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대지진과 쓰나미로 SBO 당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02-29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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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에 면한 도호쿠 지방에는 모두 1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었다. 한국은 원전 2기를 묶어 ‘원자력발전소’로 명명한다. 2개 이상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은 ‘원자력본부’라고 한다. 6기의 원전이 있는 울진원전을 예로 들면, 1·2호기를 묶어 제1발전소, 3·4호기를 묶어 제2발전소, 5·6호기를 묶어 제3발전소로 부르고, 전체는 울진원자력본부로 명명했다.

    일본에서는 다르다. 일본은 우리의 원자력본부를 ‘원자력발전소’ 혹은 원자력을 빼고 그냥 ‘발전소’로 부른다. 각각의 원전은 1호기, 2호기 식으로 숫자를 붙여 부른다. 쓰나미를 정면으로 맞아 2011년 3월 12일부터 수소폭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6기의 원전을 갖고 있다. 일본은 이 단지를 그냥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부르고, 그 안에 1호기~6호기가 있는 식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원전이 1기만 있는 곳도 그냥 발전소라 하고 있어 혼란을 준다.

    도호쿠 지방의 원전 15기는 5개 발전소에 흩어져 있었다. 제일 북쪽에 있는 것이 3기가 있는 도호쿠(東北)전력의 ‘오나가와(女川)원자력발전소’다. 그 바로 남쪽에 역시 도호쿠전력이 세운 ‘히가시도리(東通)원자력발전소’가 있는데, 이 발전소는 1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갖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도쿄(東京)전력이 운영하는 6기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가 있고, 바로 남쪽에 4기의 ‘후쿠시마 제2원자력발전소’가 있었다. 후쿠시마 제2발전소 남쪽에는 일본원자력발전(주)이 운영하는 ‘도카이(東海)2발전소’가 있는데, 이 발전소도 1기의 원전만 갖고 있었다(1장1절의 그림1 참조).

    일본원자력발전㈜이 운영하는 도카이2발전소는 도호쿠 지방이 아니라 간토(關東)지방에 속하는 이바라키(茨城)현에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도 쓰나미를 맞았기에 이 글에서는 도후쿠 지방의 원전인 것으로 정리한다.



    15기의 원전 가운데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동하고 있던 것은 11기였다. 도호쿠전력의 히가시도리 원자력발전소의 1기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4·5·6호기는 핵연료 교체 등을 위한 정기점검으로 정지하고 있었다. 오나가와 발전소의 3기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3기, 후쿠시마 제2발전소의 4기, 도카이 제2발전소의 1기는 정상 가동을 하고 있다가 대지진과 쓰나미를 맞았다.

    원전, 동일본 대지진 때 자동정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는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정지하게 설계돼 있다. 자동정지 원리는 간단하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 235’라는 광물이나 ‘플루토늄’이라는 인공 광물을 핵분열시켜서 열을 얻는 시설이다. 비밀은 중성자에 있다. 중성자는 수소를 제외한 모든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입자다.

    이러한 입자가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을 때리면, 이 핵이 쪼개지면서 강력한 열이 나오는데, 그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일반적으로 열은 불을 붙여서 얻는 것이라 반드시 산소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불은 물이 닿으면 꺼진다.

    그러나 원자력은 중성자가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을 맞춰 쪼갤 때 열을 얻는 것이라 산소가 필요 없다. 물이 닿아도 꺼지지 않는다. 보통의 불은, 물을 솥 안에 넣은 다음에야 끓일 수 있지만, 원자력은 솥 없이 바로 물과 닿아서 물을 끓일 수 있다. 물을 맞아도 꺼지지 않는 불이 원자력이다.

    원전 가동은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을 섞어서 만든 핵연료를 원자로 안에 넣고, 그 원자로 안으로 인위적으로 중성자를 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발사된 중성자는 핵연료 사이를 마구 돌아다니다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과 부딪치면 이들을 쪼개버리는데, 핵이 쪼개지는 순간 높은 열이 나온다. 그리고 쪼개진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의 핵에서 2.5개 정도의 중성자가 튀어나와 쏘아준 중성자처럼 마구 돌아다닌다.

