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02-28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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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28초부터 46초까지의 18초 사이 일본은 크게 흔들렸다. 이 지진은 ‘도호쿠(東北)’로 불리는 일본 본토 동북 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일어났다. 피해 또한 이 지역에 집중됐다. 도쿄를 비롯한 여타 지역도 심하게 흔들렸지만, 이 지역만큼 심각한 해를 입진 않았다.

    이날 일본이 당한 지진은 인류가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한 것이었다고 한다. 도호쿠 지방은 6개 현으로 구성되는데, 중심 도시는 태평양에 면해 있는 미야기(宮城)현의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仙台)시다. 진앙은 센다이시에서 동쪽으로 130㎞쯤 떨어진 태평양 해저의 24㎞ 깊이쯤이었다. 좌표로 말하면 북위 38도 32분 2초, 동경 142도 36분 9초2쯤이었다(그림 1 참조).

    천만다행인 것은 규모 9.0의 강진이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강한 지진이 일본 땅에서 일어났다면 일본은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廣島)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강력한 지진은 육지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대개 바다에서 일어난다.

    진앙에서부터 130여㎞ 떨어져 있어 도호쿠 지방은 규모 8.0 내외의 지진을 맞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지진을 늘상 만난다. 이따금 일본으로 출장 가는 기자도 호텔에서 자다가 큰 진동에 놀라 깨어나 뛰쳐나온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옆방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본 TV는 간밤에 규모 4의 지진이 있었다고 짤막히 보도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일본에서의 지진은, 태풍이 오고 폭설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일상화된 사건이다.



    3·11대지진을 맞을 당시 주일 한국대사는 권철현 대사였다. 1983년부터 3년 6개월간 쓰쿠바(筑波) 대학에서 유학하며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 대사는 2008년 4월 주일대사로 부임해, 만 3년을 보내고 있었으니, 지진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도 그날 일어난 지진에는 아찔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대사가 겪은 충격

    3·11대지진이 18초만 진행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18초는 가장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서 진행된 시간이다. 그 이후 버금가는 지진이 이어졌다. 강력한 지진 다음에 오는 지진을 여진(餘震)이라고 하는데, 그날은 여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대사 퇴임 후 그는 ‘간 큰 대사, 당당한 외교’라는 회고록을 냈다. 그는 이 책 1장 1절의 제목을 ‘3·11대지진, 정녕 이것이 인류 최후의 모습인가’라고 달았다. 권 대사는 그날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일본 정부의 실세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과 점심을 하고 대사관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다 강력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다며 이렇게 적었다.

    ‘지진이 나면 우선 책상 밑으로 숨는 것이 가장 안전한 대피 요령이다. 다른 때 같으면 조금 지나 진동이 멈추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책상 밑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집무실을 빠져나와 비상계단으로 달려갔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다 멈춰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간신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진이 계속되면서 대사관 앞에 있는 큰 건물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소방대원들의 인도에 따라 근처에 있는 ‘신주쿠 어원(御苑)’이라는 구일본 왕실 정원으로 대피했다. 지진이 나면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이 나고 간판 등이 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공원이나 운동장처럼 넓은 곳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외교관을 가리켜 ‘영국 신사 같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국가를 대표하니 어떤 경우에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곁불을 쬐거나 비를 피한다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최후의 날이 닥쳐온다면…. 그날 지진으로 도쿄의 상징인 도쿄타워 꼭대기의 철탑이 약간 꺾어졌다. 2011년 8월 도쿄를 갔던 기자는 여전히 꺾어진 채로 있는 이 철탑을 보았다.

    그날 도쿄의 통신망과 교통망은 대부분 두절됐다. 아시아 최고의 도시라는 도쿄의 문명이 중단된 것이다. 권 대사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버스나 지하철 등 모든 교통수단이 끊겼기에 사람들은 모두 도로에 나와 걸어서 피난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경제대국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 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자랑하는 휘황찬란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대사관 앞 8차선 도로 역시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는 인파로 가득 뒤덮였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입을 꽉 다문 채 조용히 앞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로 떠들거나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소름이 확 끼쳤다. 아, 정녕 이것이 인류 최후의 모습인가?’

    해구에서 일어나는 판끼리 충돌

    일본의 대지진은 태평양 쪽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본 해구(海溝)’의 존재다. 해구의 구(溝)가 ‘도랑 구’자이니, 해구는 바닷속에 있는 도랑, 즉 해저의 깊은 계곡이다. 백과사전은 해구를 ‘해저 7300~1만1000m에 나타나는 좁고 길며 가파른 저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상식적인 생각으로 이렇게 깊은 해구는 태평양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명한 해구는 모두 육지와 가까운 태평양의 변두리에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인 ‘마리아나 해구’인데, 이 해구는 사이판 북동쪽에 있다.

