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세기의 전설 소설의 세기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3-01-22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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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전설 소설의 세기

    레 미제라블(전5권)<br>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6만1000원

    파리 마레지구 보주광장 6번지 로앙 귀에메네 대저택 2층, 위고의 집 두 번째 살롱(붉은 방)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 문구가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은 중요한 정점이 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내 주요작이 되든지!”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빅토르 위고(1802~1885), 대상은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이다. 들라크루아라면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가 열광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키오스의 대학살’(1824),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천사와 야곱의 싸움’(1856~1861)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오마주(경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60세의 위고가 64세의 들라크루아에게 흥분에 차서 써 보낸 이 작품이란 ‘레 미제라블’을 가리킨다. 편지를 쓴 시점은 1845년 시작했으나 15년 동안 방치했다가 1860년 다시 쓰기 시작해 1862년 4월 제1부를 대중에게 내놓기 직전이었다. 소설의 첫 장을 펼치기 전에 위고는 1862년 1월 1일자로 유배지 건지 섬의 오트빌 하우스에서 다음과 같이 헌사를 쓴다.

    법률과 풍습에 의해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35년 구상, 17년 집필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2013년 새해 벽두, 한국에서 다시 ‘레 미제라블’이 연일 화제다. 소설을 뮤지컬 형식으로 만든 동명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결과다. ‘레 미제라블’은 위고가 35년간 마음에 품고, 장장 17년(1845~1862)에 걸쳐 집필한 대작이다. ‘레 미제르’로 시작한 뒤, 방치했던 15년 동안 위고는 정계에 진출했고, 민주주의자가 되어 혁명을 이끌었고, 혁명이 실패하자 영국령의 섬으로 유배를 갔고, 그 유배지에서 완성했다. 레 미제르(Les miseres)와 레 미제라블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 또는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뜻. 한국에서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내세운 청소년판 요약본 ‘장 발장’으로 널리 알려져왔고,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 장 발장 정도는 알 정도로 익숙한 인물이다.



    1815년 10월 초순, 해가 지기 한 시간쯤 전에 걸어서 길을 가던 한 사나이가 소도시 디뉴로 들어오고 있었다. 때마침 이 집 저 집에서 창이나 문 앞에 더러 나와 있던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초라한 모양을 한 행인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는 중키에 뚱뚱하고 실팍진 한창때의 사나이였다. 나이는 마흔여섯에서 마흔여덟쯤 되었으리라. -제 1부 팡틴 2장‘추락’ 중에서

    세계 소설사에 ‘레 미제라블’뿐만 아니라 ‘파리의 노트르담’(1827)으로도 이름난 위고는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 지방의 주도 브장송 출신으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다. 브장송은 문학자들에게 스탕달의 ‘적과 흑’의 무대로 각인되어 있고, 음악가들에게는 세계 지휘 콩쿠르가 열리는 음악도시로 알려져 있다. 영화인들에게는 뤼미에르 형제가 태어난 영화의 산실로, 또 근처 오르낭에서 태어난 화가 쿠르베가 학창생활을 한 고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소설 ‘적과 흑’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이 브장송에 온 이유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곧 브장송은 예부터 신학의 도시. 동시에 스위스 국경지대인데다가 두 강이 도시를 에워싸듯이 흐르는 지리적 특성으로 시타델(요새)이 구축된 군사의 도시다. 위고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 출신, 위고가 브장송에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 발장의 귀에 “너는 자유다”라는 그 이상한 말이 들렸을 때, 그 순간은 거짓말 같고 이상야릇했다. 강렬한 광명의 빛이, 산 사람의 진정한 광명의 빛이 갑자기 그의 속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빛은 머지않아 희미해졌다. 장 발장은 자유라는 생각에 현혹되었다. 그는 새로운 생애가 열리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곧 노란 통행권이 첨부되는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 1부 팡틴 2장‘추락’ 중에서

