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우리 아이가 얼마나 당해야 대책 세워줄 건가요?”

학교폭력 그 후 100일, 한 엄마의 외침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6-20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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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깝치지마!”… 주먹으로 얼굴 때리고 ‘인증샷’ 찍으려던 초5 아이들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열어주지 않고 ‘쉬쉬’하다 제2의 피해자만
    • “신변 보호해주겠다?” 해놓고 “단 1주일 무료 제공”
    • “도청 재심 청구하라?” 청구 양식도 없어
    • 권익위·교과부, 입 모아 “우리 권한 아니다”
    • “제2의 피해 막기 위해 끝까지 간다”
    6월 2일. 또 한 아이가 몸을 던졌다. 6개월 동안 대구에서만 벌써 8번째다.

    끊이지 않는 학교폭력 사건을 보며 대중은 우울증에, 무기력에, 그리고 공포에 빠진다. 쏟아지는 학교폭력 대책을 비웃듯 끔찍한 학교폭력은 그치지 않고 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 김미영(40·가명) 씨는 ‘그날’ 전만 해도 언론에 등장하는 폭력 사건을 보며 끌끌 혀를 차던 학부모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초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지훈이(11·가명)가 피해 당사자가 된 이후 그는 정부가 쏟아내는 학교폭력 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 또 학교는 얼마나 몸 사리기에 급급한지 몸소 깨달았다. 아이를 위해 엄마는 스스로 싸워야 했다.

    주먹으로 얼굴 2회 강타, 성장판 훼손 가능성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3월 8일. 간호사로 일하는 김 씨는 집에 가는 길에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엄마…애들이 나 막 때렸어. 엉엉.”

    아이의 얼굴은 참혹했다. 코 주변이 퉁퉁 부어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온몸에 흙이 묻어 있었다. 동네 정형외과에서는 “상황이 심각하다”며 빨리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종합병원에 가서 CT촬영 등 정밀 검사를 했다. 전치 2주. 의사는 “코 주변 성장판까지 다친 것 같다. 얼굴은 크는데 코는 안 크는 기형이 될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하고, 만약 코 주변만 자라지 않는다면 훗날 성형수술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지훈이에게 당시 상황을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은 반 남자아이 4명이 운동장 구석으로 지훈이를 불렀다. A가 지훈이 앞에 섰고 나머지 3명은 그 뒤에 쪼르르 섰다. A는 지훈이의 어깨를 밀치고 배를 가격했다. 지훈이가 배를 잡고 고꾸라지자 A의 주먹이 지훈이의 코뼈를 강타했다. A가 옆에 서 있던 B에게 ‘인증샷’을 찍으라고 하자 B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 촬영을 시작했다. 지훈이가 “찍지 마”라며 B의 몸을 치자, B는 메고 있던 가방과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려놓고 지훈이 얼굴을 다시 한 번 주먹으로 가격했다. 얼굴 같은 부분을 두 번이나 가격당한 지훈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를 떴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당해야 대책 세워줄 건가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보서. 학교폭력에 가담한 아이 7명은 모두 서면사과와 접촉 및 협박 금지, 특별교육이수 등 처분을 받았다. 그중 5명은 학급이 교체됐지만 전학 처분을 받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왜 아이들은 지훈이를 때렸을까? 지훈이는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해 친구도 많다. 흔히 떠올리는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모습과는 다르다. 훗날 아이들에게 때린 이유를 물었더니 “얘가 깝쳤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A는 교실에서 지훈이에게 “야, 길 비켜, 왕따야”라고 했을 때 지훈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돼지멍충아!”라고 대응하자 화가 나서 혼내주고 싶었다는 것.

