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회와 주총에도 한 번도 안 나와
- 연간 9억 기부금, 한진 계열 기관에 집중
- 매년 수십억 순이익…청와대·정부 민영화 추진
- 노조 “알짜 공기업 특정 재벌에 넘겨주기”
인천공항급유시설㈜ 전경.
급유시설은 2012년 8월 13일 민간 운영기간 종료로 정부에 기부채납될 예정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나왔다. 국내 민자시설 중 거의 유일하게 고수익을 내는 기업이므로 공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당초엔 우세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청와대와 정부는 최근 급유시설 운영권의 민영화 추진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 측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 측이 그간 공공재인 급유시설을 자기 쌈짓돈처럼 운영해왔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민영화 추진에 대해서도 “사실상 특정 재벌인 대한항공에 넘겨주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인천국제공항 및 KTX 황금노선의 민영화 시도 등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는 국민 정서를 자극해왔다. 특히 급유시설은 인천국제공항이 존속하는 한 거의 영구적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유망 공기업. 이런 회사의 특혜 민영화 논란은 자칫 휘발성 강한 사안으로 비화될 수 있다. 노조, 정부, 대한항공-급유시설 측 이야기를 취재해봤다.
김만기 급유시설 노조위원장은 ‘신동아’에 “대한항공의 오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급유시설의 사내이사 또는 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매년 1억~1억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타갔다. 그러나 나는 조 회장이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조 회장은 등기이사면서 이사회와 주주총회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 이사회와 주총에도 안 왔다”고 덧붙였다.
급유시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2004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이 회사의 ‘이사’로, 2009년 3월부터 현재까지 ‘사내이사’로 등기돼 있었다.
2009년 2월부터 시행된 상법에서는 주식회사의 이사를 사내이사, 사외이사, 비상무이사로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구분하는 주된 기준은 회사의 상무(常務)에 종사하는지 여부가 된다. 사외이사는 회사에 상근하지 않고 이사회에만 출석해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이사를 의미한다. 사내이사는 회사에 상시적으로 출근(상근)하면서 회사의 업무(영업)에 참여하고 이사회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하는 이사를 지칭한다.
“이해가 안 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09년 3월부터 현재까지 3년여 동안 급유시설에 사내이사로 등기만 해둔 채 회사에 출근하거나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으면서 연봉 1억~1억5000만 원을 타갔다. 또한 조 회장은 200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7~8년여 동안 이사 또는 사내이사로 등기만 하고 이사회에는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으면서 같은 연봉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사내이사로 등기돼 고액연봉을 받아가면 응당 회사에 출근해 일해야 하고 이사회에도 책임감 있게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급유시설에는 조 회장 외에 대한항공 측에서 온 임원이 두 명 더 있다. 이 중 강모 급유시설 대표이사는 대한항공 본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조양호 회장은 왜 급유시설의 이사가 됐나?
“나도 그게 궁금해 회사에 질의했는데 답변을 안 하더라. 설명을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 조 회장의 담당업무는 무엇인가?
“책임경영이라고 들었다.”
▼ 대한항공 본부장급이 급유시설의 대표이사이고 조 회장이 급유시설의 이사인 건 조금 어색해 보이는데….
“그럴 것이다.”
▼ 사내이사는 꼭 상근해야 하나?
“회사에 출근해 일해야 하는 거다. 주기적으로 오셔야지. 매일 출근하는 것까지 강제하지는 않지만 자주 와서 회사 업무가 진행되는 것을 봐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 사내이사로 이름만 걸어둔 것으로 볼 여지는?
“용돈 드리는 듯이 드리는 것일 수도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전반적으로 조회장이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한다는 책임경영. 나는 이해가 안 되지만.”
▼ 급유시설의 강 대표는 매일 출근하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오는 것 같다. 출장 있으면 못 오고.”
▼ 출근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나?
“그건 아니다. 여기 안 올 땐 서울 대한항공 본사에서 일 보는 것 같더라.”
▼ 급유시설은 매출규모가 크고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중요 인프라(국정원 관리대상)인데 회사 수장이 가끔씩 출근해도 문제가 없나.
“나는 이해가 안 된다. 대표가 상근하면서 모든 회사 일을 세워나가야 하는데 그걸 안 하니까.”
