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병폐 벗어나려는 몸부림
물을 마시던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곧 물잔을 내려놓았다.
“옛 가야병원 부지에 방배종합행정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있어요. 설계 도면을 보니까 전기실, 기계실, 설비실 모두 지하 5층에 있더라고요. 당장 전기실을 지상 2층으로 옮기라고 지시했어요. 고건 시장 시절에 가로등·신호등 침수로 지나가던 행인 수십 명이 감전사한 게 불과 10년 전(정확하게는 2001년 7월)입니다. 수십 년 일한 공무원들도 잊어버리고 있어요.”
진 구청장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문화관광국장과 재무국장,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 등을 지내고 2009년 퇴직해 이듬해 6·2지방선거에서 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런 그의 30년 행정 경험은 ‘주민 중심 행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직원들에게는 세간 살림을 너무 잘 아는 시어머니 같았다. 3시간가량 인터뷰를 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은 수시로 구청장실로 올라와 답변을 했다. ‘전기 설비 기준’ ‘서울시내 빗물펌프장 수’ ‘법인카드 사용 기준’ 등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변을 주저하면 이내 구청장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런 식이었다.
“○○계장. 당신은 관내 전기 책임자예요. 당신이 모르면 관내에서 누가 압니까. 그걸 꼭 법규나 자료를 찾아야 알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공무원 수준이 그 정도예요?”
흥미로운 것은 진 구청장은 정작 담당자 앞에선 날 선 시어머니였지만,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다소 후한 평가를 한다는 점이다.
“2년 지나면서 행정편의주의와 관료제의 병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거 같아요. 이제 적응이 되는 거죠. 적잖은 갈등도 있었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몸부림으로 생각해요. 이런 변화가 없으면 품격 있는 행정 서비스는 요원합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1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에서 행복지수는 △개인 건강 △재정상태 △주위 친지·친구와의 관계 등 인간관계 △가정·사회생활 만족도를 평균해 산출했다. 서초구에 이어 2위는 용산구(7.15점), 3위는 동작구(7.06점)였다. 양천구(6.83점)는 8위, 강남구(6.57점)는 16위였다. 서초구는 자치구 중 기대수명(남자 83.1세, 여자 88.1세)이 가장 높고, 대졸 가구주가 73.6%로 학력 수준도 가장 높다. 구민들의 행정 서비스 요구 수준도 그만큼 높고 다양하기 마련이다.
진 구청장이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기자는 “공무원이 바뀌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그의 말에서 ‘행복지수 1위’가 된 이유를 찾았다. 서초구가 권역별 노인종합복지관을 짓고 방문보건 서비스를 한 것이나, ‘둘째아이 돌보미 파견 사업’을 전국 최초로 실시해 합계 출산율을 1.07명(2009년 0.93명)으로 끌어올린 것도 따지고 보면 주민 불만을 현장에서 듣고 현안회의를 통해 실행파일을 만든 ‘작품’인 셈이다. 주민의 욕구에 맞는 행정서비스로 평가받는 입학정보센터 운영과 전자도서관 개관, 강남대로 금연거리 지정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취임 후 제가 ‘행복지수 1위 자치구’가 되자고 했을 때는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매주 현안회의 때 아이디어를 내놓다보니 행정그물도 촘촘하게 잘 짜인 거 같아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래도 아직 멀었어요. 주민들 불만이 없어질 때까지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끌고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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