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렇게 자기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업군은 검사일 것이다. 몇몇 정치권 인사는 검찰에 조사받으러 가면서 기자에게 “난 99% 떳떳하기 때문에 문제 될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풀려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99%만 염두에 둔다. 실제 조사는 다르게 흘러간다. 검사는 99%를 몽땅 버린다. 이들이 애써 외면한 1%에 조사시간을 집중한다. 이들은 결국 버텨내지 못한다. 소환조사의 마술이다.
사회는 진실을 캐내어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을 유일하게 검사에게 맡겼고(기소독점주의), 검사는 소환조사로 이 임무를 구현한다. 소환조사가 수사의 클라이맥스라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이시형 서면조사와 G2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는 의심을 살 만한 토지거래를 해 검찰에 고발됐다. 이 씨가 관련된 내곡동 사저 건은 의문투성이 종합백화점이다. 그러나 이 씨는 검찰에 한 번도 소환되지 않았다. 이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대통령 부부는 자신들이 살 집의 터를 재력 없는 아들 명의로 샀다.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은 기자에게 “대통령이 사라고 하니 샀지”라고 했다. 명의신탁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매입 방식도 부동산박사급이었다. 개인(이시형)과 국가(청와대 경호처)가 전례 없이 공동명의로 땅을 매입했다. 나아가 이시형 씨가 6억 원을 적게 내고 그 액수만큼 경호처가 세금을 더 썼다. 기자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설명한 내용(아래)을 들어보면 이 거래가 얼마나 상식에 반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1억 원짜리 땅이 있을 때 두 사람이 7대 3의 지분으로 공동 구매한다고 하면 7000만 원, 3000만 원 이렇게 내는 게 맞지 않습니까. 이시형 씨와 경호처는 내곡동 20-17번지를 공동지분으로 구매했습니다. 이시형 씨의 지분은 528분의 330, 경호처의 지분은 528분의 198. 그러니까 이시형 씨의 지분이 경호처보다 더 많은 거죠. 그런데 이시형 씨가 낸 매입비는 10억1775만 원, 경호처가 낸 돈은 14억8000만 원. 이시형 씨가 낸 돈이 훨씬 적습니다. 이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 현상은 20-30번지, 20-36번지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총 6억 원만큼 이시형 씨는 싸게 샀고 경호처가 그만큼 비싸게 사준 거죠.”
이 씨가 분담한 매매대금과 지분율 사이의 객관적 불균형은 검찰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외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안 믿기로 유명한 검찰이 대통령 아들에겐 유독 믿음을 줬다. 이 씨에 대한 조사는 서면조사로 대체됐다. 이어 관련자 모두에게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검찰이 권력의 시녀여서? 이건 낡고 잘못된 메타포(metaphor·비유)다. 검찰은 절대로 시녀가 아니다. ‘임명직 위에 선출직, 선출직 위에 검찰직’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 정도로 검찰은 막강해져 있다. 웬만해선 이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 그만두고 나가서도 전관예우로 큰돈을 번다. 우리 사회의 현존하는 양대 권력은 대통령과 검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시형 서면조사는 이 G2 간의 거래와 타협의 산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대신 검찰은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국민의 요구는 뭉개야 했다.
국민 무서운 줄 알게 해야
새누리당은 특검을 주장한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인상이다. ‘정말 주먹이 운다’고 생각한다면 국회 국정조사가 더 제격이다. 역대 특검이 별 소득 없었거니와 더 시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곡동 사건 수사검사를 국정조사에 불러 수사과정을 추궁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것이 영화 ‘반지의 제왕’의 두 개의 탑과 같은 BH-檢 카르텔을 깨는 첫걸음일 것이다.
이시형 서면조사와 내곡동 수사는 여론이 인내할 만한 선을 넘었다. 맹탕으로 끝난 불법사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 스스로 최소한의 눈치도 안 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민주주의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양립할 수 없다. 국민이 굽히든 검찰이 굽히든 결단이 나야 하는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