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몸과 뜻 바르게 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

한 영문학자의 체험적 지혜 건강법

  • 서동석│문학박사 eastosuh@hanmail.net

    입력2012-02-21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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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습관이 건강 52% 결정
    • 조화로운 몸은 사상체질 명확하지 않아
    • 건강법에 지나치게 집착 말아야
    몸과 뜻 바르게 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
    나는 인문학자였다. 지금은 심신 균형회복 연구자로 탈바꿈했다. 건강한 삶에 대한 나의 관심은 2007년 재직하던 한 대학의 영문과 교수직을 그만둔 뒤 우연한 인연으로 불교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났다.

    고교 시절에도 나는 참선을 통해 정신적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참선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가부좌를 틀고 ‘이 뭐꼬’ 화두(話頭)를 참구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혔던 번뇌가 조금씩 가라앉고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을 했다. 이후 오랫동안 참선을 잊고 살았지만 대학을 나와 불교를 다시 만나고 불교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참선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동안 줄곧 갖고 있던 내 인생의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연기(緣起), 즉 인과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건강하지 못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너무도 엄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은 중첩된 인연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중첩된 인연이란 불교적으로 보면 전생과 현생에 쌓인 업들의 총체적인 연기적 만남을 의미한다.

    보통 수행자들은 일상을 도외시한 채 좌선 과정에서 신비적 경험을 통해 도를 증득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석가모니는 몸을 바르게 하고(正身), 뜻을 바르게 하는(正意) 것이 수행의 기본이라고 가르쳤다. 이 생각을 연장해서 쉽게 풀어보면 열반의 삶이란 몸과 마음이 청정한 상태, 즉 몸과 마음에 불편함이 없는 삶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수행의 원리가 곧 건강의 원리임을 알게 되면서, 건강법이란 모든 종교를 초월해 하나의 공통 원리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 중에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연구 성과가 상당히 진척돼 있지만, 전체 연구 성과를 유기적으로 융합해 개인의 건강 상태에 맞게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한 것 같다. 이 글의 목적은 새로운 건강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건강법이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불선(儒佛仙)에 흩어져 있는 건강법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일반인에게 쉽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3주 수행으로 몸 변화 체험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해 여름 경기 용인 부근의 한 절에서 21일 동안 머물며 그동안 알고 있던 수행방법에 따라 정진한 적이 있다. 그전에도 일주일 이상 절에 머문 적은 있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절에 들어가기 전 수행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연습도 해보았는데, 그것은 주로 염불 수행법이었다. 나는 그 절에서 오전 3시에 일어나 4시부터 2시간 정진, 오전 7시 아침 공양, 오전 9시 30분부터 2시간 정진했고, 11시 30분 이른 점심 공양 후엔 잠시 쉬었다. 오후에는 2시부터 2시간 정진, 5시에 이른 저녁 공양, 그리고 6시 저녁 예불과 함께 2시간 정진을 마치면 하루를 정리하고 책을 보다가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바 4정근이었다.

    한 일주일 정진과 절 생활을 반복하자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몸의 변화였다. 절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매일 채식을 하자 그동안 장에 쌓여 있던 묵은 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식사량에 비해서 많은 변이 시원하게 나왔다. 체중이 줄면서 제일 먼저 얼굴 살이 빠지고 수염도 깎지 않은 상태여서 주변에선 내게 도인 냄새가 난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변화만 있었을 뿐이었다. 내면적으로도 다시 마음의 평화를 느끼긴 했지만 근본적으론 번뇌 망상이 여전했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이전보다 마음은 더 어지러워졌다. 사실 이것은 정신의 각성으로 이전에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몸의 변화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이전으로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다시 한 번 수행법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의 정진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무조건 좌선이나 염불을 통해 오래 입정(入定)에 들어 있다고 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화경(法華經)’의 ‘화성유품(化城喩品)’을 보면 “대통지승불은 십겁을 도량에 앉아 있었지만, 불법이 드러나지 않아 불도를 이룰 수 없었다(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不得成佛道)”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보리가 드러나 깨달음을 성취하는 게 아니면 성불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수행에 대한 바른 견해와 지혜가 없이는 어떠한 수행도 공염불이 되기 쉽기 때문에, 먼저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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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연단 앞)이 전남 해남군 미황사에서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때부터 나는 수행의 원리에 관한 것이라면 유불선을 가리지 않고 읽었고, 더불어 한의학, 식이요법, 그리고 음양오행에 관한 잡학도 가리지 않고 읽었다. 비록 그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정통이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도 있었지만 그 나름의 중요한 원리를 갖고 있기도 했다. 이 점에서 만법이 진리로 통한다는 이치를 실감했다.

