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안소영이 하얀 속옷 차림으로 빗속을 질주하던 영화 ‘애마부인’의 한 장면.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 종로 3가 서울극장 앞에 도착했다. 평일 오후 2시쯤이었는데도 극장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남자였다. 그들 모두 애마부인을 만나러 온 것이다. 세상에! 백주 대낮에 이렇게 할 일 없는 남자가 많다니. 하하하. 나는 그렇게 애마부인 안소영을 처음 극장에서 대면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만큼이나 수많은 애마 시리즈가 극장에 걸렸다. 2대 애마 오수비는 말만 탄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사타구니를 벌리고 파도에 흠뻑 젖은 관능의 워터 쇼를 보여줬고, 3대 애마 염혜리(나중에 김부선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백치미라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줬다. 점입가경. 4대째에 가서는 ‘파리애마’가 등장해 88올림픽과 함께 글로벌 애마의 시대, 이제 우리는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해줬다.
내가 20대를 보낸 1980년대는 애마부인의 시대였으며, 아직도 생각만 하면 코끝이 매캐해지는 최루가스의 시대였다. 술을 마시고 나서 우리는 신림역 주변의 동시상영관으로 우르르 몰려가 심야상영으로 애마부인들을 섭렵했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도 ‘애마부인’과 ‘산딸기’ 시리즈, ‘뼈와 살이 타는 밤’ 같은 에로영화를 보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죽였다. 어찌 보면 참 쓸쓸하고 황량한 20대였다.
예술과 음란 사이

1980년대 에로영화 전성시대를 연 안소영 주연 영화 ‘애마부인’ 포스터.
칼날은 곧이어 영화 쪽으로 향했다. ‘벽 속의 여자’(박종호 감독, 1969) ‘당신’(이성구 감독, 1969) ‘내시’(신상옥 감독, 1968) ‘이조여인 잔혹사’(신상옥 감독, 1969)가 수사 대상이 됐다. 신상옥 감독과 박종호 감독이 음화 제조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김지미와 문희, 신성일과 윤정희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시나리오 검열 때 남녀의 정사 장면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촬영을 강행했고,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검열에 다시 걸리고 나서야 정사 장면을 삭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유현목 감독의 목소리가 컸다. 유현목 감독을 괘씸하게 본 검찰은 그가 몇 해 전 만든 영화를 갖고 꼬투리를 잡았다. 1965년 상영됐던 유현목 감독의 영화 ‘춘몽’을 음란물유포죄로 기소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영화가 이미 검열을 통과해 극장에서 상영됐고, 문제가 된 남녀 배우의 정사신은 삭제 후 개봉했다는 점. 별문제 없는 것인데, 검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삭제해 일반에 공개했더라도 정사 신을 촬영한 것 자체가 음란죄라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삭제해 보관 중이던 필름을 조사했고, 법정에서 유현목 감독은 음화제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와 여배우의 옷을 벗겨 돈벌이하는 것의 차이는 어찌 보면 애매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당시만 해도 여배우의 노출이, 그래봤자 약간 농도가 짙은 키스 신이나 여배우의 어깨 또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정도였지만, 화제가 됐고, 그것은 당장 흥행 성공으로 연결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제작자와 감독은 검열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노출 수위를 높였다. 검열의 가위가 약간 느슨해지면 노출 수위가 높아지고, 검열이 강화되면 움츠러드는 숨바꼭질이 무한 반복됐다.
1970년대 중반, 조금씩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가 나오기 시작하자, 검열의 가위는 노출 수위 쪽에 느슨해지고 정권에 비판적인 영화 쪽에 바짝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1974년. 당시 뉴 페이스로 남성 팬의 관심을 끌었던 양정화 주연의 영화 ‘성숙’(정소영 감독)에서는 비록 1, 2초에 지나지 않고 대역 여배우의 가슴을 노출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배우의 가슴이 노출된다.
주인공 양정화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다. 아이의 아버지인 애인은 적반하장. 자신과 섹스해 임신한 양정화를 정조 관념이 희박하다고 탓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그의 배가 불러온다. 이상한 점을 눈치 챈 아버지는 양정화를 불러다놓고 폭력적으로 상의를 벗긴다. 이때 여배우의 가슴이 드러나는데,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관객의 눈요기만을 위한 아주 뻔뻔한 노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