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블러드 주얼리(blood jewelry)가 빚어낸 참혹한 세상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입력2012-06-21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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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시에라리온 노동자가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고있다.

    기원전부터 보석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나 탐을 내는 보석은 빛과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현혹한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영롱하고 찬란한 빛을 내뿜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는 사랑과 정절의 상징이며 부유함과 화려함을 나타낸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말도 있다. 신부에게 다이아몬드는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함께 결혼의 필수품이다.

    4대 보석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는 제가끔 다른 빛깔을 내는데, 이들은 모두 값이 비싸다. 그러나 이 보석들이 묻혀 있는 곳은 하나같이 평화롭지 못하다. 이 보석들로 인해 피바람이 부는 전쟁터가 돼버렸다. 아름다운 돌덩어리 뒤에 피가 묻어 있음을 알면 보석이 내뿜는 광채가 마냥 아름다워만 보일까?

    더러운 돌멩이

    5월 3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산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에서 재판이 열렸는데, 찰스 테일러(64)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저지른 범죄로 징역 50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테일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 내전을 사주하고 학살을 도운 책임이 있다”며 만장일치로 이같이 판결했다. 이 재판이 화제를 불러 모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2010년 8월, 테일러의 재판에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증언대에 선 게 그것이다. 패션쇼 혹은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유명한 모델이 왜 재판정에 나타난 걸까. 테일러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때문이었다. 캠벨은 증인석에서 테일러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캠벨이 증언하면서 ‘더러운 돌멩이’라고 부른 다이아몬드가 바로 테일러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시에라리온 내전을 일으킨 배후다. 다이아몬드 이권은 그가 내전에 개입한 주된 이유다.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산지. 원래 이 나라에 살던 원주민에게 다이아몬드는 그저 반짝이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이 돌멩이가 그렇게 값나가는 물건인지 모르던 시절은 밀림에서 사냥이나 하고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던 평화로운 때였다. 180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이곳 시에라리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시에라리온의 수도 이름이 ‘프리타운’인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이후 시에라리온엔 엄청난 변화가 밀려왔다. 영국 왕실은 1808년 프리타운을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1818년 영국은 황금해안과 서아프리카 전역을 통치하는 ‘총독부’를 창설하고 총독부의 ‘총본부’를 프리타운에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후인 1935년,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이 시에라리온에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은 다이아몬드의 채굴권을 독점하면서 자국 기업인 드비어스(De Beers)에 98년간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주었다. 원주민과 새로 정착한 해방된 노예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고 벌어졌으나 영국의 관심은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독점하는 데 쏠려 있었다. 1961년 시에라리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은 독점권을 유지하면서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를 캐갔다. 이즈음부터 시에라리온 사람들도 다이아몬드가 가치가 높은 보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며, 이 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났다.



    테일러는 1991~2001년 벌어진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했다. 라이베리아 대통령이던 그는 혁명연합전선(RUF)이라는 이름의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돈과 무기를 공급해 시에라리온을 잔인한 전쟁터로 만들었다. 전쟁은 돈과 무기가 없으면 일으킬 수도, 지속할 수도 없다. 테일러의 지원은 내전이 10년간 계속된 원인 중 하나였다. 그가 이 내전에 발을 담근 이유는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내전이 시작되기 전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는 기업은 드비어스였다. 하지만 이 회사에 채굴권을 준 기존 정부가 없어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계약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게 테일러의 계산이었다. 내전은 참혹했다. 12만 명이 죽었다. 테일러가 지원한 반군은 수천 명에 달하는 민간인의 팔다리를 자르는 만행도 저질렀다. 테일러는 열 살 안팎의 소년·소녀까지 병사로 동원해 민간인의 신체를 도려내는 잔혹행위를 시켰다. 팔과 다리를 자르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쟁 범죄다. 지금도 시에라리온에는 팔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고 있다. 테일러는 이 내전에 개입한 대가로 ‘피의 다이아몬드’를 캐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은 라이베리아 내 반대세력에 의해 2003년 축출돼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통해 축재한 돈으로 호화생활을 즐기던 그는 2006년 3월 체포됐으며 이번 재판을 통해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50년형을 선고받았다.

