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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과 쓰나미로 SBO 당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대지진과 쓰나미로 SBO 당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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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어봉으로 조절하는 원자로 조종

원자로 안에서 돌아다니는 중성자를 포집하는 일은 ‘제어봉(制御棒, Control Rod)’으로 한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카드뮴과 인듐, 은을 섞은 합금체이다. 제어봉은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원자로가 과열될 조짐을 보이면 조종사는 제어봉을 원자로 안으로 깊이 찔러 넣어 중성자 수를 확 줄여버린다. 반면 원자로를 가동해야 할 때는 제어봉을 빼내고 중성자를 쏴줌으로써 핵분열이 빠르게 일어나게 한다.

원전을 설계할 때는 지진이 감지되면 조종사가 제어봉을 넣어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제어봉을 집어넣으려면 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동력은 상실될 수도 있어 기타 비상장치를 설치해놓는다. 한국은 제어봉을 원자로 위에 설치했다. 따라서 모든 동력이 상실되고 비상장치 가동까지 멈추면 눌러서라도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일본에는 비등수로가 많은데, 비등수로는 밑에서 제어봉을 찔러 넣는 구조다. 제어봉은 무거운 금속체인데, 이것을 위로 집어넣는 것은 밑으로 누르는 것보다 힘들다. 유사시에 대비한 설계 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이러한 차이가 있지만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에서 가동되고 있던 모든 원전에서는 자동으로 제어봉이 삽입돼, 2~3분 뒤 모든 원전의 가동이 멈췄다. 원전 가동이 멈췄다고 해서 핵연료의 열이 식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원전 가동이 멈췄다는 것은 자동으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간 제어봉이 모든 중성자를 흡수해 더 이상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뜻이지, 그동안의 핵분열로 달아오른 핵연료가 바로 식는 것은 아니다. 달리던 자동차의 엔진이 시동을 꺼도 뜨거운 상태로 있듯이, 원전 가동을 멈춰도 핵연료는 상당시간 동안 뜨거운 상태로 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시동을 끈 자동차의 엔진은 빨리 식지만, 핵분열을 멈춘 핵연료는 수십 년이 지나야 식는다. 10년 이상은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에너지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가동을 멈춘 원자로에서도 물은 계속 끓어 증기로 변한다. 증기로 변하는 만큼 원자로 안에서는 물이 줄어드니 물을 공급해줘야 핵분열을 중지한 핵연료는 계속 물에 잠겨 있게 된다.

원전을 멈춰도 노심 용융이 일어날 수 있다

물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핵분열을 중지한 핵연료 상단부터 물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 부분이 열을 식히지 못해 녹아내리게 된다. 원전 사고 가운에 가장 위험한 ‘노심 용융’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심 용융은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고 있을 때 물이 줄어들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원자로 가동이 멈춘 다음에도 물이 줄어들면 일어난다.

따라서 자동정지되더라도 원자로 안으로는 물이 계속 공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펌프를 돌려야 한다. 원자로 안의 압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보면 포트 주둥이로 나오는 증기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증기의 힘으로 돌리는 터빈은 대단히 큰 쇠뭉치다. 전체의 터빈 무게는 1500t에 달한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터빈을 돌려야 하니 원자로나 증기발생기에서 나오는 증기압은 강력해야 한다.

가동 중인 비등수로의 내부 압력은 80기압 정도다. 한국에서 많이 가동하는 경수로의 내부 압력은 150기압 정도다. 80기압과 150기압의 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가 생활하는 지상의 기압이 1기압이다. 물은 10m를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진다. 수면은 1기압이니 수심 10m는 2기압, 수심 20m는 3기압, 수심 30m는 4기압,… 수심 100m는 11기압이 되는 것이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쏜 어뢰를 맞고 동강난 천안함의 함수부는 수심 30여 m쯤에 가라앉았다. 이 위치까지 잠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군 특수전부대(UDT/SEAL)의 한주호 준위가 3월 30일 공기색전증에 걸려 순직했다. 공기색전증은 기압 차이 때문에 걸리는 대표적인 잠수병이다.

한 준위는 4~5기압 정도까지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사망했다. 이는 기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작게 해주는 사례다. 물론 백령도 해역은 조류가 매우 빨라 더 위험했지만, 수압의 위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80기압은 수심 790m의 바닷속에서 느낄 수 있고, 150기압은 수심 1490m에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깊은 바다는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몸이 심하게 눌려 살 수가 없다.

화재 현장에서 쓰는 소방호스의 수압이 10기압 정도인데 이 물줄기에 시멘트 블록 담이 맥없이 무너진다. 시위 현장에서 이따금 발사되는 물대포를 맞으면 시위대가 나가떨어진다. 물대포의 압력이 10기압 내외다. 그렇다면 80기압, 150기압이 얼마나 강한 압력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로 안으로 물을 넣어주는 펌프는 소방호스나 물대포보다 훨씬 강력하게 물을 쏴줘야 한다. 이러한 펌프를 돌리려면 강력한 에너지인 전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는 상당한 양의 전기를 소비한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 양의 10%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이러한 전기는 외부에서 공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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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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