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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남자 무용수, 수학교사…엘리트 탈북자를 ‘통일 열쇠’로 쓰자

‘北 전문직’ 탈북자 좌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여군, 남자 무용수, 수학교사…엘리트 탈북자를 ‘통일 열쇠’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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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강의 하러 다니다보면 학교당 한두 명씩 탈북 청소년이 있어요. 교사도, 학생도 숨기더라고요. 애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말 안 하고, 엄마는 절대 학교 못 오게 한대. 북에서 왔다는 게 일종의 ‘커밍아웃’인 거예요. 엄마를 숨기고 살려니 애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김영진 애들은 말투를 고쳐도 엄마가 오면 딱 티가 나니까…. 사춘기 아이들은 정말 예민하잖아요. 근데 적응 잘하는 탈북 청소년도 있어요. 학생회장도 해요. 그런 애들은 먼저 커밍아웃해요. 한국 교사들도 어려운 게 저애가 탈북자인 걸 아는데 혜택 주려고 하면 애들이 “저 탈북자 아니에요, 여기서 태어났어요” 해버리니….

한정민 근데 저도 그랬어요. 한국에 와서 3개월 만에 여수박람회에서 조선족들이랑 같이 일하게 됐는데 거기 누가 “탈북자라고 하면 시끄러우니까 그냥 조선족이라 해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사람들이 “말씨가 딱 평양 말툰데?” 알아보더라고요. 제가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했더니 거기 땅값이 얼마냐고 묻네요. 그래서 “에라이” 하고 “북한에서 왔수다” 했더니 편해지더라고요. 저는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닌데 다들 알아봐요. 가끔 신기해서 “오케 아셨지요?” 하고 되묻기도 해요.

기자 정말 다른 두 분에 비해 한정민 씨는 여전히 평양 말투가 강하네요.

김영진 그만큼 평양 말씨에 자부심이 있는 거죠.



기자 북한에서 예술교육을 받는 건 특권이죠?

한정민 네. 열두 살에 뽑혀서 평성예술대학 들어갔어요. 고향에서 어머니한테 아코디언을 배웠는데, 예술대학 간부가 저를 딱 뽑아서 시험 보라고 한 거예요. 대학 방학 기간에 교사들이 학생들 사는 지방에 다니면서 신입생을 뽑으러 다녀요. 그때 저는 아코디언으로 기악과 시험 봤는데 제가 지나가는 걸 무용교원이 보고 “얘는 기악보다 무용이 좋겠다”해서 무용으로 붙었죠. 북한에서도 남자 무용수는 귀하니까 남보다 빨리 평양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도 무용했어요.

조선인민군협주단의 정리해고

여군, 남자 무용수, 수학교사…엘리트 탈북자를 ‘통일 열쇠’로 쓰자

4월 평양에서 공연한 북한의 한 예술단.

김영진 이런 사람은 천재예요. 12세부터 특수교육을 받은 거잖아요. 저희 오빠는 열두 살에 외대에 갔어요.

기자 협주단에 얼마나 계셨죠?

한정민 8년. 그중 4년은 공군사령부 소속이었고요. 한국으로 치면 국방부 소속 예술단이었던 거예요. 공연 활동도 많이 했죠.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면서…. 근데 2008년 ‘정리해고’됐어요.

기자 왜요?

한정민 인민무력부에서 사무실에 ‘군부 5명 중 3명 자르라’ ‘과장들도 직무 맡으라’고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전까지 과장들은 별도 업무가 없었거든요. 왜냐 했더니 그때 김정일이 지방에 시찰 나갔다가 한 군사를 불러 세웠대요. 근데 그 군사가 겉옷은 겨우 빌려서 챙겨 입었는데 팬티를 못 입은 거지. 김정일이 충격을 받은 거죠. 그때 사령부 산하 군인을 30% 축소하면 한두 군단 입힐 피복이 생긴다는 계산을 했나봐요. 저희는 전투는 안 해도 1년에 최소 군복 두 벌씩은 나왔거든요. 그래서 김정일이 불필요한 사람들 자르라고 하니까 먼저 북한군 공군합창단이 해체됐고, 저희 협주단도 1000명 중 700명이 잘렸죠. 사실 협주단 정도 오려면 대부분 ‘백’이 있거든요. 근데도 다 잘렸으니 얼마나 사정이 안 좋았는지 알 만하죠.

이소연 그러고 고향으로 간 거예요?

한정민 고향에 갔는데, 정말 놀랐어요. 저는 평양에서 있었으니 몰랐는데 우선 물을 못 먹겠는 거예요. 2년 동안 음식도 국수랑 두부만 먹었어요. 고향의 삶이 정말 비참하더라고요. 제가 세상 물정을 모르니 장사하는 친구들 2년 정도 따라다니며 온 동네 다녔는데, 평양에서 멀어질수록 삶이 장난 아니게 비참하더라고. 평안도에서 평북도 딱 건너가는데 “이게 어떻게 사람 사는 거냐” 했어요. 어디 가정집 화장실 갔는데 휴지가 없는 거예요. 봤더니 변소 옆에 강냉이 껍질이 담겨 있어요. 휴지도 없는 거야. 충격이지. 거기 사람들이 나를 평양에서 왔다고 대우하면서 자기 집 방 안에 앉으라고 하는데, 정말 앉기가 싫더라고. 나는 선전하는 대로만 알고 우리 평양은 잘 먹으니 지방도 점점 나아지는 줄 알았지, 그런 현실을 전혀 몰랐어요.

김영진 평양은 다른 나라예요. 지방이랑은 전혀 달라요.

이소연 최근 남한에 온 57세 할머니가 있는데 70대로 보여요. 먼저 탈북한 딸이 모셔왔는데 오는 내내 “남조선 안기부에서 순진한 딸한테 돈을 줘서 나를 미국놈 땅에 끌고 간다”며 통곡했대요. 지금 방송에서 많은 탈북자가 “북한에 한류 다 들어갔다” “북한사람들 다 깨어 있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평양을 제외한 지역들, 아직도 김정은 보면서 “수령님이 환생하셨다” 하는 사람이 70%는 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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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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