계전과 영의정을 지낸 이인손의 문중묘였다. 평안도 관찰사로 있던 이인손의 맏아들 이극배를 예종이 불러 자리양보를 청하니 가족들과 상의해 응해주었다. 당시 이인손의 묘를 파묘하니 ‘이 자리에서 연을 날려 높이 오르거든 연줄을 끊고 그 떨어지는 자리에 묘를 모셔라’는 글귀가 나왔다. … 세종대왕을 이곳에 모신 이후 조선왕조의 운세가 100여 년이나 연장되었다고 한다”고 소개하는 식이다. 글로세움, 575쪽, 2만7000원
로마 멸망사 _ 에드리언 골즈워디 지음, 하연희 옮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고대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로마사 분야 책을 여러 권 펴낸 유명 저술가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몰락은 커다란 역설이다. “구성원들이 그 체제에 반기를 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제국이 존속하기를 바랐고, 로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저자는 로마의 멸망이 어느 한순간 벌어진 일이 아니며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된 결과라고 판단하고, 이 책에서 로마 제국의 전성기로 평가되는 서기 2세기 무렵부터 로마가 세계사에서 사라지고 마는 6세기까지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고찰한다. 3세기 중반 시작된 로마의 혼돈, 4세기에 벌어진 동로마·서로마의 분리, 5세기 서로마제국의 붕괴, 6세기 서로마제국 재건 실패 등의 과정을 통해 로마제국이 직면한 안팎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루비박스, 564쪽,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