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여로(旅路) 그 물음과 깨달음을 얻는 길

정선 편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입력2012-03-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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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쪽에 바쁜 일정이 잡혀 있다면 몰라도, 드문 바깥나들이를 꼭 재미없는 고속도로만 이용해서 할 까닭은 없다. 하여 강릉을 가긴 가는데 시간을 좀 넉넉히 해서 강원도 내륙을 거쳐 가보기로 한다. 정선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장평 인터체인지를 나와 평창을 거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좀 더 고요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곁들이고 싶으면 진부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33번 국도를 타는 것이 좋다. 수항리 유원지와 가리왕산을 거쳐 정선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오대천 맑은 계곡이 시종 나란히 하는 데다 교통량마저 적어 차 부리는 이가 운전의 재미까지 가질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정선에서 아우라지를 거치고 청옥산-두타산의 산 고갯길을 넘어 동해시로 가는 42번 국도도 마찬가지다. 아직 문명의 때를 묻히지 않은, 강원도의 청정 속살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리왕산 높은 곳의 무덤 하나

    그 봄날, 사람 내왕마저 뜸한 가리왕산을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산의 원시적 적요며 산행 후 아랫마을 가겟집 평상에서 쳐다본 별 하늘의 장관과 함께 잊히지 않는 풍경 하나가 있다. 해발 1500m가 넘는 가리왕산의 8부 능선쯤에서 우연히 만난 무덤 하나가 그것이다. 더러 산꼭대기에 앉은 무덤을 보긴 했지만 이렇듯 높은 산 중턱에 마련된 묏자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이곳이 어떤 명당이기에 드센 바람과 구름장을 마다않고 만년유택으로 잡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원기 왕성한 생사람도 오르기 힘든 곳에 굳이 조상의 영면 자리를 만든 욕심 많은 효심이 안쓰럽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무덤은 지대의 높은 점에서는 산꼭대기의 그것들과 다를 바 없지만,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있었다. 대개의 산꼭대기 무덤이 묘비는커녕 표석 하나 세우고 있지 않은 것이 예사인 데 반해, 이 무덤만큼은 윤이 나는 표석 하나를 꼿꼿이 세워놓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새긴 문자가 지극히 단출해 수상쩍은 느낌마저 주었다. 앞뒷면 어디에도 그 흔한 이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이며 어느 때 만든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대제학(大提學), 딱 세 글자뿐이다. 하늘 가까운 곳에 앉은 무덤이 대제학 벼슬 하나만 달랑 표시하고 있으니 그 기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홍문관의 수장인 대제학 자리는 비록 품계에서는 정승 판서의 아래지만, 문신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영예로운 벼슬이다. 그대는 누군가, 어느 시대 어느 임금과 더불어 살았는가, 죽어서도 관직명은 자랑스레 밝히면서 어찌해서 이름을 숨기는가, 무슨 곡절이 있어서 이 높은 곳에 누웠는가? 정상을 향해 걷던 나는 뜻밖의 표석에 이끌려 무덤에 다가갔다. 등에 진 짐을 벗고 땀을 훔치며 주위를 관망했다. 땅바닥에는 고산초 이파리들이 융단처럼 덮여 있었다. 다른 데 비해 꽤 완만한 평지가 펼쳐져 있는 걸 봐서 예전에 암자 하나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명당을 선점한 다른 집안의 무덤이 있었거나.

    대제학의 후손은 선조의 영예로운 직함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단함이 극에 다다른 어느 때 과객 하나가 말했다. 가리왕산 꼭대기 부근에 퇴락한 암자가 있느니라, 그곳이 후대 발복의 천하 길지이거늘. 그날 밤, 후손은 대제학 할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해 천리 길을 걸었다. 재를 넘고 강을 건너 이윽고 가리왕산에 올랐다. 달빛 교교한 밤, 절 마당에 투장(偸葬, 암매장) 하는 때는 산짐승마저 숨을 죽였다.