    모든 것이 인과에 의한 것이듯 건강한 삶도 인과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각자의 건강 상태도 각자의 인과적 현재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획일적 건강법이 맞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각자 기본적인 생명현상의 원리를 알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건강법을 찾되 중도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원칙과 변용을 적절히 이용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얻는 중도의 방법’으로 심신이 균형을 회복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전, 환경, 의료도 중요

    우리의 건강은 크게 유전, 환경, 의료, 생활습관으로 결정된다. 이것을 백분율로 분석한 최근의 의학 통계에 따르면 유전이 20%, 환경이 20%, 의료가 8%, 그리고 나머지 생활습관이 52%를 차지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유전은 동업중생(同業衆生)의 측면이 있고 생활습관은 전생과 현생의 업(業)이 상호작용하며 현행(現行)하는 것이므로, 업을 좁게 해석해서 건강 측면에서만 봐도 사실 72%가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업에 관련된 것이다. 건강을 의학적 치료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단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며, 생활습관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업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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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1월 초 한 수련원에서 심신균형 건강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우리는 인과법칙을 물리적 현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정신과 행동 양식에도 적용된다. 평소 우리가 몸과 입과 머리로 짓는 일체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업의 종자로 잠복해 있으며, 설사 백겁이 지나더라도 소멸되지 않고 인연이 되어 그 과보를 스스로 받는다. 평소의 자세, 식습관, 행동 양상, 사고방식이 자신의 운명과 건강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는 서로 그물처럼 연결돼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체도 모든 조직이 연결되어 있고 몸과 마음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우리 생각이 곧바로 몸에 영향을 미치고, 일정한 행동은 모든 신체 조직에 영향을 미쳐 개인의 업을 형성한다. 이렇게 해서 쌓인 개인의 업은 그 사람의 전체 인생과 건강을 결정한다.

    평소의 생활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강 원칙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과 생활이 따로 존재해선 안 되며, 생활 자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과 분리된 건강법은 효과가 일시적일 뿐이다.

    변화의 원리

    인간은 자연과 우주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변화는 음(陰)과 양(陽)이 서로 번갈아 들면서 기운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순환하며 나아가고 있다. 봄에는 동쪽의 목(木)기운이 만물을 생장 발육시키고, 여름에는 남쪽의 화(火)기운이 만물을 화려하게 분열시키며, 가을에는 서쪽의 금(金)기운이 분열되었던 양기를 포용하고, 겨울에는 북쪽의 수(水)기운이 만물을 통일해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중앙의 토(土)기운은 일 년 사계절에 목화금수(木火金水) 각각에 중재 작용을 한다.

    오행은 상생하고 상극하며 서로 관계 맺고 변화하는데, 이것은 발전과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대립과 조화의 과정으로 자연의 섭리다. 이런 이치로 한의학은 특정 장기보다는 몸 전체의 기화작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생명은 목화금수의 원환적 순환을 이루며 성장과 후퇴를 반복하고 생멸하며, 이는 몸과 마음의 변화 원리와도 부합한다.