    김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는 사업 때문에 혼자 호주에 머무는 남편 역할까지 도맡아 아이를 길러왔다. 새 학기 둘째 날, 생전 안 그러던 아이가 “엄마, 나 학교 안 가면 안돼?”라고 물었을 때 김 씨는 아이를 달래 학교를 보냈다. 그냥 새로운 반이 낯설어서인 줄 알았지만 반 아이들 모두는 이 거친 남자아이 5~7명의 욕설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 아이들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김 씨는 먼저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임은 “하교 후에 벌어진 일이라 몰랐다”면서 “믿고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후, A의 엄마가 집 앞에 찾아왔다.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라며 치료비 몇 만 원을 건네는 A의 엄마를 보며 ‘그래, 남자애들 키우다보면 이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래 털어버리자.’ 김 씨는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특별교육 3~5일’이 처벌 전부

    다음 날 학교를 안 가겠다는 아이를 끝내 달래 보냈다. 아이에게 학교생활을 전해 들을 때마다 엄마는 괴로웠다. 점심시간, 지훈이가 식당에서 나오는데 다짜고짜 아이들이 “X발”이라고 욕을 했다. 며칠 후에 아이들은 지훈이를 교실 바닥에 눕혀놓고 “샌드위치 만들자”며 깔아뭉갰다. 지훈이와 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까지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김 씨가 학교에 전화해도 담임은 “아이들 혼을 내줬어요. 잘 돌보겠습니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4월 24일, 결국 지훈이의 가장 친한 친구 인철이(11·가명)가 아이들에게 심하게 맞았다. 인철이를 때린 아이 대다수가 지훈이 폭행에 가담한 아이들이었다.

    인철이 엄마는 직접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본 적 있는 서울 지역 고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이미 폭력이 상습적인 단계라고 판단하고 학교에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폭대위)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폭대위란 학교장과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이 학교 내 폭력 사건에 대해 의논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기구다.

    재심청구 양식도 없어…

    하지만 교장은 “아이들이 인철이를 때릴 때 인철이도 1명한테 주먹을 휘둘렀다. 이게 정당방위가 안 될 수도 있다”며 화해를 유도했다. 인철이를 때린 아이 부모들은 전화를 해 “왜 일을 키웁니까? 남자애들끼리 크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라며 항의했다. 하루는 교장이 인철이를 교장실에 불러 가해 학생들 앞에서 “이 친구들을 용서하겠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마지못해 “네”하고 대답했다.

    지훈이와 친하다는 이유로 인철이까지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씨는 가슴이 무너졌다. 처음 지훈이가 다쳤을 때 제대로 해결했다면 인철이의 피해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5월 3일 학교 도서관에서 인철이 엄마의 요청으로 폭대위가 열렸을 때 김 씨도 참석했다. 인철이를 때린 아이들과 지훈이를 때린 아이 2명, 모두 7명이 조사를 받았다. 폭대위가 진행될수록 피해 학부모들은 답답함만 느꼈다. 인철이 엄마에 따르면 폭대위원장은 “인철이가 폭력을 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인철이의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가해 학생들은 “우리도 억울해요”라고 말했다. 인철이 엄마와 김 씨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가해학생들을 전학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가해자 부모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며 묵살당했다.

    ‘서면조사, 접촉 및 협박 금지, 특별교육 3~5일.’

    가해자에게 내려진 조치다. 그나마 인철이를 때린 아이들은 다른 반으로 옮겼지만, 지훈이를 때린 A와 B는 같은 반에 남게 됐다. 김 씨는 인철이 사건을 계기로 열린 폭대위인 만큼 지훈이 사건이 소홀히 다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측은 학부모가 신청할 경우 피해 아이들에게 심리적 상담 및 조언과 치료, 학급 교체, 일시보호 등을 해주겠다고 서면 통보했다. 김 씨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식으로 지훈이 사건에 대한 폭대위를 다시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학생 측에서 요청을 하면 폭대위를 무조건 열어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폭대위에 대해 안내받은 적도 없었다. 학교 측은 “인철이 관련 폭대위에서 지훈이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논의했다”며 별도 폭대위 구성을 거절했다.