    다이아몬드에 홀린 반란군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를 노린 것은 테일러뿐이 아니다. 1991년 시에라리온에서는 부패한 정권에 대항한 학생들의 반정부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이 학생들이 모여 만든 것이 바로 테일러가 지원한 RUF다. 이 무장투쟁을 총지휘한 인물은 포데이 산코(Foday Sankoh). 그가 1991년 3월 시에라리온 동부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최초의 공격에 나선 게 내전의 시작이다.

    반란군은 정의로운 것처럼 보였다. “노예도 주인도 없다” “부귀와 권력은 인민에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의를 드러냈다. 국민의 지지도 얻었다. 반란군은 개전 한 달 만에 다이아몬드가 풍부하게 매장된 광산 지역인 이스턴 주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도 영국, 테일러와 똑같았다. 국민의 염원은 뒤로하고 다이아몬드에 홀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영국 정부와 다이아몬드의 채굴권을 소유한 드비어스였다. 드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회사다. 또한 이 회사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주로 시에라리온에서 얻었다. 영국과 드비어스가 찾은 해결책은 간단했다. 이제껏 지원했던 시에라리온 정부를 버리고 RUF와 손을 잡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RUF와 테일러에게도 캐낸 다이아몬드를 팔 루트가 필요했다. 영국과 드비어스는 RUF를 향해 추파를 던졌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용병과 무기를 RUF에게 대준 것. 시에라리온 내전이 10년 동안 이어진 것은 반군 뒤에 이렇듯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바람의 중심지이던 이스턴 주에는 슬픈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더러운 웅덩이에서 다이아몬드를 채로 걸러냈다.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민간인을 다이아몬드 채굴에 강제로 동원했다. 심지어 4세 아이도 채굴에 동원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채굴해야 했다. 한국 돈으로 100원도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그중에는 10대 소년이던 코바도 있었다. 내전이 막 끝난 2001년 필자와 만난 코바는 원주민 후손인데, 형과 함께 이 채굴에 강제로 동원됐다. 가냘픈 체구인 그가 감당했던 노동의 강도는 엄청났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곳에서 일했어요. 하루에 한 끼밖에 주지 않아 배가 고팠지만 군인들이 총을 들고 위협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형이 쓰러졌다.

    “군인들이 형에게 약을 먹였어요. 형은 잠시 후 깨어나 확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일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형의 눈이 무서웠고 옆에 있던 군인들도 무서웠습니다. 약을 먹고도 쓰러지면 다음번에는 형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이 먹은 약은 마약일 것이다.

    “가끔 채굴한 다이아몬드를 몰래 숨겨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들키면 군인들은 그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우리에게 다이아몬드를 훔치면 이렇게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코바는 손 모양이 이상하게 변형돼 있었다. 손이 물에 불어 망가진 것이다. 그는 하얀 눈동자를 굴리며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비싼 돌멩이에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시에라리온 밖에서 자신들이 캐낸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팔려나가는지 모르는 이 천진난만한 아프리카 소년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잘 몰랐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선물하는 고귀한 보석”이라고 설명해주자 그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아름다운 신부에게 선물로 주나요? 우리 부족에는 이런 전설이 있어요. 피를 본 물건을 받으면 반드시 저주가 내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 피를 흘리고 죽으면 그 사람의 물건은 모두 버려요. 다이아몬드는 엄청난 피를 묻힌 저주의 물건입니다. 우리 시에라리온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라고 말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의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세계인에게 각인한 영화다. 1999년의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한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졌을 때 무기구입을 위해 밀수거래를 일삼던 용병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주인공이다.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솔로몬이 유례없이 크고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해 숨긴다. 아처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시에라리온을 벗어나려는 솔로몬 가족을 위해 운명을 건 위험한 모험에 나선다. 2007년 개봉한 이 영화는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혹상을 담아 전 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를 본 상당수 서구인이 결혼 예물을 구입할 때 다이아몬드가 시에라리온산인지, 아닌지를 물었다고 한다. 시에라리온산 다이아몬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 자신들의 결혼식에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사랑의 증표로 교환하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시에라리온 말고도 여러 나라가 ‘분쟁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분쟁 다이아몬드란 전쟁 중에 불법으로 채굴된 다이아몬드를 지칭한다. 보석을 판매한 돈으로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사상자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의 중심에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을 비롯해 앙골라,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 자이레, 짐바브웨 등이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통해 전비를 충당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살육과 비극이 벌어졌다. 다이아몬드가 없었더라면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돈에 눈이 먼 무장 세력들로 인해 피를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신부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고귀한 보석 다이아몬드가 캠벨이 법정에서 말한 것처럼 더러운 돌멩이가 아닐 수 없다.

