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애국가 울리면 가슴 벅찬 한국 사람 평창에선 개인전 메달 따고파”

쇼트트랙 귀화 스타 공상정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4-03-20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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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계주 멤버에 피해 줄까봐 매일 밤 혼자 훈련
    • “빙상돌이라고요? 그 정도로 예쁘진 않아요”
    • 초교 5학년 때 기본기 다시 다지며 단단해진 ‘노력파’
    • 이성 친구와 손잡고 다니는 데이트 너무 해보고 싶어
    “애국가 울리면 가슴 벅찬 한국 사람 평창에선 개인전 메달 따고파”
    2014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을 통해 ‘빙상계의 아이돌(이하 ‘빙상돌’)’로 떠오른 여고생이 있다. 2011년 체육인재로 특별 귀화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공상정(18·춘천 유봉여고) 선수. 2월 19일 3000m 계주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 꽃다발을 목에 걸고 깜찍한 미소를 선보인 후 그는 단숨에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며 큰 관심을 모았다. 그의 셀프카메라 사진은 물론 대만 출신 화교 3세라는 사실과 가족 신상까지 화제가 됐다.

    러시아에서 귀국한 지 나흘 만인 3월 1일, 서울시내 한 레스토랑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극 마크를 단 트레이닝복 대신 평상복 차림인 그에게서 투박하고 거친 운동선수의 이미지를 찾기란 힘들었다. 귀여운 얼굴의 여고생일 뿐이었다. 강원 춘천 하나병원장인 아버지 공번기 씨와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 진신리 씨도 동석했다. 이들 부부는 둘 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화교 2세다. 공상정도 춘천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자랐다. 그래선지 한식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다. 소치에서는 한식이 제맛이 나지 않아 만두와 스파게티 같은 밀가루 음식만 먹었다고 한다. “소치에서 한국 치킨이 너무도 그리웠는데 엊그제 소원을 풀었다”며 해맑게 웃을 땐 18세 소녀의 풋풋한 매력이 배어나왔다.

    ▼ ‘빙상돌’이라는 애칭이 마음에 듭니까.

    “민망하고 부담스러워요. 그 정도로 예쁜 얼굴이 아니에요. 운동선수가 실력으로 떠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너도 준결승에서 할 만큼 했다. 값어치 있는 금메달을 받았다. 잘했으니 관심을 갖는 거다’라고 격려해줘서 그나마 위안이 됐어요.”

    ‘무사히만 타자’



    ▼ 준결승에는 주전 김아랑의 대타로 나간 건가요.

    “아랑 언니가 급성위염이라 제가 대신 뛴 것처럼 알려졌지만 원래 준결승에 나가기로 돼 있었어요. 주전은 아니지만 저도 준결승에서 뛰기 위해 올림픽을 준비했어요.”

    그는 지난해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자부 종합성적 5위로 소치행 티켓을 얻어 3000m 계주 준결승에 나갔다. 결승에서 뛰지 않은 그로서는 실력이 아닌 외모로 주목받는 게 달갑지만은 않을 터. 하지만 세계랭킹 1위인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의 실력을 의심할 이가 있으랴. 그는 러시아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이던 2월 28일, 보란 듯이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진정한 ‘빙상돌’임을 입증했다. 이날 경기 성남에서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전의 여자 고등부 쇼트트랙 500m 결승전에서 45초06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진짜 욕심 없이 탔어요. 메달이나 초수에 연연하지 않고. 올해 처음 나간 개인전이라 감만 익히자는 생각으로 경기를 즐겼어요. 그렇게 마음을 비워선지 스타트부터 잘 나갔지만 금메달을 딸 줄은 몰랐어요.”

    2월 25일 오후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그는 해단식과 춘천 퍼레이드, 전국동계체전에 연이어 참가하느라 쉴 겨를이 없었다. 3월 2일에는 태릉선수촌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3월 14일부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3000m 계주 경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공상정은 계주 주전인 박승희(22·화성시청)의 순발력과 집중력, 조해리(28·고양시청)의 노련미와 침착성, 김아랑(19·한국체대)의 끈기와 돌파력, 심석희(17·서울 세화여고)의 체력과 큰 신장을 부러워했다.

    ▼ 팀워크가 좋은 편인가요.

    “언니들이 이번 시즌만큼 멤버들이 고루고루 친한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해리 언니와 승희 언니가 평소에 저희 동생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 어린 나이에 올림픽에 출전해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 같아요.

