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무너져내린 숭례문 복원공사가 올 6월 지붕공사가 시작되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 관심도 그만큼 커졌다. 5월 22일 감사원은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통해 숭례문 지붕 설계가 부적절하게 이뤄져 원형을 훼손했으며 목자재 부식과 화재 진압에 취약할 우려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원형 훼손은 없고 화재 위험이나 부식의 가능성도 없다”고 반박했다. 두 기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6월 12일 숭례문 2층 지붕 위에 기와가 올려지고 있다. 전통 방식 그대로 보토를 채운 위에 전통기와를 올렸다.
5월 22일과 25일 사이 일간지와 방송, 인터넷 언론에는 숭례문 복원공사(2012년 12월 15일 완공 예정)에 대한 비판 기사가 쏟아졌다. 감사원이 5월 22일 홈페이지 감사결과 공개코너에 ‘문화재 보수 및 정비사업 집행실태’ 제목의 A4용지 77쪽 분량의 감사결과보고서를 올린 데 따른 보도였다. 감사보고서에는 숭례문을 포함해 광화문, 개심사지 오층석탑, 남한산성 등 전국 각지 문화재 보수와 복원사업에 대한 감사결과가 포함됐지만 언론은 유독 숭례문 관련 항목(‘숭례문 및 광화문 복원공사 기와지붕 설계·시공 등 부적정’)만을 발췌해 기사화했다.
문화재청은 인터넷과 SNS상에서 시쳇말로 난도질을 당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문화재청’ ‘국보 1호인데도 이 짓거리’ 등등. 입에 담기도 힘든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그런데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문이 홈페이지에 올라간 지 얼마 안 돼 문화재청 홈페이지 ‘보도/해명’ 코너에 ‘숭례문, 부적절 설계로 원형 훼손 우려 언론보도에 대한 문화재청의 입장’이란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결론적으로 ‘부적절 설계에 따른 원형 훼손은 없다’는 것. 따라서 ‘화재 진압에 취약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피감기관인 문화재청이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대놓고 반박한 셈이다.
감사원의 날 선 지적
그러나 그 시점 이후 나온 언론보도에도 문화재청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같은 사안을 두고 두 기관이 왜 이렇게 상반된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피감사기관이 보이는 태도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참고 있거나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후 재감사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문화재청은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 형식을 띠긴 했지만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즉각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해명문의 행간에는 ‘왜 이런 감사결과가 지금 시점에 언론에 공표됐는지 모르겠다’는 억울함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숭례문 복원을 두고 감사원과 문화재청 사이에는 실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사원이 숭례문 복원공사에 대해 지적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붕기와의 원형 훼손. 감사원은 ‘공장제 기와는 내구성과 방수성능을 높이기 위해 표면처리하고 고압으로 성형해 매끈하고 무거운 반면, 전통기와의 경우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멋이 있고 가볍지만 수작업에 따른 한계로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의 품질기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며 ‘숭례문, 경복궁, 근정전 및 광화문 등 모든 문화재보수공사 시 공장제 기와가 사용됨으로써 전통기와는 생산의 맥이 끊기고 기능보유자에 의해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어 ‘문화재가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 공장제 기와, 전통기와의 품질기준 등을 따로 정해 운용하고 중요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서는 전통기와를 사용하도록 해 원형 복원 및 제조 명맥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문화재청은 이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지붕에 화재가 났을 때 진압이 어렵다는 것. 감사원은 ‘숭례문 복원 설계에서 기와와 지붕골격(적심목) 사이 공간을 흙(보토, 補土)이 아닌 생석회(강회다짐층)로 채우게 함으로써, 통풍 및 공기순환 장애로 인해 건물 내부 결로 등이 발생해 목조구조물의 부식을 심화시키거나 2008년 2월 10일에 있은 숭례문 화재의 경우처럼 화재 발생 시 두껍고 단단한 강회다짐층이 장애가 돼 내부 불길을 진화하기 곤란하게 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강회다짐층은 기와와 지붕골격 사이에 석회·흙·석비례(1대1대1)를 섞어 다져넣은 층으로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2층이 전소되다시피 한 숭례문. 문화재청은 타지 않은 목재와 구조물을 최대한 살려 복원을 하고 있다.