    따라서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이 많이 쪼개지면 쪼개질수록, 원자로 안의 중성자 수는 증가한다. 중성자 수가 늘어나면 중성자를 맞고 쪼개지는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도 급격히 늘어나니 원자로 안의 온도가 빨리 상승한다. 돌아다니는 중성자 수도 급격히 많아진다. 원자로 안에 있는 물이 이 열을 받아 끓으면서 증기로 변하면 그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것이다.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이 너무 많이 쪼개지면, 원자로 안의 물이 빨리 끓어 모두 증기로 변할 수 있다. 모든 물이 증기로 변해버리면 핵연료는 물 밖으로 나오게 된다. 물 밖으로 나온 핵연료는 열을 식히지 못해 스스로 녹아내리는데, 이것이 원전 사고 가운데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노심 용융(爐心 鎔融, melt down)’이다. 따라서 원자로 조종사는 원자로가 과열되지 않도록 조절을 한다. 조절 방법은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의 핵을 쪼개는 역할을 하는 중성자 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것이다.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의 핵이 쪼개질 때마다 중성자는 2.5개 정도씩 늘어나니, 중성자를 포집해 원자로 안에서 일정한 수의 중성자만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 원자로 조종의 핵심이다.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처음 핵분열시켜야 할 때는 인위적으로 중성자를 넣어 쏴줌으로써 핵분열 속도를 빨리 해 원자로의 온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적정 출력에 도달하면, 계속 늘어나는 중성자를 포집해 정격 출력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제어봉으로 조절하는 원자로 조종

    원자로 안에서 돌아다니는 중성자를 포집하는 일은 ‘제어봉(制御棒, Control Rod)’으로 한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카드뮴과 인듐, 은을 섞은 합금체이다. 제어봉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원자로가 과열될 조짐을 보이면 조종사는 제어봉을 원자로 안으로 깊이 찔러 넣어 중성자 수를 확 줄여버린다. 반면 원자로를 가동해야 할 때는 제어봉을 빼내고 중성자를 쏴줌으로써 핵분열이 빠르게 일어나게 한다.

    원전을 설계할 때는 지진이 감지되면 조종사가 제어봉을 넣어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제어봉을 집어넣으려면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동력은 상실될 수도 있어 기타 비상장치를 설치해놓는다. 한국은 제어봉을 원자로 위에 설치했다. 따라서 모든 동력이 상실되고 비상장치 가동까지 멈추면 눌러서라도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일본에는 비등수로가 많은데, 비등수로는 밑에서 제어봉을 찔러 넣는 구조다. 제어봉은 무거운 금속체인데, 이것을 위로 집어넣는 것은 밑으로 누르는 것보다 힘들다. 유사시에 대비한 설계 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이러한 차이가 있지만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에서 가동되고 있던 모든 원전에서는 자동으로 제어봉이 삽입돼, 2~3분 뒤 모든 원전의 가동이 멈췄다. 원전 가동이 멈췄다고 해서 핵연료의 열이 식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원전 가동이 멈췄다는 것은 자동으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간 제어봉이 모든 중성자를 흡수해 더 이상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뜻이지, 그동안의 핵분열로 달아오른 핵연료가 바로 식는 것은 아니다. 달리던 자동차의 엔진이 시동을 꺼도 뜨거운 상태로 있듯이, 원전 가동을 멈춰도 핵연료는 상당시간 동안 뜨거운 상태로 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시동을 끈 자동차의 엔진은 빨리 식지만, 핵분열을 멈춘 핵연료는 수십 년이 지나야 식는다. 10년 이상은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에너지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가동을 멈춘 원자로에서도 물은 계속 끓어 증기로 변한다. 증기로 변하는 만큼 원자로 안에서는 물이 줄어드니 물을 공급해줘야 핵분열을 중지한 핵연료는 계속 물에 잠겨 있게 된다.

    원전을 멈춰도 노심 용융이 일어날 수 있다

    물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핵분열을 중지한 핵연료 상단부터 물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열을 식히지 못해 녹아내리게 된다. 원전 사고 가운에 가장 위험한 ‘노심 용융’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심 용융은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고 있을 때 물이 줄어들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원자로 가동이 멈춘 다음에도 물이 줄어들면 일어난다.