대한항공과 급유시설 측은 ‘신동아’ 본사를 방문해 조 회장 건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 관계자는 “조 회장이 급유시설에서 받는 연봉은 1억~1억500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사내이사임에도 급유시설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밖에서 주로 업무를 관장한다. 그런데 (기업 총수가) 그 많은 회사를 다 출근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사회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과 관련해선 “그룹사들 주총과 겹쳐서…(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평창 일 때문에”라고 답했다. “올림픽 유치활동 이전에도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라는 추가질문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대표이사가 보고를 올린다”고 했다.
대한항공 측은 급유시설 대표가 대한항공 본부장을 겸직하는 문제에 대해 “급유시설 대표를 따로 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현 대표는 보안 및 정비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경영진의 잦은 비상근, 겸직 등은 급유시설을 이윤창출수단 정도로만 보는 데에서 기인한 현상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당장 드러나지 않는 공공성, 안전성 등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급유시설에선 항공유 유출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휘발성 항공유를 다량 저장하고 있는 회사 특성상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토지오염이 발생해 이를 처리하는 데 20억 원이 소요되기도 했다고 한다. 급유시설 노조가 5월 14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낸 공문은 2010년 2월 저장탱크 항공유 누출 사고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고 발생 시부터 처리 시까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 왔습니다. 저장탱크 내부 Dike가 포장이 되었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유형의 사고가 발생할 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급유시설의 주요 운영시스템인 자동제어시스템 일시 중단, Hydrant 펌프 고장, Air Compressor 고장 수리 지연, 설비 노후화로 인한 급유 일시중단 사태가 있었습니다. 운영기간 동안 예방정비를 통한 제대로 된 수선유지비 집행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지방항공청이 적정집행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급유시설 측은 “직원이 항공유 실험을 위한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으나 오염범위는 회사 부지 내의 일부에 국한됐고 관할 관청 신고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리를 완료했다”고 답했다.
“급유시설 돈으로 한진 계열 교육기관 기부 못마땅해”
인천공항급유시설㈜은 중요 보안시설로 분류된다.
2010년의 경우 9억 원의 기부금 중 6억1000만 원이 인하학원에, 9000만 원이 정석학원에 지원됐다. 이외 2억 원의 용처는 불우이웃돕기로 돼 있었다. 2009년엔 9억 원의 기부금 중 1억 원이 인하학원에, 7억 원이 정석학원에 들어갔다. 나머지 1억 원은 불우이웃돕기에 쓰였다. 2008년엔 9억 원의 기부금 중 4억 원이 인하학원에, 3억 원이 정석학원에, 1억 원이 정석물류학술재단으로 나갔다. 나머지 1억 원은 불우이웃돕기에 쓰였다.
김만기 노조위원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기부는 기부다워야 하는데 한진 계열 교육기관 쪽에 집중되는 건 기부답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노조가 기부금 사용내역을 제시해달라고 사측에 공문을 보냈으나 사측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급유시설 돈으로 한진 측에 기부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한진 계열 교육기관 지원하듯이 기부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학금 등 학생들을 위해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신동아’는 기부금 자료를 급유시설 측에 제시해 수치가 맞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급유시설 측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급유시설 관계자는 “한진 계열 기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군데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한진 계열에 집중됐다는 점에 대해선 “인천지역 위주로 기부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다. 그룹 산하 학원에 몰아주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진 계열사들이 그룹 산하 학원재단에 매년 200억~300억 원씩 지원하는데 급유시설 기부금도 이러한 성격의 돈이라는 것이다. 기부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에 대한 자료는 급유시설 측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기부하면서 용도를 지정해준 적은 없다”고 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자료에 따르면 급유시설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163억 원의 부당한 초과수익을 발생시켜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적 항공사보다 외국 항공사에 높은 단가를 적용해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기준을 위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급유시설 측은 “지적받은 초과수익 부분에 대해선 정산을 완료했다. 현재는 국적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 간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민영화로 급선회한 배경은?