    “원래 계주 경험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올림픽에서 뛰어야 하니까 긴장을 많이 했어요. 자면서도 스케이트 타는 꿈을 수없이 꿨어요. 소치에 도착하기 전에는 실감이 안 났는데 도착해서 경기를 2~3일 남겨두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어요. 제가 실수해서 팀 전체에 피해가 갈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너무 긴장해선지 준결승 마치고 복통으로 고생 좀 했죠.”

    ▼ 마음고생이 심했나요.

    “사실 언니들보다 체구가 작아서 처음엔 (다음 주자를) 미는 게 잘 안 맞았어요. 언니들은 다 키가 비슷해서 밀고 받는 게 잘 맞는데 저 혼자 조그마하니까 잘 안 맞는 거예요. 힘은 좋은데 미는 요령을 잘 몰라 매일 밤 상체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어요. 제가 끼면 자꾸 초수가 깎이고 언니들이 더 힘들어 보여 불안하고 미안했어요. 준결승을 앞두고 며칠간은 잠을 못 잤어요.”

    ▼ 경기할 때는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던데.

    “저는 긴장하면 멍 때리면서 생각이 없어져요. 뛸 때도 정신이 없어서 넘어지지 말고 무사히만 타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결승 때도 마음은 언니들과 함께 트랙을 달리고 몸은 구경하는 처지니까 제가 뛸 때보다 더 긴장되더라고요.”

    사춘기 대신 슬럼프 자주 겪어

    공상정과 스케이트의 인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됐다. 그는 세 살 위 언니처럼 춘천에서 취미 삼아 스케이트를 배웠다. 스케이트에 입문한 지 1년도 채 안 돼 초등부 전국스케이트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맛본 후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갈아탔다.

    “예전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을 야외에서 했어요. 얇은 트리코(빙상복)만 입고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를 견디며 타야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쇼트트랙은 실내경기인 데다 신기한 게 많았어요. 헬멧과 고글도 멋지고 장갑에 방울 달린 것도, 손 짚는 것도 신기했어요. 연습 마치면 축구하는 언니 오빠들도 무척 사이좋아 보였어요. 스피드스케이팅은 혼자 타기 때문에 외로운 싸움인데 그런 모습에 끌려 쇼트트랙을 하게 됐죠. 공부하기 싫어서 운동을 택한 면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싫어했거든요. 지금은 의대에 다니는 언니가 공부하는 걸 보고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학교도 서울로 옮겼다. 아버지를 춘천에 두고 어머니, 언니, 남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지낸 그는 상경해 처음 맞은 스승 송재근 코치에게서 줄곧 가르침을 받아왔다. 잠실 영파여고에서 춘천 유봉여고로 전학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우스갯소리로 북한도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는 ‘중2병’을 앓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못 알아듣는다. 일종의 사춘기라고 풀어주자 그제야 답이 돌아온다.

    “그런 거 없었어요. 사춘기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성격이 워낙 해맑아서.(웃음)”

    어머니 진씨는 “춘천에서는 취미 수준으로 스케이트를 타다 상경 후 기초부터 새로 배웠다. 다른 아이들은 대여섯 살부터 탔는데 상정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시 다지다보니 울면서 연습한 적이 많다”고 귀띔했다.

    ▼ 슬럼프를 겪었다면서요?

    “구력이 짧아서 슬럼프가 잘 와요. 예를 들어 다리를 삐끗했다 치면 예민해져서 거기에 계속 신경을 쓰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훌훌 털어버리는데 저는 우울해지고 타기 싫고 그만두고 싶어져요. 근데 슬럼프에서 못 헤어나다가도 코치 선생님이 다독이고 격려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괜찮아져요. 워낙 오래된 사이라 저를 거의 완벽하게 아시거든요. 슬럼프를 겪을 땐 선수가 된 걸 후회하기도 하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훨씬 많아요. 스케이트를 타며 공부하는 친구들은 모르는 감정을 배우고 메달 따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 부상으로 고생한 적은 없나요.

    “지난해 6월경, 선수촌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정강이 쪽에 피로골절이 왔어요. 초기긴 했지만 무리하면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질 수도 있었어요. 통증이 심해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퇴촌하랄까봐 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안 아픈 척하면서 러닝도 하고 인터벌(Interval Training)도 했어요. 피로골절이 나으니까 양쪽 다리에 아킬레스건염이 생겼어요. 염증 때문에 만날 타이레놀 먹고 탔더니 나중엔 효과가 없더라고요. 너무 아팠지만 티도 못 내겠고 혼자 울면서 탄 적도 많아요. 그 덕분에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참고 타는 법을 배웠어요. 올림픽을 하기 전 3주 정도 쉬면서 아킬레스건염을 고치고 나니까 무릎이 아픈 거예요. 그건 피로골절이나 아킬레스건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놀 때도 운동 걱정

    ▼ 한창 놀고 싶을 나이인데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요.

