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스마트폰 중독, 정말 나쁜 걸까?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daum.net

    입력2012-07-24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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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언론은 “많은 미국인이 스마트폰 중독 초기 증상을 보인다”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1시간도 견딜 수 없어한다”며 앞 다퉈 보도한다. 우리는 정말 중독된 걸까. 이 중독이 나쁘기만 한 걸까?
    스마트폰 중독, 정말 나쁜 걸까?

    5월 30일 중국 홍콩 지하철 객차에서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스마트폰 없이 어찌 살았을까 싶다. 지하철을 타든, 길을 가든, 카페에 앉아 있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겨우 5년밖에 안 되었다. 급속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변화가 가속되면 10년 후 어찌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이용하므로 마치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인 듯하다.

    그러나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할 때 어떤 상태를 중독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중독이라는 말을 반쯤 농담 삼아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독의 기준

    학자들은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전자 기기에 푹 빠져 있는 것에 과연 중독이라는 명칭을 붙여야 할지를 놓고 사실 심리학자들과 의학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의학적으로 중독이라는 말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정신장애’라는 의미가 된다.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은 정신장애임이 분명하다. 의존증이 갈수록 심해진다. 끊고자 마음먹고 시도도 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멈추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직장도 가정도 파탄 나기 일쑤다. 그래서 치료를 필요로 한다. 의학의 관점에선 이런 상태가 전형적인 중독 상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중독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전자 기기에 중독이라는 말을 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 중독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 뒤 비디오 게임 중독이 나왔다. 10여 년 전부터는 인터넷 중독이 유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폰 중독이 등장한 것이다.

    역사가 가장 깊은 건 텔레비전 중독이다. 관련 연구도 풍부한 편이다. 많은 사람은 팝콘이나 과자를 끼고 소파에 드러누운 채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을 본다. 사회과학에선 이런 사람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카우치 소파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포테이토칩을 먹으며 TV 시청에 빠져드는 사람)’라고 명명한다.

    의학은 텔레비전 중독이 비만, 두통, 산만함, 성인병, 소아당뇨,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언어발달지체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은 “텔레비전 폭력물에 많이 노출된 청소년은 더 공격적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반면 “폭력물 시청이 카타르시스(감정정화) 작용으로 시청자의 공격 성향을 낮춰준다”는 보고도 있다.

    텔레비전은 한번 켜면 좀처럼 끄기 어렵다. 마음에 안 드는 방송이 나오면 끄는 대신에 채널을 돌리면서 본다. 광고를 피해 채널을 수시로 바꾸는 시청 행위를 ‘재핑(zapping)’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시청이 중독성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학자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인터넷 중독이다. 전문가들은 의학 분야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인터넷 중독을 포함시킬지를 놓고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인터넷에 몰두하는 행위를 마약 중독이나 술 중독과 같이 질병으로 취급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상당수가 인터넷에 푹 빠져 있으니 중독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든 도박을 하든 검색을 하든 화면 앞에만 붙어 있다가는 가정이 파탄 나며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 여느 중독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내용물을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도박, 음란물, 게임 등 콘텐츠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건대 텔레비전 중독과 인터넷 중독은 의학적으로나, 실제의 삶에서나 ‘실체가 있는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오래 보면 기분 처져

    이어 나온 것이 스마트폰 중독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연구 자료가 풍족한 편은 아니다. 기존의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인터넷 중독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은 이런 매체들을 통해 하던 일들을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서도 말이다. 중독되기에 딱 좋은 기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로버트 커비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텔레비전 중독이 결코 비유가 아니라는 글을 썼다. 그들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생물학적 정향 반응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보았다. 정향 반응은 개의 조건반사 연구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가 1927년 처음 기술했다. 갑작스럽거나 새로운 시청각적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동물이 진화하면서 얻은 형질이다. 낯선 소리나 광경에 재빨리 이목을 집중하지 않으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정향 반응이 일어날 때 뇌로 가는 혈관은 팽창하고 근육으로 향하는 혈관은 수축된다. 또 심장 박동은 느려진다. 뇌는 바쁘게 돌아가면서 주변 상황을 파악한다.

    스마트폰 중독, 정말 나쁜 걸까?