    한편 자연은 일정한 변화주기를 따르고 있다. 1년을 음양으로 보면 음력 11월은 자(子)월로서, 일양(一陽)이 처음 산생되는 시기다. 이때부터 양 에너지가 상승해 4월인 사(巳)월에 양이 극에 달한 순양(純陽)의 달이 된다. 5월인 오(午)월부터 일음(一陰)이 생겨 양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하지에 일음이 생긴 뒤 지구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 12지지의 마지막인 해(亥)월, 즉 10월이 되면, 음이 극에 달한 순음(純陰)이 된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기는데, 동지 이후에 다시 양을 밖으로 내뿜기 시작한다.

    이러한 순환적 변화를 인체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여름에는 양기가 바깥으로 방사되기 때문에 겉은 덥지만 속은 차다. 반대로 겨울엔 겉은 차지만 속은 뜨겁다. 인체 내부에도 일양과 일음이 순환을 반복하기 때문에, 음양이 처음 생길 때, 이 일양과 일음을 붙들어 적당히 조섭할 수 있다면 건강에 아주 도움이 된다. 한편 하루도 반은 양이고 반은 음이다. 자(子)시부터 다음 날 사(巳)시까지가 양이며, 오(午)시부터 해(亥)시까지는 음이다. 일 년 사계의 변화가 하루 중에도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하루는 일 년의 축소판인 셈이다.

    자신을 알라

    건강에서나 수행에서나 인간과 우주에 대한 바른 견해는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생명은 크게 외부의 기운에 의존해서 생존하는 기립지물(氣立之物)과 자율적인 생명력이 있는 신기지물(神機之物)로 나눌 수 있는데, 인간은 신기지물 중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립지물처럼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작용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서 거역하는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을 모두 갖고 있다.

    신체 변화의 원리 역시 우주의 법칙과 동일하다. 한의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인체의 장부에 오행의 이치를 적용해 간(肝)을 목(木), 심(心)을 화(火), 비(脾)를 토(土), 폐(肺)를 금(金), 신(腎)을 수(水)로 본다.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류의 생명은 모두 하나의 유기체로서 똑같은 생명의 법칙이 적용된다. 황제내경은 ‘역경(易經)’의 이치로부터 알 수 있는 자연의 변화 원리를 인간 장부의 작용 원리에 적용한 것이다. 인체의 각 장기는 비록 작용은 다르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체도 자연의 변화 주기를 따른다. 여성은 7년마다 생리의 흐름이 바뀌고, 남성은 8년마다 생리의 흐름이 바뀐다. 황제내경에는 여자가 14세(7×2)가 되면 천계(天癸)에 이른다고 하는데, 천계란 월경의 시작을 말한다. 남성은 16(8×2)세가 되면 젖멍울이 며칠간 부어올라 아픈데, 이것은 여성이 천계에 이르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주기적인 생리변화로 여성은 49(7×7)세에, 남성은 56(8×7)세에 생명이 다시 한 번 바뀌는 갱년기가 된다. 남녀 모두 갱년기 전후에 생리적, 심리적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성격도 변할 수 있다.

    나이의 변화에 따른 생리적, 심리적 상태가 다르고, 그에 따른 병태가 다르게 나타나므로, 그때그때 자신의 심리와 생리의 변화를 잘 관찰해 균형과 조화를 회복해야 한다. 대체로 양기가 많은 20~30대에는 욕정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기고, 음기가 많은 40~50대 이후에는 탐욕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긴다. 따라서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신장을 보양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고, 중년 이후에는 위와 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장수비결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음양의 상호관계로 조직되어 있으므로 육체의 생리조건이 정신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정신 상태도 육체에 영향을 미친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선 특히 위장 부위인 비(脾)가 간심폐신(肝心肺腎)의 상호작용을 잘 조절해주어야 한다. 비(脾)의 기능을 잘하게 하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생활을 항상 절기의 변화에 맞추고 생활하는 것이 좋다.