    “마음 편히 놀아본 적이 없어요. 놀 때도 항상 운동 걱정을 해요. 기회가 되면 부모님과도 연락을 끊고 친구들이랑 며칠간 놀러가고 싶어요. 운동한다고 학교를 열심히 안 다녀서 속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많진 않아요. 지금까지 만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 있는데, 스케이트 시즌이 끝나면 걔들은 시험기간이라 자주 못 봐요.”

    “애국가 울리면 가슴 벅찬 한국 사람 평창에선 개인전 메달 따고파”

    2월 28일 전국동계체전 쇼트트랙 여자고등부 500m 결승전에서 선두를 달리는 공상정(맨 앞).

    ▼ 친구들과 문화적, 감성적으로 통하나요.

    “오래된 친구들과는 잘 통하는데 학교 친구들과 얘기하면 대화 주제도 관심사도 다르니까 잘 안 통해요. 저도 아이들이 뭐에 공감하는지 잘 모르겠고요. 요즘 동창들이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반가워하고 축하해주고 그래요. ‘너 성공했구나’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친구도 있고.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하고 고마워요.”

    ▼ 이성에 대한 관심도 생길 법한 나이인데.

    “코치 선생님이 스케이트를 그만두기 전까지 교제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 관념을 제 머리에 깊숙이 박아놔서 그런지 누구를 좋아하지 못해요. 근데 저도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어요. 손잡고 다니는 데이트를 너무도 해보고 싶고.”

    공상정은 2011년 12월 체육 분야 우수인재로 특별 귀화했다. 2010년 5월 개정된 국적법 제7조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해 대한민국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될 경우 특별 귀화를 통해 국적을 가질 수 있다.

    “중학생 시절 쇼트트랙 주니어 대표팀 막내로 뽑혔는데 국적 때문에 해외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어요. 그 대회를 참관한 선생님들이 상정이가 탔으면 메달 먹었겠더라고 하셨어요. 너무 서러웠어요. 그래서 우수인재 특별 귀화제도가 생기자마자 귀화한 거예요.”

    ▼ 귀화를 고집한 이유가 뭔가요.

    “어릴 때 대만에서 부모님을 통해 대표 자격을 줄 테니 오라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거절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여기서 교육받고 문화생활을 하며 한국 사람으로 자란 내가 대만 가서 대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한국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서 당당히 대표로 뽑혀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는 “태극 마크를 달고 뛴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이 벅찼다”고 고백했다. 또 그가 금메달을 딴 후 “귀화했지만 마음으로 응원했다”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 대만인들에게도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그의 부모는 “우리 부부도 빨리 귀화하고 싶은데 두 딸처럼 아들에게도 국적을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시기를 미뤘다. 남자는 군대 가면 철든다고들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아들이 귀화해도 그다음 세대부터 군대에 갈 수 있다더라”며 아쉬워했다.

    “안현수 오빠, 돌아왔으면…”

    ▼ 안현수 선수의 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빠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다시 돌아오면 좋겠어요. 한국에 계시면 보고 배울 게 많은 선배거든요.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요. 3등을 했는데도 몹시 좋아하는 걸 보니까 그것도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1등을 해야만 좋아하잖아요. 저도 이제 오빠처럼 3등을 해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상정은 4년 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중국의 단거리 선수들을 대적할 유망주로 평가받는다. 빙상 전문가들은 빠른 스타트와 뛰어난 순발력을 그의 강점으로 꼽는다. 그가 국내 쇼트트랙 선수들이 취약한 500m, 1000m 같은 단거리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다.

    ▼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

    “4년 뒤 평창에서는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예요. 이번에는 계주 후보여서 계주만 했는데 개인전에 욕심이 생겼어요. 500m가 주 종목이긴 한데 외국선수들이 워낙 빨라 더 집중해서 타야 해요.”

    ▼ 준비는 잘 돼가고 있나요.

    “개인전에 나갈 수 있게 서서히 등수를 올리고 싶어요. 키가 조금만 더 크면 좋겠어요. 지금은 우유가 맛있는데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마시기 싫어서 가방에 넣어오다 다 터지곤 했어요. 그때 열심히 마셔둘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 만일 스케이트 선수가 안 됐다면 뭘 하고 있을까요.

    “책상에 앉아 있지는 않을 거예요. 공부를 싫어하니까.(웃음) 미술, 성악, 피아노 다 배웠으니까 예체능 계통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걸그룹이 됐을지도.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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