    따라서 자동정지되더라도 원자로 안으로는 물이 계속 공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펌프를 돌려야 한다. 원자로 안의 압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보면 포트 주둥이로 나오는 증기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증기의 힘으로 돌리는 터빈은 대단히 큰 쇠뭉치다. 전체의 터빈 무게는 1500t에 달한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터빈을 돌려야 하니 원자로나 증기발생기에서 나오는 증기압은 강력해야 한다.

    가동 중인 비등수로의 내부 압력은 80기압 정도다. 한국에서 많이 가동하는 경수로의 내부 압력은 150기압 정도다. 80기압과 150기압의 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가 생활하는 지상의 기압이 1기압이다. 물은 10m를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진다. 수면은 1기압이니 수심 10m는 2기압, 수심 20m는 3기압, 수심 30m는 4기압,… 수심 100m는 11기압이 되는 것이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쏜 어뢰를 맞고 동강난 천안함의 함수부는 수심 30여 m쯤에 가라앉았다. 이 위치까지 잠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군 특수전부대(UDT/SEAL)의 한주호 준위가 3월 30일 공기색전증에 걸려 순직했다. 공기색전증은 기압 차이 때문에 걸리는 대표적인 잠수병이다.

    한 준위는 4~5기압 정도까지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사망했다. 이는 기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작게 해주는 사례다. 물론 백령도 해역은 조류가 매우 빨라 더 위험했지만, 수압의 위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80기압은 수심 790m의 바닷속에서 느낄 수 있고, 150기압은 수심 1490m에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깊은 바다는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몸이 심하게 눌려 살 수가 없다.

    화재 현장에서 쓰는 소방호스의 수압이 10기압 정도인데 이 물줄기에 시멘트 블록 담이 맥없이 무너진다. 시위 현장에서 이따금 발사되는 물대포를 맞으면 시위대가 나가떨어진다. 물대포의 압력이 10기압 내외다. 그렇다면 80기압, 150기압이 얼마나 강한 압력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어주는 펌프는 소방호스나 물대포보다 훨씬 강력하게 물을 쏴줘야 한다. 이러한 펌프를 돌리려면 강력한 에너지인 전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는 상당한 양의 전기를 소비한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 양의 10%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이러한 전기는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철탑이 쓰러졌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원전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와 전압 등이 달라서 송전선을 통해 변전소로 보내고, 원전의 설비에 맞는 전기는 따로 공급받아 쓰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원전 가동을 위해 외부로부터 공급받는 전기를 ‘소외(所外)전기’라고 한다. 소외전기는 변전소로 연결돼 있는 철탑을 통해 받는다. 원전은 자체 생산한 전기를 철탑을 통해 변전소로 보내고 자체에서 사용할 전기도 철탑을 통해 변전소로부터 받는다.

    변전소와 원전이 주고받는 전기는 고압이다. 고압 전기는 사고 등을 당하면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에, 큰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차단되도록 시설을 해놓는다. 이런 시설은 변전소에도 해놓고 원전에도 해놓는다. 3월 11일 일본을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은 워낙 강력했기에 15개 원자력발전소로 들어오던 모든 소외전기가 자동으로 차단됐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소외전기는 자동 차단된 게 아니라, 철탑이 쓰러지면서 차단됐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신후쿠시마(新福島)변전소와 연결돼 있었는데 둘 사이를 연결하는 철탑이 쓰러진 것이다. 철탑이 온전했다면 사태가 진정된 후 자동 차단된 부분이나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 전력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철탑이 쓰러지면 철탑을 세울 때까지 전력 복구가 어렵다. 이것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가 당한 1차적인 비극이다.

    소외전원이 끊어질 때를 대비해 원전은 원자로 비상전원을 준비해놓는다. 원전 옆에 디젤엔진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비상발전기를 설치해놓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원전 1기당 2기의 비상발전기를 배치해놓았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는 6기의 원전이 있으니 모두 12기의 비상발전기가 배치돼 있었다.

