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명사 에세이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 조영남│가수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2/2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입니다만 그때 우리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못했던 건 너무 어렸던 탓도 있고, 어렸지만 너무도 우아해 보여 가까이 갈 수조차 없는 당신의 자태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다가 당신과 나의 정신세계가 영 딴판이었죠. 당신이 니체며 릴케며 범신론 등의 얘기를 꺼내면 나는 한마디도 못 알아먹고 그러다가 우물우물하면서 우리의 사이는 또 단절됐죠.

그러나 우리 사이는 지루한 장편소설처럼 또 이어집니다. 나는 오페라와 성악을 공부하는 서울음대 학생 때부터 경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드나들게 되고 등록금을 번답시고 미8군 쇼단에도 취직하고 그러다가 쇼단에서 배운 ‘딜라일라’라는 노래를 TV에서 부르게 되어 단 하룻밤 사이에 팔자에도 없는 대중가요 가수로 소위 스타덤에 오릅니다. 유명가수가 된 직후쯤 나는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쟁이 오태석과 정하연을 만납니다. 그들은 둘 다 강 선생과 똑같은 연세대 출신으로 공부보단 연극에 몰두하던 친구들인데 우리 서울음대 연극반에서 그들을 불러들여 연극 활동을 함께하며 친해졌죠.

그러던 중 우연히 TV 드라마를 쓰던 정하연을 만났습니다. 그자가 가지고 있던 ‘연세춘추’인가 하는 두꺼운 책을 무심코 들춰보는데 첫 장에 권두시로 ‘순교자’인가 하는 제목의 시 한 편이 실려 있었고 시인의 이름이 놀랍게도 바로 강은교였습니다. 내가 가수 나부랭이가 되는 사이 당신은 여류시인이 되어 있었던 거죠. 나는 이런 식으로 물었죠.

“야! 하연아, 너 강은교 아니?”

“그럼, 연대문학부 동아리 직계 후배야. 굉장히 친해.”



“강은교 지금 어딨냐?”

그때 이미 모든 여성잡지에서는 강은교의 파란만장한 얘기가 넘쳐날 때였죠. 나의 질문에 이어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같은 문과 계통의 남자와 결혼했다,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큰 수술을 해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 구슬픈 답변이 쭉 나오더군요. 나는 혼자 찾아가도 될 것을 치사하게 하연이를 앞세워 명동성모병원에 찾아가 당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도 보고 당신 남편 되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 당신이 죽을 먹고 싶다고 해 하연이와 내가 명동 골목길로 내려가 쭈그러진 냄비에 죽 한 그릇을 담아 올려 보낸 기억도 비교적 선합니다.

그 후 또 소식이 끊기고 당신이 잡지사 ‘샘터’에 근무하면서 원고 청탁을 나한테 하고 내가 원고를 보내고 했던 기억밖엔 없습니다. 20, 30년 가까이를 지금까지 잊고 산 것이죠. 그러다가 당신이 명예교수직에 오르고, 내가 은퇴 지경의 노가수에 이르러 또 한번 이런 편지 한 통을 교환하게 됩니다.

강 선생도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좀 쑥스러웠는지 편지를 쓰게 된 두 가지 이유를 똑 부러지게 댔더군요. 첫째는 당신이 2002년에 쓰셨다는 ‘혜화동’이란 제목의 시를 나의 작곡 솜씨로 노래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과, 둘째는 어느 문학지에서 조영남이 쓴 시인 이상의 시 해설서가 출간되어 반가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유가 편지를 쓴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고 적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내가 해놓고도 내 스스로가 화들짝 놀랄 만한 일이었습니다. 대중가요로 먹고사는 놈이 감히 우리 시대 최첨단 시인의 해설 불가능에 가까운 시를 해결한다고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라는 시건방진 제목으로 책을 펴내다니. 하여간 어쩌다 그런 책을 쓰게 됐고, 책을 낸 게 10년이 넘었는데 어느 구석으로부터라도 잘 썼다거나 못 썼다는 한마디 질문이나 코멘트를 못 들어오다가 오늘날 당신, 여류시인 강은교로부터 그런 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는 소식을 받고나니 아! 그런 거라도 쓰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 책이 아니었으면 강 선생의 편지도 못 받았을 거 아닙니까. 하하하.

편지에 강 교수께서 최근 TV를 보다가 내가 노래했던 ‘목련’인가 하는 노랠 듣게 됐다고 했는데 아마 TV 프로그램의 제목은 KBS의 ‘열린 음악회’였고 내가 부른 노래 제목은 ‘모란동백’으로 마산 출신의 시인 이제하 선생이 직접 자신의 시에다 곡을 붙인 노래였습니다.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조영남

1945년 황해 사리원 출생

서울대 성악과, 미국 트리니티신학대 졸업

1970년 노래 ‘딜라일라’로 데뷔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 등 다수 수상

저서 ‘삽다리를 아시나요’ ‘예수의 샅바를 잡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쎄시봉 시대’ 등 다수 출간


그리고 강 교수께서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의향과 함께 보내준 두 편의 시 ‘혜화동’과 ‘어느 황혼을 위하여’는 단연 썩 좋은 시였습니다. 어느 작곡자가 봐도 곡을 붙이고 싶게 하는 훌륭한 노랫말이란 얘기죠. 문제는 저의 음악 실력이겠죠. 확실히 나이를 먹으니 굼떠졌다는 얘깁니다. 노력은 해볼랍니다.

참, 요 몇 달 전 ‘은교’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왔을 때 정말 속으로 화들짝 놀랐어요. 한편으론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가봤는데 너무 실망했습니다. 영화가 잘나가다가 신파 쪽으로 빠지더니 치정으로 끝을 맺더군요. 내가 아는(?) ‘은교’ 스토리와는 영 달랐습니다. 갑자기 경기여고 교복을 입고 혜화동 골목길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곤 했던 내 추억의 가상 영화 ‘은교’의 한 장면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신동아 2013년 1월호

2/2
조영남│가수
목록 닫기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