    새치 같아 아니 흑판에

    백묵으로 마구 그은 선들 같아

    어느 땐 뼈다귀들처럼 보이기도 해

    자작나무 숲 그것 때문에

    겨울 산이 더 검은지 몰라

    오래 흩어졌던 길들이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룬 걸까 다 닳아빠지면

    뼈다귀만 남는 걸까 중얼중얼

    염불 소리 들려

    기도 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게 뼈다귀마저 다 갈아 마시면

    어디로 가게 되지

    반쯤 무너진 봉분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처럼 보이는 그 앞에서

    가로막는 것의 외로움을 생각하는 중이야

    햇살이 발등에서 차곡차곡

    눈을 감고 있어

    -강윤후 시 ‘자작나무 숲길’ 전문

    깊은 산중, 외로운 봉분 하나를 마주해서 떠올린 시가 이것이다. 겨울 산이 아니고 또 자작나무가 없다고 해서 분위기가 달라질 바는 아니다. 검은 나무기둥 사이에 간간이 키를 세우고 있는 흰 몸체의 자작나무를, 시인은 머리칼 속의 ‘새치’ 혹은 ‘흑판의 백묵선’으로 비유하고 있다. 지극히 감각적이다. 감각을 감각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존재의 심원을 찌르는 표창으로 써먹을 줄 아는 안목과 능숙한 기술이 이 시인의 뛰어남이다. 놀랍지 않은가.

    새치와 백묵선은 이내 ‘뼈다귀’로 심화되고 흩어졌던 길들이 숲이 됐다는, 발상의 전환이 따른다. 염불하고 기도해서 그 뼈다귀까지 다 갈아 마시면 뭐가 될까. 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처럼 생긴 무덤 하나가 다인가. 그러고도 자꾸 살아 있는 자들의 걸음을 붙잡곤 한다. 보따리 싸서 야반도주하려는 엄마 앞에 팔 벌리고 서서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소리치는 눈물범벅의 어린애 모습을 떠올려본다. 우리 인생이 다 그렇다. 살아서 외롭고 죽어서 더 외롭다.

    견고한 내 등산화 앞에 떨어지는 햇빛을 보면서, 정말이지 나 또한 대제학의 ‘외로움’을 생각해보려고 애썼지만 무망한 일이다. 문득 무덤 앞의 수림이 너른 호수의 물결처럼 보였다. 그 가없는 물결을 바라보는 가운데 대제학에게 던졌던 물음들이 예리한 통증과 더불어 내게로 되돌아왔다.

    ‘너는 어찌해서 이곳에 있는가, 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

    가리왕산을 나와 33번 국도를 계속 진행하면 나전에서 42번 국도와 만난다. 이 도로로 옮겨 타 남쪽으로 달리면 정선 읍내에 이르고 북으로 가면 아우라지가 있는 여량을 거쳐 구절리 또는 동해시로 갈 수 있다.

    내륙의 땅끝마을 구절리

    어쩌면 이편 동네는 땅 이름, 물 이름마저 이렇게 예쁠까. 동강의 최상류가 되는 송천과 골지천이 여량에서 하나 된다 해서 이곳 물 이름이 아우라지다. 여량에서 송천 물길을 좇아 산협으로 파고들면 상원산과 다락산 너머 편에 있는 내륙의 땅끝마을 구절리에 닿는다. 맑은 냇물이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고 노추산이 마을 뒤편에 서서 하늘을 가린다. 간신히 물길을 따라왔던 철길 또한 여기서 끝나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손자까지 둔 연령에 사내들도 쉬 하지 못하는 백두대간 종주를 거뜬히 마친 시인 이향지는 특히 이곳 구절리에 대한 시를 많이 쓰고 있다. 구절리의 어여쁨과 구절리의 한숨이 모두 그들 시에 배어 있다.

    저 바람엔

    들이켜면 게워낼 수 없는 컴컴함이 배어 있다

    다락산 노추산 상원산의 희디흰 탄식이 녹아 흐르고 있다

    몇 안 남은 붙박이별 뿌리를 흔드는 삽자루가 들려 있다

    늘어만 가는 빈집들의 방이며 뜨락을 사람 대신 채워보는

    곡소리가 묻어 있다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 했던 철새들의 거세당한

    깃털들이 우왕좌왕 떠 있다

    - 이향지 시 ‘구절리 바람소리’ 부분

    예전, 석탄열차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구절리역을 드나들던 때가 마을의 전성기였다. 건장한 광부들의 웃음소리, 고함이 쩌렁쩌렁 산간 마을을 울릴 때만 해도 구절리에는 최소한 ‘탄식’이며 ‘곡소리’는 없었다.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광산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고 구절리역에도 기차가 오지 않았다. 벽지와 합판을 걷어낸 빈 집들만 알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마을엔 어느 한때 ‘달 높이에 가로등을 매달고 싶어했던’ ‘철새’ 같은 사내들의 꿈도 있었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는 그들의 ‘거세당한 깃털’들만 우왕좌왕 떠다녔을 뿐이다.

