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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역설과 대한민국의 국가전략

풍전등화- 북핵 위기

  • 김태현|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위기의 역설과 대한민국의 국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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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명운(命運)이 풍전등화와 같다. ‘미치광이(mad man)’를 자처하는 두 지도자가 인류가 개발한 가장 파멸적인 무기를 들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국민은 떨고 있다. 대피소 위치를 확인하고 생존배낭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 민심 앞에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물어 반사적 이익을 얻고 말초적인 불안감에 호소해 표심을 얻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평화를 외치는 여당, 미국 전술핵 재반입을 주장하는 야당의 목소리엔 영혼이 없다. 8개월 후 치러질 지방선거를 넘어 10년, 30년, 100년 후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장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며 이제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것이 노골적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주고받는 언행이 거칠어지고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됐다. 그 거친 언사가 우발적 충돌로 비화하거나 미국이 그것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해 군사적 행동에 나섬으로써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우려에 국민의 심장이 떨리는 것이다. 처음이 아니다. 1994년, 2003년, 2005년에도 전쟁을 우려한 국민이 비상물품 비축에 나서거나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그때 위기는 봉합했지만 문제는 풀지 못했다. 북한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먼 미래의 일로 봤다.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과대평가해 그전에 저절로 풀리기를 바랐다. 그 헛된 희망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고즉사 기즉생(固卽死 棄卽生)

9월 15일 일본 상공을 통과해 북태평양으로 떨어진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를 지켜보며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9월 16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뉴스1]

9월 15일 일본 상공을 통과해 북태평양으로 떨어진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를 지켜보며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9월 16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뉴스1]

지금의 위기가 전과 다른 것은 더는 봉합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봉합은 곧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 되면 나라와 겨레의 앞날이 캄캄해진다. 북한의 잦은 핵 공갈로 안보 불안이 가중되고 경제에 대한 지정학적 부담이 커진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 외교적 자주성은 더욱 낮아진다. 미중 갈등과 같은 지역 내 강대국 권력정치를 촉발하고 그 속에서 휘둘리게 된다. 그것을 견디지 못해 자체 핵무장을 시도하면 북한처럼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제재를 당해 분단된 민족이 동반 몰락한다. 단군 이래 최고라는 지금의 성세(盛世)는 한 세대에 그치고 강대국에 짓밟혀 신음했던 과거의 전철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개봉은 시의 적절했다.

활로가 없지 않다. 위험과 기회를 아울러 가지는, 그리고 위험이 크면 기회도 커지는 위기의 역설 때문이다. 위기는 변화를 위한 동력이고 변화는 개선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북한의 핵 문제는 암세포와 같다. 계속 자라면서 간헐적으로 고통을 주었다. 그 고통이 바로 위기였고 지금껏 그것을 진통제로 무마해왔다. 고통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험을 깨달았다. 지난 10년간 위기가 없어서 오히려 문제가 악화됐다.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해결할 동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위기가 와서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지금의 위기에는 더이상 진통제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그 대수술을 통해 한민족이 환골탈태(換骨奪胎), 세계 속 중심 국가로 굳게 자리 잡을 기회가 지금의 위기 속에 있다.

북한이 여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단행한 지금, 목표는 핵 동결이 아니라 비핵화다. 북한 핵은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할 것이 됐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계속 언급되고 국민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북한이 스스로의 손으로 안전하게 제거하면 되기 때문이다.



장갑차 vs 경차의 치킨게임

문제는 북한이 그럴 리 없다는 데 있다. 그렇게 하도록 압박하고 회유해야 한다. 그 압박과 회유 수준을 놓고 국론이 분열됐다. 정치권은 국론을 통합하기보다 분열을 더욱 증폭했고 그 속에서 역대 정부가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한 결과 지금에 이른 것이다. 정치권이 단기적 정치이익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라는 관점에서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국론을 이끌지 않으면 역사와 후손에게 천추의 한을 남길 시점에 이르렀다. 무엇이 필요한가?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첫째, 그것이 하나의 선택지가 돼야 한다. 핵을 고집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때 선택지가 된다. 둘째, 핵을 포기하는 것이 고집하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핵을 고집하면 ‘죽고’ 핵을 포기해야 ‘산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말로는 간단한 이 논리를 여태 풀지 못한 것은 그 정반대, 즉 핵이 있어야 살고 없으면 죽는다는 북한의 생각을 뒤집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성을 눈앞에 둔 이제 와서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는 데 현 국면의 비상함과 비장함이 있다.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핵을 고집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믿게 하려면 선택 여하에 따라 압살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보유해야 한다. 경제제재와 군사 행동이 그 방법이다. 작년 이래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거듭하며 폭주함에 따라 경제제재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느리고 결정적 효과는 미지수다. 그에 따라 미국도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말과 행동으로 거듭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아사(餓死)하거나 타살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그에 대한 북한 생각이다. 북한 지도부가 이러다간 정말 죽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모든 군사적 위기가 그렇듯 지금 상황은 미국과 북한이 자동차를 몰고 마주 달리는 치킨게임과 같다. 끝까지 달리면 공멸이다. 먼저 핸들을 꺾으면 진다. 이기려면 상대로 하여금 내가 끝까지 달린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치킨게임은 배짱싸움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미치광이’를 자처하는 것이다.