    군사독재의 버팀목, 보석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 탄 슈웨 장군.

    보석은 군사정권의 독재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통해 미얀마 군부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전 세계가 군부를 비난하며 경제제재로 옥죄었지만 그들은 끄떡없었다. 미얀마에서는 루비가 나온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루비의 90%가 미얀마산이다. 사파이어, 감람석, 첨정석 등도 미얀마산이 전 세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보석은 미얀마의 세 번째 수출 품목으로 수출 규모만도 2억9700만 달러에 달한다. 미얀마산 루비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고 특히 미얀마 모곡 계곡에서 나오는 ‘비둘기의 피’라고 불리는 루비는 어느 보석상이라도 군침을 흘리는 희귀한 보석이다. 최고급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싸다.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래된 8.62캐럿(약 1.7g)짜리 미얀마산 루비가 370만 달러에 팔린 적도 있다. 루비는 미얀마 군부가 독재 통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한‘돈줄’중 하나다. 아무리 세계가 경제제재에 나서더라도 루비를 쥐고 있는 한 국내에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얀마 보석의 공식 거래는 모두 군정이 맡고 있다. 2006년 있었던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의 딸 탄 다르의 초호화판 결혼식은 정말 가관이었다. 신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루비와 다이아몬드 등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이었다. 값비싼 보석과 사치스러운 차량이 동원된 이 결혼식 비용은 50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혼식에 참석한 미얀마 현지 언론인은 익명보도를 전제로 “참석자들이 호화 결혼식에 깜짝 놀랐다”며 “사람들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이 나라 어디에서 이 많은 돈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며 수군거렸다”고 전했다. 독재자의 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미얀마산 루비는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루 일당으로 800원가량을 받으면서 캐낸 것이다. 미얀마 국민의 피와 땀을 짜내 캐낸 루비로 독재자의 딸이 아무리 한껏 치장한들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미얀마의 대표적 루비 생산지 모곡 출신의 한 업자는 “관리자들은 광부들이 힘을 내게 하기 위해 식수에 마약을 섞어 먹인다”고 말했다. 비정부기구(NGO)인 ‘버마 아세안 대안 네트워크’의 활동가 데비 스토타르트는 “하루 일이 끝나면 대가로 헤로인을 준다. 젊은이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보석광산을 찾아간다. 그러곤 죽어서 돌아온다”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광산지역에서는 헤로인 투여 때 주삿바늘을 함께 사용해 에이즈 발병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2009년 필자는 미얀마 군정이 자행한 노동력 착취의 대명사인 루비광산 잠입 취재를 시도한 적이 있다. 모곡은 미얀마 군정에 의해 철저히 차단돼 있었으며 외부인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필자는 보석상으로 위장한 뒤 현지답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잠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만큼 미얀마 군정은 루비 광산에 민감했다. 필자가 진짜 보석상이라고 생각하고 광산 방문을 도왔던 미얀마 정부 관리는 모곡에서 나오는 루비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들이 보여준 루비는 크고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가격이 엄청났다. 괸리는 미얀마에서 구입하면 국제 시세의 반값도 안 된다고 했다. 국제시장에서 4만 달러를 넘나드는 3캐럿짜리 최고급 루비를 보여주면서 가격이 1만 달러라고 했다.

