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한실마을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2/2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할머니가 가마솥에 물을 데우고 있다. 처마 밑 곶감.

수몰된 대곡초 동창생들

한실마을에 가려면 덤으로 보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 등산복을 차려 입은 탐방객들이 보인다. 저 유명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때문이다. 반구란 거북이가 반쯤 엎드린 모습이라는 의미인데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포경 유적이라고 한다. 암각화는 포경 장면은 물론 육지의 사냥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원시 고대시대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문화해설사가 한껏 목청을 높인다.

암각화를 볼 수 있는 시기는 겨울로 한정돼 있다. 또 설사 본다고 해도 멀리서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사연댐으로 인해 연중 대부분은 물속에 잠겨 있고 갈수기인 겨울철에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십여 m 떨어진 물 건너편에 있는 평평한 돌 벽면만 볼 따름이다. 댐으로 생긴 물로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탐방객은 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간다. 그나마 울산시가 만든 모형을 보고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절대 오지인 한실마을을 찾는 이의 눈길을 끄는 것은 또 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반고서원 유허비(遺墟碑)다. 한실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기암절벽을 마주한 댐 상류에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이른바 친원배명(親元排明) 실리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 곳에서 1년 남짓 귀양살이를 했다.

장작불과 산골의 적요함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반구서원.

한실마을은 춥다. 댐 건설로 생긴 이상기후라고 한다. 볼펜 잉크가 얼어 글씨가 써내려가지질 않는다. 실제 얼마 되지 않은 다랭이논 농사의 작황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만난 또 다른 박모 할아버지(75)는 외지인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문전옥답 고향 마을이 댐으로 물에 잠긴 데에 대해 거친 원망을 쏟아낸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외지인은 토박이 할아버지의 오래된 분노를 잠재울 그 아무것도 없다.

고향을 잃은 할아버지의 지청구를 귓전으로 들으며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는 연신 가마솥을 행주로 훔친다. 오랜만에 보는 원단 무쇠 가마솥이다. 문득 가마솥을 보니 온전히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소여물을 헤집고 차가운 물을 담은 대야를 쑤셔 넣어 데운 물로 세수를 하던 그 어린 날은 얼마나 남루했던가. 그러나 그런 남루함이 오히려 그리운 세상이 되었다.

가마솥 아궁이에서 장작불은 이글거리고 산골짜기 마을은 외롭고 적요하다. 한나절을 보냈건만 찾아오는 이도 나가는 이도 없다.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해는 아직 중천이지만 강을 끼고 있는 대숲엔 이미 짙은 어둠이 들었다. 그 거대한 대나무 숲 옆으로 거대한 인공호수가 동짓달 추위에 웅크리고 있다. 대숲은 영하의 바람을 이기지 못해 윙윙 휘파람만 불고 있다. 그 깊은 호수 바닥에 한실마을의 역사가 잠들어 있고 산골짝 겨울은 깊을 대로 깊어만 간다.

신동아 2013년 1월호

2/2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