    지구는 표면에 거대한 몇 개의 지각을 띄워놓고 있다. ‘판’으로 불리는 이러한 지각은 서로 맞닿아 있는데, 일본 동쪽의 태평양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북미판이 교차하는 곳이다. 판은 높낮이가 서로 다른 상태에서 조금씩 이동한다. 거대한 판이 이동하면 판의 끝은 충격을 받는다. 그때 밑에 있던 판이 파고들어가면 위에 있던 판이 들리면서 충격이 발생한다.

    거대한 판에 이 충격은 별것 아니겠지만, 이 판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진동이 된다. 해저의 판은 대륙의 판보다 낮은 곳에 있다. 따라서 대양의 판이 대륙의 판 밑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된다. 대양의 판이 대륙의 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깊은 주름이 만들어진다. 대양 판이 밑으로 들어가면서 만들어진 주름은 해구가 되고, 위로 올라가는 주름은 해저산맥인 ‘해령(海嶺, oceanic ridge)’이 된다. 대륙 판에도 주름이 생겨 높은 산맥과 골짜기가 만들어진다. 마리아나 해구나 일본 열도 동쪽에 있는 일본 해구들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대륙 판과 대양 판은 대양의 외곽에서 만나니 대양은 중심부가 아닌 외곽에 해구라고 하는 가장 깊은 곳을 갖게 된다. 해구가 있는 곳에 지진이 잦다. 세계 최대의 바다인 태평양은 원형으로 대륙과 만나기에 ‘환태평양 지진대’를 만들게 되었다. 세계 지진의 80%가 이 지진대에서 일어나기에 ‘불의 고리(Ring of Fire)’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은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한다.

    1923년 이후 일본 열도 동쪽의 태평양에서는 규모 8.0 이상의 지진이 9번이나 일어났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이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9.0의 지진이다. 훗날 일본은 3·11대지진을 ‘동일본 대지진’으로 명명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북미판과 태평양판 사이에 위치한 길이 400㎞ 이상, 폭 200㎞ 이상의 섭입대(攝入帶, subduction zone) 지역이 파열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섭입대는 ‘흡수돼 들어가는 일대’라는 뜻이다. 해양지각이 대륙지각 밑으로 들어가며 해구를 만드는 곳이 섭입대다.

    거대한 너울을 만드는 섭입대 지진

    해저지진은 진동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을 출렁이게 만들어 거대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바다 쪽 지각이 대륙 쪽 지각 밑으로 들어가 해저가 크게 흔들린 것은, 비유해서 말하면 물을 담고 있는 대야의 바닥을 흔들어준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대야에서는 큰 물결이 일어난다.

    해저지진으로 일어난 큰 물결은 파도가 아니다. 파도는 태풍 같은 큰 바람이 부는 날 거칠어진다. 이는 파도가 바람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현대는 기상학이 발달해 바람의 발생과 진로·세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파도의 크기까지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졌다.

    해저지진으로 일어나는 물결은 너울이다. 바람에 의해 톱날처럼 일어나 달려오는 것이 파도라면, 너울은 울렁울렁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큰 파도를 맞으면 배는 “꽝”하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너울은 배보다 훨씬 큰 거대한 물결이기에 배는 “꽝”하는 충격을 받지 않고 타고 넘는다. 바다에서 너울을 만나면 배는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파도는 너울에 비해 폭이 좁은 물결이기에 육지로 올라오는 높이가 낮다. 그러나 너울은 폭이 아주 넓은 물결이기에 육지로 올라오는 높이가 월등히 높다. 너울이 올라오면 바다가 넘쳤다고 하여 ‘해일(海溢)’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은 해저지진으로 일어난 너울을 ‘지진해일’이라 한다.

    일본은 피해에 주목했다. 지진해일이 일어나면 사람이 몰려 있는 나루터로 거대한 물더미가 몰려와 배를 언덕으로 올려버리는 피해를 일으킨다. 따라서 옛날 일본인들은 나루터(津)에서 일어난 물결(波)에 의한 피해에 주목해, 이를 ‘진파(津波)’로 적고 ‘쓰나미’로 발음했다. 일본은 쓰나미 피해를 자주 입기에 연구를 많이 했다. 그에 따라 쓰나미를 영어로 옮긴 Tsunami가 세계적으로 통용된다.