    그러나 예전의 석탄마을 구절리는 이제 산간 관광지로 태어나기 위한 몸단장이 한창이다. 천혜의 자연이 있기에 변신은 손쉽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가 구절리를 찾아가던 그 무렵만 해도 비록 부정기적이지만 서울 청량리역에서 구절리역까지는 한철 등산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각, 저마다 겨울 산행을 위해 중무장을 한 산행객들로 빈 좌석이 없는 열차에 나 또한 몸을 실었다. 구절리역에서 도보 산행이 가능한 노추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등산열차라는 별난 이름을 붙인 열차답게 차 안은 온통 강인한 기운이 넘쳐났고 활력과 투지를 자랑하듯 사람들 사이엔 쉼 없이 술잔이 오갔다. 아는 이, 모르는 이 구분이 없었다. 이 한시적인 튼튼함과 씩씩함을 확인하는 것은 오로지 취흥에서만 가능하다는 분위기마저 없지 않았다.

    이윽고 사람들은 취기에 곯아떨어졌고 그들을 실은 채 캄캄한 밤을 내달린 열차는 미명의 시각에 종착지 구절리역에서 달음박질을 멈췄다. 아직도 술기운을 풀풀 날리는 등산객들은 역무원 하나 없는 대합실을 빠져나와 개 짖는 마을을 관통해 산으로 올랐다. 수천의 억센 다리가 한꺼번에 내디디는 걸음으로 해서 산간 마을의 지축이 울렸는데 그 인파는 마치 검은 홍수가 난 것 같았다.

    하오(下午). 산행을 마치고 사람들이 다시 역으로 모여드는 때면 역 주변은 삽시에 거대한 잔치판으로 변했다. 공터마다 자리가 펴지고 그 위에 국밥이며 술, 안줏거리가 차려졌다. 상경열차를 타기까지 두 시간여 동안 구절리역은 그렇게 술 냄새, 고기 냄새와 취객들의 소란에 파묻혔다. 폐광과 함께 적막 속에 오래 버려져 있던 구절리는 이렇듯 주말 한때 화염 같은 열정을 맛보기도 했다.

    두타산의 교훈

    산맥과 강물이 동무 되어 흐르면서 작은 배를 띄우고 정선아리랑을 흘리던 산천에 새로 철길이 놓이면서 역사와 풍속은 이렇게 더욱 급속히 바뀌었다. 인적마저 끊어진 외딴 구절리역. 흰 눈 덮어쓴 상원산 바위벽이 겨울 햇살을 튕겨내는 때에도 빈 역은 꿈결같이 아득한 철로만 지켜보며 서 있다. 인간이 엮어내는 역사와 풍속은 어차피 철로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며 대합실 벽면을 채운 낙서처럼 부질없는 것임을 구절리역은 제 몸으로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었다.

    42번 국도가 동해시에 다가들기 직전, 삼화에서 오른편 갈림길로 방향을 고치면 무릉계라는 아름다운 계곡과 용추폭포와 쌍폭을 거느린 두타산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무릉계 암반계곡은 잠시 앉아 땀을 식히기만 해도 절로 뼛속까지 상쾌해지며 용추폭포와 쌍폭은 자연이 빚은 공교로운 솜씨의 극단을 보여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이 산에는 사람의 기세를 단번에 압도해버리는 거대한 암벽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 성이 있고 침엽수림 활엽수림대가 교차한다. 그리고 두타-청옥을 잇는 스카이라인이 장쾌하다.

    여정의 마지막 날, 나는 열 시간 가까운 산행을 마치고 계곡 아래의 산장에서 잠을 청했다. 육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취기마저 거느렸건만 잠이 오지 않았다. 폭포소리 같은 골 물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행의 끝은 꼭 이랬다. 흥(興)과 허(虛)를 전신으로 껴안기, 그것이 나의 산행이라면 그 맨 뒷자리에서 마주하는 이런 불면쯤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산이 산을 그리워하던가

    된장이 된장을 그리워하던가

    양파가 양파를 그리워하던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것은 절대 지상 철학이다

    나는 이것을 두타산에서 배웠다



    개새끼들!

    -김지하 시 ‘두타산’ 전문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 동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고려대문인회 회장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화담명월’등


    산 이름인 두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수행은 왜 하는가? 깨달음을 위해서다. 하여 시인 또한 ‘두타산에서 배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뭘 배웠는가. 꽃이 벌을 그리워하고 나비가 꽃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다 헛소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돌멩이가 돌멩이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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