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애틋한 ‘겨울 여자’ 장미희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2-09-21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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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장미희가 출연한 영화를 다시 보는 건 힘든 일이다. 영화와 여주인공에 매혹되기에 앞서, 영화를 만드는 자들과 영화를 보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거칠고 잔혹한 남자들의 시대에 영화계에 들어와 ‘예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확인 안 된 수많은 소문에 시달렸던 여인. 때로는 천사 같은 순수함으로, 때로는 살쾡이 같은 야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배우 장미희를 추억한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1970~80년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 장미희.

    1970년대‘안방극장’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다. 새하얀 고무신을 신고 치맛자락을 당겨 잡고 극장으로 몰려가 하얀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던 고무신 부대가 거실에 놓인 TV로 눈을 돌렸다. 장욱제·태현실 주연의 TV 연속극 ‘여로’(1972)는 고무신 부대가 안방에서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게 했으며, 그녀들의 아들들은 모두 동네 공터로 몰려가 바보 영구 흉내를 내게 만들었다. 박치기 왕 김일의 프로 레슬링 경기가 방송되는 날이면 집에 TV가 있는 아이들은 그 동네의 왕이 되었다. 달도 차면 기울고 활짝 핀 꽃도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마는 것. 1960년대 말 서울 극장가에 가면 출연작이 꼭 한 편 이상은 걸려 있었던 문희·남정임·윤정희 트로이카의 시대는 그들이 결혼하면서 저물었다. 한때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도, 김지미도, 간간이 영화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그녀들의 시대는 아니었다.

    구경 좋아하는 사람들을 TV에 빼앗기고, 최고의 흥행 여배우도 사라져버린 한국 영화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례없는 수난이 찾아온다. 1973년 유신정권의 영화법 개정이다. ‘저질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검열을 받아야 했다. 영화사 설립도 정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결국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흥행이 보장된 외국 영화의 수입권은 한국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에만 주어졌고, 외국 영화를 수입하려면 일정 편수 이상 만들어야 했다. 영악한 제작자들은 외국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위장 합작 영화를 만들거나, 배우와 스태프에게는 한 편만 찍는다고 말해놓고 극장에는 두 편, 세 편으로 둔갑시켜 개봉하는 ‘신공’을 부렸다. 결국 제 살 깎아 먹기가 돼 관객들은 한국 영화에서 발길을 돌렸다. 한국 영화는 곧 저질 영화의 대명사. 한국 영화를 백주 대낮에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결국 영화의 제작편수가 급격하게 줄어 1960년대 평균의 절반이 될 정도였다.

    새로 뜨는 별들

    그러나 아무리 무시무시한 검열이 버티고 있고, 상황이 열악해도 영화는 만들어지고 새로운 스타는 태어나는 것. 한 시대를 주름잡던 여배우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여왕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나타난다.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1969)에서 깜찍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던 아역배우 서미경이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돼 미스 롯데에 등극하며 주가를 올렸다. 곧이어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개봉되고, ‘선데이 서울’ 표지에 매혹적인 반라의 모습으로 등장해 뭇 사내들과 아직 머리가 여물지도 않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미경이 출연한 영화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당시 최고 권력자의 아들과 관계된 괴소문이 흉흉하게 나돌더니, 그녀는 사라졌다. 양정화라는 신인 여배우가 주목을 받는가 싶더니 정가의 떠들썩한 스캔들에 연루돼 사라져버렸다. 1970년대 트로이카의 여왕 중 하나로 등극할 유지인은 1974년 영화에 데뷔했지만 아직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신인 중 하나였고, 또 다른 트로이카 중 하나인 정윤희도 인형처럼 예쁘지만 연기는 못하는, 아이스크림 CF나 하는 그런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 그 어떤 여배우도 문희·남정임·윤정희처럼 극장가를 자신의 얼굴로 뒤덮지는 못했다. 영화 제작 편수도 얼마 안 되고 신인 감독의 놀라운 약진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하길종이라는 감독이 데뷔한다. 전에 없던 유학파 감독이자 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4·19 세대였던 그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1972년의 데뷔작은 표절 논란으로 얼룩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새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개봉됐다. 원작과 시나리오는 고등학생 때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돼 화제를 낳으며 문단의 신세대로 등장한 최인호가 썼다. 음악은 강근식과 송창식. 1970년대 청년문화의 주역이 다 모였고, 배우는 모두 당시 대학에 다니던 신인이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혹독한 검열의 칼날이 휘둘러졌지만, 1970년대 청년의 고뇌와 분노를 담은 이 영화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청년문화의 탄생