    소설 ‘레 미제라블’엔 시와 소설, 신학과 철학, 역사와 정치를 뼛속 깊이 체득한 노작가 위고의 인간과 사회, 법과 종교에 대한 신념이 총 5부에 걸쳐 순차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뮤지컬 형식의 영화 ‘레 미제라블’은 소설로 전하지 못하는 현지의 자연과 사람, 마을과 도시, 골목과 광장, 가옥과 수도원의 형태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에서 압권은 센 강 좌우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파리의 지하세계, 곧 시궁창(하수도) 탈출 장면이다. 인간 삶의 양태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대변하는 장르가 소설인 만큼 원작의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게 따로 찾아볼 정도로 놀라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파리의 하수구는 중세에 전설적인 존재였다. (…) 꾸불꾸불하고, 터지고, 포석이 제거되고, 금이 가고, 웅덩이들로 끊기고, 이상한 굴곡부들로 흔들리고, (…) 사방으로 갈라진 하수관들, 구덩이들의 교차, 지관, 오리발 모양의 대호(對壕) 속 같은 방사형 배수관, 맹장, 막다른 골목, 초석(礎石)으로 덮인 홍예 천장, 더러운 웅덩이, 벽 위의 수포진(水疱疹) 같은 유출물 (…) 파리 하수도의 굴착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지난 10세기 동안에 파리 시를 완성시키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에 파리의 하수도도 완성시키지 못했다. 사실, 파리의 하수도는 파리 성장의 모든 여파를 받는다. -제 5부 장 발장 2장 ‘거대한 해수(海獸)의 내장’중에서

    소설의 제 5부, ‘장 발장’의 극적인 사건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떠메고 미로 같은 파리의 하수도를 통해 도주하는 장면이다. 위고는 장 발장의 행로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파리의 명물인 하수도를 파헤치는데, ‘파리 하수구 연구’로 불릴 만큼 분량이 방대하고, 묘사는 정교하고 집요하다. 이러한 공간 탐구는 인물의 역동적이고 불가사의한 행동에 개연성(reality)을 부여한다. 이는 19세기 소설가들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공간 창조는 영화의 카메라 워크, 곧 장면(scene) 개념에 속한다. 하수도의 역사와 변천을 숙지하고 머릿속에 훤히 꿰뚫고 있는 독자들은 인물의 활약은 물론, 역동적인 변화에 따른 문장의 참 의미와 묘미를 감상할 수 있다.

    장발장이 있었던 것이 파리의 하수도 속이다. 파리와 바다의 유사점은 더 있다. 대양처럼, 잠수부는 거기에서 사라질 수 있다. (…) 도시의 한복판에서, 장 발장은 도시에서 나갔고, 눈 깜박할 사이에, 뚜껑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그것을 다시 닫는 시간에, 그는 대낮에서 완전한 어둠으로, 정오에서 자정으로, 소란에서 정숙으로, 천둥의 회오리바람에서 무덤의 정체로, 그리고 폴롱소 거리의 급변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급변에 의해, 가장 극심한 위험에서 가장 절대적인 안전으로 이동했다. -제 5부 장 발장 3장 ‘진창, 그러나 넋’ 중에서

    천형 짊어진 사내의 성자적 행로

    발자크를 비롯해 스탕달, 위고, 플로베르 등 19세기 소설의 세기를 연 프랑스의 소설가들은 거대한 일상 연구를 바탕으로 정치와 역사, 철학과 종교의 몫을 문학(예술)적으로 실천한 작가들이다. ‘레 미제라블’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한 죄수가 19년 감옥살이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추적하고 있는데, 작가의 관심은 한 인간이 죄를 짓는 과정과 그 죄에 의해 달라지는 삶의 내용, 그리고 그 죄를 관장하는 법과 법의 추동체인 사회 및 국가 권력의 실체에 있다. 어떤 이유로든, 또 얼마만한 경중의 죄이든 죄를 지은 사람의 행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것은 한순간의 죄로 인해 시시포스처럼 속죄의 천형을 짊어진 장 발장이라는 사내의 성자적 행로다.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 크고 작은 사건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낯익은 예술적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들라크루아의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배우들이 재현한 장면으로 보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삼색기가 나부끼는 자유의 여신을 따르는 민중의 메아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진화를 위해 투신했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노시인의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대미(大尾)가 궁금하다. 페르라세즈 묘지, 이름 없는 묘석에 누군가 연필로 적어놓은, 비와 먼지로 지워질 사행시(四行詩)가 얹혀 있다.

    그는 자고 있네. 그의 운명은 아주 기구했건만,

    그는 살고 있었네. 그의 천사가 없어지자 그는 죽었네.

    그것은 그저 올 것이 저절로 온 것.

    마치 해가 지면 밤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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