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12-03-02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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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전원이 상실된 SBO 상황을 맞으면 원전에서는 비상용으로 준비해놓은 물로 원자로 냉각을 시도한다. SBO 상황에서 원자로 안에 물을 넣는다고 하면원자로와 연결된 밸브를 열고 외부의 물을 집어넣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가동 중인 비등수로는 80기압, 경수로는 150기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전기를 써서 강력하게 돌아가는 펌프가 있어야 이 압력을 뚫고 외부의 물을 원자로 안으로 넣을 수 있다. SBO 상황은 강력한 펌프를 돌려줄 전기가 없는 것이니 물을 집어넣을 방법이 없다. 밸브를 열면 오히려 안에 있던 물이 높은 압력 때문에 튀어나오므로, 밸브를 열지 말아야 한다.

    원전은 원자로 안의 물이 핵분열하는 핵연료의 열을 받아 증기로 변해 터빈을 돌려준 다음 복수기를 지나면서 물로 되돌아와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는 무한 순환을 반복한다. 따라서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물을 넣는다는 것은 증기를 식혀 물로 되돌린 다음 다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뜻이다. 즉 원자로에서 끓여 증기로 바꿔준 것을 식혀서 다시 물로 돌려받는 것이다.

    SBO만큼이나 두려운 LOC

    원자로는 두께가 30㎝쯤 되는 특수강으로 만들어져 수백 기압을 가해도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증기가 흐르는 관은 원자로보다는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증기압이 높아지면 터질 수 있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면 원자로는 끄떡없지만, 이 관은 터질 수 있다. 관이 터지면 강한 증기압 때문에 터진 곳으로 증기가 모두 빠져나가, 복수기에서 물로 바뀔 증기가 없어진다.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원자로 안의 물이 금방 줄어들어 핵연료 상단부터 빠르게 물 밖으로 나와 녹아내린다. 이것을 원전 세계에서는 ‘LOC(Loss Of Coolant)’라고 한다. 원자로 안에서 열을 받아 나와 터빈을 돌리고 자신은 식혀져 다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가스를 쓰는 경우도 많았다.

    물처럼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 핵연료를 식혀주고 핵연료의 열을 받아 터빈을 돌려주는 물질을 ‘냉각재(冷却材, coolant)’라고 통칭한다. 냉각재가 흐르는 관은 완전 밀봉돼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파손되면 높은 압력 때문에 냉각재는 단숨에 빠져나간다. 이 상태가 ‘냉각재 상실’로 번역되는 LOC다.

    핵연료가 녹으면 5등급 이상 사고

    LOC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전원을 상실한 SBO 상황이 아니어도 노심 용융이 일어난다. 따라서 원전 운영자들은 SBO 상황과 함께 LOC 상황을 매우 두려워한다. LOC를 맞지 않으려면 어떠한 경우에도 냉각재(증기 등)가 흐르는 관이 파손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큰 지진이 발생해 SBO와 LOC를 함께 맞았다면 사고를 피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LOC 상황을 맞아 물 밖으로 나온 핵연료는, 핵분열을 하고 있으면 더 빨리, 그렇지 않았다면 핵분열 때보다는 천천히 과열되면서 스스로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원자로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녹은 핵연료는 ‘매우매우’ 뜨겁기에 두께 30㎝쯤 되는 원자로 바닥을 녹여 구멍을 내기 시작한다.

    그때 원자로에서는 순식간에 물이 증발해 사라지므로, 과열돼서 녹아내리는 핵연료의 양은 더욱 늘어나고, 원자로 바닥은 더 빨리 구멍이 뚫리게 된다. 그리고 구멍이 커져 완전히 뚫리면, 그때까지 남아 있던 물이 다 빠져나오고, 물이 다 증발했다면 증기가 빠져나온다. 녹아내린 핵연료도 이 구멍을 통해 원자로 바닥 아래로 빠져나간다. 이것이 바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규정한 원전 사고 등급 가운데 위험한 5등급의 노심용융이다(표3 참조).

    원자로가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노심이 녹는 것도 위험한데 원자로가 뚫리면서 노심이 녹았다면 위험한 6등급이 된다. 그리고 격납용기까지 훼손되면 가장 위험한 7등급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원전을 지을 때는 증기가 흐르는 관이 터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 원전의 증기관들은 각자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8 정도의 지진을 견뎌냈다. 다른 관은 터졌는지 몰라도 이 관들은 건재한 것이다.