    1월 30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 당시 문성근 최고위원, 한명숙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자신의 발언을 마친 뒤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느라 다른 참석자의 발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1986년 바이런 리브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자르기 편집하기 확대하기 등 텔레비전의 단순한 영상 기법들이 정향 반응을 활성화함으로써 화면에 주의를 계속 기울이게 한다”고 밝혔다. 광고는 이런 성향을 가장 잘 활용한다. 광고를 볼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화면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게 된다.

    문제는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아주 길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도 사람들은 여가 활동의 절반을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낸다. 일하고 잠자는 시간 다음으로 많은 시간이다. 이렇게 텔레비전을 장시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처지고 수동적이게 된다. 처음에는 정향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가 쌓인다. 뇌에서 알파파가 많아진다. 뇌 활동이 줄고 자극에 덜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서 멍해진다. 시청함으로써 얻는 심리적 만족은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도 계속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습관성 약물은 약 기운이 가실 때면 몸이 알아차려 더 갈구한다. 텔레비전 시청도 마찬가지. 텔레비전을 끄면 기분이 안 좋아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계속 보게 된다. 텔레비전을 오래 볼수록 돌아오는 보상은 줄어드는 데도 계획보다 훨씬 오래 보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오래 볼수록 만족감은 줄어든다. 게다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꺼림칙함이나 죄책감을 갖게 된다.

    커비와 칙센트미하이는 이 연구 결과를 컴퓨터 게임에 적용한다. 컴퓨터 게임이 텔레비전과 다른 점은 난이도를 조금씩 높임으로써 상호작용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향 반응이 오래 지속되면 이 역시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지치고 멍해지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된다.

    커비와 칙센트미하이가 이 글을 쓸 때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 논의를 스마트폰에 적용한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즉, 스마트폰 화면을 오래 보면 기분이 처지고 수동적이게 된다. 그럼에도 필요이상으로 오래 보게 된다. 스마트폰은 카카오톡, 트위터 등 강력한 상호작용성을 가진다. 텔레비전과 PC를 휴대하고 있는 것과 같다. 강력한 실시간 접속 기능을 가진다. 이런 점들로 인해 스마트폰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보다 더 큰 중독성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삶의 내상도 더 깊어질 수 있다.

    다만 텔레비전, 노트북, 데스크 톱 PC는 사람에게 육체적 노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기만 하면 된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다르다.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 화면이 작기 때문에 눈과 화면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개를 숙이거나 등을 굽히거나 폰을 든 손을 눈앞으로 올려주어야 한다. 몇 분 이용할 때엔 별일이 아니지만 장시간 이용할 때엔 상당한 노동이 된다. 이는 스마트폰의 무한대 사용을 억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폐해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중독의 한 증상이다. 많은 사람이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레슬리 펄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책 제목인 ‘스마트폰 끼고 자기(Sleeping with your smartphone)’를 실제의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거나 뉴스를 검색하다가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켠다.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불쾌해진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도 상대방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다.

    새 메시지 왔는지 확인 또 확인

    스마트폰 중독, 정말 나쁜 걸까?

    5월 5일 영국 런던의 삼성 갤럭시S3 공개 현장. 체험용 제품 200개에 기자 2000명이 몰렸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대표적 증상은 확인 습관이다. 즉 메시지든 전자우편이든 뉴스든 새로운 것이 와 있는지를 자꾸 확인하게 된다. 심하면 방금 전에 확인하고서도 또 확인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의사인 저드슨 브루어는 스마트폰의 이런 특성이 슬롯머신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슬롯머신 같은 도박 기계가 중독성을 띠는 이유는 뇌의 연합 학습 경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연합 학습은 뇌가 특정한 사건을 쾌감 또는 불쾌감과 연결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나오면 뇌에서는 쾌감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왈칵 분비된다. 그러면 기분이 대단히 좋아진다. 뇌에 잭팟과 쾌감을 연결하는 신경 회로가 형성된다. 그렇게 연합 기억이 형성되면 뇌는 그 쾌감을 다시 맛보기 위해 다시 슬롯머신 단추를 누르기를 갈망한다.

