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감동수기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탈북 여대생 졸업기

  • 김혜성 | 연세대 사학과 졸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2/4
그렇게 첫 학기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수업 내용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열등감과 외로움 때문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엄두도 못 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으니 경제 사정이 안 좋아졌고, 교통비가 없어 강의실에 출석을 못하는 날도 있었다. 결국 나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학사경고를 받으면 국가에서 등록금을 보조해주지 않기에 나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휴학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왜 내가 첫 학기를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했다.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사투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고, 그들이 나에게 북한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나는 그때부터 ‘남한 사람 되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북한 억양을 버리기 위해 매일 저녁 볼펜을 입에 물고 신문 사설을 따라 읽었다. 매일 신문 사설을 필사하며 남한식 글쓰기 방식을 익혔다. 또한 나는 남한 친구들과의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소설을 사서 읽었고, 일본 만화도 열심히 읽었다.

남한 친구들이 자주 하는 게임기와 게임 CD들을 전부 사서 직접 플레이해 보았고, 2000년대 이후 유명한 영화, 드라마를 모두 내려받아 보았다. 이렇게 남한 친구들과 같은 문화적 배경을 얻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같은 탈북자 출신들과 연락을 철저하게 끊었다. 이 사회에서 정착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1년6개월을 준비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체의 소비를 차단했다. 버는 돈은 전부 저금하고, 용돈도 아껴 매주 1만 원이라도 저금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내가 살던 임대아파트를 월세에서 전세로 돌렸다. 매월 빠져 나가는 월세만이라도 아끼면 좀 여유로울 것 같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공부는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렵고, 결국 꿈을 이루기 힘들다. 나는 자본주의의 힘을 실감했다.



학점 3점을 넘겼지만…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2013년 프랑스 코르시카 여행 .

노력 끝에 2010년 가을학기의 등록금을 자비로 냈다. 그리고 1년6개월간 혼자 준비했던 것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말씨가 변하자 이제 나에게 “어디서 왔어?”라고 묻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나는 수업시간마다 내 전후좌우에 앉은 모든 학생을 친구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말을 걸었고, 대답할 때도 한껏 긴장해 단어를 선택했다. 그 친구들이 좋아하는 관심사가 있으면 따로 공부를 해가기도 했다. 남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나는 학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남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하도 긴장을 하다보니, 만나고 난 후 등에 식은땀이 흐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가면을 쓰고 덧써가며 내가 아닌 남한의 새로운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북한 사람임을 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북한 사람임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나의 학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2010년 가을 학기에 4.3 만점에 3.3이라는 학점을 받았다. 그토록 꿈꾸던 학점 3점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밖에서 완벽한 남한 사람 행세를 하느라 북한 사람인 ‘나’를 잊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저녁에 집 출입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북한 사람인 ‘나’를 만났다. 너무 외로웠다. 너무 슬펐고, 집으로 들어오면 하루의 긴장이 풀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번 집에 들어오면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싫었고, 나 스스로에게 이토록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배워야 하며, 이 나라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며 여기에 나를 조각을 내서라도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 나는 발전이 없고, 내가 만난 이 사회가 흠 많은 사람을 받아줄 만큼 그렇게 여유롭지도 관대하지도 않았다.

교수님이 준 흰 봉투

나는 북한 사람인데,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죄는 아닌데 왜 이토록 숨기고 살아야 하는가. 수없이 질문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추측만 남았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스스로 너무 비참해졌고, 그런 나를 보는 주변사람들마저 힘들어했다. 너무 혼란스러웠고 매일 그렇게 살다간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학기를 준비했다. 대학에 입학한 이상 졸업은 해야 했다. 목표는 오로지 졸업이었다.

2/4
김혜성 | 연세대 사학과 졸
목록 닫기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댓글 창 닫기

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