    바로 전해인 1974년엔 이장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별들의 고향’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원작자와 시나리오 작가 역시 최인호. 음악도 강근식과 이장희. 주연은 아역 배우 출신 안인숙과 중년에 접어든 신성일이었다.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의 입에 영화 속 대사가 오르내렸다. 물론 1960년대에도 영화 속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는 했다. “나가 전라도에서 올라온 용팔이란 말이시” 뭐 이런 정도였다. 하지만 ‘별들의 고향’이 상영된 후엔 달랐다. 여주인공 경아의 대사 “추워요. 꼭 껴안아주세요” 라든지,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와 신성일의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같은 대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이장희와 강근식의 음악은 또 어떤가. ‘한잔의 추억’‘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최고의 히트곡이 됐고, 한국 영화의 진정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 할 앨범이 처음으로 발매됐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청춘남녀를 극장으로 불러 들였고, ‘미워도 다시 한 번’(정소영 감독, 1968)의 흥행 기록을 깨는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다.

    새로운 감각과 생각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영화가 이전 시기의 영화와 다른 점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음악감독 모두 학생 시절 서로의 재능을 간파하고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끈끈한 유대감을 다져왔다는 점이다. 이장호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최인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눈여겨보다 의기투합했고, 이장희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사이였다. 그들은 서로의 유대감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첫 세대였고 그것을 ‘청년문화’라 불렀다. 하지만 곧이어 수없이 발동된 긴급조치와 대마초 파동이 청년문화를 초토화시켰다. 새로운 영화의 주역 대부분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고, 영화에 사용돼 히트한 노래는 금지곡이 돼 들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바보들의 행진’의 경우가 심했는데, 신촌 로터리 육교 위에서 주인공들이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려 도망치는 장면에서 사용된 ‘왜 불러’와 주인공 중 하나가 자살하는 장면에 사용된 ‘고래사냥’은 편협한 권력자들의 옹졸한 처사로 금지곡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1975년 베트남 패망은 대한민국에서 반공 히스테리와 북한의 남침 공포가 극에 달하도록 만들었다.

    1978년 초.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에 일어난 일이다. 소집일에 학교에 간 나는 몇몇 아이의 방학 중 무용담을 들어야 했다. 오로지 장미희의 가슴을 보기 위해 단성사에 ‘쌔벼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쌔벼들어간다’는 건 극장에 돈을 안내고 몰래 들어간다는 뜻으로,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겨울 여자’(김호선 감독)를 돈도 안 내고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무용담의 주인공들은 영화에 장미희의 가슴 노출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당시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내 관심은 오로지 무협 액션 영화였고,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도 사춘기의 남자였으니 장미희의 가슴이 노출된다는 말에 약간 솔깃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은 전혀 안 했다는 뜻이다.

    그해 겨울 장미희 주연의 ‘겨울 여자’는 대단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삼촌들이 연인들과 ‘겨울 여자’를 보고 와서 주부였던 이모를 부럽게 만든 일이 기억난다. 대학생 삼촌들과 반 아이들의 입에서 장미희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여배우는 임예진이었다. 몇몇 용감한 아이가 ‘겨울 여자’가 상영되던 단성사에 모험을 하러 간 그 시간에 나는 동네 극장에서 임예진 주연의 영화를 보거나 한·홍 합작 무협 액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결혼행진곡’(1976)을 보고 당시 유행어가 된 한진희의 “죽갔네” 라는 대사를 깔깔 웃으며 따라 하기도 했지만, 여주인공이던 장미희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오히려 당시 해태 브라보콘 CF에 출연하던 정윤희가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장미희는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나의 여성 외모에 대한 심미안, 즉 눈 크고 예쁜 여자만 좋아하는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면이 있었다.

