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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블러드 주얼리(blood jewelry)가 빚어낸 참혹한 세상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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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람의 중심지이던 이스턴 주에는 슬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더러운 웅덩이에서 다이아몬드를 채로 걸러냈다.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민간인을 다이아몬드 채굴에 강제로 동원했다. 심지어 4세 아이도 채굴에 동원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채굴해야 했다. 한국 돈으로 100원도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그중에는 10대 소년이던 코바도 있었다. 내전이 막 끝난 2001년 필자와 만난 코바는 원주민 후손인데, 형과 함께 이 채굴에 강제로 동원됐다. 가냘픈 체구인 그가 감당했던 노동의 강도는 엄청났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곳에서 일했어요. 하루에 한 끼밖에 주지 않아 배가 고팠지만 군인들이 총을 들고 위협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형이 쓰러졌다.

“군인들이 형에게 약을 먹였어요. 형은 잠시 후 깨어나 확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일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형의 눈이 무서웠고 옆에 있던 군인들도 무서웠습니다. 약을 먹고도 쓰러지면 다음번에는 형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이 먹은 약은 마약일 것이다.



“가끔 채굴한 다이아몬드를 몰래 숨겨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들키면 군인들은 그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우리에게 다이아몬드를 훔치면 이렇게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코바는 손 모양이 이상하게 변형돼 있었다. 손이 물에 불어 망가진 것이다. 그는 하얀 눈동자를 굴리며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비싼 돌멩이에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시에라리온 밖에서 자신들이 캐낸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팔려나가는지 모르는 이 천진난만한 아프리카 소년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잘 몰랐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선물하는 고귀한 보석”이라고 설명해주자 그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아름다운 신부에게 선물로 주나요? 우리 부족에는 이런 전설이 있어요. 피를 본 물건을 받으면 반드시 저주가 내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 피를 흘리고 죽으면 그 사람의 물건은 모두 버려요. 다이아몬드는 엄청난 피를 묻힌 저주의 물건입니다. 우리 시에라리온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라고 말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의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세계인에게 각인한 영화다. 1999년의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한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졌을 때 무기구입을 위해 밀수거래를 일삼던 용병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주인공이다.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솔로몬이 유례없이 크고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해 숨긴다. 아처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시에라리온을 벗어나려는 솔로몬 가족을 위해 운명을 건 위험한 모험에 나선다. 2007년 개봉한 이 영화는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혹상을 담아 전 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를 본 상당수 서구인이 결혼 예물을 구입할 때 다이아몬드가 시에라리온산인지, 아닌지를 물었다고 한다. 시에라리온산 다이아몬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 자신들의 결혼식에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증표로 교환하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시에라리온 말고도 여러 나라가 ‘분쟁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분쟁 다이아몬드란 전쟁 중에 불법으로 채굴된 다이아몬드를 지칭한다. 보석을 판매한 돈으로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사상자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의 중심에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을 비롯해 앙골라,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 자이레, 짐바브웨 등이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통해 전비를 충당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살육과 비극이 벌어졌다. 다이아몬드가 없었더라면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에 눈이 먼 무장 세력들로 인해 피를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신부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고귀한 보석 다이아몬드가 캠벨이 법정에서 말한 것처럼 더러운 돌멩이가 아닐 수 없다.

군사독재의 버팀목, 보석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 탄 슈웨 장군.

보석은 군사정권의 독재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통해 미얀마 군부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전 세계가 군부를 비난하며 경제제재로 옥죄었지만 그들은 끄떡없었다. 미얀마에서는 루비가 나온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루비의 90%가 미얀마산이다. 사파이어, 감람석, 첨정석 등도 미얀마산이 전 세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보석은 미얀마의 세 번째 수출 품목으로 수출 규모만도 2억9700만 달러에 달한다. 미얀마산 루비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고 특히 미얀마 모곡 계곡에서 나오는 ‘비둘기의 피’라고 불리는 루비는 어느 보석상이라도 군침을 흘리는 희귀한 보석이다. 최고급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싸다.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래된 8.62캐럿(약 1.7g)짜리 미얀마산 루비가 370만 달러에 팔린 적도 있다. 루비는 미얀마 군부가 독재 통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한‘돈줄’중 하나다. 아무리 세계가 경제제재에 나서더라도 루비를 쥐고 있는 한 국내에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얀마 보석의 공식 거래는 모두 군정이 맡고 있다. 2006년 있었던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의 딸 탄 다르의 초호화판 결혼식은 정말 가관이었다. 신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루비와 다이아몬드 등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이었다. 값비싼 보석과 사치스러운 차량이 동원된 이 결혼식 비용은 50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혼식에 참석한 미얀마 현지 언론인은 익명보도를 전제로 “참석자들이 호화 결혼식에 깜짝 놀랐다”며 “사람들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이 나라 어디에서 이 많은 돈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며 수군거렸다”고 전했다. 독재자의 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미얀마산 루비는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루 일당으로 800원가량을 받으면서 캐낸 것이다. 미얀마 국민의 피와 땀을 짜내 캐낸 루비로 독재자의 딸이 아무리 한껏 치장한들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미얀마의 대표적 루비 생산지 모곡 출신의 한 업자는 “관리자들은 광부들이 힘을 내게 하기 위해 식수에 마약을 섞어 먹인다”고 말했다. 비정부기구(NGO)인 ‘버마 아세안 대안 네트워크’의 활동가 데비 스토타르트는 “하루 일이 끝나면 대가로 헤로인을 준다. 젊은이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보석광산을 찾아간다. 그러곤 죽어서 돌아온다”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광산지역에서는 헤로인 투여 때 주삿바늘을 함께 사용해 에이즈 발병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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