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구나 최시중 전 위원장이 최근 구속되는 등 ‘MB 6인회’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와중에 나온 ‘박근혜 7인회’ 논란은 박 전 위원장 본인에게도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박 전 위원장은 박지원 위원장의 ‘수구꼴통’ 발언이 있은 직후 김용환 고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전 위원장은 통화에서 “도대체 7인회라는 말이 왜 나왔느냐, 언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6인회와 자꾸 비교하는데, 조심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김 고문은 “제가 실언을 했다”며 인터뷰 과정을 설명했다고 한다.
“도둑질한 건 아니지 않나”
김용환 고문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서울 마포에 있는 그의 개인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입구에는 ‘아시아·태평양 경제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둥근 탁자 한가운데에 한자로 ‘民族中興 朴正熙’(민족중흥 박정희)라는 글귀가 새겨진 도자기가 눈에 띄었다. 그는 기자를 보자 “할 말이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를 애써 붙잡고 물었다.
▼ 박근혜 전 위원장의 자문그룹인 ‘7인회’가 있고 김 고문께서 좌장이라면서요?
“모여서 무슨 건의를 하고 조언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만나서 밥 먹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사이죠.”
▼ 박지원 위원장이 ‘MB 6인회’에 빗댔는데요?
“우리가 뭐 도둑질을 한 건 아니잖아요? 6인회와는 달라요. 우리는 다 나이도 많고, 현역에서 떠난 사람들이죠. 박지원 위원장이 ‘수구꼴통’들이 만나는 것으로 얘기를 했던데 나 참… . 정치판에서 모함도 있고, 오해도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아니죠. 처음에는 대응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이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그만뒀어요.”
▼ 박근혜 전 위원장도 모임에 가끔 참석을 했다는데요?
“가끔 선약이 없으면 나오셨죠. (박근혜 전 위원장을) 편하게 해드리고 고생하신다고 위로도 해드리려고 했는데 거꾸로 누를 끼쳐버렸습니다.”
이 정도 대화만 나누고 김 고문은 “볼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그를 보좌하고 있는 이태용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은 “박지원 위원장의 말이 보도된 이후 김 고문이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그동안 사무실에도 나오지 않다가 오늘 정리할 일이 있어 잠깐 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김 고문께서는 항상 ‘눈을 감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오히려 박 전 위원장에게 누를 끼쳐 매우 상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김 고문의 별명이 입이 무겁다고 해서 ‘이중 자크(지퍼)’다. 그런데 이번 보도가 나가고 나서 ‘내가 자크가 풀렸나보다’고 한탄하시더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7인회는 정말 원로들의 친목 모임일 뿐일까?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대권 플랜을 제시하고 조언을 하며 힘을 쌓아가는 실제 이너서클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취재 결과, 7인회의 시초는 ‘4인 모임’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뒤 경선캠프에 참여했던 김용환·최병렬·김용갑·안병훈 네 사람이 모임을 시작했다. 김용환 고문, 최병렬 전 대표, 김용갑 전 의원은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고문을 지냈다. 안병훈 전 부사장은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이들은 함께 고생한 인연으로 비정기적으로 만나 정국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친박계 거물인 서청원 전 의원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희망연대’를 만들어 대표로 활동하느라 4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7인회는 실제 이너서클”
4인 모임에 캠프 고문을 맡았던 강창희 의원과 현경대 전 의원, 그리고 선대위 부위원장이었던 김기춘 전 장관이 합류해 7인회가 됐다. 그런데 이 과정이 자연발생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 의원은 ‘모임에 충청 출신이 없다’는 이유로 김용환 고문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현경대 전 의원과 김기춘 전 장관은 김용갑 전 의원이 참여시켰다고 한다.
이들은 순수 친목모임이라고 강조하지만 정가에선 4·11 총선 공천과정에서 7인회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또 7인회 멤버로 4·11 총선에서 당선된 강창희 의원이 국회의장 경선에서 정의화 의원을 꺾는 과정에서도 7인회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관측도 있다.
7인회 멤버들은 박지원 위원장의 ‘수구꼴통’ 발언으로 파문이 일어난 뒤에도 강창희 의원의 당선 축하와 현경대 전 의원의 총선 낙선을 위로하기 위한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7인회의 한 핵심 멤버는 기자에게 “우리는 ‘박근혜 시대’가 열려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당분간 모임을 자제하겠지만 앞으로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의논하는 그런 자리가 필요하면 계속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