    미얀마 노동자의 핏방울

    필자의 눈에는 그 루비의 빨갛고 영롱한 빛깔이 미얀마 노동자의 핏방울로 보였다. 이후 모곡 계곡에서 광산 노동을 하는 젊은이를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비쩍 말라 볼이 움푹 들어간 스물다섯 살의 이 젊은이는 “하루에 일정량 이상의 루비를 의무적으로 캐내야 한다.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야 한다. 나는 피부병에 걸려 살갗이 다 벗겨졌다. 어떤 사람은 병으로 죽기도 한다. 우리 같은 청년도 일하기가 힘든 곳에서 청소년들도 노동을 한다”고 밝혔다. 광산에서 마약을 노동자에게 제공한다는 증언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우리가 마시는 물에 무언가를 섞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물을 먹으면 잠도 달아나고 배고프지도 않다. 기분이 좋아진다. 다들 그것이 마약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공해주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진작부터 망명 미얀마인 단체들은 서구의 보석상들에게 군정의 보석을 구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왔다. 인권을 유린해온 군정의 ‘돈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민주화 시위 직후 미얀마산 루비 구입 반대 여론이 일어났으나 현재도 런던 중심가의 보석 매장이나 뉴욕의 고급 보석가게에서는 버젓이 고가의 미얀마산 루비를 권하고 있다. 특히 아스프리, 카르티에 같은 런던의 유명 명품매장에서는 미얀마산 루비가 최고 50만 파운드(약 9억 원)에 팔리고 있다. 미얀마에 진출하는 다국적 자본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 ‘영국 버마 캠페인’의 마크 파머너는 “영국에서 판매되는 루비는 모두 미얀마산”이라면서 “루비는 ‘사랑’을 상징하지만, 그게 만약 미얀마산 루비라면 결국 미얀마인의 고혈을 산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 `버마 ‘원조 보석업자 협회’의 브라이언 레버 대표는 “미얀마 군정은 미얀마 광산의 대부분을 소유한 채 광산 운영업자들로부터 라이선스 요금을 징수하고 보석 경매장을 운영하며, 보석을 빼돌리는 것을 막고자 국경 인근 마을을 파괴하는 인권유린도 자행한다”면서 “미얀마산 루비 수입은 미얀마 군정의 배를 불려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얀마에서 루비 판매는 반드시 정부의 손을 거쳐야 한다. 밀매를 시도하다가 적발되면 총살형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피의 루비를 파는 유명 보석 회사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아스프리의 대변인은 “우리 회사에 루비를 공급하는 업체는 미얀마 군정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카르티에는 미얀마산 루비를 직수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런던의 해러즈 백화점 측은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은 국제법과 윤리 규범을 준수하는 믿을 만한 업체를 통해 공급받은 것”이라면서 “특정 보석을 구매하는 것은 철학과 신념을 기초로 해 고객 개개인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설사 미얀마에서 보석을 직접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판매하는 루비의 원산지는 대부분 미얀마다. 미얀마 군정이 태국의 보석상에게 넘기는 것은 루비 원석이다. 미얀마산 루비와 관련한 국제제재는 가공된 루비에만 해당한다.

    탈레반이 장악한 에메랄드 광산

    따라서 미얀마 군정이 태국 보석상에게 루비를 넘길 때는 가공품이 아니므로 합법이다. 루비 원석을 산 태국 보석상이 이 루비를 가공했으므로 형식적으로 태국의 상품인 것이다. 겉으로는 미얀마에 경제제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미얀마산 보석 매매의 통로가 열려 있는 셈이다. 최근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선거에서 압승하는 등 미얀마에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지만 루비를 둘러싼 인권 유린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군정이 물러가면 누가 미얀마의 루비 광산을 차지할까? 소유주가 바뀌면 광산 노동자의 삶이 향상될 까?

