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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⑩

부자를 소망하는 한국 ‘사랑하며 즐겁게 살기’ 꿈꾸는 프랑스

이방인이 본 서울 새해 풍경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부자를 소망하는 한국 ‘사랑하며 즐겁게 살기’ 꿈꾸는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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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위쪽에 있는 몽마르트르 공원을 산책하는데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서초구 서울시 25개 구 중 행복지수 1위.’ 녹지 분포, 공기의 질, 문화시설, 교육시설, 상업시설, 체육시설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서초구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구청의 홍보물이다. 동물병원의 플래카드가 내건 돈과 건강이라는 조건에 서초구청이 내건 좋은 환경이라는 조건이 더해진다면 행복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강남성모병원 앞 사거리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높이 걸려 있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약속이다. 그 플래카드를 바라보다가 박 당선인이 텔레비전 토론에서 “중산층 70%의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한 약속이 생각났다.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가 안정된 사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산층의 기준이다. 한때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70%에 육박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주관적 평가의 지수가 훨씬 낮아졌다. 그리고 중산층의 정의에는 그런 주관적 평가보다 객관적 지표가 사용돼야 한다. 항간에는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가 한국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풍문이 떠돈다. 누가 만든 기준인지는 몰라도 임기 5년 동안에 70%가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회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의 중산층 정의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중산층의 기준이 거의 모두 ‘경제적’인 수치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때 나는 프랑스의 중산층을 염두에 두고 중산층의 ‘문화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적이 있다. 하나 이상의 외국어 구사 능력,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악기 하나 이상, 자기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요리 하나 이상, 하나 이상의 시민단체나 자원봉사단체 참여. 경제적 소유를 바탕으로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문화적 능력이 이상적인 중산층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가 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프랑스에서는 서로 뺨을 마주치며 “본 아네(Bonne annee!·좋은 한 해!)”라고 말한다. 복을 많이 받아 좋은 한 해를 맞이하고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프랑스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행복’과 ‘좋은 한 해’가 무엇이냐를 물어보면 그에 대한 답변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건강하고 부자 되기’를 바란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거기서 한발 나아가서 ‘사랑하며 즐겁게 살기’를 꿈꿀 것이다.

풍경 #85 서울의 몽마르트르 공원



서초구 방배동에는 ‘에콜 프랑세즈’(프랑스 학교)가 있고 프랑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이 있다. 그래서인지 서초구는 파리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문화교류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서래마을 옆의 언덕에 새로 조성한 공원의 이름을, 파리에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이름을 따서 몽마르트르 공원이라고 붙여놓았다. 1970년대 불문학자 김붕구 교수가 쓴 ‘서울과 파리의 마로니에’라는 수필집이 있었는데 앞으로 누가 ‘서울과 파리의 몽마르트르’라는 책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둠이 내린 몽마르트르 공원을 산책할 때의 일이다. 공원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눈이 내리는 공원 풀밭 위에 군데군데 토끼들이 보였다. 산토끼가 아니라 집에서 키우던 집토끼들이다. 아기 토끼를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워 내다 버린 토끼들이라고 한다. 가로등은 하얗게 졸고 있고, 눈이 쌓이는 차가운 겨울날 추위에 떨고 있는 토끼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보통 때 주말이면 몽마르트르 공원에 서래마을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부모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청소년들이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기도 한다. 그 가운데 프랑스어를 하는 한국 아이들이 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한국 아이들이 프랑스 아이들을 놀리거나 못살게 구는 경우가 많다. 친해지자는 의사의 표현이다. 그러면 프랑스 아이들은 저항하지 않고 그저 “세 파 드롤(C‘est pas drole!·재미없어!)”이라는 말만 하며 피한다. 괴롭게 굴어도 힘으로 대항하는 아이가 없다. 한국 아이들은 몸싸움을 즐기는 데 견주어 프랑스 아이들은 서로 거리를 둔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화가 나도 폭력을 사용하면 야만이니까 불만이 있으면 말로 표현하라는 생각을 깊게 받아들인 결과인 듯하다.

푸른색 시내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옆구리에는 ‘지방흡입 하나만 꽉 잡았다’는 문구와 함께 울퉁불퉁한 뱃살을 잡고 있는 손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외모지상주의는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을 유행시켰고, 얼짱과 몸짱이 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 얼굴 윤곽을 바꿔주고 작은 얼굴로 만들어주며 얼굴 비대칭을 바로잡아주고 가슴과 엉덩이를 풍만하게 해주고, 팔자주름, 눈가주름, 이마주름, 목주름 등 온갖 주름살을 제거해주는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가 성업 중이다.

풍경 #86 한의원의 변모

그런데 며칠 전 구반포 쪽으로 걸어가다가 건물 유리창에 쓰인 한의원 광고 문구를 보게 되었다. ‘탄력 있는 자신감, 몸매관리.’ 성형외과, 치과, 피부과 같은 병원이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 고객들을 위해 이미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한의원까지 여성들의 몸매를 관리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슨 약을 어떻게 써서 불필요한 살을 없애주는지 몰라도 그런 광고는 한의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9호선 지하철을 탔더니 전동차 실내에 ‘독열로 인한 여드름 제거’라는 한의원 광고가 붙어 있었다. 비아그라 때문에 한의원의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이제 한의원들도 기초체력 강화가 아니라 여성들의 외모 관리를 해주고 수입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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