    이 지역의 원전은 대부분이 2세대인지라, 동일본 대지진 규모보다 내진 설계 기준이 낮았는데도 견뎌낸 것이다. 중요 시설은 내진설계치보다 강하게 짓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3·11 대지진의 강한 충격을 이겨낸 것으로 보였다.

    터빈 관성력 이용해 보조 급수펌프 가동

    지진으로 자동정지한 원자로에서는 계속 증기가 발생한다. 이 증기는 터빈을 돌리지 않고 곧장 관을 따라 흘러와 힘이 있다. 이 증기는 복수기에 열을 뺏겨 다시 물로 돌아온 물을 원자로 안으로 밀어준다. SBO 상황을 맞지 않아 복수기가 정상 가동하고 있다면 원자로 안으로 계속 물이 들어가는 순환이 이뤄지니, 노심 용융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자로가 자동 정지해도 원전은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SBO 상황을 맞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SBO 상황에서는 해수펌프가 가동되지 못해 복수기가 관 안의 증기를 물로 돌려주지 못한다. 그런데 원자로에서는 계속 증기가 발생하니 원자로와 관 안에는 증기가 팽창해 증기압만 높아지고 물은 줄어든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줄어든 물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온 핵연료의 상단이 녹는 노심용융이 일어난다. 레벨 7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피하려면 바닷물이 아닌 다른 물을 끌고 와 관 안의 증기를 식혀 물로 바꿔주어야 한다. 따라서 SBO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을 식혀줄 물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원전에서는 각종 탱크에 물을 비축해놓는다.

    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원전은 물을 끓여서 만든 증기로 발전하기에 도처에서 수증기가 발생한다. 이 수증기를 포집해 식히면 물이 되는데 수증기를 식혀서 만든 물을 응축수(凝縮水)라고 한다. 응축수는 뜨거워진 설비나 기관을 냉각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므로 버리지 않고 보관해둔다.

    원전에는 터빈을 비롯해 돌아가는 것이 많다. 돌아가는 것이 많으면 열이 발생하니 열을 식혀주는 기기냉각수를 탱크에 보관해둔다. SBO 상황을 맞으면 응축수 탱크와 기기냉각수 탱크에 보관해놓은 물을 꺼내 비상 복수용 냉각수로 사용한다. 이러한 물을 복수기 쪽으로 보내려면 펌프가 있어야 한다. 이 펌프를 ‘보조 급수펌프’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SBO 상황으로 이 펌프를 돌릴 수 없다.

    따라서 다른 힘으로 보조 급수펌프를 가동한다. 다른 힘이란 터빈의 관성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터빈은 원전에서 발생한 강한 압력의 증기를 맞아 돌아간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의 터빈들은 정상 가동할 경우 분당 약 1500회를 돌았다(1500rpm).

    터빈은 육중한 쇳덩어리 회전체다. 크고 무거운 회전체는 지진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큰 지진이 발생하면 멈춰 세워야 한다. 터빈을 따라 돌아가던 육중한 회전체인 발전기도 세워야 한다. 하지만 터빈은 워낙 빨리 돌고 있던 육중한 회전체이므로 관성력을 잃어 스스로 멈춰 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진이 일어나 원자로가 자동정지하면, 터빈을 돌려주던 증기는 터빈을 향하는 관이 아닌 다른 관으로 흘러 더 이상 터빈을 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증기를 맞지 않아도 터빈은 그때까지 돌아가던 관성력이 있기에 여전히 빠르게 돌아간다. 이 관성력을 이용해 보조 급수펌프를 돌리는 것이다.

    배터리를 이용한 보조 급수펌프 가동마저…

    터빈의 관성력으로 보조 급수펌프를 돌려 응축수 탱크와 기기냉각수 탱크 등에 있는 물을 복수기로 보내 증기를 식혀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탱크에 있는 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본래 복수기는 초당 270t의 바닷물을 퍼 올려 증기를 식혀 물로 바꿔주는데, 응축수 탱크 등에 있는 물이 아무리 많아도 해수펌프가 퍼 올려주는 바닷물의 양을 따라갈 수가 없다.

    증기를 식히는 데 쓰인 바닷물은 3~5℃ 정도 온도가 올라간 상태로 바다로 방출된다. 그러나 SBO 상황에서는 물 양에 한계가 있으니 보조 급수펌프로 보내준 물이 펄펄 끓어 증발할 때까지 증기가 흐르는 관을 식혀주게 한다. 전기가 회복될 때까지 최대한 버텨보는 것이다.