    입술 끝에 살짝 패는 미소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장미희는 학력 위조 파문 이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브라운관에서 부활했다.

    내가 처음 본 장미희 주연 영화는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1978)이다. 1978년 어느 날 밤,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 ‘김세원의 영화 음악’에서 김세원 씨가 약간 흥분된 어조로 자신이 얼마 전에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래 바람이 부는 황량한 사막에 빨간 우산이 굴러갑니다.” 라디오를 듣던 나는 그 강렬한 이미지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곧 이어 김세원이 들려준 영화의 메인 테마와 영화에 사용된 노래 중 하나인 양희은의 ‘알캉달캉’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속 별들의 고향’이었다.

    동네 동시상영관에 영화가 들어왔다. 보러 갔다. 황량한 사막에 바람이 불고 빨간 우산이 떼굴떼굴 굴러간다. 그 위로 음악이 흐른다. 사실 사막이 아니라 한강 백사장이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젊은 여자가 퇴원 수속을 밟는다. 병이 나아서 퇴원한다고는 하지만, 이 젊은 여자는 아직 불안한 것 같다. 병원 한쪽에서 환자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이 없다. 환자들은 안 보이는 공으로, 공 없이 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이 전부 동작을 멈추고 지나가던 젊은 여자를 바라본다. 안 보이는 공이 젊은 여자 쪽으로 굴러온 것이다. 여자는 미소를 짓고 자기 발 앞에 굴러온 안 보이는 공을 집어 들고 멋지게 서브를 해 환자들 쪽으로 던진다. 안 보이는 공은 환자들 쪽으로 날아가고 환자들은 다시 배구를 시작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이런 것이 영화구나.”

    그 장면에서 커트 머리를 한 젊은 여자 장미희의 입술 양 끝이 살짝 패는 미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미소 속에 여러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환자들에게 장난치듯 거짓으로 응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녀 역시 그들과 똑같이 공을 보고 있는지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선의인 것만은 확실했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장미희의 이름을 널리 알린 김호선 감독의 영화 ‘겨울 여자’ 포스터.

    영화의 라스트. 신성일이 죽고 장미희는 혼자 남는다. 어딘가를 바라본다. 고향이 없는 그녀. 만약 고향이 있다면 별처럼 먼 곳일, 그곳을 바라보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의 시선 어딘가로 화면이 바뀌면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한 황량한 모래밭에 바람이 불고 빨간 우산이 떼굴떼굴 굴러가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화면은 정지되고 ‘끝’ 자가 떠오른다. 두 번째 망치.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가 주는 강렬함을 ‘속 별들의 고향’으로 처음 경험했다. 경험은 알랭 들롱 주연의 ‘암흑가의 세 사람’의 라스트, 또는 왕우 주연의 ‘심야의 결투’ 라스트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비장하고 처절한 죽음에서 느껴지는 격한 감정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미지와 주인공의 감정이 결합된 또 다른 종류의 격한 감정이었다. 먼 훗날 빨간 우산 장면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처녀’를 표절한 것이고, 배구 장면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블로우 업’ 중 테니스장 장면을 표절한 것임을 알았고, 어찌 보면 무척이나 감성적인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나의 감동은 훼손되지 않았다.

