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웨스트팩 금융그룹

공동체가 없으면 은행도 존재하지 못한다

  • 시드니=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06-21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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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 이 은행이 착하게 돈 벌려는 까닭은?
    • A 공동체가 없으면 은행도 존재하지 못한다
    •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주인공 안토니오의 몸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한국의 은행이 샤일록처럼 돈을 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웨스트팩 금융그룹 산하의 은행들은 탐욕스럽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웨스트팩은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금융기업으로 꼽힌다.
    웨스트팩 금융그룹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웨스트팩금융그룹 본사.

    웨스트팩은 자산 규모에서 호주 2위 금융그룹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2011 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 때 54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은행’이란 낱말 뒤에 ‘탐욕’이란 단어가 따라붙곤 한다. 한국의 은행들도 단기 이익에 매몰해 호황 때는 외형 경쟁을 벌이고, 불황이 찾아오면 혹독하게 채권을 회수한다고 비판받는다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데다 비 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것이다.

    웨스트팩은 웨스트팩은행, 세인트조지은행, 멜버른은행, BT파이낸셜그룹, 웨스트팩뉴질랜드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금융그룹이다. 웨스트팩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선전하는 비결은 뭘까?

    비결은 ‘미래가치에 방점을 찍은’ 지속가능(sustainability) 경영에 있다.

    비즈니스 전문잡지 ‘에티스피어’는 2008년부터 4년 연속 이 금융그룹을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most ethical companies) 중 하나로 선정했다.



    팀 윌리엄스 웨스트팩그룹 지속가능 경영 최고책임자에게 물었다.

    ▼ 은행이 윤리적이면 돈을 어떻게 버나?

    “전략적으로, 폭넓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둘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윤리적 부문과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함께 움직인다. 단기 이익에 매몰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해야 한다. 윤리적 퍼포먼스가 평판에 영향을 준다. 지속가능성, 신뢰성을 구축하면서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 그렇게 해야 재무적 결과(financial outcome)가 따라붙는다.”

    코란 릴 홍보부장이 말허리를 자르고 거든다.

    “윤리와 수익은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다. 또한 윤리적 평판이 훌륭해야 유능한 직원을 뽑을 수 있다.”

    그가 덧붙여 말한다.

    “다우존스가 주관하는 지속가능성 평가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은행

    웨스트팩 금융그룹

    웨스트팩금융그룹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자동차.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는 미국 다우존스가 재무정보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측면을 고려해 기업을 종합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DJSI는 상장기업 중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1차 대상을 선정한다. 재무 상태가 안정적인 기업을 고른 후 윤리적 측면(지배구조·사회적 공헌),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해당 기업의 미래 투자가치를 지수로 매기는 것. 기업이 △환경 효율 △경제 투명성 △사회적 윤리를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실행하는지를 강조한다.

    웨스트팩은 DJSI에 편입한 190개 은행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2011년). 2002년부터 DJSI에서 지속가능 경영 분야 ‘글로벌 리더’로 공인받고 있다. 게일 캘리 웨스트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9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가치, 비즈니스 과정, 전략이 지속가능성과 깊게 연계돼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고객, 직원, 주주, 사회에 장기적 이익을 제공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1년간 웨스트팩의 지속가능 경영 성과는 눈부시다.

    스위스 샘이 선정하는 지속가능 경영 리더에 이름을 올렸으며(2012년) ‘머니매거진’ 평가에서도 ‘올해의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은행’으로 뽑혔다(이하 2011년). ‘이산화탄소 감축 프로젝트’라는 기관은 웨스트팩을 온실 효과를 생각하는 기업 톱10에 올렸다. ‘파이낸셜타임스’도 ‘FTSE4Good’이라는 최고 등급으로 이 은행을 평가했다. 외콤(Oekom Research AG)은 웨스트팩을 “책임감 있는 기업”이라고 극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속가능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웨스트팩이 착하게 비즈니스하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뭘까?

    전문가들은 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평판이 비즈니스 아웃풋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도덕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려는 이가 늘면서 사회적 책임 경영이 재무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 성과를 누리고자 R·D(연구개발)를 열심히 하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잣대다. 제품 및 서비스가 지구 환경과 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도 중요하다. 지속가능 경영은 리스크 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투자자, 고객은 ‘착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과 관련해 나쁜 소식이 들리면 “그 회사는 절대로 그럴 곳이 아니야”라면서 신뢰를 철회하지 않곤 한다. 평판이 나쁜 기업은 소소한 잘못으로도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웨스트팩 금융그룹


    “말만 해놓고 실천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윌리엄스 최고책임자는 웨스트팩그룹 산하의 은행과 기업, 공적 봉사를 하는 웨스트팩재단의 지속가능성 및 사회적 책임 경영을 총괄한다.

    ▼ 웨스트팩이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까닭은 뭔가?

    “한마디로 요약해서 답할 수 없는 폭넓은 질문이다. 전략을 짤 때, 경영진이 결심을 할 때,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미래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퍼포먼스를 잘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다. 수익을 얼마만큼 올릴 수 있느냐는 기업의 존망과 관련한 문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공동체가 기업에 무엇을 바라느냐다. 공동체가 없으면 은행도 존재하지 못한다. 책임, 수익을 연결해 사안을 판단한 뒤 결정을 내리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 웨스트팩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의 정의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지속가능성은 매우 넓은 이슈다. 최근 떠오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전략을 짤 때 공동체가 바라는 니즈(needs)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사회가 원하는 게 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환경보호를 비롯한 사회적 책임도 경영상의 결정을 할 때 고려한다. 지속가능 경영은 장기적 관점에서 은행의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현재는 발생하지 않은 이슈지만 앞으로 나아가서 생각하는 것이다.”