‘살리다’엔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틀린 점이 있다. 군사적 역량을 볼 때 미국은 장갑차를 운전하고 북한은 경차를 운전하는 격이니 끝에 있는 것은 공멸이 아니다. 미국도 다치고 한국은 더 크게 다치겠지만 북한은 반드시 죽는다. 김정은 정권은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광신도가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하기엔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 한미 양국이 군사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북한이 믿어 의심치 않아 결국 핵 포기를 결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자 필요조건이다.

요컨대 동결이 아닌 폐기를 확고한 조건으로 걸고 경제적 압박을 통해 북한을 아사(餓死) 직전까지 몰아붙이면, 북한은 외교적 후퇴냐 군사적 행동이냐 하는 선택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때 북한이 후자를 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북한 지도부 및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필요하다면 전면적 전쟁까지 감수하겠다는 결기를 보이는 것이 핵 폐기를 전제로 한 협상의 장이 열리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또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경우에서 봤듯이) 그 때문에 북한 정권의 미래가 더욱 위태롭게 된다고 생각하면 핵 포기는 선택지가 아니다. 이판사판식 도발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핵화를 위한 두 번째 조건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조건이 첫 번째 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살려준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죽이지 않겠다’는 식의 소극적 의미다. 평화협정 혹은 다른 방식의 소극적 안전보장과 경제제재의 해제 등이 그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먹여 살리겠다’는 식의 적극적 의미다. 제재의 해제를 넘는 경제적 지원이 그에 해당한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게 만드는 것은 ‘죽이겠다’는 협박을 믿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클린턴이나 부시 전 대통령이 제공한 것 같은 친서 형식의 소극적 안전보장은 더 이상 약발이 없다. 의회 비준을 거친 평화조약이라면 모르지만, 여기엔 미국의 문제가 있다. 미국이 보기에 의회가 비준한 조약은 구속력 있는 법이지만 독재국가인 북한은 지도자 결단에 따라 언제든지 그것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 또 북한이 종잇장에 불과한 평화협정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 나아가 한미동맹 폐기와 같은 실질적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한 우리 국론 분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 북한이 단순히 경제제재의 해제를 넘어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운전사 말고 대장장이가 되자

그에 대한 해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 누차 시도된 다자적이고 포괄적인 협정이다. 2005년의 9·19합의가 한 모델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출발점으로 하되, 남북 평화 공존과 사회경제적 통합, 나아가 통일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동북아 국제질서의 청사진까지 제시하고 논의하는 그런 협상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될지 모를 강대국 정치의 재연을 막고 안으로는 국론을 결집하고 나라와 민족의 재도약을 위한 열정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려움이 많다. 참여국이 많고 사안이 확대되면 갈등도 많을 수밖에 없다. 자칫 동력을 잃고 표류할 수도 있다. 그처럼 복합적 패키지를 만드는 것은 여러 금속을 녹여 합금을 단조해내는 것과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열과 뛰어난 대장장이가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험이 클수록 기회도 커지는 위기의 역설이다. 위기는 위험의 정도가 크고 시간이 촉박할수록 큰 동력을 가지는 법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인들은 파멸을 생각하고 고해성사를 위해 교회를 찾았었다. 그 끝에 데탕트가 시작됐다.

북핵문제는 이제 쿠바 사태에 비견될 정도로 위험해졌다.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날아다닐 수 있다. 패권국 미국과 신흥국 중국의 패권전쟁, 소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북한 문제로 현실화할 수도 있다. 끔찍한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리면 웬만한 갈등은 녹여 섞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전쟁 직전과 같은 강진(强震)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그 끝에 협상의 장이 열리더라도 서로 파국을 위협하는 여진(餘震)이 거듭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우리 정부는 장갑차의 운전대에 앉겠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위기가 만든 에너지를 이용, 많은 사안을 녹이고 다져서 항구적 평화와 위대한 미래를 빚어내는 대장장이가 돼야 한다.




신동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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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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