    ‘속 별들의 고향’에서 장미희는 심한 조울증 또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의 병을 앓는 여자인 것 같다. 그녀는 고아이고, 소매치기다. 밤마다 자신의 차가운 몸을 데워 주고, 지갑을 빼앗겨줄 남자를 찾아다니는 불량소녀다. 그녀는 추워서 덜덜 떠는 어리고 연약한 동물 같기도 하고, 젊고 아름다운 몸을 이용해 생존하는 것에 아무런 윤리적 갈등이 없는 강한 짐승 같기도 하다. 임신을 한 그녀는 만만한 신성일을 찾아가 그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한다. 사실 거짓말이다. 누구의 아이인지 그녀도 모른다. 다만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안정된 보금자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성일은 너무 쉽게 넘어간다. 신성일이 아기를 제 자식처럼 사랑하면 할수록 그녀의 ADHD 증상은 심해진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같이 되어버린 장미희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들어왔고, 그것 때문에 그녀는 난폭해진다. 이런 어려운 역을 20대 초반의 신인 장미희가 설득력 있게 소화해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전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감정 기복이 심한 여주인공은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장미희는 ‘겨울 여자’와 ‘속 별들의 고향’의 성공으로 1970년대 말 최고의 인기 여배우가 된다. 이듬해인 1979년 그는 ‘하녀’(1960) ‘이어도’(1977) 같은 괴작을 만든 감독 김기영과 만난다. 영화 제목은 ‘느미’. 벙어리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여자 장미희는 서울 변두리 벽돌 공장 공장장의 아내다. 예순이 다 된 늙은이와 살며 그의 아이를 낳고 그에게 학대받으며 낮에는 벽돌을 나르고 밤에는 그의 손발을 씻겨주고 섹스 상대가 되는 여자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주변에서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트럭 운전사 백일섭은 늙은 남편 앞에서 장미희에게 노골적으로 집적거린다. 늙은 남편은 힘으로는 백일섭과 상대가 안 되니 장미희에게 손찌검을 한다. 그 사이에 끼어든, 대기업에 취직할 예정인 인텔리 하명중. 백일섭은 정욕에 미쳐 장미희의 남편을 트럭으로 깔아뭉개 죽여버리고 장미희에게 결혼하자며 울부짖다 교도소로 간다. 대기업에 취직한 하명중은 장미희를 차지하기 위해 물량 공세를 편다.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남자들은 모두 불행한 죽음을 당하는 이 이상한 영화에서 장미희는 특별했다. 화장 안 한 맨 얼굴에 연약한 어깨와 빈약한 가슴을 드러내고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들을 물어뜯는다. 심지어 자신을 돌보아주다 회사에서 강제 퇴직당한 하명중과 함께 자살을 하려고 연탄불을 방 안에 피워놓고 드러누웠다가 하명중이 가스 냄새를 맡고 일어나려 하자 베개로 그의 얼굴을 덮어 죽이려 한다. 하명중과 헤어질 때, 그가 사 모은 살림살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경매로 헐값에 팔아버린 뒤 돈 절반을 뚝 떼어 하명중에게 주는 모습.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걸하는 하명중을 냉혹하게 뿌리치고 떠나는 장면 등에서 그녀의 냉혹함은 설득력이 있다. 장미희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행복해지면 신의 질투가 심해지고 결국 신이 행복을 갈가리 찢어 놓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여자 역을 맡아, 마음속에 포악한 살쾡이 같은 일면과 천사와 같은 순수함이 불화를 이루는 모습을 연기했다.

    1983년, 20대 장미희의 아름다운 매력이 최고로 꽃을 피운 영화가 만들어진다. 장미희와 배창호의 만남이었다. 제목은 ‘적도의 꽃’. 영화가 시작되면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어느 집 어두운 구석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쓰고 있다. 사내는 부잣집 아들인 것 같고 취직을 다섯 번이나 했지만 모두 그만두고 말았으며, 부유한 아버지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무위도식하는 청년이다. 그가 자기 집 맞은편에 이사 온 한 여자를 카메라 뷰 파인더로 보고는 반해버렸다. 이것은 장미희의 첫 흥행작 ‘겨울 여자’의 한 장면과 비슷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겨울 여자’와 ‘적도의 꽃’ 두 영화에서 여주인공 장미희는 자신의 존재를 감춘 불쾌한 남자들, 즉 스토커의 폭력적인 시선에 갇힌 불행한 여자다.