    1기 원전에서 필요한 전기는 1기의 비상발전기로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도 2대를 배치한 것은 1기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모든 원전을 지원해줄 수 있는 비상발전기 2기를 추가로 배치했다. 2기의 비상발전기는 호기마다 2기씩 배치한 비상발전기가 고장 났을 경우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는 도합 14기의 비상발전기가 있었다.

    소외전기가 끊어지고 2~5분 뒤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비롯한 도호쿠 지역의 15개 원전에서는 모두 비상발전기가 가동돼 필요한 전기를 공급했다.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난 서태평양의 진앙지로부터 일본까지의 거리는 130㎞ 정도였으니, 도호쿠 지역의 15개 원전이 접한 지진은 이보다 약한 규모 7~8의 강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규모 7이 넘으면 강진으로 분류한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것과 같은 요즘 원전은 안전성을 강화한 3세대 원전이다. 3세대 원전은 보통 규모 7.3의 지진까지 견디도록 설계된다. 도호쿠 지방에 있는 15기의 원전은 2세대인데, 2세대 원전은 대개 규모 6.4의 지진까지 견디도록 설계됐다. 도후쿠 지방 2세대 원전들은 규모 7 이상의 지진에도 건재했다. 내진 설계치를 이겨낸 것이다.

    그러나 원자로 건물이나 터빈 건물 같은 구조물만 건재해서는 안 된다. 원전 안에는 증기가 흐르는 관, 고압의 물이 흐르는 관, 전선 등 각종 배관이 즐비하게 배치돼 있는데, 이러한 배관과 선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인체에 비유해서 말하면 장기는 멀쩡한데 핏줄과 신경이 끊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신경과 핏줄이 끊어진 사람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原電의 완전 정전 SBO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바로 사고가 났기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이 관과 선들도 지진을 이겨낸 것 같았다. 이유는 비상발전기가 가동한다는 신호가 각 원전 제어실에 제대로 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위험은 그로부터 40여 분 후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시작됐다.

    원전 가동 원리를 설명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 지진 등이 감지돼 자동정지 사인이 떨어지면, 원자로 안으로 제어봉이 들어가 핵연료의 핵분열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해도 핵연료는 여전히 뜨겁기에 물을 끓여 증기로 바꿔준다. 증기로 줄어드는 물을 보충하기 위해 소외전원이 살아 있으면 소외전원으로, 소외전원이 끊어지면 비상발전기를 돌려 얻은 전기로 강한 압력의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어준다.

    모든 전기가 끊어진 것을 ‘블랙아웃(Black Out)’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2011년 9월 24일 갑작스러운 더위로 전기 소비가 급증해 전기 예비율이 급감하자, 급히 중소도시를 골라 돌아가며 강제 정전하는 조치를 취해 블랙아웃을 막았다. 현대는 전기 시대이기에 블랙아웃을 맞으면 큰 혼란이 벌어진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거의 모든 통신이 불통되고 지하철을 비롯한 상당수의 대중교통수단이 멈춰 선다. 현대는 많은 결제를 인터넷으로 하는데 전기가 나가면 인터넷 결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중환자를 수술하던 병원도, 레이더를 가동해 적국을 살피던 일도 어려워진다. 제철소의 용광로는 녹아서 녹이던 쇳물과 함께 굳어져 거대한 쇳덩어리가 된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기관별로 비상발전기를 준비해놓았다지만 이리저리 연결된 시스템을 비상발전기로 복원할 수는 없다.

    비상발전기까지 아웃돼 모든 전원이 상실된 것을 ‘발전소 블랙아웃’, 영어로 SBO(Station Black Out)라고 한다. SBO는 원전 운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SBO가 되면 펌프를 가동하지 못하니 자동 정지한 원자로 안으로 물을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전기 상실되면 복수(復水)가 불가능

    원자로 안에서 증기가 된 물을 채우기 위해 외부에서 새 물을 확보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정상 가동하는 원자로에서 증기로 변모하는 물의 양은 막대하다. 100만kW짜리 한국형 경수로는 시간당 약 5400t의 물을 증기로 변모시킨다. 원자로 안에서 끓는 물은 모든 불순물을 없앤 순수(純水)에 가깝다. 이러한 물은 금방 마련되지 않는다.

