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해외이슈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는 죽어야 마땅하다”

명예 살인은 왜 근절되지 않는가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는 죽어야 마땅하다”

3/4
캐나다, 독일에서의 명예 살인

선진국에서도 이따금 명예 살인이 일어난다. 올해 1월 29일 캐나다에서 2009년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 뒤늦게 드러났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모하마드 샤피아(58)와 부인인 투바 마호마드 야흐야(42), 아들 하메드(21)가 2009년 세 딸과 샤피아의 첫째 부인을 살해한 것. 큰딸인 자이납(당시 19세)과 둘째 딸 사하르(당시 17세)가 아버지 허락 없이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며, 셋째 딸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고, 인터넷을 즐기는 것이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킹스턴 인근 운하에서 피살자들을 자동차에 태운 후 다른 자동차로 밀어 물에 빠뜨려 살해했다. 캐나다 검찰은 수사기록을 토대로 샤피아가 둘째 부인, 아들과 공모해 이들을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벗어나는 행동으로 가족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명예 살인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사건을 맡은 로버트 마랭거 판사는 “왜곡된 명예 관념에 따라 무고한 4명의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했다”며 “문명사회가 그러한 명예를 인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들은 1급 살인죄로 가석방이 안 되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7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몸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캐나다 시민으로 살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2002년 이후 현재까지 명예 살인이 13건 발생했다. CNN은 “엄격한 가부장적 관습에 익숙한 이슬람 국가 이민자들이 자유로운 서방 세계에서 가치관 충돌 등의 혼란을 겪어 가족 파괴로 이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캐나다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명예 살인이 이따금 발생한다. 2008년 5월 함부르크에서는 16세의 아프가니스탄 출신 독일 소녀가 친오빠에게 시내 한가운데에서 처참하게 명예 살인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큰 충격을 줬다. 시사잡지 ‘슈피겔’은 이 사건을 스페셜 리포트로 다뤘다. 비극의 주인공은 모살 오바이디라는 이름의 여자다. 모살은 세 살 때 독일로 이민 왔다. 그녀의 기억에 모국 아프가니스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살은 부모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는 것을 빼면 평범한 독일 소녀였다. 머리를 염색하고, 짧은 치마를 입는 그녀가 아버지와 오빠의 눈에는 가족의 수치로 여겨졌다. 모살은 아버지와 오빠의 폭행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모살이 청소년보호센터로 피신한 적도 있다. 살인이 벌어지기 4일 전엔 구타로 인해 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자신이 평범한 독일 소녀라고 믿었던 모살은 가족의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베를린으로 도망가려 기차역으로 향하던 중 오빠가 휘두른 칼에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모살의 가족은 독일로 이주한 지 13년이 넘도록 왜 독일문화에 적응하지 못했을까? 이 사건의 배경에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이 있었다. 모살의 아버지 굴람 모하메드 오바이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그-21 전투기를 조종하던 엘리트 장교이자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친소련 세력이 붕괴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가족을 이끌고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 새로운 인생을 계획했으나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엘리트 조종사였다고 하더라도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버스 운전기사를 거쳐 현재는 중고 버스 판매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명색이 미그기 조종사가 상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심한 좌절감이 몰려왔다. 슈피겔은 “독일 이민 후 손상된 자존심 때문에 굴람 모하메드가 5명의 자녀와 아내에게 점점 더 권위적이 됐으며, 가족의 명예에 매달렸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모살의 아버지는 더욱더 가족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함부르크에는 2만여 명의 아프가니스탄 이민자가 살고 있지만 이들과 모살의 가족은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살 가족의 고립감은 더욱 컸다.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사회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 왕조가 붕괴하고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후 망명 온 왕당파, 1989년 이후 탈레반에게 쫓겨난 공산주의자,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유입된 이들이 뒤섞여 있다. 과거의 원수가 한 마을에 이웃하며 사는 꼴이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축소판이라 불릴 만큼 복잡한 이민자 사회가 모살의 아버지를 외롭게 했던 것이다. 슈피겔은 이들 가족이 이민자 사회에 부적응하면서 폐쇄적으로 변해갔으며 그 결과로 명예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이라크인’ 아버지, ‘미국인’딸을 죽이다



캐나다 독일뿐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명예 살인의 대부분이 이민자 가정에서 발생한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살인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다. 명예 살인을 한 당사자들은 이런 법 집행에 불만을 나타낸다. 모국에서는 당연한 명예 살인이 왜 이 나라에서는 중죄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앞에 언급한 캐나다 명예 살인의 피고인 부부는 법정에서 끝까지 자신들은 살인자가 아니며 선고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벌어진 이라크 이민자의 명예 살인 사건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라크 이민자 파렐 하산 알마네키(50)는 2009년 10월 딸 누르 알마네키(20)를 자신의 자동차로 밟았다. 딸은 2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척추수술까지 받았지만 누르는 같은 해 11월 2일 사망했다. 하산은 1990년대 중반 이라크에서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교외로 가족과 함께 이민 와 20여 년을 미국 시민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라크인’ 아버지와 ‘미국인’ 딸은 사사건건 의견대립으로 불화를 겪었다. 아버지는 누르가 열일곱 살일 때 이라크로 돌아가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 딸은 정략결혼을 거부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미국인으로 성장한 누르에게 정략결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열아홉 살 때 누르는 독립해 자신의 아파트로 이사했으며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의 부모는 집에 돌아올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런 누르를 부모는 이해할 수 없었으며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검찰은 법원에 낸 소장에서 “조사결과 피고는 누르가 이라크의 전통적인 가치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며 “그의 눈에 그녀는 너무 서구화됐으며 가족에게 불명예스러운 존재였다”고 밝혔다. 결국 하산은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그 역시 자신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미국의 법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변호사도 그가 재판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딸이 가문의 수치로 여겨져 명예 살인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당연한 일인데 왜 미국에선 이를 살인죄로 처벌하는지 하산 처지에서는 당최 납득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미국 워싱턴 주에 사는 팔레스타인 이민자 가정의 아이다(18)는 자신이 미국인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팔레스타인은 그저 부모가 살았던 나라일 뿐이다. 그런 아이다는 올해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미국 동부에 가려 했다. 학교 성적도 뛰어나 명문대 진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부모가 반대했다. 다 큰 딸이 시집도 가기 전에 외지로 떠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다는 부모의 고집대로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아이다의 친척이 소개한 남자와 빠른 속도로 혼담이 오고간 것. 아이다는 미국인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팔레스타인 헤브론에 있는 사촌과 결혼하라는 요구였다. 아이다는 “이 상황이 말이 되느냐. 요즘 세상에 얼굴도 모르는 사촌과 정략결혼이라니. 나는 미국인인데 왜 팔레스타인 전통을 따라야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말도 모르고 히잡은 써본 적도 없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자친구와 동부로 도망가고 싶지만 아버지에게 잡히면 나는 죽을 것”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서 살더라도 이민자 가정은 명예 살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3/4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목록 닫기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는 죽어야 마땅하다”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