    김 씨는 5월 1일부터 시행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에 따라 폭대위의 조치에 이의가 있을 때 도에서 운영하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이하 지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 김 씨는 경기도청에 재심청구서를 보내고 경기도교육청, 국민권익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관련 사항 내용증명과 탄원서를 보냈다. 경기도청 아동청소년과에서는 “법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준비가 안 됐다”며 당황했다. 법은 시행됐지만 재심 청구 방법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재심청구 공문서식조차 없었던 것. 결국 김 씨는 혼자 A4 용지에 피해자 이름, 사건 정황, 요구 사항 등 5개 항목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스스로 만들었다. 재심을 청구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6월 12일 경기도청 측은 “아직 지역위원회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돼서 다른 시도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경기교육청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역시 학교 내 폭대위 결정사항에 불만이 있다면 경기도청에 재심을 청구하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교육청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집에 온 지훈이에게 “오늘 장학사 선생님 만났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김 씨는 “장학사는 사건 당사자는 만나지도 않고 학교 측 이야기만 듣고 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 날, 교감과 담임, 인성부장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온 교감은 “저희가 잘하겠습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좀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안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익위에서는 “마음은 상하시겠지만 저희 권한이 아니다”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과부에서는 이마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김 씨가 직접 전화를 해보니 “이미 저희 일이 아니라 경기교육청으로 넘어갔네요”라는 안내만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지훈이네 반 담임교사가 바뀌었다. ‘건강상의 이유’라고만 했다. 새로운 담임은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여교사였다. 전화로 물었더니 담임은 두 달 전 지훈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과정을 모두 설명했더니 그제야 “아, 그랬나요? 제가 잘 알아보고 지도할게요”라고 답했다.

    학교, 교과부, 교육청…돌고 도는 변명

    폭대위에서는 학교 측이 등하굣길에 아이를 보호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학교 측에서 “아이의 신변을 보호해주겠다”며 서류 하나를 보냈다. 한 보안업체가 아이의 등하굣길에 동행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안 그래도 직장 때문에 지훈이를 직접 등하교시키지 못해 걱정하던 차였다. 김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등하교를 도와달라고 신청서를 썼다. 하지만 보안업체에서는 “저희 서비스는 사회 공익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1주일만 제공된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학교폭력예방법 16조에 따라 학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학교 측에서는 “아, 1주일밖에 안 됩니까?”라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김 씨는 “학교 폭대위에서는 ‘아이 신변 보호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해놓고 고작 1주일이라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루는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온 아이가 “엄마, 우울증이 뭐야? 내가 우울증이야?”라고 물었다. 선생님이 준 설문조사 가장 윗부분에 ‘우울증 진단’이란 말이 있었단다. 김 씨는 치를 떨었다. 꼭 세상 모두가 그를 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김 씨는 지훈이를 때린 아이 5명을 경찰서에 고소했다. 지훈이 역시 고소인 자격으로 3시간 조사를 받았다. 아이들의 처벌을 바라서가 아니다. 단,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자기들이 한 행동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훈이 폭행 장면을 카메라로 찍으려다 지훈이의 코를 두 번째로 강타한 B가 지훈이를 맞고소했다. 카메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지훈이가 B를 밀었다는 혐의였다. 김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 ‘너도 당해봐’ 하는 거겠죠. 이 아이들이 이번 기회에라도 진짜 반성하길 바랐던 제가 너무 순진한 걸까요?”

    “다른 학교에도 소문 다 나서 전학 갈 수도 없다”

    “오늘은 무슨 일 없었니?”

    아이의 하교시간에 맞춰 김 씨는 늘 전화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전화할 시간이 아닌데 아이의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6월 중순, 결국 김 씨는 일을 그만뒀다.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건강도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훈이는 여전히 자기를 때린 아이들과 같은 반에서 생활한다. 하루는 하교하려고 신발을 갈아 신는데 B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매섭게 째려보며 말하는 B 때문에 지훈이는 멈칫했다. 전학을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이 지역 초등학교에 지훈이 사건이 다 알려졌다. 섣불리 이사를 갔다가 또다시 폭행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피하는 대신,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결심했다. 김 씨는 “이건 우리 아들이 폭력을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 가해를 한 아이들과 쉬쉬하던 학교에 본때를 보여줘야 인철이 같은 제2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학교폭력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런 아이들 볼 때마다 ‘진작 잡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놓고 학교폭력 사건이 생기면 다들 ‘남자애들끼리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않으냐’고 해요. 지금 모른 척했던 작은 폭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가 장담할 수 있나요? 저는 끝까지 싸울 거예요. 우리 아들에게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줄 거예요.”