    쓰나미는 해저지진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해저 화산이 폭발하거나 거대한 운석이 대양에 떨어져도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것도 쓰나미로 불렀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도 지진해일이라는 말보다도 쓰나미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쿄가 큰 충격을 받았다면 진앙에 가까운 도호쿠(東北) 지방은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호쿠 지방은 우리로 말하면 함경도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한다. 분단을 고려해 남한으로 한정해 비유한다면, 강원도와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낙후된 곳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태평양 쪽 도호쿠 지방에 집중된 쓰나미 피해

    한국이 1개 특별시(서울)-6개 광역시(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9개 도(경기 강원 충북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제주)의 16개 광역시도로 구성돼 있다면, 일본은 1개 도(都, 도쿄)-1개 도(道, 홋카이도)-2개 부(府, 오사카와 교토)-43개 현(縣)의 47개 도·도·부·현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이 경남+경북+대구+울산+부산을 묶어 영남지방이라고 하고, 전남+전북+광주를 엮어 호남지방이라 하듯, 일본도 47개 도·도·부·현을, 8개 지방으로 대분류를 한다. 8개 지방 중의 하나가 도호쿠 지방인데, 도호쿠 지방은 에서처럼 야마가타(山形), 아키타(秋田), 아오모리(靑森), 이와테(岩手),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의 여섯 개 현으로 구성된다.

    이 6개 현 가운데 야마가타와 아키타현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동해에 면해 있고, 아오모리현은 동해와 홋카이도(北海道), 태평양을 모두 바라보고 있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은 순수하게 태평양만 바라보고 있다. 3·11대지진의 진앙은 태평양이었으니 쓰나미 피해는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의 3개 현과 아오모리현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본토는 ‘부메랑’처럼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현 남쪽의 일본은 쓰나미를 정면으로 받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너울이 일본 열도와 같은 방향으로 몰려갔으니 너울이 육지를 만나 만드는 쓰나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쿄는 미우라(三浦)반도 등에 둘러싸인 도쿄만(彎) 안에 있으니 더더욱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일본은 쓰나미 피해가 잦기에 해저지진이 일어나면 바로 쓰나미에 대한 대비를 한다. 일본 동쪽 태평양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기상청은 즉각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첫 번째 경보는 지진 발생 3분 뒤인 오후 2시 49분에 내렸는데, 일본 기상청은 미야기현에는 6m, 후쿠시마현에는 3m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으로 발표했다.

    일본인은 이러한 발표에 따라 대응에 들어간다. 해안에 있는 소방대나 의용소방대원들은 급히 방조제로 달려가 방조제 사이의 수문을 닫는다. 방조제는 평소에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하다 유사시에는 쓰나미를 막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보통의 방파제보다 높게 만들고 배가 드나드는 곳에는 수문을 설치한다.

    방조제 안으로 들어온 쓰나미는 바다를 부풀려 방조제 안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를 육지로 올려 큰 피해를 만드니, 소방대원들과 의용소방대원들은 수문을 닫아 큰 물결이 항구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저지진 직후에 발표하는 쓰나미 경보는 정확할 수가 없다. 지진의 규모를 토대로 발표하는 것이라 현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쓰나미의 크기는 해저지진의 규모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큰 여진이 계속되면 쓰나미는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지진 규모와 여진의 크기와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28분 뒤인 오후 3시 14분 이와테현에는 6m, 미야기현에는 10m 이상, 후쿠시마현에는 6m의 쓰나미가 올 것으로 수정 발표했다. 훨씬 더 큰 쓰나미가 온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 발표 직후 1차 쓰나미가 몰아쳤다.

    이와테현의 미야고(宮古) 시와 가마이시(釜石)시, 오후나도(大船渡)시는 기상청의 2차 발표 4~7분 뒤에 8m가 넘는 쓰나미를 맞았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石卷)시의 아유카와(鮎川) 항구 지역은 일본 기상청의 2차 발표 12분 뒤에 8.6m의 쓰나미를 맞았다.

    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물지옥, 불지옥

    쓰나미는 큰 너울이기에 한 번만 오고 끝나지 않는다. 바닷물이 바다 쪽으로 쑥 물러났다가 크게 부풀면서 육지를 덮쳐오고 다시 바다로 쑥 물러났다가 다시 부풀어 덮쳐 오는 현상을 반복한다. 통상적으로 1차 쓰나미보다는 2차 쓰나미, 3차 쓰나미가 더 높은 편이다. 일본 기상청의 3차 발표는 지진 발생 44분 뒤인 3시 30분에 나왔다. 이때는 도호쿠 지역의 태평양 해안이 1차 쓰나미를 맞고 난 다음이었다. 기상청은 쓰나미의 최고 높이가 8~10m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1차와 2차, 3차로 나눠 몰려오는 쓰나미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태평양에 면한 이와테현의 가마이시시에 이와테 현립박물관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날 이 박물관에 있던 한 식물연구가가 쓰나미가 덮치는 상황을 67장의 사진으로 연속 촬영을 했다. 이 사진을 이 박물관의 수석 전문큐레이터가 분석해보니 쓰나미의 시간당 속도가 시속 115㎞라는 계산이 나왔다. 물마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로 덮쳐왔으니, 사람들은 두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해안의 상당 부분은 산이나 바위로 이뤄져 있다. ‘물더미’는 산에 부딪히면 솟았다가 사그라진다. 그러나 편평한 곳으로는 한없이 밀려들어간다. 양쪽으로 산이 있고 그 가운데 하천 등이 있어 움푹 들어간 곳은 양쪽 산에 부딪혀 더욱 높아진 물마루가 몰려들어 엄청난 높이의 ‘물폭탄’을 맞는다. 이러한 하천 하구에 항구가 있다면 그곳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이와테현 미야코(宮古)시의 아네요시(姉吉) 마을은 지형 조건 때문에 무려 38.9m까지 물이 치솟았다. 아네요시 마을은 쓰나미와 관련해 남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기사로 다룬 바 있으니,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미야기현의 오나가와정(町)도 하천을 따라 역류해온 ‘물 폭탄’이 둑을 파괴해, 천변(川邊) 마을 전부가 휩쓸려가는 큰 피해를 당했다. 7만4000여 명이 거주하는 미야기현의 게센누마(氣仙沼)시에서는 수마(水魔)로 넘어진 어선용 연료탱크에서 발생한 불이 물을 타고 내륙으로 흘러가 전 시가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물지옥 불길지옥이 되었다.