    브루어는 스마트폰이 똑같은 방식으로 뇌신경 회로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슬롯머신의 잭팟은 늘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 그림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보상은 꾸준히 이어질 때보다 가끔씩 이루어질 때 더 강력한 욕구를 일으킨다. 도박이 중독성을 띠는 이유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습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릴 때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알림 신호가 울리지 않을 때에도 확인한다. 메시지가 전부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스팸 메시지일 가능성도 높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전자우편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가끔 반가운 메시지, 중요한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가서 컴퓨터로 확인하면 이미 때가 지나버릴 반가운 번개 모임 같은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때 메시지는 일종의 잭팟이 된다. 스마트폰을 계속 확인하는 수고를 정당화하는 보상인 셈이다. 브루어는 이런 쾌감을 다시금 맛보고자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에 빠지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35회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한다.

    하루에 10번 이상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사람은 시력이 나빠진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됐다. 더 큰 문제점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줄어든다는 점일 것이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카페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도 짬짬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면 당연히 함께한 사람과의 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리적 거리가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일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카카오톡이나 트위터가 인간관계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직접 눈을 마주 보면서 하는 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 한 가지 부작용은 스마트폰이 가용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모든 전자 기기 화면이 그렇듯 스마트폰 화면도 최대한 우리의 시선을 계속 사로잡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런 중독성은 생각할 시간을 앗아간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길을 걸으면서도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삶의 가용시간 줄고 두뇌 퇴화

    즐거운 일이든 후회되는 일이든 옛일이든 앞으로 할 일이든 어떤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은 생각에 잠길 시간을 앗아간다. 그만큼 창의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대신에 무엇인가를 계속 확인하려는 강박증에 빠지면서 정신은 점점 더 산만해진다.

    텔레비전 연구 결과를 확대 적용하자면, 스마트폰에 몰입할수록 무엇인가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멍해진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한 뒤에는 기분이 상쾌해진다. 반면, 텔레비전을 본 뒤에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인내심이 줄어들고 한가로운 시간을 못 견뎌한다.

    IT 전문가인 니콜라스 카는 더 깊이 분석한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저서에서 스마트폰 환경이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정신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다중작업은 뇌의 시냅스 형성을 자극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다중작업을 하면서 이 작업에 익숙해지면 뇌의 신경 회로도 그 일에 맞게 배선된다. 대신에 주의를 집중해 깊이 사고하는 능력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지 않을까?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고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든지 정보를 즐기고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카는 우리가 익히 아는 평범한 말로 반박한다.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자료를 많이 얻었다고 해서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터넷이 더 넓은 세계를 접하게 하는 대신 깊이 있는 세계를 앗아감으로써 우리를 사려 깊지 못한 존재로 만든다고 본다.

    스마트폰의 장점인 지식과 기억의 외주화(아웃소싱)도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 인터넷망에 저장되어 있다가 검색하면 우리에게 제공되는 지식과 우리 뇌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 불려오는 지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뇌는 기억에서 지식을 불러올 때마다 새 맥락에 맞게 그 지식을 통합시킨다. 따라서 컴퓨터에 저장된 기억과 달리 뇌에 저장된 기억은 검색할 때마다 갱신된다. 그때마다 뇌세포 사이에 시냅스가 형성되고 재편된다. 그럼으로써 더 깊고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다.

    정반대로 인터넷은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빠르게 검색해 내놓는다. 이 정보의 생산과 소비세계에서는 속도와 효율이 우선시된다. 빨리 검색해 답을 찾고 빨리 잊어버린다. 집중하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능력은 확실히 저하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두뇌에 부정적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교양을 함양할 수 있고 지적 즐거움을 선사할 수도 있다. 감동을 줄 수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술이나 도박과 같은 수준의 중독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다. 술이나 도박에 중독되면 삶이 피폐해진다. 스마트폰 중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금단증세도 상대적으로 오래가지 않고 능히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창의력이 심히 저하될 수 있다. 또한 직업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 공생하는 법

    레슬리 펄로는 간단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을 정하자’고 말한다. 정해진 시간에 끊는 것이다. 직장인이 근무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끊는다면 일의 능률을 부쩍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학생은 훨씬 공부가 잘된다고 한다. 만족감도 높아진다. 일과 생활, 인간관계가 비로소 균형을 찾아간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을 아예 내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당장 지인들로부터 ‘왜 스마트폰을 구형 폰으로 교체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일일이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옳거니 하며 수긍해줄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속으로는 ‘참 특이한 분이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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