    또한 하루의 변화주기에 따라 음양을 잘 조섭해야 한다. 하루 중 자(子)시는 일양(一陽)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다. 이것을 일양래복(一陽來復)이라고 하는데, 이때에 생명력이 회복된다. 도교에서는 일양이 회복되는 자시를 활자시(活子時)라고 하고, 일음이 회복되는 오(午)시를 활오시(活午時)라 하며 모두 중요시해 휴식이나 수행을 권했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 갑자기 정신이 밝아지는 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일양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만약 회복된 일양을 붙들 수만 있다면 죽음의 관문을 넘어 다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과 생명은 우주의 축소판이므로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그 이치를 잘 이용하면 장수할 수 있다.

    체질에 따른 바른 식이요법

    체질은 동무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참조해볼 만하다. 이제마는 황제내경의 이면(裏面) 중심의 음양오행의 이치를 더 발전시켜 겉과 속을 동시에 관찰함으로써 인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 했다. 그는 인간의 체질을 네 개의 체질, 즉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그러나 사상체질에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네 가지 체질을 모두 갖고 있다. 만일 어느 특정 체질에 자신이 딱 들어맞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자신의 오행 기운이 편중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어느 체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 모든 것이 조화로운 상태라고 역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 인생도 이 네 가지 기운을 다 갖고 있다. 유년기는 태양기이고, 소년기는 소양기이며, 장년기는 태음기이고, 노년기는 소음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체로 보면 목 위 머리는 태양, 가슴은 소양, 가운데 배는 태음, 아랫배는 소음에 해당한다. 태양기에는 모든 힘이 머리에, 소양기에는 가슴에, 태음기에는 가운데 배에, 소음기에는 아랫배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의 장부도 각각 오행의 기운을 하나씩 대표하지만, 또한 각 장부는 오행의 나머지 네 기운을 다 갖고 있다. 따라서 조화로운 식이요법을 위해서는 오행의 기를 포괄하는 음식을 골고루 먹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이 이롭다 하여 그것만 먹거나, 해롭다 하여 무조건 먹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장의 기능을 돕고 기분과 소화를 모두 고려한 영양식을 생각하는 것이다. 위장은 언제나 필요한 것을 요구하며, 불필요한 것은 거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스스로 몸의 신호를 잘 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 자신의 몸 상태와 식생활 간의 관계를 잘 살펴보고, 식생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심리와 생리의 변화를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음식은 기(氣)의 순환에 절대적인 작용을 한다. 가능한 소식과 채식을 하는 것이 좋은데, 이것은 위(胃)의 활동과 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위는 우리 몸의 근간으로 위를 깨끗이 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일주일에 하루 금식이나 오후 불식(不食)을 하면서 물만 마시는 것이다. 이것은 장수의 비결이기도 하다.

    한편 나이, 활동량을 고려해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하고 가능하면 소식을 하되 영양은 충분해야 한다. 무조건 소식과 채식이 능사가 아니며 양과 질, 육식과 채식의 균형은 나이, 활동량, 건강상태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모든 것은 극단을 피하고 중도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식이요법의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 한의학적 식이요법과 현대 과학의 양의학적 방법이 융합될 필요가 있다.

    바른 자세는 건강한 삶의 기본자세로 좌우, 앞뒤의 몸의 균형이 맞는 자세를 말한다. 인체의 모든 장기는 척추관을 통하는 신경과 연결돼 있다. 인체의 불균형은 바르지 못한 자세가 오랫동안 지속돼 신경이 지나다니는 관을 압박하거나 느슨하게 만들어 신경과 연결된 장기의 기능 이상, 즉 위축, 항진, 또는 허와 실을 초래함으로써 생긴 것이다. 인체는 본능적으로 수직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자세로 굳어진 불균형을 방치하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변형을 초래하게 된다. 몸의 균형에서 무엇보다 골반의 균형이 척추 균형의 기초를 이룬다. 골반은 다리와 고관절(엉덩이관절)로 연결돼 있는데, 생활습관이 고관절의 결합상태에 변형을 가져온다.