    이 쓰나미로 일본에서는 1만5719명이 사망했다. 이는 시신이 확인된 숫자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쓰나미에 휩쓸려간 것으로 보이는 실종자는 4616명이었으니 도합 2만335명이 희생된 것이다. 2011년 6월 24일 기준으로 재산 피해는 16조7000억 엔(한화 약 215조 원)으로 추산됐다.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 피해액이 9조6000억 엔이었다. 3월 11일 대지진의 피해는 한신 대지진의 1.8배에 달했다.

    2만335명을 쓰나미로 인해 희생된 사람 숫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쓰나미에 앞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도 있으니까.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졌는데 30여 분 후 들이닥친 쓰나미에 의해 시신이 쓸려가 시신을 찾을 수 없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과 소방대·자위대는 오랜 시간 피해 지역을 뒤져 시신을 찾아냈다. 따라서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많이 부패해 있어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졌는데, 쓰나미로 떠밀려 다닌 시신이 오랜 시간 지나 발견되면 압사(壓死)를 당한 것인지 익사(溺死)를 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2011년 4월 19일 일본 신문들은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3월 11일부터 4월 11일 사이 이와테((岩手),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의 3개 현 사망자를 검시(檢屍)한 결과 1만3135구의 대상 시신 가운데 1만2143구(92.4%)가 익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불에 타서 숨진 시신은 148구(1.1%), 압사 등 기타 원인으로 숨진 것으로 판단된 시신은 578구(4.4%)였고, 나머지 266구(2.0%)는 사인이 분명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주로 희생돼

    미야기현에서는 특히 익사자가 많아 95.7%로 조사됐다. 1995년의 한신 대지진 때에는 집이 무너진 탓에 숨진 이들이 80% 이상이었다. 한신 대지진 때는 쓰나미가 없었다. 일본은 지진방재 대책이 매우 잘 돼 있다.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기에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쓰나미 대책은 마땅치 않다. 사람이 몰리는 항구에 방파제 겸 방조제를 높이 쌓고 유사시 닫을 수 있는 수문을 설치하지만, 그것으로 피해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물가에 살아야 한다. 해수욕장이 있는 곳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는데 그러한 곳에 방파제를 만들고 수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해안에 방벽을 만들 수도 없다.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고령 사회다. 농촌과 어촌에서는 노인만 사는 가구가 적지 않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하기에 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다. 3개 현에서 신원이 밝혀져 사망 시 연령까지 확인된 시신은 1만1108구였다. 이 중 60세 이상의 노인층 희생자가 7241구로 신원 확인된 전체 시신 수의 65.2%에 달했다. 60∼69세가 2124구(19.1%), 70∼79세가 2663구(24.0%), 80세 이상이 2454구(22.1%)였다. 9세 이하와 10대, 20대는 각각 4% 이하로 조사됐다.

    대낮에도 집에 머물러 있는 노인들이 쓰나미가 온다는 경보를 듣지 못했거나 듣고도 거동이 불편해 피하지 못함으로써 대거 희생된 것이다. 대지진에 이어 몰려온 쓰나미로 2만여 명 이상이 희생된 것은 강력한 두려움을 몰고 왔다. 지구 최후의 날이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달도, 그 다음해도, 일본은 여전히 돌아갔다

    2004년 12월 4일 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인도양에서 발생한 해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20여만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일본은 방재(防災) 강국이고, 일본 혼자만 쓰나미를 당했기에 인도양 쓰나미만큼 많은 희생자를 내진 않았지만, 대단한 인명 피해를 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빠르게 희석된다. 두려움을 실체로 보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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