    관성으로 돌아가는 터빈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 터빈이 관성력을 잃으면 마지막 방법으로 배터리를 사용해 보조 급수펌프 등을 돌려본다. 배터리에도 한계가 있다. 원전의 배터리로 보조 급수펌프를 돌릴수 있는 시간은 최대 8시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간은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돼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용 연한이 오래된 배터리는 충전 양이 적어, 처음 사용하는 배터리처럼 오래가지 못한다. 배터리가 완전 방전되기 전에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전원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최후의 순간이란 앞에서 누차 이야기한 노심 용융이다. 노심 용융 사고가 일어나면 믿을 것은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뿐이다. 원자력발전소에 가보면 돔형 지붕을 이고 있는 원통형의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격납용기다. 격납용기는 본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원자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외부의 공격이란 유사시 적군이 쏜 포탄이나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 등을 말한다. 아직 상업용 원전이 다른 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1981년 이스라엘 공군이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을 펼쳐 이라크가 짓고 있던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해 파괴했다. 그러나 오시라크 원전은 상업용 원전이 아니라 규모가 작은 연구용 원자로였다.

    상업용 원전은 대용량이기에 연구용 원자로에 비해 월등히 강한 방호시설을 한다. 상업용 원자로를 보호하는 격납용기는, 어떤 재료를 써서 얼마만한 두께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과거 미국은 날아가던 F-4 팬텀 전투기가 추락해 격납용기에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 격납용기는 흠집만 나고 F-4 전투기를 튕겨내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격납용기는 얼마나 견뎌줄 것인가

    전투기가 추락해 폭발할 때 충격과 미사일이 떨어져 폭발할 때 충격은 비슷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식 원전의 격납용기는 전투기가 추락하거나 미사일을 맞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러나 핵탄두를 단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이 떨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핵미사일이 원전에 떨어져 폭발한다면 원전이 터져서 죽는 이보다 핵미사일이 터져서 희생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니, 원전 폭발은 아예 상정할 필요가 없다.

    초대형 운석이 원전에 떨어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형 운석이 바다에 떨어지면 규모 9.0의 해저강진이 일어났을 때보다 더 큰 쓰나미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운석이 원전에 떨어지면 격납용기는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운석이 떨어지면 운석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이 움푹 패면서 초토화된다. 원전이 터지든, 터지지 않든 대단히 넓은 면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니, 폭발한 원전에 의한 피해는 따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초대형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격납용기로 떨어지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

    격납용기의 효용을 잘 보여준 사례가 1979년 미국에서 일어난 스리마일 섬-2호기의 노심 용융사고다. 스리마일 섬-2호기는 SBO 상황이 아닌데도, LOC 상황을 맞았다. 기기 결함으로 원자로 안에 있던 물이 갑자기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노심이 용융돼 원자로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원자로 바닥에 구멍이 났다.

    녹아내린 핵연료와 증기가 이 구멍으로 새어 나왔다. 녹은 핵연료가 격납용기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격납용기의 바닥도 녹였다. 그러나 다 녹이기 전에 스리마일 섬-2호기 직원들이 격납용기 안으로 대량의 물을 집어넣었다. 전기가 있었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격납용기는 거대한 물통이 되었고, 녹아내린 핵연료는 물에 잠겨 더 이상 녹지 않게 되었다.

    스리마일 섬-2호기는 경수로인데, 경수로는 격납용기를 크게 짓는다. 스리마일 섬-2호기의 격납용기는 모든 방사성물질을 가둬놓고 있었기에 사고 당시 스리마일 섬-2호기 직원과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방사능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 격납용기 때문에 스리마일 섬-2호기 노심 용융 사고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 단 한 명의 피폭자도 나오지 않았다.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스리마일 섬-2호기의 격납용기는 녹아내린 핵연료를 물에 담그고 거대한 물통 상태로 있다. 미국은 녹아내린 핵연료가 충분히 식은 후 물을 빼내 방사성물질을 제거한 후 방류하고 식은 핵연료를 처분할 예정이다.

    반대 사례가 1984년 구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에서 발생한 체르노빌-4호기 노심 용융 사고다. 구소련의 원전은 건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 듯 견고한 격납용기를 만들지 않았다. 일반 공장에서 볼 수 있는 얇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을 원자로 외부에 설치해놓았다.

