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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안보연애소설

려명黎明

6장 머나먼 강

려명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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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순미는 윤기철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중국으로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 윤기철은 정순미에게 돈과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넨다.
  • 마침내 정순미는 중국행 트럭에 몸을 싣는데….
려명黎明

일러스트·박용인

긴장한 윤기철이 정순미를 보았다. 장난으로 허튼소리를 뱉다가 무안을 당한 꼴이다.

“무슨 일이야?”

윤기철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울렸다. 그때 정순미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떨어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정순미가 흐린 눈으로 윤기철을 보았다.

“제 부모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셨어요.”

윤기철이 숨을 들이켰고 정순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집에 혼자 남았지만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될 것 같아요.”

“갑자기 왜?”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온 제 말을 들은 윤기철이 입맛을 다셨다. 놀라서 멍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큰아버지가 체포되었기 때문에, 반역 혐의로….”

정순미의 목소리가 점점 또렸해졌다.

“저는 연락원 일을 하기 때문에 풀려났지만 곧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아?”

“연락원이 바뀌겠지요.”

“정순미 씨는?”

“집도 내놓으라고 했으니까 공장도 다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윤기철은 정순미를 응시한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생각을 정리해보려는 시늉이었지만 뭐가 떠오를 리가 없다. 결국 윤기철이 이렇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이달 안에 결정되겠지요.”

조금 차분해진 정순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가를 꼼꼼하게 눌러 닦았다. 이달 안이면 일주일 남았다.

“아무래도 앞으로 못 뵐 것 같아서요. 제가 수용소에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조 대표도 알아?”

“지도총국장만 알아요. 지금은요.”

정순미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총국장이 그러더군요. 집안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요.”

“…”

“제 생각이지만 과장님이 이번 일을 끝내고 오시면 저도 교체될 것 같습니다. 반역자 가족이 이런 곳에서, 더구나 연락원 과업까지 수행할 수가 없거든요.”

윤기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씩 정리돼간다.

“내가 도와줄 일 있어?”

윤기철이 정순미를 똑바로 보았다. 정순미가 신세한탄이나 하려고 내막을 털어 놓았을 리는 없다. 지금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저 표정을 봐도 그렇다. 절박하지만 뭔가 결심이 선 얼굴이다. 그때 정순미가 말했다.

“저 여길 떠나겠어요.”

윤기철은 움직이지 않았고 정순미의 말이 이어졌다.

“도와주실 수 있어요?”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에 불안한 기색이 낀 것 같아서 윤기철이 헛기침을 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저도 모르게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정순미가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조·중 국경 쪽으로 올라가려면 며칠 걸릴 건데 돈이 없어요. 보위부에서 다 가져갔기 때문에, 선물로 주신 롤렉스도 가져갔어요.”

“…”

“200달러만 빌려주세요.”

“줄게.”

바로 대답한 윤기철이 심호흡부터 했다.

“언제 갈 건데?”

“과장님이 내일 서울 가시고 나서요. 내일 밤에 출발하겠어요.”

거기까지 또렷하게 말하던 정순미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나 정순미는 곧 눈물을 멈추고 윤기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과장님, 고맙습니다.”

“고맙긴, 200달러 가지고…. 그런데 200달러면 돼? 국경은 어떻게 넘을 건데?”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시 손수건으로 눈가를 꼼꼼하게 닦은 정순미가 심호흡을 했다. 이제는 다시 얼굴이 차분해져 있다.

“국경을 넘기만 하면 견딜 수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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