    ‘블러드 주얼리’는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와 미얀마의 루비뿐만이 아니다.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에메랄드 광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비극 중 하나다. 파키스탄 북서부에 위치한 스와트 지역에서 에메랄드 광산을 둘러싼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군은 무장 헬리콥터와 대포까지 투입해 혈전을 치렀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파키스탄 정부와 치열하게 맞서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지만 분쟁의 한 축에 에메랄드 광산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2007년부터 파키스탄 탈레반이 스와트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의 에메랄드 광산 운영권도 장악했다. 그 후 1년 6개월 동안 파키스탄 정부와 탈레반이 충돌했고 2009년 1월 휴전에 돌입하면서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부가 관리하던 이 지역 에메랄드 광산을 완전히 접수했다. 에메랄드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탈레반 활동의 군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현재 에메랄드 광산 지역을 되찾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실크로드 길목에 위치한 스와트는 아름다운 관광지였다. 경치가 빼어나고 간다라 미술품이 산재해 있다. 2000년 전 지은 불교 사찰이 남아 있을 만큼 유적도 많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드나들던 이곳에서 초록색의 아름다운 보석 에메랄드가 나온다.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의 에메랄드 광산은 아프가니스탄의 판지시르 광산과 함께 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에메랄드 매장량을 자랑한다. 스와트 광산에서는 1978년부터 1988년까지만 25만 캐럿에 달하는 에메랄드가 생산됐으며 총생산 전망치는 1320만 캐럿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치도 좋고 보석도 나오는 이 축복받은 땅은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군의 싸움터가 되면서 피로 물들고 있다. 탈레반은 ‘피자 가트’ ‘샤모자이’ ‘구자르 킬리’ 등 스와트 지역의 유명 에메랄드 광산을 차례로 장악했다. 피자 가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에메랄드 광산이다. 탈레반은 스와트에서 캐낸 에메랄드를 국제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인도 북부 라자스탄의 주도 자이푸르 쪽으로 밀수출한다. 인도로 간 에메랄드는 가공을 거쳐 태국, 이스라엘, 스위스 등으로 팔려나간다. 스와트 탈레반의 대변인 무슬림 칸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광물 자원은 그의 피조물을 위해 알라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며 탈레반이 에메랄드 비즈니스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파키스탄 일간지 ‘더 뉴스’는 “탈레반이 정부로부터 빼앗은 에메랄드 광산 등 스와트의 천연자원을 ‘돈줄’로 활용해 군자금을 충당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반군 군자금으로 쓰인 ‘블러드 다이아몬드’처럼 스와트의 ‘블러드 에메랄드’가 탈레반에 의해 세계 귀금속 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이 막 점령을 시작한 직후인 2007년 필자는 스와트를 방문했다. 경찰서와 관공서를 모두 접수한 탈레반은 주민들과 함께 에메랄드 광산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스와트 광산에서 나온 에메랄드는 질에 따라 가공 후 값이 1000달러부터 10만 달러까지 나가지만, 광부들은 하루 임금으로 1인당 고작 5달러를 받아왔다. 그런데 탈레반은 주민들에게도 이득을 일부 나눠줬다. 미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제임스타운은 보고서에서 “탈레반은 그들의 사상에 적극 찬동하는 주민을 에메랄드 광산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현지 공무원의 두 배가 넘는 월 360달러를 지급했다”고 전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광부들은 탈레반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광부로 일하는 칼리드는 “정부가 물러나고 탈레반이 광산을 차지한 뒤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돼 좋다”고 대답했다. 탈레반은 영리했다. 탈레반 세력이 이 지역에서 자리 잡는 데 보석을 활용한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난 스와트 지역 탈레반 리더인 뮬라나 파줄라나는 에메랄드 광산에 대한 탈레반의 의견을 필자에게 “그동안 광산의 문이 닫혔던 관계로 스와트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이제 우리 이슬람 전사들이 그 문을 열어 주민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며 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주민들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탈레반은 신의 뜻을 받드는 전사들로 에메랄드 수익금을 독차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하드(성전)를 위해 이 신의 창조물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탈레반 군자금으로 에메랄드가 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신의 뜻에 따라서”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또한 “블러드 에메랄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그저 보석에 눈이 먼 아프리카의 군벌들과는 다르다. 오로지 신의 전쟁에만 이것이 쓰일 것이며 우리는 주민을 착취하지 않는다. 에메랄드를 통해 우리와 주민들이 함께 잘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탈레반의 군자금으로 에메랄드를 사용할 것이지만, 그 이익금을 주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탈레반의 에메랄드 유통과 관련해 엉뚱한 사람들이 이득을 보고 있었다. 인도의 보석상이 그들이다. 보석상은 싼값에 최상급 에메랄드를 밀매해 세계 각지로 팔아 엄청난 차익을 올린다. 또한 에메랄드 판매 수익금이 그들의 군비로 사용되는 한 이곳에서 전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도 에메랄드가 값나가는 보석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광산 지역인 스와트를 수복하기 위해 지금도 군대를 보내고 있다. 에메랄드 광산 주변이 전쟁터가 되면서 주민들은 집과 농토를 버리고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마을 전체가 유령의 도시처럼 변했다. 하크라는 이름의 주민은 “우리 가족과 친척들이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과 대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우리 일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광산은 가문의 원수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리카 군벌들과는 다른 측면이 있을지라도 이곳의 에메랄드는 ‘블러드 에메랄드’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파키스탄의 스와트에서 생산된 에메랄드 구매를 제한하자는 움직임이 인 적이 있다. 에메랄드가 파키스탄 탈레반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으며 그 돈이 테러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009년 보도에서 “국제사회는 귀금속 원산지 인증제도 도입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막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며 “이제 ‘블러드 에메랄드’를 막기 위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보석 산업 개발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는 에메랄드 딜러 장 클로드는 “파키스탄에서 나오는 에메랄드는 사이즈가 작아 ‘바게트 악센트’라고 불리는 상품이다. 이를 연마해 반지와 시계 장식용으로 주로 판매한다”면서 “스톤이 작을수록 산지 추적이 어렵다. 가공품을 봐서는 파키스탄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국제적인 제재가 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스와트의 광산에서 나오는 에메랄드는 지금도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다.

