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해결했다. 삶의 현장을 여러 곳 전전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융통성 같은 것도 배웠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이 있다. 건축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속담이다. 그만큼 여기는 결과를 중시한다.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 실제로 번듯한 집을 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난관은 항상 찾아온다. 어떤 수를 내든 극복해내야 한다.
이렇게 건축가들은 대체로 저돌적이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 수많은 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내가 사회에 던져진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왔다. 외환위기는 건축을 잡아먹는 식성 좋은 괴물이었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났다. 살아남은 이들은 “좋은 날이 오겠지” 하며 버텼다. 지금 이들은 한결같이 “IMF 외환위기 때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불황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1년여 전 회사를 차려 경골목구조 두플렉스 하우스(일명 땅콩집) 시장에 들어왔다. 많은 문제점을 체감한다. 건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선 좋은 설계가 필수다. 그러나 설계비는 턱없이 적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선거에 기대를 걸어본다.
건축사협회는 목청을 높인다. 건축사들의 목소리를 국회가 아니라 지구 끝까지라도 전달할 태세다. 왜일까? 건축사 대부분이 전문가로서 대접받기는커녕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건축사를 멋있게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 건축사만큼 위기의 직종도 없다.
이는 정치적 측면과도, 사회문화적 측면과도 관련이 깊다. 정치권의 일부는 우리나라를 ‘토건공화국’이라고 부른다. 토목과 건축을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토목과 건축은 충분하니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한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옮겨가야 한다”고도 한다.
현실과 맞지 않은 선동이다.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과연 세계적 수준인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보기에 안 좋은 성냥갑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도시는 ‘별 특색이 없고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준다. ‘자연친화적이다, 고급스럽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사람이 살기에도 불편한 점이 많다. 해외 유명 도시나 관광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도시들이 미학적으로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토목과 건축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건 오만이다.
건축은 문화에 기반을 둔 산업이다. 주택과 빌딩은 단지 사람이 기거하거나 업무를 보는 공간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경제 논리만 난무한다. 건축사가 저급 기술자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경관을 고려할 여유조차 없다. 정치적, 행정적 배려가 당연히 필요하다. 정치적 비전은 기본적으로 건축과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약은 건축을 전제로 한다. 건축은 경제성장의 최고 동력이기도 하다. 이러기에 건축을 대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은 교육, 경제, 문화, 외교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건축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엇인가. 주택, 빌딩, 공원, 도시 같은 것들이다. 즉 건축은 한 나라의 얼굴이고 외모다. 건축문화가 뛰어난 나라가 문명화된 나라다.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나라다. 국민이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김동희<br>1970년생 건축사무소 케이디디에이치 대표소장
광화문광장에 대해서도 “좀 더 규모 있게 만들 수는 없었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강변에 대해서도 “왜 런던, 파리, 홍콩, 시드니처럼 멋진 수변경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나온다.
새 대통령은 건축물과 도시의 미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국가의 부가가치를 얼마나 높이는 일인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를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