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가정의 이혼 증가세가 가파르다. 특히 한국인 남편-외국인 아내 사이의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2006년 전국적으로 3933건이던 다문화가정의 이혼 건수는 2010년 7904건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아내가 남편의 ‘부당한 대우’ 등을 이유로 가출한 뒤 이혼소송을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 사회문제가 돼가고 있는 다문화가정 이혼 실태를 취재했다.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 사이의 이혼이 크게 늘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 한국인 남편 C(52)는 베트남 국적 아내 D(31)와 2006년 4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2년 남짓 결혼생활을 하며 갓 돌 지난 아들까지 둔 D가 어느 날 무단가출을 했다. 1년이 지나도록 아내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한 C는 최근 법원에 이혼소장을 제출했다. 소장에서 C는 “아내의 가출로 인해 혼인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혼을 청구한다”며 “아들의 친권 및 양육권자로 지정해달라”고 했다.
#3. 한국인 남편 E(43)는 결혼중개업체에서 소개받은 우즈베키스탄 국적 아내 F(29)와 2008년 9월 혼인했다. E는 결혼 직후 소개비 등의 명목으로 1500만 원을 냈고, 이듬해 아내의 요청으로 5차례에 걸쳐 장인에게 미화 2500달러를 송금했다. F에게도 여행경비로 미화 1100달러를 환전해줬다. 그러나 F는 결혼 1년여 만에 가출한 뒤 연락을 끊었다. 결혼 당시 F는 초혼이라고 했지만 실은 우즈베키스탄 남성과 결혼해 자녀 1명을 낳고 이혼한 전력이 있다. E는 F를 상대로 이혼소송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혼인생활은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해 파탄이 됐다.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E의 손을 들어줬다.
“외국인 아내가 가출 뒤 잠적했다” “남편의 폭력이 무서워서 더 이상 못 살겠다” 등 다양한 이유로 이혼소송을 내는 다문화가정 부부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다문화인구동태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전체 이혼은 11만6858건으로 전년보다 5.8% 감소했다. 반면 다문화가정의 이혼은 1만4319건으로 전년보다 4.9% 증가했을 뿐 아니라 3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전체 이혼에서 다문화가정 이혼이 차지하는 비율도 2년 연속 증가세다.
예고된 불화
다문화가정 이혼의 특징은 협의이혼보다 재판이혼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 2010년의 경우 다문화가정 부부 중 이혼을 선택한 커플의 50.7%가 협의이혼했다. 나머지 49.3%는 재판을 통해 갈라섰다. 두 쌍 중 한 쌍이 법정에서 이혼을 다툰 셈이다. 반면 2010년 한국인 이혼 부부 중 재판을 거친 비율은 21.4%로 다섯 쌍 중 한 쌍꼴이다. 서울가정법원 박성만 공보판사는 “최근 전국의 재판이혼 접수 사건 중 다문화가정의 이혼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정도”라며 “특히 서울가정법원의 경우 40%에 달한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의 이혼이 이처럼 많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한 첫 만남부터 ‘불행의 싹’을 안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다문화가정 여성 중에는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악용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외국인 아내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가출하는 바람에 한국인 남편이 위장 결혼이라는 의심을 사고 경찰 조사까지 받은 사례가 있다. 국적을 취득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가출하겠다고 남편을 협박한 뒤 국적을 얻자마자 가출한 여성도 있다. 일부지만 애초부터 혼인생활을 할 의사가 없으면서 한국에서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결혼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주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인 서울이주여성디딤터 권오희 원장(수녀)은 “외국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는 ‘무슨 방법으로든 일단 한국에 가자’는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니 결혼 생활이 계속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이주여성디딤터에는 이혼 여성 12명과 이혼소송 중인 여성 3명 등 외국인 여성 15명이 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권 원장은 수년 전 국제결혼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베트남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운영하는 불법 ‘마담하우스’에 한국인 남성 한 명을 보내 위장 맞선을 보도록 한 적이 있다.
