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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 사실일까 미신일까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daum.net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 사실일까 미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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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내가 실수했겠지’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 사실일까 미신일까
미국 워싱턴대의 노인학 학자 루이지 폰태너는 국립노화연구소 원숭이들의 혈액 검사 결과가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열량 제한이 수명과 관련이 있으려면, 열량 섭취량에 따른 에너지 대사 활동, 호르몬 농도에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명에 영향을 주는 변화가 반드시 열량 섭취량 제한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폰태너는 식단의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변화가 없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수십 년의 전통을 이룬 이 연구의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가정이다. 즉, 열량 섭취량이 아니라 특정한 영양 성분의 함량 등이 수명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20년 동안 매일 성분이 정해진 식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면 영장류인 원숭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국립노화연구소의 원숭이들은 중국과 인도에서 들여온 반면, 위스콘신대 연구진의 원숭이들은 모두 인도산이었다. 전자가 유전적 다양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유전적 차이가 결과를 모호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노화 관련 질환의 발생 확률과 시기, 타고난 수명은 유전자와도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 생쥐의 계통마다 연구 결과가 다르게 나온 사례들도 있다. 어느 계통의 생쥐에서는 열량 제한이 수명을 늘린 반면, 다른 계통의 생쥐에서는 정반대로 수명을 줄였다. 이는 유전적 요인이 중요함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미국 텍사스대의 노인학 학자 스티븐 오스태드도 열량 제한이 수명을 늘리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야생에서 잡은 생쥐들의 새끼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는 기존 생쥐 연구들이 실험실에서 대대로 키운 생쥐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말한다. 그 생쥐들은 실험실이라는 비정상적인 조건에서 오래 살다보니 본래 건강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열량 제한이 수명을 늘리는 결과를 빚어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나오자, 그동안 대세에 밀려 숨을 죽이고 있던 연구자들도 한 명씩 발언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열량 제한이 수명 연장과 상관없다고 믿는 연구자들 말이다. 또 이러한 연구 결과를 얻었음에도 ‘에이, 내가 실수했겠지’ 하고서 자료를 폐기했던 연구자들도 다시 자료를 들여다볼 성싶다.

열량 섭취량과 수명의 관계에 관한 상반된 결과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둘 사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열량 제한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환경, 유전, 전반적인 영양 상태 등 다양한 요인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복잡한 양상을 띨 수 있다. 그것은 양쪽 연구 결과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는 말과 같다. 또 우리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열량 제한과 수명의 관계를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열량 제한은 세포 대사, 유전자 발현, 인슐린 신호 경로, 기타 생물학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물음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소식이 장수의 지름길이라는 이론이 대세일 때에는 이런 미묘한 점들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과연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 결과로 외면받던 사항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어날지, 아니면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기존 이론이 굳게 버틸지가 흥미롭다.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 식습관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만약 텔레비전 앞에 누워 치킨과 팝콘을 마구 먹어도 성인병 발병 시기가 조금 빨라질 뿐 수명과 무관하다면, 이 쾌락을 포기하지 않을 이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두 연구진은 현재 연구 결과에 왜 차이가 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한쪽이 옳다는 판명이 나기를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생물을 다루는 연구에서는 그런 딱 떨어지는 결론이 나오기는 힘들다. 아마 양쪽 다 옳다고 하면서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생명 현상은 연구하면 할수록 복잡하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생물학의 법칙일 것이다.

치킨 팝콘 마구 먹어도 괜찮다?

이 법칙이 옳다고 입증하는 또 하나의 과학 뉴스가 9월 6일 나왔다. 사람 유전체에서 쓸모없는 부위라고 여겨졌던 정크 DNA가 사실은 사람의 질병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의 유전체에서 유전자 등 쓸모 있는 역할을 하는 부위는 2%에 불과하다고 여겨져왔다. 나머지는 진화 과정에서 그냥 따라붙었거나 돌연변이로 기능을 잃었거나 바이러스에 의해 흔적만 남아 있는 쓰레기로 취급되었다.

물론 과학자들은 혹시 그 부위도 어떤 기능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연이 98%나 되는 쓰레기를 굳이 남겨두고 있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정크(junk) DNA라고 이름을 붙였다. 정크를 의미하는 잡동사니 중에는 가끔 쓸모가 있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별다른 기능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정크 DNA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해왔는데 미국, 영국, 일본, 스페인, 싱가포르 등 5개국의 과학자 400여 명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정크 DNA에서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스위치를 400만 개나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각종 학술지에 무려 30편이 넘는 논문을 실으면서 말이다.

연구진은 흔한 질병 수백 가지가 정크 DNA에 있는 스위치에 영향을 받으며, 사람 유전체의 약 80%가 어떤 식으로든 활성을 띤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98%가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80% 이상이 활성을 띤다고 하니 놀라운 관점 전환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가 각종 질병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몸이 수정란에서 성체로 발달하는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줄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어설프게 알고 있었다

며칠간에 걸쳐 발표된 열량 섭취와 수명의 관계, 그리고 정크 DNA 연구 결과는 기존 연구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것이 어설펐으며 이해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2009년 발표된 위스콘신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는 영장류에게서 식단 조절을 통해 수명 연장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으며 당연히 사람의 수명 연장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더욱 확실히 불러일으켰다.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그 희망을 꺾으려 하고 있다. 국립노화연구소의 드카보는 “모든 종에게 열량 제한이 효과가 있다고 처음부터 믿고 시작한 연구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부정적인 결과를 못 보거나 외면해왔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과학의 장점은 많은 이로부터 검증을 받는다는 점이다. 어떤 이론이든 반증되면 폐기된다. 이것이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점점 더 자연을 깊이 알아간다. 그리고 생명은 캐면 캘수록 오묘하고 복잡하게 뒤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소식, 혹은 적은 열량 섭취가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적어도 소식이 질병을 억제하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만큼은 다시금 입증되었다. 다시 과식(過食)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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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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