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화의 친부에 대한 강씨의 진술은 계부 김동순 씨가 2008년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주장했던 것과도 대부분 일치했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정화가 자기 친아버지를 모른다고 하는데 모두 거짓말이다. 원정화가 고등중학교 재학 시절 친아버지의 집에 가서 두 달 정도 살다온 적이 있다. 최근 정화를 만나 ‘너 진짜 아버지를 모르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실토했다.”
2. 원정화의 중국 행적
취재 중 만난 탈북 여성 박모(40) 씨는 “1999년경 중국에서 정화를 알게 됐고 이후 가깝게 지냈다. 2000년 말까지 정화가 동생 부부 등과 같이 살던 연길의 S아파트에도 자주 갔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원씨와 자주 만났다는 시기는 원씨가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100명이 넘는 탈북자와 한국인을 북송시켰다고 주장하는 때와 거의 일치한다. 박씨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정화는 몸이 많이 안 좋아 거의 집에만 머물고 있었다. 탈북자를 체포해 북송시키는 일을 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탈북자인 나부터 북송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당시 정화는 특별한 돈벌이가 없었고, 한족인 동생 남편이 중고자동차 밀수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살았다.”
‘100명 이상 북송’은 원씨의 보위부 간첩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원씨가 북송했다는 사람 중 신원이 공개된 사람은 경기도에 거주하던 40대의 윤모 씨뿐이다. 7명이 확인됐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정확한 건 아니었다. 당시 원씨를 수사한 합동수사본부는 “원씨가 중국에서 실종된 사람들 중에서 실종자 윤씨를 정확히 지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2008년 8월 27일 국민일보). 판결문에는 실종자 윤씨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피고인(원정화)은 1999년 9월경 중국 연길 서시장 꼭대기에 있는 노래방에서 종업원으로 위장취업해 있을 때, 손님으로 놀러 온 남한 사람 윤○○(남, 47세, 경기도 거주)을 알게 된 다음 … 보위부 박○○ 과장에게 “윤○○이 내가 탈북자라고 이야기하자 관심을 보이며 전화번호를 주면서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보니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남한 정보기관 사람이거나 그 앞잡이일 수 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 박○○, 김진길 및 위 중국 공안 복장을 한 중국깡패들이 윤○○의 방으로 들어와 수갑을 채우고, 방 안을 뒤져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것을 확인한 다음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아지트인 두만강호텔 301호실로 납치해 갔다. 피고인은 1999년 1월경부터 2001년 10월경까지 중국 연길·훈춘 등지에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탈북자, 북한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등 총 100여 명을 두만강 호텔로 약취하였다.”
원정화 씨는 최근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북송시킨 한 탈북여성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공교롭게도 앞서 소개한 박모 씨였다. 판결문에 등장한 남성 외에 원씨가 북송시켰다는 사람의 신원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기자가 원씨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당시 기자는 박씨에 대한 취재 내용을 알리지 않고 원씨와 대화를 나눴다).
▼ 박OO 씨를 알고 있나.
“아~ 박OO 언니. 나보다 한 살 많다. 우리 집(연길 S아파트)에도 몇 번 왔다. 얼굴이 예쁘다.”
▼ 그 여자가 탈북자라는 건 알고 있었나.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언니가 말해줘서 알았다.”
▼ 당시는 탈북자들을 북송시키는 일을 주로 할 때인데, 왜 박OO 씨는 북송시키지 않았나.
“북송시켰다. 그런데 무슨 빽이 있는지 며칠 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나도 깜짝 놀랐다. 지금 그 언니는 한국에 있다. 내가 하나원에 있을 때 어떻게 알았 는지 하나원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그 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기자는 대화 내용을 박씨에게 들려주고 의견을 들었다. 박씨는 이렇게 답했다.

2008년 8월 수원지검에서 공개한 원정화 사건 관련 증거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