    에메랄드가 재앙의 원인이 되는 또 다른 나라는 콜롬비아다. 남미대륙 서북부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전 세계 에메랄드 무역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에메랄드 생산 세계 1위 국가다. 신비한 빛이 도는 이 귀한 보석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핏빛 다툼의 씨앗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콜롬비아의 에메랄드 생산 및 유통을 장악한 범죄조직을 에메랄드 마피아라고 부른다. 이들은 마약을 유통하는 범죄조직에 맞서 사업 영역을 지키고자 1980년대 ‘녹색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녹색의 에메랄드가 콜롬비아에 널려 있다. 광산의 주인들은 대부분 마피아 조직 두목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에메랄드 광산이 위치한 콜롬비아 북서부 보야카 주가 에메랄드 마피아의 본고장이다. 이 지역에서는 지금껏 교전으로 3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에메랄드 생산 유통조직이 악명 높은 콜롬비아 범죄조직의 원조다. 지금의 마약조직들도 에메랄드 이권을 둘러싼 갱단에서부터 발전했다. 보야카 주의 에메랄드 전투 역사는 어느 파 누가 누구를 죽이고 어떤 광산을 차지했다는 식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콜롬비아의 에메랄드는 매년 1억∼4억 달러(콜롬비아 중앙은행 수출액 통계)에 달하는 생산규모뿐만 아니라, 품질에서도 세계 최고다. 정부가 오랫동안 범죄조직을 방조했다. 범죄조직들이 광산을 장악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푼 것이다. 대표적 범죄조직인 ‘그루포 센트럴’은 폭력적이고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마약에 관련된 조직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에메랄드 마피아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 규모나 폭력성이 마약조직 못지않음에도 통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가운데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조직 간의 혈투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색이 다른 돌멩이

    보석은 그저 색이 다른 돌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파이어의 빛은 철과 티탄 덕분에 생기며 루비는 ‘코런덤’이라고 불리는 광물의 하나일 뿐이다. 그 옛날 원시부족 시대에는 이 보석들은 그저 색다른 돌멩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이 돌멩이를 값비싼 보석으로 만들었다.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소년, 코바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가 모두 사라지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이아몬드가 모두 없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세상의 모든 보석이 사라지면 전쟁이 사라질까? 인간의 탐욕은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돌멩이를 보석이라고 부르면서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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