    여배우 학대하는 영화

    ‘겨울 여자’의 주인공 이화는 꿈속에서 스토커로부터 도망쳐 교회로 들어간다. 그곳은 그녀가 안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녀가 믿는 신과 목사인 아버지가 지켜줄 수 있는 곳. 그녀는 안도의 기쁨에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춘다. 그런데 스토커는 보란 듯이 성역을 침범해, 이화 앞에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잠에서 깨어난 이화에게 온 편지. 스토커가 보낸 것이다. 스토커는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교회 안에서 가면을 쓰고 그녀를 만났다고 했다. 이 불쾌한 남자와의 만남과, 그의 강간을 거부한 뒤 남자의 자살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이화를 변하게 만든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장미희가 미국에서 돌아와 출연한 배창호 감독의 영화 ‘깊고 푸른 밤’ 포스터.

    ‘적도의 꽃’의 여주인공 선영은 돈 많고 나이 많은 중년 신사가 숨겨놓고 즐기는 여자다. 중년 신사는 그녀에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사주고, 생활비를 주고, 가끔 찾아와 섹스를 한다. 젊고 아름다운 선영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앞에 스토커 ‘미스터 M’이 나타나 그들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며 자신의 선영에 대한 사랑만이 진실하고 깨끗한 것이라고 말한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장미희에 대해 약간 부드러운 면이 있지만, 이 두 영화는 모두 여배우에 대해 잔혹하다.

    ‘겨울 여자’의 경우, 영화가 관객 동원에 성공한 이유가 신세대 여성의 성 모럴을 참신한 시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칭찬을 받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 영화가 여배우를 보여주는 태도가 거칠고 야비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참혹한 삶을 보여주고 그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과,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주인공의 삶을 폭력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겨울 여자’부터 ‘적도의 꽃’까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장미희가 출연한 영화를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영화와 여주인공에 대한 매혹이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자들과 영화를 보는 자들-물론 남성들이다-의 비열하고 야비한 시선이다.

    영화 속에서 장미희는 시도 때도 없이 벗는다. 왜 벗어야 하는지 이유도 없다. 여주인공을 학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10대 후반에 영화계에 들어와 20대 중반까지 이런 야비한 시선들 앞에 자신을 노출하며 일해야 했을 어린 여배우의 고통이 상상된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는 거칠고 잔혹한 남자의 전성시대였다. 확인 안 된 수많은 야비한 소문들. 그 소문들 속에서 하나같이 권력을 쥔 남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포획물로 여배우를 이용하고 있다.

    1985년, 대학생이 된 나는 친구들과 장안의 화제작 ‘깊고 푸른 밤’(배창호 감독)을 보러 명보극장에 갔다. 영화가 시작되고 장미희가 등장했다. 아!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달라졌다. 물론 성형수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가 2년 만에 영화에 나온 장미희의 얼굴은 20대의 파릇하고 청순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볼 살이 사라졌고, 눈 밑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영화에서 그녀의 배역 역시 어두운 과거가 있는 그런 여자였다. 지난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아무도 모른다.

    서러운 눈물의 이유는

    장미희는 배창호 감독과 호흡을 맞춰 1986년 ‘황진이’에도 출연한다. 온갖 시시한 남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마지막으로 시시한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몸까지 팔고 바닷가에서 모로 쓰러져 서서히 죽어가는 황진이의 장대한 라스트는 영화의 주인공 황진이뿐 아니라 배우 장미희까지 생각하게 한다. ‘겨울 여자’에서 이화를 통해 이야기됐어야 할 것이 결국 ‘황진이’에 와서 표현된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과 졸업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 각본상 수상


    그 후 배우 장미희는 어떤 때는 자아도취에 빠진 어리석은 여자로 보였고, 또 어떤 때에는 표독스러운 여자로 보였다. 그녀가 공개석상에서 취하는 위선적인 행동은 개그의 소재가 돼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학력 위조 사건이 터진다. 사건이 터지기 몇 달 전, 장미희는 영화잡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하고 싶은 배역은 엄격함과 단호함을 지닌 여자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가 보여준 건 엄격하거나 단호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제 장미희는 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김수현에 의해 부활한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반영하는 캐릭터를 조롱과 연민이 느껴지게 연기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김근태의 장례식 날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왜 울었을까? 울음으로 그녀가 살아온 그 질곡의 세월이 설명되지는 않지만, 그녀의 눈물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할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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