    예컨대 보통 의자에 앉을 때 한쪽으로 치우쳐 다리를 꼬거나, 움직이는 동선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면, 고관절이 한쪽으로 변형될 수 있다. 한쪽 방향으로 회전된 고관절은 관절의 결합상태가 느슨해져 다리의 길이가 길어진다. 다리 길이에 차이가 생기면 골반의 좌우 높이가 달라져 척추변형의 원인이 된다.

    바른 자세와 균형 중요

    몸과 뜻 바르게 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라

    바른 체형을 갖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몸을 유심히 관찰해 불균형한 부분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사진은 한 화장품회사의 요가 시범 사진.

    인체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좌우 또는 전후 근육의 발달 차이를 관찰해 약해진 쪽의 근육은 강화운동을, 강한 쪽 근육은 이완운동을 시행해 균형을 되찾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골반 주변과 등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좌우의 균형을 맞추며, 고관절 주변의 근육을 강화해 골반의 상하 균형을 맞춘다. 골반의 전후 뒤틀림을 바로잡고, 고관절 주변 근육과 척추의 변형을 바로잡아 균형을 맞추며, 근육을 단련해 균형을 맞추는 운동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불균형 상태가 다르므로 자신의 몸 상태를 관찰하고 측정해 그에 맞는 맞춤운동을 찾는 것이고, 그런 운동을 통해 자신에게 맞게 근육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보통 균형운동을 한다고 좌우에 똑같은 비중으로 운동을 하지만, 이미 불균형인 상태에서 이런 운동을 한다면, 불균형을 더욱 조장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운동이 불균형인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운동이 병을 더 깊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운동은 균형회복 운동을 통해 균형을 회복한 이후에 해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고, 이 점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수행을 통한 생리 조절

    수행의 기본은 앞서 밝혔듯이, 몸을 바르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기본자세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바르게 앉는 정좌(靜坐)다. 보통 가부좌를 하는데, 결가부좌나 반가부좌가 힘들면 책상다리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무방하다. 바르게 앉는 그 자체로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 척추를 바로 하고 머리를 곧게 세우며 아래턱이 약간 뒤로 당겨진 상태에서 몸의 활동이 고요해지면, 심리와 생리가 안정되면서 심장의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면 심장의 기능회복이 촉진되고, 뇌하수체의 내분비 작용은 점차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임파선, 갑상선, 신상선이 조화로운 상태가 되고, 혈액공급 작용이 원만해져 두뇌의 긴장이 완화되고 혈압이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정좌를 하면 마음이 잠시 고요하다가 이내 평소보다 마음이 더 산란해지는데, 이것은 본래 있던 산란한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더욱 두드러진 결과다. 그대로 놔두면 먼지가 가라앉듯 고요해진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자(老子)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며, 이것을 생명의 회복이라 한다(歸根曰靜, 是謂復命)”고 했는데, 고요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나 수도를 위해서나 필수적인 방법이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 움직이지 않을 때, 바로 이때가 일양과 일음이 막 움직이려는 순간으로 곧 생명의 근원이랄 수 있다. 이때 음양이 서로 만나서 중화하고, 고요함 속의 움직임 속에서 생명의 자연치유력이 발휘된다.

    흔히 단전호흡을 하는 사람들이 하단전에 마음을 두고 억지로 기맥(氣脈)을 돌리려 하다가 부작용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그러나 기맥이란 마음과 몸이 평온해지면 저절로 제 갈 길을 가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것에 인위적인 신경을 쓰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고, 다만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는 이치를 바로 아는 것이다. 기맥의 움직임에 따른 생리의 반응은 개인의 체질이나 성격에 따라 차이가 나며, 마음을 너무 집중하려는 과정에서 신경이나 근육, 혈액 등이 반응한 것이므로, 마음을 안정시켜 신경과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키면 된다.