8월 13일 급유시설이 정부에 기부채납 된 이후 처리 방향과 관련해 정부는 이 회사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매각한 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 회사를 직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신동아’에 “당초엔 급유시설의 공영화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급유시설 직영을 원했다고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서울지방항공청과 공동으로 KDI에 ‘인천공항 민자시설 처분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KDI는 보고서에서 “급유시설은 공공성 확보가 필요한 시설로 특정 항공사의 지배하에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 방침이 민영화 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기부채납받은 급유시설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매각한 뒤 급유시설의 운영권만을 따로 떼어내 민간 기업에 넘겨주는 안을 검토 중이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매각을 위한) 입찰을 하긴 할 거다. 어떤 식으로 할 건지는 확정이 안됐지만. 일정은 8월 13일 이전에 마칠 수 있도록 할 거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이 급유시설을 직접 운영하긴 힘들 거다”라며 민영화를 기정사실화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도 “급유시설의 소유권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일단 넘긴 뒤 운영권을 민간 입찰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직영에서 민영화로 바뀐 배경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취재 결과 급유시설 처리에는 청와대도 관여하고 있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수석실과 국정기획수석실에 보고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운영권 입찰이 진행되면 11년간 운영해온 대한항공 측이 절대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와 대한항공 측이 우호적 관계라는 점, 이 대통령과 조 회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점, 항공업무와는 무관하고 아무 역할을 한 일이 없지만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조양호 회장의 삼촌)의 셋째 사위인 점도 일각에서 회자되고 있다. 2009년의 경우 조 회장은 이 대통령의 미국, 일본, 러시아, 남미 순방에 동행했고 이 대통령은 대한항공 창사 40주년 기념식에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통령과 조 회장은 평창올림픽 유치에도 손발을 맞췄다.
한국정책금융공사는 4월 19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KAI 인수와 급유시설 유지는 대한항공 측이 전 사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안인데 비슷한 시기 정부 측으로부터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MB 정부와 친한 거 하고…”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측은 ‘신동아’에 “급유시설 운영권 매각을 추진해달라는 의사를 정부 측에 전달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어떻게 어디에다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에 “전화상이라든지. 기획재정부 담당국이나 국토부 쪽에”라고 말했다. 또한 대한항공 측은 이명박 정부와 관계가 좋지만 그것이 운영권 인수와 관계가 있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대한항공이 KAI도 인수하려고 한다는데….
“공식적인 것은 없다.”
▼ 목표가 두 개. KAI는 인수하고 급유시설은 계속하고….
“(웃음) 카이는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고 이야기만 솔솔 나오고 있으니까.”
▼ MB 정부와 관계가 좋잖나?
“그거 하고 관계가 있을까.”
▼ 대통령과 조양호 회장도….
“그거와 관계가 있을까. 그게 다 조건이 맞아야지. 우리가 인수하려고 하면 인수조건이 맞아야 하고.”
대한항공이 급유시설 유지에 온 힘을 쏟는 데는 운영 수익이 짭짤하다는 점 외에 다른 절실한 이유도 있다. 그것은 급유시설을 계속 운영해야 인천국제공항 취항 자사 항공기의 급유시설 사용료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급유시설 운영권을 잃고 사용료마저 오른다면 대한항공으로선 이중의 손실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김포, 부산, 제주공항의 경우 급유시설이 민영에서 공영으로 전환된 후 사용료가 711%, 73%, 220% 각각 뛰었다.
그러나 KAI 노조와 급유시설 노조는 모두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다. 김만기 급유시설 노조위원장은 “공영화만이 회사를 정상화하는 길”이라고 했다. 강용규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위원장은 “입찰로 가면 기존 운영하는 대한항공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서 “이건 국가가 부도덕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강 위원장과의 대화내용이다.
▼ 부도덕한 일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부는 2년 반 전 부실기업을 인천국제공항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반면 급유시설은 독점 수익을 누리는 초우량 공기업이다. 거기 말고 국제선 항공기가 어디에서 기름을 넣는가. 지금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가 급증해 국가재무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다. 유럽에서도 경제위기가 공공 부채에서 왔다고 한다. 이런데도 정부가 부실기업은 공기업에 떠넘기고 완전 알짜배기 공기업은 특정 재벌에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니 부도덕하다고 보는 거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측은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정부와 공사는 갑과 을의 관계니 대놓고 말을 못하는 거다. 속으로는 정부의 월권이라고 본다.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급유시설을 매각하기로 했으면 소유권을 갖게 되는 쪽이 직영이든 민영화든 결정하는 것이 맞다. 정부가 민영화를 강행하면 차기 정권에서 청문회나 특별감사를 받게 될지 모른다. 정부 실무진은 이 점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주요 선진국 공항 급유시설은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고 있으며 그것도 20년 이상 장기 임대 형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