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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회고록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 마지막회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ahnkw@snu.ac.kr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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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바로 세우기

준(準)국제기구로서 인권위의 역할도 챙겨줘야 한다. 인권위가 각종 국제인권조약의 국내이행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럼에도 다른 국가기관의 견제로 인해 여태껏 제 역할을 공인받지 못하고 있다.

인권위가 여느 국가기관과 다른 점은 시민사회와 폭넓은 협력 내지는 협치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이 그렇다. 모든 정부기구 회의에 비정부기구(NGO) 참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적으로 돌렸다. 반면 정부에 우호적인 단체를 지원해 이들이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견제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이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인권위의 ‘시민단체적 성격’을 불식해야 한다고 믿고 시민단체 출신 직원을 표적 삼아 박해를 가했다. 인권위가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인권 상황에 대한 국민평가단을 운영하고, 인권 관련 민간기구와 교류를 활성화해야만 한다. 근래 들어 유명무실하게 된 정책자문위원회, 전문위원회, 정책협의회의 기능을 정상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거주 지역과 무관하게 균질의 공적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는 인권의식의 격차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무소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인권위는 부산·광주·대구, 세 곳에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필자는 인권위원장 재직 시절 지역사무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본부와 지역인권사무소 사이의 수평적인 협력관계 구축, 조사권한의 확대, 현장성의 강화, 지역사회와의 협력체제 구축 등 풀뿌리 민주주의와 인권의 정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방침은 정반대였다. 2009년 3월, 인권위 조직축소를 강행할 때 정부의 당초 안에는 지역사무소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가까스로 폐지를 막아낸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인권위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4인, 국회가 4인, 대법원장이 3인을 선출 또는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인권위원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헌정의 원리상 문제가 있다. 외국에서도 고개를 갸웃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사법기관에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인권위원의 선임권을 주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에 중대한 흠이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대법원장이 인권위원 후보자를 지명하는 과정에 아무런 가시적인 검증 절차가 없다. 이 점도 절차의 투명성, 공개성을 강조하는 국제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사법 중심 인권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립한 인권위에, ‘사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훈련된 사람’을 충원하는 데 있다.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인권위원이 된 법률가들은 인권위 결정에도 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기준을 요구하는 습관이 있다. 강제력이 없는, 건설적인 제안에 불과한 인권위의 결정을 법적인 집행력이 부여되는 판결과 동일하게 여긴다면 사법기관과 별도로 인권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입법·행정·사법 등 전통적인 정부의 3부처에 인권위 구성권을 배분한 배경에는 ‘위원회’라는 이름의 정부기구에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을 참여시킨다는 명분이 있었다. 통상의 위원회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인권위의 경우는 배경과 상황이 다르다. 인권은 법 이전의 문제다. 때때로 법은 인권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최종적으로 법을 통해 인권이 실현되지만, 인권이 법에 구속되면 발전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다.

인권위원의 자질

인권위원 개개인의 자격요건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인권위법은 막연하게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자’(제 5조 2항)로 규정할 뿐이다. 2009년 7월,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인권에 ‘문외한’임을 인정해 두고두고 구설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다. 대통령이 임명할 인권위원 자리가 하나 비었다. 청와대에서 내정자를 통보해 왔다. 그가 정식으로 임명받기도 전에 인권위 사무실에 나타나 거드름을 피운다는 소식을 접했다. 위원장인 나를 만나겠다는 요청은 없었다. 설사 그가 요청했더라도 내가 거부했을 것이다. 그는 지방의 한 언론사와 연관이 있는 목사라고 했는데, 이명박 후보의 선거캠프 주위를 얼쩡거린 인물이었다. 그의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비리로 얼룩진 추문이 드러났고 마침내 청와대는 내정을 통보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세세한 이유를 댈 필요도 없는, 함량 미달의 부적격자였다.

며칠 후 한 ‘거물급’ 목사의 이름이 통보됐다. 뜻밖이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내가 사임하는 것을 전제로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분이다. 그가 위원장도 아닌 비상임위원으로 인권위에 합류하는 것은 인권위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나는 속으로 환영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몹시 불쾌해했다고 한다. 또다시 청와대는 없던 이야기로 해달라는 통보를 해왔다. 정권 초기의 인사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진보- 보수 시행착오’11년 인권위가 가야 할 길

우리나라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10년째를 맞은 2007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 광경. 최근 강력 범죄 억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형 집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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