더욱이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2009년 7월 24일 숭례문복구자문단 기술분과 5차 회의에서 지붕 강회다짐층은 원형근거가 미약하고 시공 때 통풍 및 공기 순환이 어려워 건물 내부에 결로 등의 현상으로 목부재의 부식이 심화된다는 등의 자문의견이 있었는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감사원은 전통방식대로 강회다짐층 15㎝를 제외하고 흙으로 된 보토만 두껍게 설계하거나 보토에 강회를 혼합해 시공하는 등으로 설계해 전통기법에 따라 복구할 것을 문화재청에 주문했다. 감사원은 이런 사안을 5월 22일 문화재청에 통보하고 관련 공무원에게 ‘주의’를 줄 것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을 정리하면 전통기와를 쓰지 않아 숭례문의 원형을 훼손했으며 전통기법인 보토를 쓰지 않고 강회다짐층을 씀으로써 원형 훼손은 물론 목구조의 부식과 화재 진압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왜 옛날 일을 지금 일처럼 말하나
그렇다면 문화재청이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에 대해 전례 없이 즉각적인 반박자료를 내고 ‘부적절 설계’에 따른 원형 훼손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근거는 무엇일까. 문화재청에 대한 취재 결과 문화재청은 당초 설계 단계부터 복원된 숭례문 지붕에 전통기와를 얹기로 결정했으며, 강회다짐층은 감사원의 감사가 한창이던 2011년 11월 22일 숭례문복구자문단 17차 회의에서 ‘숭례문은 전통기법으로 복구한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배제했고, 그 대신 보토에 강회를 혼합해 시공토록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주문한 방식 그대로다. 실제 숭례문 복원 현장에 대한 확인 결과 6월 1일부터 시작된 숭례문 지붕 복원 보토공사는 감사원의 주문 그대로 보토에 강회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시공되고 있었으며 기와도 전통기와가 사용되고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011년 11월 22일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보토에 강회를 혼합하는 방식으로의 변경)을 감사원 측에 분명히 통보했는데 감사원이 뒤늦게 올 5월 들어 감사결과를 공개하면서 공법을 변경한 사실을 감사보고서상에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더욱이 보토 위에 강회다짐층을 올리는 방식은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 규정된 것으로 1960년대 이후 모든 문화재에 적용해왔기 때문에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2009년 7월 24일 숭례문복구자문단 기술분과 회의에서 강회다짐층의 각종 문제가 제기됐는데 문화재청이 무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말이 엇갈린다. 문화재청 측은 “무시한 게 아니라 그때부터 기존의 방법인 강회다짐층으로 시공할 것인지, 전통 방법대로 보토와 강회를 섞어 다짐한 후 시공할 것인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어 지속적으로 검토해왔다”며 “보토 공사는 완공시점 6~7개월 전에 하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한 후 결정하려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전통기와를 사용하지 않아 원형을 훼손했다’는 언론보도는 감사원의 애매한 감사발표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감사원은 1997년 숭례문 복원공사 때 교체된 기와와 경복궁 근정전(2003년), 광화문(2011년) 복원에 쓰인 공장제 기와에 대해 지적했지만, 강회다짐층의 원형훼손 문제와 섞이다 보니 각 언론들이 오해를 한 것이다.
감사원, “실적 부풀리기 아니다”
이번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전통기와.
사실 강회다짐층 설계와 마찬가지로 문화재청이 숭례문 복원에 공장제 기와를 썼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 1994년 개정된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한국표준협회가 1979년 제정한 KS규정에 적합하면 공장제 기와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라 1994년 이후에 복원공사가 진행된 문화재들은 대부분 공장제 기와를 써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통기와는 공장제 기와보다 5배 비싸다. 그런데도 숭례문은 복원의 상징적 가치 때문에 당초 설계 단계부터 전통기와를 선택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에 드러난 전통기와의 단점을 극복했다. 전통기와 문제는 숭례문에 사용할 전통기와가 재현돼 향후 국보, 보물 등 중요문화재 보수공사에 사용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문화재청이 첫 설계 단계부터 지붕에 전통기와를 쓰기로 하고, 강회다짐층은 지난해 11월 감사원의 요구대로 강회다짐층을 제거하기로 한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올 5월 22일 감사결과를 뒤늦게 발표하면서 그 내용은 빠뜨린 셈이다. 더욱이 법을 어긴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식는 권고사안이, 그것도 이미 해당 관청이 시정한 사안을 두고, 과연 ‘기관 통보’ 대상 또는 일반인 공개 대상이 되며 ‘주의’ 권고를 할 만한 것이냐는 부분도 의문이다. 그것도 숭례문 복원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감사원은 왜 이미 시정된 사안에 대해 뒤늦은 감사결과를 내놓은 걸까.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7일부터 12월 2일까지 20일간 외부 전문인력 6명을 포함한 감사인원 17명을 동원해 문화재청 및 서울특별시 등 4개 시도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는데, 감사결과보고서에는 ‘감사결과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감사대상기관과의 질문·답변 등을 통해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한 후 감사원의 내부 검토 과정을 거쳐 5월 3일 감사위원회의 의결로 감사결과를 최종 확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재 관련 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감사원이 대대적인 감사는 했고 뭔가 실적은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단단히 오버한 것 같다. 전문가들끼리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 그것도 법이나 규정을 위반한 것도 아닌 사안에 대해, 감사원이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재청이 이미 6개월 전에 감사원의 권고를 받아들였는데도 아직 시정이 안 된 것처럼 된 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신의원칙 위반이다. 지붕공사가 곧 시작되는 시점에 ‘우리는 감사한 대로 써서 통보하니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는 문화재청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감사 편의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감사를 하고 난 후 감사위원회를 통과해 보고서가 발표되기까지 5개월이 걸린다. 뒤늦게 낸 게 아니다. 감사보고서에 관련 문제들이 시정되었음을 밝혔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언급을 했으면 일이 좀 더 클리어(명쾌)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보나 주의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편의주의적 발상에서라든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정 부분을 밝히지 않고 감사보고서를 낸 것은 절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감사보고서가 나간 이후 확인취재를 한 기자들에겐 현재 상태에선 숭례문 복원 지붕공사와 관련해 화재 위험과 원형 훼손 우려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혔지만 잘 반영되지 않았다. 그것은 언론의 몫”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