“그 남성 말로는 ‘마담하우스’ 안에 베트남 여성이 100여 명쯤 있었다고 해요. 그중 10명이 이름표를 달고 한꺼번에 맞선을 보러 방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여성 네 명을 고르자 마담이 선택받지 못한 여섯 명을 내보낸 뒤 남은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정보를 소개했다고 해요. 우리는 사전에 그의 조건을 최악으로 만들어두었습니다. 바보인데다 성불구자이고,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가 세 명 있으며, 시집 식구 등 부양해야 할 가족이 10명이라는 거였죠. 그런데 이 설명을 다 듣고도 남은 사람 중 세 명이 ‘결혼하겠다’고 했다는군요. 한 명만 포기하고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하는 남성 쪽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결혼을 위해 소개비 등의 명목으로 보통 1500만~2000만 원을 쓴다. 일종의 매매혼이다. 그렇다 보니 ‘돈을 주고 사온 여자’라는 생각에 외국인 아내를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 중국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 출신 여성은 남녀평등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남편의 폭력을 민감하게 생각한다. 갈등의 소지가 큰 셈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2010년도 다문화가정 이혼상담 통계’에 따르면 상담소에 방문해 이혼을 상담한 외국인 아내 333명 중 124명(32.2%)이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참고 살지 않겠다”
부부간의 큰 나이 차이도 문제로 지적된다. ‘다문화인구동태통계’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다문화가정 중 62.6%는 한국인 남편의 나이가 외국인 아내에 비해 열 살 이상 많다. 같은 해 결혼한 한국인 부부의 경우 남편이 아내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커플은 전체의 3.2%에 불과하다. 2010년 결혼한 외국인 아내의 62.4%가 20대 이하인 반면, 한국인 남편은 절반이 40대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부부 사이의 이 같은 나이 차이는 배우자에 대한 무시 등의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상의 매매혼, 한국의 가부장적인 가정 문화, 양국의 문화 차이 등과 더불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의 낮은 교육 수준 및 경제력을 다문화가정 이혼 증가 원인으로 지적하는 이도 있다. 이런 이유로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여성이 더 이상 참지 않는 것도 이혼율 증가의 한 배경이다. 국제결혼 초창기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중개업체의 말만 믿고 한국에 들어와 의지할 곳 없이 지내느라 부당한 행위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새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친구나 친지 등을 통해 한국 실정을 미리 접한 뒤 입국하는 이가 많고, 한국 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많다. 이 때문에 ‘외국인 아내의 가출→남편의 재판이혼 청구→이혼 성립→출입국관리국의 외국인 여성 추방 통보→외국인 여성의 추완 항소(추후 보완 항소)→남편의 귀책사유 판결에 의한 체류자격 획득’ 등의 방식으로 남편과 갈라서고 한국 체류 자격은 확보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가정법원 안종화 판사는 2009년 2월부터 1년간 가사 제4단독 재판부를 담당하면서 선고한 이혼 판결 619건을 정리·분석한 적이 있다. 안 판사가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체 판결 619건 가운데 다문화가정 이혼은 359건으로 절반이 넘었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인 남편이 외국인 아내를 상대로 받은 승소 판결 중 42.6%가 아내의 가출을 원인으로 한다는 점이다. 14.9%는 외국인 아내가 가출해 해외로 출국한 경우, 27.7%는 잠적 상태로 국내외 체류 사실이 불명확한 상태인 경우였다. 반면 외국인 아내가 한국인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판결 중 50% 이상은 남편의 폭행과 상해, 경제적 활동 강요, 본국 추방 협박 등이 이혼사유로 인정됐다. 안 판사는 “판결 분석 결과 많은 외국인 여성 배우자가 한국인 남성 배우자의 폭행 등 부당한 대우를 피하는 방편으로 가출을 택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혼 여성의 한국 체류권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10년 70여 명의 지원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다문화가정 및 이주외국인을 돕기 위한 ‘외국인 소송구조지원변호사단’을 발족했다.