    김 씨의 눈에는 오랫동안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눈물방울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폭력 해결 과정 담은 책 ‘주먹을 꼭 써야 할까?’ 작가 이남석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당해야 대책 세워줄 건가요?”
    정부는 2월 5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 장관회의를 열고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학교장과 교사의 역할 및 책임 강화, 신고·조사체계 개선 및 가해·피해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 등 7개 직접 대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이 실효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스스로 ‘학교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는 이남석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연구원이 쓴 학교폭력에 대한 책 ‘주먹을 꼭 써야할까?’는 중3 일진인 ‘종훈’이 태껸 사범 ‘우경’의 필살기를 배우기 위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학교폭력을 반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씨는 청소년 심리학자로서 청소년의 성, 자아, 자기주도학습 등에 대해 강연하지만 폭력 문제에 관해서는 강연 대신 토론회를 연다.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소크라테스식의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그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 이 씨는 “당사자인 학생도, 교사도, 정부도 모두 학교폭력을 3인칭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게 학교폭력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이들한테 ‘넌 우정이 뭐라고 생각하니?’ 질문하면 우정의 의미에 대해 거창한 ‘정답’을 말하지만, ‘넌 우정을 쌓기 위해 뭘 하니?’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100분토론’에 출연한 청소년은 ‘성적 위주 서열주의가 학교폭력 원인입니다’라면서 ‘우리를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주실 건가요?’하고 정부와 선생님에게 따져요. 아니, 당사자는 학생들인데 왜 남이 대책을 세워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피해자를 과도하게 보호할 게 아니라 ‘너는 걔가 네 인생을 이렇게 짓밟을 동안 뭘 하고 있었니?’ 하고 물어야 하고 가해자에게 ‘넌 집안이 불우해서 그렇구나’ 하고 폭력의 이유를 찾아주기보다 ‘넌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니? 네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변화해야 하니?’라고 물어야 합니다.”

    실제 그는 서울 한 여고에서 아이를 상담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진’은 짝이 된 같은 반 친구에게 “수학 시험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강요했다. 여고생은 고민 끝에 용기 내 “너에게 수학 답안지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수학 공부를 도와줄 수는 있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일진은 욕설을 하며 여고생을 위협했지만, 결국 짝에게 수학 공부 도움을 받았다.

    그는 언론, 학교 상담 등에서 학교폭력을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보고 학교폭력의 원인을 찾는 것을 비판했다. 실제 아이들을 상담하다보면 피해자도 분노하기는커녕 “가해자는 환경이 불우해서 그래요” “제가 맞을 만해서 그래요”라고 학교폭력을 용인하는 얘기를 한다는 것.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반항 대신 자살을 선택하는 것 역시 언론 등에 의한 학습 효과라고 지적했다.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비공식적으로 힘의 서열을 매긴다. 특히 키가 작고 왜소해 주로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들은 키가 커지면서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폭력의 피해자, 방관자일 때 “내가 밟지 않으면 도리어 밟힌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다. 폭력사건에 대해 어른들이 “남자애들은 다 그러면서 큰다” “우리 때는 더 심했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이 씨는 “이전에는 몇몇 아이의 문제였다면 지금 학교폭력은 조직화, 지능화됐다”고 지적했다.

    지능화, 조직화된 학교폭력, 사소하게 넘어가면 안돼

    “지금 학교폭력에서 아이를 때린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뒤에는 수십 수백 명의 ‘빽’이 있고, 그 폭력에 동조하는 ‘방관자’가 있습니다. 상담 중 만난 한 고교 일진은 ‘저희 누나는 창녀고 전 고아예요. 전 불행하니까 저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렇게 자기 불행을 상품화해서 폭력을 정당화할 정도로 아이들이 영악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아무리 작은 학교폭력이라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건 더 큰 폭력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는 현재의 폭력 대책은‘폭력’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의 제목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둔감해진다는 것. 그는 “사실 폭력 대책은 행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학교폭력의 해결책은 지속적인 문학, 예술, 체육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열화가 학교폭력 원인이라면 서열화의 반대, 창의성으로 학교폭력을 해결해야죠. 지속적으로 예술 경험에 노출해서 폭력 외에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게 만드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무조건 함께 체육을 하게 하면 폭력이 사라진다’는 식의 획일화된 해결 방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수학 수업 한번 듣는다고 아이들이 수학 영재가 되지 않듯, 폭력사건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만능키를 찾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장기간 아이들에게 좋은 책, 영화, 뮤지컬 등을 보여주고 함께 운동에 참여하게 해서 스스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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