    따라서 재활용한다. 터빈을 돌려준 증기를 식혀 물로 되돌린 다음 다시 원자로 안에 넣어주는 것이다. 증기를 식혀 물로 되돌려주는 것을 ‘복수(復水)’라고 한다. 복수는 터빈을 돌려준 증기가 지나는 관 밖으로 많은 물이 지나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관 안의 증기는 열을 뺏겨 물로 돌아간다. 관 밖에 흐르는 물은 열을 받아 온도가 약간 올라간다.

    증기가 지나는 관 밖의 물은 바닷물을 사용한다.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강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강보다는 훨씬 더 큰 물통’인 바닷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복수는 양(量)으로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바닷물을 증기가 흐르는 관 밖에 흐르게 함으로써 증기를 식혀 물로 되돌리는 것이다. 한국이 가동하는 100만kW급 경수로는 초당 270여t의 바닷물을 퍼 올려 증기가 지나는 관 밖으로 흐르게 한다.

    증기가 지나는 관 밖으로 바닷물을 흐르게 해 관 안의 증기를 물로 바꿔주는 시설을 ‘복수기(復水器)’라고 하는데, 복수기로는 초당 270t의 바닷물이 들어간다. 이 많은 바닷물을 퍼 올리는 펌프를 ‘해수펌프’라고 하는데, 해수펌프 역시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어주는 펌프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 해수펌프가 가동하지 않으면 원자로 안으로는 증기만 들어가니 핵연료는 열을 식히지 못해 녹아내린다. 노심 용융이 일어나는 것이다.

    해수펌프가 물을 퍼 올리려면 파도가 잔잔해야 한다. 파도가 높으면 수면 굴곡이 심해 흡수구가 수면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이 때문에 원전에서는 원전 앞에 큰 방파제를 만든다. 방파제를 만들어 파도가 잔잔한 바다를 만들고 해수펌프로 바닷물을 퍼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해수펌프가 해일 등에 의해 침수되면 큰일이니 해수펌프는 해일이 일어나도 잠기지 않게 해놓는다. 1차적으로는 원전 앞바다에 만든 방파제가 그 일을 한다. 그리고 해수펌프 주위로 ‘방파벽’이라고 하는 높은 담을 치기도 한다.

    지진 등이 일어나 원전이 자동정지하면 원자로에서 발생한 증기를 터빈으로 보내주던 관이 자동으로 막히고 다른 관이 열린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증기는 터빈을 돌리지 못하고 다른 관으로 흐르는 것이다.

    물과 불의 조합, 원자력

    터빈을 돌리지 못하고 다른 관으로 흐른 증기는 복수기를 지나 물로 바뀐 후 다시 펌프의 힘을 받아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 핵분열을 중지한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한마디로 ‘물+불’이다. 물과 불의 조합이라고 해서 원자력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화력발전도 똑같이 물과 불을 결합시켜 에너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핵연료를 쓰느냐 화석연료를 태우느냐다. 화력발전소는 화석연료를 태워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그리고 복수기를 이용해 그 증기를 식혀 물을 되돌리고 그 물을 다시 끓여 증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자동정지했을 때 하력발전은 온도가 빨리 내려간다. 해수펌프 등을 가동하지 않아 보일러 안으로 물이 공급되지 않아도, 보일러 안에 핵연료가 없으니 노심 용융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막대한 재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화전은 공해를 일으키고 원전은 사고 시 방사선이 누출되는 재앙을 일으키는 것이다.

    쓰나미가 닥치면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그토록 두려워하는 SBO 상황에 직면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거대한 쓰나미가 두 번 들이닥쳤다. 원전은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기에 쓰나미의 물살에 쓸려가지 않았다. 원전은 부지가 대단히 넓고 대부분 자동으로 운전하기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부지 위로 바닷물이 두 번 정도 올라왔다 내려갔는데 SBO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가 몰려온 3월11일 세상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주목하지 않았다. 대지진에 이어 쓰나미 피해를 당하고 초토화된 도호쿠 지방의 해안도시에 주목했다. TV 카메라는 ‘물바다+불바다’가 된 게센누마시 등의 참혹한 광경에 앵글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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