    지혜에 의한 심리 조절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번뇌에 싸이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는 수도를 통해서 증득할 수도 있지만, 성인의 말씀을 통해서도 습득할 수 있다. 불교가 만법의 귀일점을 찾아 생사윤회에서 자유로운 근본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면, 유교와 도교는 ‘역경(易經)’ 속에서 우주와 인간의 변화 원리를 찾아 삶의 지혜를 얻고 있다. 우리가 성인들의 말씀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 번뇌에 빠지지 않고 심리의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유불선의 대표적 경전인 역경과 ‘금강경(金剛經)’을 통해 건강한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역경의 지혜는 한마디로 음양이 이루는 변화의 법칙이고, 그 변화란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의 일진일퇴이며, 결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부러짐으로 만물을 이룬다(曲成萬物)”고 했다. 만물은 곡선의 길을 따라가며 성장하는데, 구부러짐(曲)의 이치로 만물이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다.

    상호 모순된 음양과 강유(剛柔)가 교류하면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변화의 시기에 불교와 역경은 공통적으로 바름(正)을 강조한다. 바름을 역경에서는 정(貞)이라고 하는데, 이 바름이 또한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다. 또한 모든 변화에서 필연적인 모순과 결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허물을 잘 보완하는 것(善補過也)”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표적 대승경전인 금강경이 전하는 건강한 삶의 지혜는 반야로서, ‘머무는 바 없이 머무는’ 지혜다. 미혹된 생각이 머물면 번뇌가 따르고, 이해관계와 득실이 생기면 기쁨과 고통이 뒤따라 항상 몸과 마음이 번거로움에 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체를 놓아버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고 하는 것이다. 연기의 양상은 시절인연에 따라 공(空), 유(有), 무(無) 등으로 나타나지만, 인연의 총상에서 보면 어느 것에도 매일 바가 없다.

    미혹된 생각은 업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습기(習氣)로부터 나오는데, 이 습기 때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 습기에서 온갖 번뇌가 나오며, 그 번뇌로 각종 마음의 병과 몸의 질환이 유발된다. 따라서 일체의 번뇌가 사라져 마음이 깨끗해지면 몸도 깨끗해지게 된다. 습기를 버리는 것이 건강한 삶의 지혜이고, 마음이 청정한 것이 바로 불법이며, 이것이 진정한 건강 비결이다.

    불교의 특징은 선정에 있지 않고 지혜에 있는데, 지혜는 바로 일상의 바른 삶으로부터 온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심리 조절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생활 속의 심리 조절법

    우선 크고 바른 뜻을 세우자.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나와 연결된 사람들, 사회, 국가, 세계, 우주가 건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위의 모든 것에 자비심을 내자. 자비는 두 개의 개념이 합쳐진 것으로, 자(慈)는 부성으로서 아버지의 강하고 따뜻한 사랑이고, 비(悲)는 모성으로서 어머니의 부드럽고 안온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자비심은 편벽되지 않은 조화로운 마음으로 지극히 건강한 마음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한다.

    자비의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객관화해 바라보자. 그러면 자신의 슬픔과 고통 등에서 오는 감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고, 그것들을 한편으로 긍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관찰자 입장이 되면 한결 초연해지면서 동시에 자비심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힘들 경우에는 자신이 믿는 신앙의 대상을 마음속에 그리거나, 그 명호(名號)를 방편 삼아 잡념을 물리치고 자신을 계속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된다. 이렇게 고통과 번뇌를 판단 없이 순수하게 바라봄으로써, 감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해 점차 번뇌와 함께 하면서도 고통 받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번뇌를 지혜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게 된다.

    스스로 혹은 어떤 방편을 통해 객관적 관찰을 할 때 흐름의 지혜를 체득하자.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곧 자신의 인생이고, 인식의 변화가 생각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며 건강을 결정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머무름도 없고 거스름도 없이’ 삶의 과정에 집중해 흐름을 타는 것이다.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논쟁이나 싸움에 말려들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사태를 고요한 마음으로 파악하고 균형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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