    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격납용기가 없어 큰 사고를 일으킨 구소련의 체르노빌 4호기(왼쪽)와 격납용기 덕분에 인명 피해가 전무했던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사례

    구소련의 원자로는 미국제 원자로보다 약하게 만들어졌다. 스리마일 섬-2호기의 원자로는 녹은 핵연료가 흘러내려 바닥에 구멍만 뚫리고 원자로는 터지지 않았는데,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녹은 핵연료에서 발생한 증기압과 수소폭발 압력을 이기지 못해 원자로의 뚜껑이 터져 나갔다. 그 순간 체르노빌-4호기를 덮고 있던 건물 지붕도 날아가면서 산지사방으로 방사능물질이 퍼지게 됐다.

    이 사고로 긴급히 출동한 소방대원과 체르노빌 원전 직원 31명이 방사선에 피폭돼 사망했다.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유해한 수준의 방사선을 쬐게 되었다. 체르노빌-4호기는 격납용기가 없었기에 사태를 진압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폭발한 원자로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 당국은 헬기를 이용해 모래를 퍼붓고 이어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를 퍼부었다. 헬기 조종사들은 방사선 피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빨리 체르노빌-4호기 상공을 날아갔기에 모래와 콘크리트 투하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다. 따라서 투하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투하가 결국은 성공을 거둬 체르노빌-4호기는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이 됐다. 지금도 이 원자로는 콘크리트 무덤 상태로 있다.

    원전 설계는 국익과 연결된 특별한 분야이기에 원전 설계 기술을 가진 나라느 그 기술을 타국인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다. 기자는 한국의 여러 원전을 수십 차례 방문해보았기에 한국 원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러나 2007년 간사이전력이 운영하는 다카하마(高浜)원전을 방문했을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간사이전력 측은 그들이 허가한 것만 보여주기 위해 기자를 통제했다. 2008년에는 프랑스의 재처리공장을 방문했는데, 그곳 역시 통제가 심했다. 원전에 관한 정보와 기술을 공개하는 정도가 낮은 것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나기 전까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특성에 대해 잘 아는 한국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미국 GE가 개발한 비등수로를 1호기로 도입해 설치했다. 일본에서는 도시바(東芝)와 히타치(日立)사가 GE의 기술을 받아 일본화한 비등수로를 제작했다. 따라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그 후 도시바나 히타치가 제작한 비등수로를 설치하게 되었다.

    GE 비등수로의 너무 얇은 격납용기

    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건설된 원전의 건설 주체와 특성을 정리한 것이다. 전부 1970년대에 상업운전에 들어갔으니 구형이라고 하겠다. 이 표에서 주목할 것은 마크-1이라고 표시된 격납용기의 타입이다. 도쿄전력은 마지막으로 지은 6호기를 제외하고 1~5호기의 격납용기로 구형의 마크-1을 채택했다.

    결론부터 밝히면 마크-1 격납용기는 노심 용융으로 일어난 수소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훼손됐다. 따라서 같은 미국제인데 스리마일 섬-2호기 격납용기는 수소폭발을 이겨냈는데, 왜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격납용기들은 수소폭발을 이겨내지 못했는지가 관심이 되었다. 이 의문은 쉽게 풀렸다. 비밀은 격납용기의 두께에 있었다.

    스라마일 섬-2호기는 밥콕앤드윌콕스 사가 건설한 경수로였는데, 미국산 경수로는 격납용기 두께를 60㎝이상으로 설계한다. 미국 기술을 도입해 경수로를 설계한 한국은 요즘 짓는 원전의 격납용기 두께를 120㎝로 하고 있다. GE사는 초창기 격납용기의 두께를 16㎝정도로 했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설치된 마크-1 격납용기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격납용기가 형편없이 얇았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전문가는 자연재해가 빈발해 방재(防災)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왜 저런 격납용기를 채택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일본에서는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이 원전을 설계한 미국 GE사 역시 “마크-1 격납용기는 규모 7이 넘는 설계치 이상으로 강한 지진을 이겨냈다”는 말로 정확한 대답을 피해나갔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격납용기는 얇았을 뿐 아니라 내부 체적이 작았다. 한국이 지은 경수로 격납용기의 5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체적이 작으면 그만큼 빨리 증기가 차올라 격납용기가 압박을 받게 된다. 격납용기는 외부 충격을 막기 위해 지은 것이라 상대적으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압력 저항에는 약하다. 그런데 마크-1은 내부 체적이 작으니 폭증하는 내부 압력 위험에 더 빨리 직면하게 된다.