실제로 외국인 아내의 ‘추완 항소’ 중 상당 부분은 이혼의 책임 소재와 함께 친권·양육권을 다투는 내용이다. 아내가 가출한 상태에서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우 법원은 대부분 가출한 아내 쪽에 귀책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친권과 양육권도 행방이 묘연한 아내 대신 남편에게 돌아간다. 이를 돌려받기 위해 항소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아내가 미성년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원하는 배경에는 모정뿐 아니라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고 설명한다. 자녀를 직접 돌볼 경우 상대적으로 국내 체류자격을 얻기 쉽고, 추후 국적 취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혼한 외국인 여성이 한국 체류를 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제결혼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고국에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돌아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권미경 상담1팀장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 3개월 만에 이혼한 우즈베키스탄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위자료 3000만 원을 청구한 일이 있다. 결혼기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위자료를 청구한 이유를 물어보니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라 이혼하고 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나는 이제 죽어도 우리나라에 못 가는 몸이 됐는데, 그만한 피해보상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고 했다. 그는 “몽골도 국제결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일부 국가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20대 초반에 이혼녀가 된 여성이 모국에 돌아가는 걸 굉장히 꺼린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신설한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은 재판이혼을 통해 한국에 체류하려는 외국인에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결혼 이민자는 지금까지 다른 장기 체류자와 마찬가지로 ‘거주(F-2)’ 체류자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별도로 관리되는 것. F-6 비자 소지자는 우리 국민의 배우자로 2년간 혼인 상태를 유지할 경우 국적법에 따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국적 취득 없이 이혼 소송 중일 때도 F-6 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 이혼 판결이 나도 혼인파탄의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으면 합법적인 국내 체류가 가능하며 이후 국적도 취득할 수 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다’는 걸 증명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법원의 판결문. 이 때문에 외국인의 재판이혼 청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아내가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재판이혼을 선호한다면 한국인 남편은 아내의 가출과 잠적으로 인한 ‘이혼 아닌 이혼’ 상태를 정리하기 위해 재판이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에서라도 아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재판이혼을 청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동욱 변호사는 “남편들은 보통 가출한 아내를 잘 설득하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반면 아내는 남편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수록 애정이 남아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뒤늦게 아내의 마음을 알고 보복 차원에서 재판이혼을 청구하는 남편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한국인 남편 중에는 보복 심리로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고집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대안적인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재판이혼이 늘면서 종래에는 볼 수 없던 형태의 이혼 사유도 생기고 있다. 얼마 전 외국인 여성이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자국에 데려다놓은 뒤 “2000만 원을 주고 한국 체류자격을 따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아이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가 이혼소송을 당해 패소한 사건이 있다. 최근에는 한 한국인 남편이 ‘외국인 아내의 종교 심취와 가출로 인한 가정파탄’을 사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혼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한 판사는 “아내의 불륜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내는 한국인 남편도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인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남편도 많다. 집에 인터넷을 연결해달라고 요구한 뒤 국내에 있는 자국 사람들과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바깥나들이가 잦아진다는 얘기다. 의처증인 경우도 있지만 상당부분 사실로 보이는 사례도 있다. 20년 가까이 나이 차이 나는 남편과 살던 젊은 여성이 언어와 문화적으로 통하는 또래 친구를 만나면 쉽게 어울리게 되지 않겠나. 하지만 정황상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도 남편이 확실하게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재판에서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외국인 여성이 이혼소송 기간 비자를 연장하며 체류 기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국적 취득 요건을 채운 뒤 국적을 얻어 자국의 가족이나 친지, 심지어 남자친구를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윤동욱 변호사는 “아직도 많은 동남아 여성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뒤 우리나라에 온다. 입국 후 국내에 형성된 자국민 네트워크를 통해 이혼 경험자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습득해 법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극소수”라고 했다.
법무부는 2010년 10월부터 국제결혼 또는 외국인 배우자 초청을 앞둔 한국인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제결혼 급증과 함께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 혼인파탄을 막고, 다문화가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배우자를 초청하려는 자는 반드시 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권오희 서울이주여성디딤터 원장은 “앞으로 국내 거주 국제결혼 부부는 늘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혼 등의 문제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기왕이면 국제결혼을 하는 예비 신랑·신부 양쪽을 모아놓고 다문화가정의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시부모까지 온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문화차이로 이혼을 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미경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팀장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부부보다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정착해 살다 한국인 남성을 만나 가정을 꾸린 부부가 상대적으로 더 잘 산다”며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호를 체계적으로 개방해 한국 남성이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아닌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들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