    ▼ 구성원에게도 지속가능성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나.

    “당연하다. 웨스트팩 구성원들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것을 반영하고 집중해내야 한다.”

    그가 문건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제목은 ‘our principle(도덕, 신념과 관련한 우리의 원칙)’이다. A4 용지 13쪽 분량의 문건은 웨스트팩 구성원이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지켜야 할 사안을 담았다. 법조문 형식으로 문건을 작성했는데 개별 상황에 따른 지침을 담고 있다.

    “도덕, 신념과 관련한 우리의 원칙은 경영 전략을 짤 때 기초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다. 신입 직원을 뽑을 때도 도덕성, 신뢰성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 주주들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미래를 보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퍼포먼스는 주주에게도 도움이 된다.”

    웨스트팩의 CEO를 지낸 로버트 조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조스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 기업은 대기업의 이윤 창출을 사회적 공헌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기업 활동을 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협력업체를 돕는다는 이치인데, 미국에서는 이런 논리가 잘 안 먹힌다. NGO(비정부기구)들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데 그것에 말려들 바에야 환경운동, 사회공헌을 통해 비판적 성향의 NGO를 끌어안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한 기업이 많다.”

    윌리엄스 최고책임자에게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어젠다라고 말하는 기업은 많다. 하지만 실천해내는 기업은 많지 않다. 웨스트팩도 겉으로만 윤리적인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우리의 원칙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를 물어보는 건가. 우리는 행동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외부 평가를 봐라. 행동으로 옮겨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물론 말만 해놓고 실천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 기업의 지속가능성 못지않게 구성원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한 것 아닌가.

    “구성원들이 전문지식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돕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웨스트팩은 임직원이 NGO와 함께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돕는다. ‘지역사회를 위한 휴가(community leave)’ 제도가 대표적이다. 구성원이 NGO에 기부금을 내면, 회사가 직원이 낸 돈만큼 같은 NGO에 기부한다. 매칭 기프트(matching gift)라고 불리는 제도다. 사원이 기부행위를 할 때 회사도 일정률(주로 1대 1)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덧붙여 증여하는 이 제도를 도입한 한국 기업도 늘고 있다.

    “매칭 기프트는 커뮤니티 어젠다와 관련한 것이다. ‘현재’에 도움을 줌으로써 ‘미래가치’를 확보하는 활동이다. 지역 사회 봉사 활동도 같은 취지로 이뤄진다. 직원들의 돈만 지원하는 것보다 회사 돈을 얹어 도와주면 효과가 더 크지 않겠는가.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가진 재능이나 지식을 공동체에 전수함으로써 장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 지역사회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게 있나?

    “NGO와 함께 하는 것만 언급하기로 해도 굉장히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쉽지 않다. 웨스트팩은 오랫동안 비영리단체와 일해 왔다.”

    웨스트팩 구성원은 지역경제, 지역기업의 개선을 지원하는 워크숍을 수시로 개최한다. 시민들의 금전 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파이낸셜 퍼스트 스텝(financial first step)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도 호평받고 있다고 한다.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상대적 약자에 대한 멘토링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8개항으로 이뤄진 인권 규칙도 제정했다. 직원의 인권 보호는 물론이고 관계 회사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를 따진다. 최근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조하고 있다. 그룹에서 사회적 공헌 활동을 맡은 곳은 웨스트팩 재단이다.

    “웨스트팩 재단은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 finance·자활 및 자립 지원 금융)를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재단은 금융회사들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웨스트팩 금융그룹


    “이 은행과 거래하고 싶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에서 건너온 유형수(流刑囚)와 그들을 감시하던 간수의 후손이 주축이 돼 건국한 나라다. 애버리진(aborigine)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2만5000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을 가리키는 호주 영어 Australian origin의 줄임말이다. 1970년대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좋은 조건에서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애버리진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고아원에서 키우는 야만을 저질렀다. 현재 인구의 2%를 차지하는 애버리진은 1960년대까지는 인구조사에도 포함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애버리진의 땅을 빼앗은 일과 차별 정책을 시행한 것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유럽 출신 이민자와 애버리진의 화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요한 이슈다. 윌리엄스 최고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통적인 소유자인 애버리진이 그들의 땅, 바다, 공동체와 연계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웨스트팩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서 화해의 여정(reconciliation journey)을 위한 매우 특별한 책임을 갖고 있다.”

    웨스트팩은 애버리진이 운영하는 기업에 특혜를 준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애버리진에게 혜택을 준다. 애버리진 커뮤니티 지원만을 담당하는 조직도 갖고 있다.

    은행은 고리대금업에서 비롯했다. 셰익스피어 희곡‘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주인공 안토니오의 몸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받은 것이다. 한국의 4대 금융지주회사를 두고 샤일록처럼 장사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웨스트팩 산하의 은행들은 공동체와 더불어 살기를 강조하고 있다. 성공의 사다리에서 발을 잘못 짚어 떨어진 이를 돕고자 노력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이재민을 돕고자 소매를 걷어붙인다. 웨스트팩 자회사인 세인트조지은행 롭 채프먼 대표는 웨스트팩이 ‘신동아’를 위해 제공한 자료에서 “우리는 퀸즐랜드 주에 산불이 일어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지역사회와 우리의 고객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웨스트팩은행, 세인트조지은행, 멜버른은행, BT파이낸셜그룹, 웨스트팩뉴질랜드 등이 자료에서 나열한 사회적 책임 경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은행과 거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후예인 은행업마저 착하게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마당이니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면서 유한한 자원을 소비해 돈을 버는 제조업 대기업이 어떻게 행동해야 사랑받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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