    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체적도 작은 후쿠시마의 격납용기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된 2011년 5월 25일 도쿄전력은 1·2·3호기 격납용기가 손상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했다. 격납용기 안에는 훼손된 원자료가 있어 정확한 조사가 어렵지만 녹아내린 핵연료와 수소폭발 등으로 격납용기가 훼손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요미우리와 마이니치 등 언론에서는 1호기 격납용기는 138℃까지 견디도록 설계됐는데, 원자로에 구멍을 내고 나온 핵연료로 인해 무려 300℃까지 온도가 치솟아 격납용기가 7~10㎝ 정도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3호기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 플루토늄에 우라늄을 섞은 MOx(Mixed Oxide) 연료를 사용했다. 그런데 사고 후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450m 떨어진 곳에서 플루토늄이 검출됐다. 플루토늄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소다. 플루토늄이 검출됐다는 것은 3호기의 격납용기가 파손됐다는 확실한 증거다.

    2호기도 지진 발생 21시간 뒤 격납용기에 지름 10㎝의 구멍이 뚫리면서 격납용기 안에 있던 증기가 외부로 대량 방출됐다고 설명했다. 마크-1 격납용기는 내부 압력 4기압까지 견디도록 설계됐는데, 노심 용융 사고로 당시 내부 압력이 8기압까지 올라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GE와 GE의 기술을 도입한 도시바와 히타치가 격납용기를 얇고 작게 지었다는 것은 Think the Unthinkable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인재(人災)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 언론이 격납용기를 작고 얇게 지은 문제를 지적했다면, 당장 ‘이 사고는 인재’라는 여론이 일어나,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을 구속하는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격납용기를 얇고 작게 지은 것은 40여 년 전에 결정된 것이니 지금 책임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일본 언론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 대해 냉철하게 보도했는데, 이는 한국과의 확연한 문화 차이였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산업 강국 일본의 허상을 벗기는 사건이었다. 일본이 모든 부분에서 한국을 앞서고 세계 제일은 아니다. 일본의 오래된 시설은 한국 것보다 훨씬 낙후하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일본은 모든 것이 최고일 것으로 보고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으니 한국의 원전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의심을 품는다.

    海水 주입을 결정하지 못한 도쿄전력

    배터리가 방전된 다음에도 전기는 복구되지 않았기에 도쿄전력 직원들은 마지막 상황이 왔음을 직감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가동하다 자동정지한 1·2·3호기는 냉각을 하지 못해 노심이 녹아내릴 것이고, 녹은 핵연료는 원자로 바닥을 녹일 것이 분명했다. 원자로 바닥이 녹으면 격납용기 안의 증기압이 높아진다. 그리고 수소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폭발을 격납용기가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1호기에서는 대지진과 쓰나미를 당한 3월 11일 밤 9시 훨씬 전에 배터리가 방전됐다. 배터리 방전이 임박하자 사고를 피할 수 없다고 본 도쿄전력은 밤 8시 50분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 반경 2㎞ 안에 있던 인원 1864명을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격납용기에 모든 것을 걸고 대피를 한 것이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가 위험하다고 보고 직원들에게 대피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쓰나미 피해 보도에 정신이 없던 일본 언론들이 고개를 돌렸다. ‘쓰나미 피해만 해도 엄청난데 더 큰 사고가 일어나느냐’란 의문을 품고서. 곧 일본 언론들은 쓰나미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1호기가 냉각을 하지 못해 수소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노심이 용융돼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될 때 최후로 시도할 방법이 해수 주입이다. 원자로의 밸브를 열어 가득 찬 증기를 빼내 내부 압력을 떨어뜨린 후 원전 주위에 무진장으로 있는 바닷물을 집어넣어 과열될 대로 과열된 핵연료를 식히는 것이다. 원전을 포기하고 방사능 사고를 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다.

