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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golfing ⑥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믿음”

선박자재 국산화 기수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 글·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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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믿음”
핸디캡 0을 그리워하다

‘티잉~’ 호쾌한 드라이브샷에 골프공 소리가 바람을 가른다. 새 한 마리가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다. 워터 해저드는 아직 꽁꽁 얼어붙었지만 햇살은 제법 따스한 기운을 전하고 있다.

1월 8일 부산시 금정구 선동 동래베네스트 골프클럽. 멀리 우뚝 솟은 금정산이 코스를 굽어보고 있다.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65)의 마음은 홀가분해 보였다. 조 회장은 1월 2일 35년간 이끌었던 BN그룹의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됐다. BN그룹은 1978년 부일산업으로 출발해 조선기자재 산업부문 세계 1위에 올랐고, 2011년 대선주조 인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연 매출이 7000억 원에 달하는 부산의 대표기업이다. 조 회장은 지난해 초 맡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일에 좀 더 열중하고, 자신을 도왔던 동생 조의제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의 골프 스윙은 리드미컬했다. 무심 타법이다. 스윙 궤도는 크지 않지만 스피드 있고 임팩트도 강했다. 스윙 동작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처럼 독특했다. 20년 전 겨울에 스키를 타다 4m 아래로 굴러 떨어져 왼쪽 어깨를 크게 다친 뒤부터 스윙 동작이 엉뚱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상처는 나았지만 원상회복이 되지 않아 근육이 움츠러들었다. 그 조건에 맞춰 스윙을 하려다보니 자신만의 독특한 스윙 동작이 나오는 것이다.

다치기 전 그는 핸디캡이 ‘0’이었다. 베스트 스코어는 68타. 생애 기록을 세운 그 라운드에서 버디 여섯 개를 잡았다. 드라이브샷에서 OB를 하나 내고도 그런 스코어를 냈다. 요즘 평균 핸디캡은 13.



“10년 전까지만 해도 다치기 전의 상황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지요.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250m는 됐고, 유명 프로 선수와 대결해서 이기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다친 근육을 어떻게든 회복해서 전성기 때의 몸 상태로 돌아가고 싶었지요. 지금은 그 생각을 놓았습니다. 나이도 들고 골프 스코어에 대한 욕심도 버렸으니까요.”

조 회장은 세컨드샷으로 ‘온 더 그린’에 성공했다. 첫 홀부터 파를 기록했다. 덕분에 동반자들도 덩달아 ‘일파만파(첫 홀에서 실제 스코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파를 주는 것)’의 혜택을 받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믿음”
비거리 대신 어프로치샷 승부

인코스 12번홀에서였다. 숲에서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나타나 페어웨이를 성큼성큼 가로질러갔다. 금정산 일대에 서식하는 야생 고라니다.

“서울에서 손님 오셨다고 고라니가 축복해주네요.”

조 회장이 그 말을 한 뒤 마침 이 홀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동반자 한 명이 행운의 버디를 기록했다. 페어웨이를 나란히 걸으며 조 회장에게 “남자가 비거리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드라이브 비거리가 크게 줄어 물론 아쉽긴 했지요. 그런데 새 전략을 세웠습니다. 비거리를 늘리기보다 어프로치샷을 정교하게 해서 스코어를 관리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어프로치샷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머리를 들지 않고 어프로치샷을 연습하면 정교한 샷이 가능해집니다.”

워터 해저드가 얼어붙어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자가 친 공이 워터 해저드에 떨어졌지만 얼음에 튕겨 페어웨이에 올라앉았다. 크고 작은 위기 때마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골프를 하면서 저는 늘 ‘골프는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습과 노력 없이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드라이브샷이 좋아도 방심하면 세컨드샷에서 OB를 내 그 홀을 망치기도 하죠. 나쁜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면 행운을 만나기도 합니다. 골프를 잘하게 되면 골프에 대한 식견뿐 아니라 삶에 대한 식견도 높아집니다.”

골프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조 회장은 논어의 ‘욕속부달(欲速不達)’ 문구를 되새긴다. 제자인 자하가 한 마을의 촌장이 되어 마을을 다스리는 법을 묻자 공자가 답한 말이다.

“빨리 하려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모든 일에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골프도 무리하게 욕심을 내다보면 가야 할 방향과 목표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욕심이 생기면 저는 우선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고 마음을 비웁니다. 이번 타의 목표 지점만 생각하고 호흡을 고릅니다. 그러면 정신이 가다듬어지고 금세 공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이런 습관은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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