    그런데 SBO 상황인지라 바닷물을 집어넣을 동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동력은 임시방편으로 마련할 수 있다. 모든 원전에는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도처에 소화전을 설치해놓고 있다. 소방차도 배치돼 있다. 이러한 시설은 전기가 끊어졌을 때도 가동해야 하니 자체 동력을 갖고 있다. 소방차는 기동성까지 있으니 달려가서 물을 넣어줄 수가 있다. 원자로의 밸브를 열어 증기를 빼내면 소방차 엔진을 돌려서 가동하는 소방수를 집어넣을 수 있다.

    소방수는 양에 한계가 있으니 바닷물을 원자로 안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원자로에 구멍이 나 있어, 원자로 안에 집어넣은 물은 밖으로 흘러나와 격납용기 안을 채운다. 따라서 원자로와 격납용기 안을 모두 해수로 채우는 필사의 작전을 감행해야 한다. 미국이 노심 용융 사고를 일으킨 스리마일 섬-2호기의 격납용기를 물통으로 만들었듯, 도쿄전력도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전 격납용기를 물통으로 만들어 더 큰 사고를 막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해수 주입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에 대해 도쿄전력은 해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다 짐작했다.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넣어 원자로를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피령 내린 도쿄전력

    원자로는 순수(純水)를 넣어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바닷물에는 온갖 불순물이 섞여 있기에 바닷물을 넣은 원자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다. 도쿄전력이 해수 주입 결정을 주저한 데는 사정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던 3월 11일 밤 9시 40분, 1호기에서 이상이 발생했다는 경보가 울렸다. 1호기의 물이 줄어들어 핵연료 윗부분이 물 밖으로 드러난 것이 확실했다.

    이 경보가 울리기 전인 9시 23분 도쿄전력은 ‘원자력재해특별조치법’에 따라 1호기 반경 3㎞ 안에 있는 사람들은 1호기 3㎞ 밖으로 피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10㎞ 이내 지역에 있는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옥내 대피’ 지시를 내렸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린 것이다.

    그런데 사고 후 도쿄전력 측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호기의 핵연료가 물 위로 드러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각이었다. 1호기는 비상 복수기의 물 투입이 끝난 뒤인 오후 5시쯤부터 핵연료 윗부분이 물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추정됐다. 물 밖으로 나온 1호기의 핵연료는 밤 10시 20분쯤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이 취한 조치는 일본 정부에도 전달됐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지시는 한참 뒤에야 나왔다. 도쿄전력의 지시가 있은 뒤 8시간이 지난 다음 날(3월 12일) 새벽 5시 44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제1호기 반경 10㎞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태에 너무 늦게 대처했다. 그 사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3호기도 노심이 용융돼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3월 12일 오전 7시 45분이 되자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사토 유헤이(佐藤雄平) 후쿠시마 현지사가 2호기 반경 3㎞ 지역에 있는 사람은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바로 10㎞ 안에 있는 사람도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쯤 1호기에서는 녹은 핵연료가 원자로 바닥을 녹이고 격납용기 바닥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속수무책으로 오직 격납용기가 모든 증기압 등을 막아주기를 바랄뿐이었다. 그 사이 빨리 전원을 복구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러한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전 9시 7분이 되자 격납용기가 위험하다는 신호가 감지됐다.

    도쿄전력은 격납용기가 폭발할 수도 있다고 보고 격납용기의 밸브를 열어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증기를 대기 중으로 뽑아냈다. 이 증기는 핵연료와 접촉하는 물이 변한 것이라 방사능을 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제1발전소 주변 대기에서 세슘-137이 검출됐다(오후 2시 49분 검사에 검출됨). 세슘-137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소로 핵분열에 의해서만 생긴다. 이것이 검출됐다는 것은 방사능에 오염된 공기가 떠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본주의 원전의 안전 신화가 깨지다

    그런데도 여전히 외부전원이나 비상발전기가 복원됐다는 소식은 없었다. 대지진이 발생하고 24시간 50분이 지난 12일 오후 3시 36분, 드디어 ‘염려하고 염려하던’ 폭발이 일어났다. 1호기 지붕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지붕이 날아간 것이다. 그 순간 쓰나미 피해를 취재하고 설마하며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지켜보던 언론이 일제히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눈을 돌렸다.

    자본주의 국가의 원전은 단단한 격납용기가 있어 모든 사고를 막아낼 수 있다고 했는데 왜 격납용기가 터졌지 하는 의문을 품고서…. 일본은 프랑스와 더불어 원전 최강국인데 왜 이러한 사고를 당했지 하는 의문을 품고서. 왜 일본은 자본주의 국가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는 깼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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